Tumgik
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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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Satoh Shinji (1966.2.16~1999.3.15)
いつもありがとう。
いつでも僕らをよろしくたのむ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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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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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나이가 들고 지식이나 경험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세계가 줄어서, 감동이 사라져 가는 면도 있을거 같은데
반드시 그렇다곤 할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 자신을 되돌아 보면, 저 자신은 뭐든지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젊은이 대부분은 오만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이가 먹을수록 저 자신이 그야말로 제대로 알지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리 하나를 들어도 자꾸 모르는 소리가 나오고. 남겨진 시간은 줄어드는데, 모르는 것은 자꾸 증가 해버려서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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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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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krey Auction
<ALGORITHMS TO LIVE BY: THE COMPUTER SCIENCE OF HUMAN DECISIONS(2016)>
죄수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배신이 어떻게 ‘우월’ 전략임이 드러나는지를 알았다. 당신의 공범자가 배신하든 협력하든 상관없이 최선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비크리Vickrey 경매에서는 정직이 우월 전략이다. 메커니즘 설계자의 성배다. 전략을 짜거나 재귀에 빠질 필요가 없다. (468)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이 바로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타인이 본래 사악하거나 불쾌한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자신을 알고자 애쓸 때 우리는 타인이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이용한다. 우리는 타인이 지니고 있으면서 우리 자신을 판단할 때 쓰라고 우리에게 준 수단들을 갖고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내가 내 자신을 뭐라고 하든 간에 누군가의 판단이 언제나 끼어들게 마련이다.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타인의 판단이 끼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저 우리 각자에게 타인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장에서 살펴본 것들을 고려할 때, 아마 우리는 사르트르의 말을 수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타인과의 상호 작용이 반드시 악몽일 필요는 없다. 비록 잘못된 게임에서는 확실히 그럴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케인즈가 간파했듯이 대중은 복합적이고, 어렵고, 재귀적인 거울의 방이다. 하지만 아름다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는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다. 남의 전술을 예견하거나, 예측하거나, 읽어 내거나, 그 때문에 방향을 바꿀 것을 요구하지 않는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야말로 고르곤의 재귀 매듭을 자르는 한 방법이다. 그리고 때로 그 전략은 단순히 쉬운 차원의 것만이 아니라 최적 전략이 된다.
전략을 바꾸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게임 자체를 바꾸려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적어도 자신이 할 게임을 선택할 때 얼마간 통제권을 발휘할 수는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처치 곤란한 재귀, 나쁜 균형, 정보 폭포를 통해 닦인다. 정직이 우월 전략인 게임을 찾아라. 그런 뒤, 자기 자신으로 살아라. (47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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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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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yth of Repressed Memory
The Myth of Repressed Memory (1994)
‘기억의 순응성(malleability)’, ‘오정보 효과(misinformation effect): 사후 정보에 의한 기억의 변형’, ‘잘못된 정보로 인한 기억의 왜곡’ (17)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분필과 지우개로 끊임없이 썼다 지웠다 하는 변화무쌍한 칠판이라는 점, 외부의 영향에 쉽게 좌우되는 우리 마음의 본질
“우리 마음이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각각의 기억은 그 물에 뒤섞여 들어가는 한 스푼의 우유라고 보고요. 모든 성인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뿌연 수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누가 거기서 물과 우유를 따로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내가 이 비유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기억이 마치 코드화된 컴퓨터디스크나 서랍에 고이 모셔둔 빳빳한 서류철처럼 우리 뇌의 특정 부위에 존재한다는 흔한 해석을 뒤집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영(spirit)'이나 ’영혼(soul)' 같은 말의 사용을 꺼리기는 하지만, 나는 기억이 물적인 실체보다는 영적인 실체에 더 가깝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바람이나 숨이나 증기처럼 존재하지만, 만지려 하면 흐릿하게 사라져버린다. (18)
심지어 존재한 적도 없는 인물이나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믿게 만드는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거짓기억(false memory)’을 심는 일도 가능했다.
내 연구는 기억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해석하는 비디오레코더 모델에서 사실과 허구가 창조적으로 뒤섞인 것으로 이해하는 재구성 모델로, 기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일조해왔다. (20)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마크 트웨인) /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헤겔)
억압(repression)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이 드라마는 바로 인간의 마음속, 다시 말해 현실이 본래 상징적인 곳, 이미지가 경험과 감정의 연금술에 의해 기억으로 변하는 곳, 그래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24-25)
내가 연구실을 뛰쳐나와 현장 연구의 아수라장으로 기꺼이 뛰어든 것은 과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의 원인을 따지느라 머리를 싸매고, 거기에 뒤얽힌 우연과 의도를 꼼꼼하게 풀어나가는 데서부터 말이다. ... 나는 억압 현상이 우리 자신의 내면을 어렴풋이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 거울을 편견 없이 보고자 한다면, 어딘가에 속하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이해받고 회복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에 관한 심오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74)
이야기적 진실(story-truth)과 실제로 일어난 진실(happening-truth), 우리는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이야기적 진실인지 헷갈리게 된다. (77-78)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변한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변화와 왜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관한 사실들이 우리 마음속에 뒤섞여 들어오면서, 원래의 기억은 서서히 변형을 일으킨다. (91-92)
프로이트가 불확정적인 은유(우리 마음의 닿기 힘든 비밀스런 부분에 어떤 감정과 경험들이 묻혀 있다는 시적인 관념)로서 제시한 개념이 문자 그대로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포로이트는 억압을 알레고리로 사용했다. 즉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한 상상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은유적 표현을 혼동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은 무의식과 그 내용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기억이 통째로 몇 년 동안 묻혀 있다가 낡고 상한 곳 하나 없이 본래 모습 그대로 발굴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00-101)
기억의 다른 조각들이 떠오르면 최초의 핵심적인 기억에 접목되면서 이미지, 감정, 경험, 믿음이 상호 연결된 복잡한 체계가 만들어졌다. 다만 나는 그 체계가 확실한 사실이 아닌 소망, 꿈, 공포, 욕망으로 이루어진 덧없는 조합일 수 있다고 믿는다. ... 즉 에일린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진실이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은 진실이다. (121-122)
낯선 환상, 기이한 환영, 비현실적인 환각이 반드시 계시적인 것은 아니다. ... 간단히 말해 환각은 인간 조건의 일부다. 꿈이란 잠든 사람이 겪는 환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24-125)
그러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내 머릿속에서는 생생하다 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내가 기념품 가게 바깥에서 에일린 프랭클린이 머그컵을 집어 들고 가격표를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봤던가? ... 이처럼 비교적 사소한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조차, 나는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적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135)
‘의원성 주입(iatrogenic implantation)’, ‘의원성’ 질환이란 의사(혹은 치료사)의 행위에 기인하는 질환을 말한다. 치료사의 태도, 기대, 행동은 끔찍한 학대에 대한 환자의 생생한 기억을 암시, 강화할 수 있다. 치료가 병을 만드는 것이다. (158)
그들의 기억은 거짓이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그들이 치료사로부터 ‘탈출’해 적절한 심리적 치료법을 찾아내자, 그 기억들은 진실의 거센 바람에 밀려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359)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씩 그 말을 되뇌어야 했다. 이건 기억에 관한 논쟁이지 이념 논쟁이 아니야. 기억, 기억, 기억에 관한 논쟁이라고. (365)
양측이 난타전을 벌이는 동안 장외에서 지켜보던 나는 한 가지 위안을 얻었다. 적어도 이제는 ‘지옥에서 온 사악한 소아성애 심리학자’가 두 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378-379)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바버라가 한 일이 뭔지는 ��았다. 그녀는 내 기억을 훔쳐다가 핀으로 찌르고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387)
“경험이란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의미한다.”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453)
“되살아난 과거란 환자로 하여금 과거, 현재, 미래의 ‘실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게 함으로써 환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과거”이기 때문이다. ... “자극과 반응 사이, 사건과 행동 사이에 마음의 작용이 있다. 그것은 상징, 즉 ‘마음의 작용이라는 시’를 짓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이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심리치료는 학대와 피해라는 어휘를 버리지 않고도 당면한 사회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는 장이 될 수 있다. ...... 우리는 학대받는다는 느낌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학대받는다는 느낌, 무기력하다는 느낌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의한 학대가 ‘직업’, ‘재정상태’, ‘정부’ - 내 삶에 함께하는 모든 것들 - 의 실제 상황에 의한 학대만큼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실은 혁명의 산실이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진정 무엇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나?”와 같은 문제를 논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심리치료에서 그런 논의를 한다면 멋진 시도일 것이다.” (458-459)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 (프로이트) (459)
“우리는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가장 강력한 원을 보고 신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신은 우리가 원하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었다. 심연, 수수께끼, 절대적 어둠, 절대적 밝음, 물질, 영혼, 궁극의 희망, 궁극의 절망, 침묵.”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가 우리의 운명에 대해 물을 때 -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할 때, 몸과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몸부림칠 때, 신이나 인간 조건의 풀리지 않는 신비에 관해 물을 때 - 우리는 의미를 구하고, 통찰을 구하고, 절망의 깊이와 희망의 가능성을 가늠할 방법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과 대답은 우리가 탐색하려는 경험의 깊이를 축소시킨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460-461)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에게 불의에 맞서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그녀의 가족(피시먼, 브레스킨 등)에게 감사와 애정을 전한다. 그녀가 엘리 위젤���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덕분이었다. 엘리 위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불의를 미리 막지 못하는 일은 생길 수 있어도, 불의에 맞서는 일은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다.”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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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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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の骨 鳥の羽根
/ cero
バスタブに落ちる水と 川底 無数の石砕く激流 裸足の指が触覚する何か
天を仰ぐ喉の奥を 鼻血が伝う 手の平を真っ赤にして 飲み干したジュース
Floating on water たゆたう フレグランス 見つめ合う 水銀の眼(まなこ)
わたしたちのなかを(魚の骨 鳥の羽根) せわしく蠢くなにか(車のバネ 夜の雨)
わたしたちのなかを(花の蜜虫たちの声) せわしく蠢くなにか(貨物列車は森の方へ)
Floating on water たゆたう フレグランス 心のない 動物たちの口づけ
Woo Floating on water...
Floating on water たゆたう フレグランス 見つめ合う 水銀の眼(まなこ)
(魚の骨 鳥の羽根) (車のバネ 夜の雨) (花の蜜虫たちの声) (貨物列車は森の方へ)
욕조에 떨어지는 물과
강바닥의 무수한 돌을 깨뜨리는 격류
맨발 발가락에 느껴지는 무언가의 촉각
하늘을 바라보는 목구멍 깊숙이
코피가 흐르고
손바닥을 새빨갛게 만든 마셔버린 주스
Floating on water 흔들거리는 프레이그런스
마주 보는 수은의 눈(눈알)
우리들 속을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무언가 (자동차 스프링 밤 비)
우리들 속을 (꽃의 꿀 벌레들의 목소리)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무언가 (화물 열차는 숲 쪽으로)
Floating on water 흔들거리는 프레이그런스
마음이 없는 동물들의 입맞춤
Woo
Floating on water...
Floating on water 흔들거리는 프레이그런스
마주 보는 수은의 눈(눈알)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
(자동차 스프링 밤 비)
(꽃의 꿀 벌레들의 목소리)
(화물 열차는 숲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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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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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년 후의 투혼전승
20년 후의 투혼전승
  모테기 킨이치(Fishmans) x 타카기 쇼헤이(cero)
  1990년대에 휘스만즈가 개최했던 라이브 이벤트 「투혼」이 마침내 20년 만에 부활하게 되었다.
  이 이벤트는 휘시만즈가 YO-KING이나 SUPER BUTTER DOG, HONZI, Buffalo Daughter,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와 같은 강자들과 함께 공연을 펼쳤던 명물 라이브 시리즈로, 오랜만의 부활을 기념하여 휘시만즈가 상대로 지명한 팀은 바로 cero. 데뷔 당시부터 휘시만즈와 비교되었고, 올해(2018) 들어서는 걸작 「POLY LIFE MULTI SOUL」을 완성한 cero는, 휘시만즈와 어떤 일전을 펼치게 될까? 음악 나탈리 특집에서는 모테기 킨이치(휘시만즈)와 타카기 쇼헤이(cero)의 특별 대담을 전달한다.
  취재·글 / 오이시 하지메(大石始)
촬영 / 히라노 타로(平野太呂)
      휘시만즈는 처음 접한 뺄셈의 음악 (타카기)
  ── 타카기 씨가 휘시만즈를 듣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입니까?
  타카기 쇼헤이(cero): 아라우치 (유 (荒内 佑/cero)) 군이 먼저 좋아했고, 제가 듣기 시작했을 땐 휘시만즈가 활동을 중지한 뒤였어요. 고등학교 옆에 뭔가 색다른 어른들의 사교장이었던 다방이 있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다들 휘시만즈를 좋아했어요. 그 분들이 「기억의 증대」(1990년대 후반 휘시만즈의 라이브를 수록한 영상집)를 VHS로 더빙해 주었어요.
  모테기 킨이치(휘시만즈): 헤에, 무슨 가게?
  타카기: 센가와(仙川)의 타이니 카페(タイニーカフェ)라는 가게였어요. 고등학생 시절에 공연을 시켜달라고 한 적도 있는 가게에요. 그 분들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나이트 크루징」을 커버했더니 “10년 빠르네!”라고 하셔서(웃음). 어린아이였지만 “어른들에게 휘시만즈는 성역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 당시 타카기 씨는 휘시만즈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했었나요?
  타카기: 고등학생 무렵은 “하나 둘!”하고 시작하는 음악에 이끌렸지만, 제게 휘시만즈는 처음 접한 뺄셈의 음악이었어요. “이런 음악이 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어요.
  모테기: 확실히 앨범이 거듭될수록 점점 뺄셈의 방향으로 나아갔던 느낌이 있지요. 결성 당시에는 The Clash 같은 곡을, 그야말로 “하나 둘!” 식으로 했었지만,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가다 보니, 레게 리듬의 생각하는 방식을 의식하게 되었죠. Arrested Development와 벡(beck)도 큰 힌트가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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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Y LIFE MULTI SOUL」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작품 (모테기)
  ── 데뷔 당시에 cero는 휘시만즈와 자주 비교되었는데요. 그것에 대해서 타카기 씨는 어떻게 생각했었나요?
  타카기: “이건 비교될 수밖에” 싶을 정도로 완전히 영향을 받았으니까요(웃음). 저희 세대의 밴드는 휘시만즈와의 거리가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조금 위의, 휘시만즈와 가까운 세대라면 음악적으로는 그다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할까, “그렇게 간단하게 흉내 낼 수 없어”라는 감각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는 악의 없이 천진난만하게 휘시만즈의 영향을 흠뻑 받고, 거기에서부터 어떻게 자기를 확립해 나갈 것인지 시행착오의 단계로 들어가기 때문이죠. 첫 앨범 때부터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세 번째 앨범(2015년 5월 발매한 「Obscure Ride」) 쯤부터 제 안에서 휘시만즈와의 거리감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어요. 거역하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할까요.
  ── 보컬리스트로서도, 사토 (신지) 씨의 가사 세계로부터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시행착오도 있었던 건가요?
  타카기: 언어에 대해서라면 사토 씨와는 아주 다른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가사는 좀 더 구체적이고, 가사를 읽어보면 시추에이션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것 밖에는 쓸 수 없지만, 사토 씨의 가사는 언어의 흔들(거)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디가 무대인지, 거의 알 수 없어요. 타입으로서는 가장 멀다고 생각해요. 사토 씨 같은 언어는 저는 절대 쓸 수 없어요.
  모테기: 사토 군의 언어는 어떤 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요. 타카기 군의 가사도 사토 군의 가사도, 시대가 변해도 그 시대의 시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타카기: 기쁘네요. 사토 씨의 언어가 그 목소리와 나놀 수 없게 결합되어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각해요. 휘시만즈의 가사를 언어로 읽으면, 사토 씨의 그 목소리로 재생되어 버리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죠.
  모테기: 그런데, 사토 군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인상이 들었어요?
  타카기: 아-, 역시......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모테기: 그건 모두 말하죠!(웃음)
  타카기: 하지만, 금방 중독되어 버렸습니다. 사토 씨의 목소리는 물론 이마와노 키요시로(忌野清志郎) 씨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것 플러스, 제 안에서는 하라 마스미(原マスミ) 씨일 때도 있고, 치쿠 토시야키(知久 寿焼) 씨 같은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 휘시만즈가 오버그라운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어요. “어, 이게 도쿄를 대표하는 음악이던 시절이 있었어?”
  모테기: 엄청 재밌네요!
  타카기: 매우 무례한 말씀인지도 모르겠지만(웃음).
  모테기: 하지만, 「POLY LIFE MULTI SOUL」(cero의 최신작)에는 그러한 인상이 있어요.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魚の骨 鳥の羽根)」를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뭐지?”라는 이물감이 있어서, ‘이런 감각 정말 오랜만이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물감을 느낀 음악을 나중에 좋아하게 된 적이 아주 많았는데, 역시 예상대로 「POLY LIFE MULTI SOUL」은 저에게 있어, 올해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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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혼자만으로는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의 발상은 나오지 않아요 (타카기)
  ── 모테기 씨는 cero를 그 이전부터 의식하고 있었나요?
  모테기: 3년 쯤 전에 음악 관계자 분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요즘 관심 있는 밴드”라며 두 팀을 알려줬어요. 「Obscure Ride」를 발매했던 무렵의 cero와 데뷔 전 Suchmos. 음원을 들어 보니, 둘 다 대단했어요. 「Summer Soul」(「Obscure Ride」 수록곡)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 수 없잖아!”라는 느낌도 들었구요. 사토 군이 있던 때의 휘시만즈에서 스차다라파나 TOKYO No.1 SOUL SET과 같이 했던 시기가 떠올랐어요.
  타카기: 너무 기쁘네요.
  모테기: 그런데, 생각해 보면 「Obscure Ride」와 「POLY LIFE MULTI SOUL」은 같은 밴드의 앨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진폭이 넓잖아요. 휘시만즈도 「공중캠프」(1996년 2월 발매)를 냈을 때 “이게 데뷔 앨범인가요?”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거든.
  ── 그 정도로 초기의 앨범과 「공중캠프」의 인상이 다르다는 거겠죠.
  모테기: 네, 맞아요. cero의 앨범 2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Obscure Ride」도 좋아했지만, 「POLY LIFE MULTI SOUL」 같은 음악을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특히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 오늘은 그 곡의 베이스가 된 음악이 대체 무엇인지, 타카기 군에게 물어 보고 싶었어요(웃음).
  ── 그럼, 들어 볼까요? 타카기 씨, 어떻습니까?
  타카기: 일본의 음악이라면 코드와 선율처럼 그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 많아서, 그런 것에 대해서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은 많이 있지만, 리듬의 심층에 대한 주제가 다뤄지는 일은 적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던 중에 처음 완성한 것이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였어요. 「POLY LIFE MULTI SOUL」이라는 앨범은 키보드 아라우치 군 주도로 시작했는데요, 그 친구는 아프리카의 루츠 음악과 재즈 같은 도시적인 음악을 연결시켜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 출구로서 포스트 펑크적인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Lounge Lizards나 Arto Lindsay 같은 방향성의 것에 일본어가 얹혀 있는, 그런 식이랄까요.
  모테기: 그렇구나. 「POLY LIFE MULTI SOUL」이 대단한 것은, 그런데도 ​​음악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부분이죠.
  ── 팝이기도 하고.
  모테기: 그래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만드는 건 거꾸로 쉬우니까. “팝적인 필드에 적용시키겠다”라는 기백 같은 것조차 느껴졌어요.
  타카기: 맞아요. 그건 엄청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모테기: 휘시만즈와 cero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휘시만즈로 말하면, 베이스(카시와바라) 유주루는 굉장히 실험적인 걸 하지만, 유루주가 하는 말만 들으면 절대로 팝이 되지 않거든(웃음).
  타카기: 밴드라는게 그런 거니까요(웃음). 나와 아라우치 군의 관계성도 정말 그렇거든요, 저는 팝 지향라고 할까, 아라우치 군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쪽인 거죠. 그냥 저 혼자만으로는 「물고기의 뼈 새의 날개」의 발상은 나오지 않아요.
  모테기: 서로 필요로 하고 있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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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토 군과 “끝나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라고 말했었지 (모테기)
  타카기: 그리고 cero와 휘시만즈의 공통점이라면, 록적인 포맷을 취하면서도, 록이 아닌 문맥을 타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휘시만즈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드럼 필의 마지막에 심벌을 치지않는 거였어요.
  모테기: 오오!
  타카기: 그때까지 저는 박자의 앞부분에 바샨-하고 심벌을 치는 드럼 밖에 몰랐기 때문에, 필의 마지막에 하이햇을 치는 모테기 씨의 드럼이 신기하게 들렸어요. 하지만, 그건 레게 스타일에 발단이 된 것이기도 하고, 댄스 음악적인 것이기도 하잖아요. cero의 「POLY LIFE MULTI SOUL」도 댄스 음악적인 계속 이어지는 그루브를 목표로 삼았어요. 끝이 없이, 걷고 있는 듯한 리듬이랄까. 그것도 역시 휘시만즈로부터 영향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구요.
  모테기: 그렇구나. 사토 군의 언어도 드럼 필 같은 것이어서, “이런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이라고 결론을 말하지 않는 것이 되어갔어요. 그야말로 「WALKING IN THE RHYTHM」(1997년 발매된 앨범 「우주 일본 세타가야(宇宙 日本 世田谷)」 수록곡)은 아니지만, 계속 걸어가는 감각이 언어에도 드러나고 있었죠. 그래서 심벌을 칠 방법이 없었던 거에요(웃음).
  ── 그렇군요.
  모테기: 그런 걸 사토 군과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네요. “끝나지 않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라고. 그 발상에서 「LONG SEASON」(1996년에 발표된 총 35분 16초 모음곡)으로 나아갔던 거에요.
  타카기“ 「LONG SEASON」과 같은 형태로 Extended(확장) 할 수 있는 언어였다라는 것이기도하네요. 보통의 언어라면, 저런 식으로는 Extended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휘시만즈의 언어과 음악은 원래 그런 요소가 들어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거야말로 저희들이 영향을 받았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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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닮지 않았지만, 춤 출 수 있다...... 그게 제일 멋진 음악 (모테기)
  ── 이번에 부활한 「투혼」에 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만, 이 라이브 시리즈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어떤 의도로 했던 건가요?
  모테기: 이미 오래전 이야기네요...
  ── 정확히 20년 전이지요(웃음).
  모테기: 예전 휘시만즈는 라이브의 근력이 약했어요. 그래서 세 번째 앨범(1993년 발매 「Neo Yankees' Holiday」)을 내고 나서, 다른 팀들과(対バン) 라이브를 매주 하게 됐어요.
  타카기: 매월이 아니라, 매주에요? 극단적이네요(웃음).
  모테기: 그렇긴 하죠(웃음). 그 시기에 발견이 많이 있어서, 저희들의 연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명확하게 된 부분이 있어요. 그 후에도 다른 팀들과 하는 라이브는 계속했지만, 1997년에 「투혼」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새롭게 시작했던 거죠. 원래 사토 군은 프로 레슬링을 아주 좋아했으니까.......
  ── 이노키이즘의 계승자이기도 하죠(웃음).
  모테기: 그렇죠(웃음). 표면에는 드러내지 않지만, 사토 군이 아주 뜨겁거든. “절대 지지 않아”라는 스탠스는 다른 사람 보다 두 배 정도 강했어요. 지금의 저는 콜라보를 자주 하는 전혀 다른 밴드도 하고 있지만(웃음), 휘시만즈는 다른 밴드와 콜라보를 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1997년 소울 세트(ソウルセット)와 야음(野音)에서 「나이트 크루징」과 「LONG SEASON」을 같이 했는데, 그런 식으로 콜라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것이 「투혼」이라는 형태가 된 거죠.
  ── 그 「투혼」을 이번에 20년 만에 부활시킨 건데요, 그건 어떤 생각에서?
  모테기: 1990년대에 「투혼」으로 했던 것 같은 자극적인 것을 휘시만즈 이름으로 하고 싶었던 거에요. 라이브가 가장 중요하고, 라이브에서야 말로 저희가 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다라는 생각은 사토 군이 있던 때부터 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5년 휘시만즈가 부활하고 이후의 흐름에서 그런 것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졌어요.
  ── 그럼 그 상대로서 cero을 선택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나요?
  모테기: 역시 「POLY LIFE MULTI SOUL」을 들어 버렸다는 것이 커요. 아까 타카기 군이 배경에 Lounge Lizards와 아프리카 음악이 있었다고 얘기했지만, ◯◯풍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아무것도 닮지 않았지만, 춤 출 수 있다...... 그게 제일 멋진 음악이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여러 사람들 안에 각각의 리듬이 있다”는 것을 음악으로 구현한 것에 아주 감동했어요. 이걸 팝으로 했다는 건 대단한 발명이라고 생각해요.
  타카기: 바로 그런 것을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이것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 타카기 씨는 휘시만즈로부터 「투혼」에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어떻게 생각했나요?
  타카기: 고등학생 때 「나이트 크루징」을 커버하고, 어른들에게 “10년 빠르다”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놀라운 걸 넘어 신기하다고 할까요. 그 시절의 어른들도 보러 왔으면 좋겠네요(웃음).
  모테기: 보러 오면 좋겠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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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체적인 한계가 나오는 것에서, 거꾸로 신체성이 보여진다 (타카기)
  ── 그럼, 라이브 퍼포먼스에 대해 현재의 휘시만즈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모테기: 우선 쾌감이 있어야죠.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을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1990년대 이상의 퀄리티로 전하고 싶다는 것이 대전제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역시 사토 군이 만든 언어와 멜로디. 2018년에 와닿지 않았다면 저도 여기까지 할 생각이 없었고, 언제 연주해도 압도적으로 울려오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있는 한에서는 계속 전하고 싶은 거죠.
  타카기: 3, 4년 쯤 전에 「VIVA LA ROCK」이라는 페스에서 휘시만즈의 라이브를 봤는데요, 저음이 엄청나서 지반이 흔들리는 것 같은 울림이었습니다(웃음). 카시와바라 씨의 베이스 앰프가 스테이지 위에 없는 것도 놀라웠어요. 프리 앰프를 통해 직접 PA에 연결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스테이지는 정말 심플했어요. 그런데도 천재지변 같은 굉장한 소리가 울리더라구요.
  모테기: 유주루의 세팅은 날에 따라 바뀌니까. 하지만, 천재지변 같은 소리는 변하지 않죠. 언제나 천재지변(웃음).
  타카기: 또, 휘시만즈 라이브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모테기 씨의 패드. 백그라운드 코러스의 많은 부분이 그 패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만, cero였다면 실제로 노래를 불렀을텐데, 휘시만즈의 경우에는 일부러 샘플러를 사용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약간의 어긋남이 발생하거나해서, 거꾸로 육체적인 감각이 나오더라구요. 그 방법이 아주 현대적인 것 같아요.
  모테기: 샘플은 원래 키보드 HAKASE가 맡았었는데, HAKASE가 그만 둬 버렸기 때문에, 제가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그 타이밍과 프라이빗 스튜디오(와이키키 스튜디오 - 역주)를 만든 시기가 같아서, 이것저것 샘플링해서 스스로 소리를 내는 실험을 하게 됐어요. 음, Manipulator를 사용해서 소리를 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발상조차 없었으니까. 어쨌든 전부 스스로 하자, 라고.
  타카기: 그 부분이 남자의 마음을 부추기니까요(웃음). Manipulator에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하자는 발상. 패드를 사용하게 되니까, 더욱 박자의 앞부분에 심벌이 사라져 갔을 수도 있겠네요.
  모테기: 응, 확실히 그렇지.
  타카기: 신체적인 한계가 나오는 것에서, 거꾸로 신체성이 보여 진다. 그런 것이 굉장히 지금 같은 느낌이거든요. 여기 최근 해외의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서 휘시만즈의 라이브 음반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해요.
  모테기: 아니-, 이렇게 기쁜 말을 들으면 불타버려요. 정말 투혼인거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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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 이 날 일어난다 (모테기)
  ── 그럼, 마지막으로 그 「투혼」에 대한 두 사람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타카기: 휘시만즈를 지금의 밴드로서 다시 받아들이는 지점이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 무척 기쁩니다. 제 주위에도 지금의 밴드로서 듣고 있는 흐름이 엄청나게 있고, 제 스스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휘시만즈와 cero는 상성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굉장히 재미있는 라이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테기: 있잖아, 내 안에 꿈꾸고 있는 게 있는데...
  타카기: 예.
  모테기: 휘시만즈의 곡을 연주하는 중에 비트가 바뀌어 가면서, cero 모두가 합류해 간다라는 걸 해보고 싶거든.
  타카기: 정말입니까! (웃음)
  모테기: 그래그래. 예를 들면 말이지만.......
  ── 앗, 잠깐 기다려주세요. 그 계획을, 기사에 써 버려도 괜찮을까요?
  모테기: 써주세요. 유언실행(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니까.
  타카기: 이건 단단히 각오해서 임하지 않으면... (웃음).
  모테기: 어쨌든,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 이 날 일어난다, 그런 라이브가 됐으면 좋겠어요.
    (번역 / 김해리)
  /*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가능한 직역을 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더욱 매끄러운 문장을 알려주시면, 술 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9.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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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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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지음
         2018.12.7
    나무연필
                   고통을 겪는 이가 고통을 전시하는 것을 통해 겨우 유령을 면하고 그나마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 곁에 선 이는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그저 유령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곁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곁의 현존을 착취하고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곁이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바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17-19)
    1. 고통의 지층들 - 고통의 곁, 그 황량한 풍경에 대하여
    ‘고통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고통의 가치와 의미다. (54)
    말하고 싶지 않음. 그러나 말하고 싶음. (71)
    이충연이 보기에 용산참사는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들과 세계, 그들과 권력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그들 ‘사이’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은 무의미하며 위험하다. ... 여기에 고통을 이미 승인된 법의 언어로 말하는 것의 딜레마가 있다. 이충연은 자신의 고통을 야기한 사회에 도전하려고 하지만 그 사회가 승인한 말로만 그것을 말하려 한다. 그 결과 그는 현 사회의 말과 권위를 승인하고 재생산한다. (79-82)
    고통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사회적 측면, 관계의 측면, 그리고 실존적 측면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차원에서 다시 거주할 세계를 구축하는 언어는 다 다르다. 고통의 사회적 측면을 인식하고 동시에 주변과 공감하고 더구나 실존적 측면을 응시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마법의 단어’(‘주문’)는 없다. (97)
    태석의 ‘사회적 언어’, 덕룡 아버지의 ‘우주적 언어’, 선아의 ‘내면적 언어’가 바로 이런 사후적 의미 부여다. (111)
    * 고통은 말할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말할 것이 남아 있다. / 그게 무엇일까? 내가 겪고 있는 ‘것’인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겪고’ 있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과정, 말할 수 없는 것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 대한 것 말이다. 고통을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과 싸울 수 있게 된다. 불가능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과 대면하고 싸움으로써 우리는 그 둘을 동시에 기록하고 나눌 수 있게 된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 과정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서로가 고통 받고 있음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 주문은 이 길을 봉쇄한다. (114)
    “이 들판을 보면 마음이 참 평화로워져요. 논도 그렇고 산도 그렇고.” 처음에는 드글드글한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걸었는데, 걷다 보니 자기 마음의 ‘바깥’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바깥’을 보는 동안 마음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마음으로부터 저절로 ‘분리’된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그게 평화라고 했다. (119)
    “나만 외로운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픈 사람들은 다 외롭더라고요. 외로워서 힘들어하더라고요.” ... 고통 자체는 절대적이어서 교감하고 소통할 수 없지만, 바로 그 교감하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의 것’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고통의 절대성 자체가 ‘공통의 것’이 되는 것이다. /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고통이 무엇인지와 그 의미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당한 사람이 그 고통과 거기서 비롯된 외로움에 의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고통에 어떻게 맞서며 넘어서려고 했는지, 그 고군분투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의 겪음에 대한 기록이며 겪고 있는 자기에 대한 고백인 것이다. / 내가 외롭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넘어서 비로소 말을 하게 된다. 내 ‘소리’를 말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있을 때 사람은 ‘그’에게 말을 한다. 그가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기대가 있을 때 말하는 사람은 그가 ‘응답’할 수 있는 말을 하려고 한다. 응답을 요청하기에 응답 가능한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응답을 요청하는 것은 응답하려는 상대를 인식하는 것이다. 고통으로 파괴된 세계가 재건되는 시작점이다. 세계는 이처럼 어떻게 해서든 말을 통해서만 재건될 수 있다. (125-127)
    2. 고통의 사회학 - 고통을 전시하고 소비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고통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던 사회에 왜 갑자기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흐르게 되었는가.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가 되면서 어떻게 신중한 이야기가 공론의 장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납작한 언어가 차지하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결국 고통을 납작하게 만들었는가. (134)
    존재감 : ① 사회적 ‘인정’ - 성과 (위계) 사회, 지표, 대체 가능성, ② 관계/‘곁’/친밀성/사랑과 우정, 환원/대체 불가능, 현존, 선물, 비대칭성, 인격, 존중, 기쁨 - ‘관심’의 상품화, 주목, 유익한 존재, 재미/유머, ‘인플레 인간’, ‘사교’, ‘가면’, (소수자/권력자) 비하와 조롱, 비참의 전시, 관종 ③ 실존적/내적 ‘자존감’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팔 때는 ‘공감’이나 ‘연민’, ‘연대’나 ‘인류애’ 같은 말로 포장하기도 쉬웠다. 상업적으로 포장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동의하지 않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쉬웠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고통을 사회에 알리고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면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 타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자신에 대한 윤리적 면피를 할 수 있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마련할 수 있었다. / 고통을 겪는 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자신이 고통에 차서 절규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이런 시장에서 원하든 방식대로 이야기했을 때 주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고통을 파는 이야기의 포맷은 피해자의 피해자됨과 비참함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포르노’처럼 보여줬다. ... 그렇지 않으면 인정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끌 수 없었다. ...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이 격화될수록 더욱더 선정주의가 판을 쳤다. 자신의 고통을 ‘쎄게’ 이야기해야 했고, 그럴 때만이 그 피해를 극복하고 있는 ‘쎈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다. ‘피해자’와 ‘영웅’이 선정주의에 결합한 것이다. 오로지 이것만이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148-150)
    성별 이분법에 기초한 사랑은 여성을 역할로 존중하고 열광하는 법만 알았지 그 역할과의 차이로 존재하는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법에 관해서는 무지하고 무능했다. 연인으로서의 그녀, 어머니로서의 그녀, 아내로서의 그녀를 칭송하면 그것이 그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 ‘나’라는 개체적 인격에는 역할들로 환원되거나 대체되지 않는 고유한 그 무엇이 있으며, 바로 그렇다는 것을 존중받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로 존중받는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고유한 인격은 그 수많은 역할과 나 사이의 간격, 차이로 존재한다. 역할로만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대체 불가능성은 사라진다. 존재감의 고양이 아니라 위축과 모욕만을 경험하게 된다. ... (사랑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하는 이를 ‘성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개체적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다. (158-159)
    믿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이며 확신하는 자가 가장 바보 같은 자가 된 세상이다. 그렇기에 믿지 않아야 상처를 덜 받는다. 신뢰는 서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 되었다. (161)
    그 결과 우리는 삶의 어떤 영역, 어느 시간에서도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좀처럼 힘들어졌다. 내 존재가 유령처럼 되었고 언제든 버려지고 대체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친밀성 영역에서조차 상대에게 유익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너의 현존을 기뻐하며 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유익한 존재가 되려는 게 아니다. 너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나는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감이 생긴다. 행위의 목적이 반대가 된 것이다.(163-164)
    조롱과 폭로를 통해 관심을 끌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비참의 전시’를 통해 재미를 유발하려고 한다.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파괴하고 그 비참을 전시하는 것을 통해 관심을 끌려고 하는 사람, 이들을 우리 사회는 ‘관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183)
    관종은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 이를 위해서는 자기가 욕먹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정치 혐오가 만성화된 사회에서는 정의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 다른 사람의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전략이 된다. 또한 주목은 돈이 된다. ... 사실 관종들이 바라는 것은 온 세상을 동물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184-188)
    타인의 고통을 땔감 삼아 자신의 기분을 고양하는 것이다. ... 몰락의 속도가 빠를수록, 추락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것을 당하는 사람은 더 참혹하게 비참해진다. (189-190)
    사회는 민낯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간에 나갈 때 우리 모두는 어빙 고프먼의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 놀이를 한다. 가면을 쓰고 만나는 것이다. 그 가면 뒤의 민얼굴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가, 아닌가 여부다. 역할에 충실하다면 우리는 그의 민낯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무관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지켜야 하는 예의다. 이런 점에서 사회 가운데서 상호작용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쓴 존재, 즉 위선자다. / 관종들은 이런 위선을 비웃고 역겨워한다. 그들은 대중의 주목을 원하지만 동시에 대중을 경멸한다. ... 관종들은 조금이라도 부도덕한 일이 벌어지면 총출동하여 그 대상을 발가벗기고 조리돌린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와 그 일의 전후 사정 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이며, 그 일로 어떤 사람의 위선이 벗겨지고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다. 그래서 관종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건의 흐름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단편 단편에서 사람들의 위선과 추악함이 드러나는 감추어진 ‘팩트’다. 팩트는 ‘사실’보다는 ‘단편’이라는 뜻에 훨씬 가깝다. ... 이들은 위선을 역겨워하고 그것을 발가벗기는 데서 통쾌함을 얻으면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위악적으로 군다. 위악이 위선보다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 즉 민낯에 더 가깝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이 파괴하고 싶은 것은 가면 놀이를 하는 무대인 ‘사회’다. (191-193)
    중국에서는 ‘신상털이’를 ‘인육 사냥’이라고 부른다. (195)
    더 비참하고 엽기적인 것으로 만들어 전시해야 자기의 명망과 등급이 올라간다. 타인의 고통은 곧 관종의 명망이다. (198)
    고통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겐 절대적인 것이다. 세계의 붕괴와 그 세계를 다시 지을 수 있는 언어의 박탈로 인한 고통이라는 점에서 각자의 고통은 개별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절대적이다. 고통은 그 수준이나 정도를 가늠하여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선정주의적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과 같은 공론 플랫폼은 각각의 고통의 절대성을 섬세하게 살피지 않는다. 그런 고통은 널리고 널렸다. ... 고통 간에 경쟁하게 되고 소위 말하는 고통의 올림픽이 벌어진다. 고통이 고통을 밀쳐낸다. 자신의 고통이 다른 고통에 비해 절대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더욱더 자신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 ... 내 사연에 담긴 글에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206-208)
    고통에 대한 언어는 고통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처절한 자각으로부터 나온다. 말할 수 없기에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고 분할하게 된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언어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표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 앞에서 침묵하게 하고 그가 당한 고통의 절대성에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게 한다. 관종 사회는 고통 받는 사람의 존엄이 존중되는 바로 이 길을 봉쇄했다. (209)
    망신과 몰락, 비참의 전시, 비참 간의 경쟁. 이 모든 것이 이 시대 공론의 공간에서는 가장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어디서 진흙 구덩이 싸움이 났다고 하면 팝콘을 들고 먹으며 구경한다. 이른바 ‘팝콘각’이다. ... 공론장은 사실상 싸움을 구경하는 콜로세움이 되었다. 콜로세움의 본질은 검투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검투를 구경하는 극장이다. 가장 안전한 거리에서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것을 구경하며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극장이다. 이 시대의 공론 공간 역시 이런 극장이다. ... 그 결과 관심을 끌어 존재감을 구하려고 하는 이 콜로세움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다. ... 이 혐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콜로세움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 그 자리에 있으면서 노예 상인과 옆에 선 다른 관객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밀쳐내고 있는 고통의 당사자들이 펼치는 참혹함을 보면서 인간을 혐오하지 않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이 택한 것은 ‘사라지는 것’이다.
         3. 고통의 윤리학 - 고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곁에 대하여
    여기에 또 다른 괴로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고통의 당사자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226)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그 자리는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곁’이다. 고통은 고통을 겪는 이가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고통을 겪는 이가 고통의 절대성으로 인해 응답을 바라지 않는 말, 상호성을 제거한 일방적인 말만 함으로써 말을 파괴한다면, 응답을 기대하는 말, 응답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그 곁에 서 있는 이다. ... 이 말은 당사자의 ‘위치’에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지, 당사자가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 고통의 당사자가 자신의 곁에 서는 것, 그것이 당사자가 자신의 고통에 관해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말은 곁의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233-234)
    * 그렇다면 고통의 당사자는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곁에 설 수 있는가? 절규하는 자에서 말하는 자로 바뀔 수 있는가? ... 바로 글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사람은 고통 받는 타인의 곁뿐만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의 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 자기 자신의 곁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 세계를 구축하게 했다. /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에 ‘자기의 복수성’을 구축하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고통의 소통 불가능성에 의해 외부에서 폭파된 세계를 내면에 구축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고통의 당사자에게 글쓰기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자기에 대해 해명하고 자기를 납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34-235)
    말과 글의 자리는 그라운드 제로가 아니라 ‘곁’이었다. 곁에서 말과 글이 나오고, 말과 글을 통해 곁이 생긴다. 말과 글을 만들고 또 그 말과 글을 만들 수 있는 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동행’이다. 글을 통해 사람은 자기 자신과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238)
    ‘곁의 곁’이 없이 ‘곁’만 강조하면 그 곁은 붕괴하게 된다. ... 관건은 고통의 곁, 그 곁에 곁을 구축하는 것이다. (249)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과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의 차이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세계’ 때문이다. ... 바깥이 존재하며 머무르되 벗어날 수 있음, 이것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과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의 결정적 차이다. ... ‘지금 당장’ 대답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지금 당장’의 도덕적·윤리적 판단이 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 ‘걷기’는 말과 이야기를 ‘지금 당장’에서 ‘지금 여기’로 전환시킨다. (257-258)
    걷기가 주는 것과 같은 매개와 완충, 머무름과 벗어남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세계만이 아니라 그 관계가 담겨 있는 바깥이라는 세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관계 안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이처럼 타자의 매개를 통해 완충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258-259)
    * (각자의) 고통은 외로움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양식임을 알게 한다. 고통에 처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 그렇게 타인과 세계에 가닿게 한다. ... 그 원인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고통을 각자가 어떻게 겪어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 존재로 고군분투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너도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반가웠다. ... 버림받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기쁘게 나눌 수 있었다. 내 이야기가 상대의 이야기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반기고 이어졌다. 상대의 이야기에 내 이야기가 보태지고, 그 이야기와 이야기가 서로를 격려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샘솟았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공허한 게 아니라 기쁜 일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 고통 자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을 겪으며 홀로 고군분투한 이야기, 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와 상대의 이야기를 환대했다. 비로소 언어가 세계를 짓는 언어로 귀환한 것이다. (260-263)
    사물과 사람, 사태를 보는 입체적인 이야기는 배척받아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는 선악 이분법이 매우 또렷한 글들이 채워갔다. 해상도는 떨어지고 색감만 자극적으로 올라갔다. 공론장에 선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으로 줄을 서야 했다. 줄을 서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비난받고 단죄되었다. 동행의 언어는 사라지고 동원의 언어만 남았다. (275)
    * 말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못 견디고 제일 먼저 사라졌다. ... 논란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들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 읽기와 쓰기가 만개하던 시대에 교양을 쌓으며 언어의 해상도를 높이던 사람들이 글쓰기를 두려워한 것은 세간의 평판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기의 글이 혹시라도 사람들의 언어에 대한 해상도를 높이기는커녕 방해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어려웠던 것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 이 글이 정말 세상에 필요한 글인가? 그렇지 않다면 글을 왜 써야 하는가? ... 사람들은 자기 글과 책이 나왔을 때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고민하기 전에 이 글이 없더라도 세상은 별 탈이 없는지를 물었다. 자기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이 별 탈 없다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 내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이 별 탈 없다면 사람들은 좀 더 신중해진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할 필요는 없으며, 굳이 한 그 일이 세상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신중해진다. 그 일이 세상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신중해진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로부터 세상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신중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글로부터 타자와 세상을 보좌했다. 그러기 위해 자기가 존재해야만 하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가 사라지고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그 세상이 상상되어야 자신의 말과 글, 그리고 행위에 신중해질 수 있었다. ... 위협적인 우리로부터 타자를, 그리고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금기들이다. / 자신의 위험함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좌하는 길이다. 글쓰기를 두려워한 것도 이처럼 세상을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276-278)
    다른 이와 동행하며 세상을 보좌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신중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글쓰기는 다시 가능할 것인가? 신중함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보좌하기 위함이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관심, 즉 주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를 해명하는 데 집중한 바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세상은 보호받으며 동시에 새로 지어질 수 있다. 이 시대에 사라짐의 기술을 대체해야 하는 것은 신중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중한 드러냄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 테다. (279)
         참고 문헌을 대신해서 - 신중한 읽기와 쓰기를 위하여
    『한낮의 우울』 고통을 겪는 이에게 세계와 다른 타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고통이라는 타자만이 존재하며 그 둘의 위치도 역전되어 고통을 겪는 이가 주체가 아니라 고통이 주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러나 뼈아프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284)
    『아픈 몸을 살다』 고통을 겪는 이의 삶이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라 고통의 과정에서 그것이 재건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자신의 고통에 관해 남에게 들릴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사람은 주체성과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다. (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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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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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1 - Polaris> Request Songs
[오도로키 MS.1 예매 설문 중 "리퀘스트 곡 Request Songs" list]
(응답수, abc 순 / 2019.1.11 12:00 현재)
[Polaris]
slow motion 7 光と影 7 Season 5 深呼吸 4 季節 3 stereo 2 it's all right 2 流体 2 Nejimawashi 1 Wasureteshimaumaeni 1 Fast & Slow 1 fishmans의 babyblue 1 spin 1 星屑 1 とどく 1 月の恋人 1 天気図 1 コスモス 1 檸檬 1 流星 1 空間 1 12時間 1 天と点 1 深海 1 One 1 See The Light 1 cyan 1 オハナレゲエ 1
[구릉열차]
Taxi 1 문밖에 1
[Bigbet]
무지개 소년 1 B22 1 A Line in the Sky 1 Golden bo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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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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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Fishmans 夕暮れ時を二人で走ってゆく 風を呼んで 君を呼んで 東京の街のスミからスミまで 僕ら半分 夢の中 バックミラ-から落っこちていくのは うれしいような さみしいような 風邪藥でやられちまったみたいな そんな そんな 氣分で 走ってる 走ってる 走ってる 走ってる くちずさむ歌はなんだい? 思い出すことはなんだい? 忙しくて 會えないねえ だんだん暑くなってくよ こんな季節を遊びたい 君をそばにおいて 風を呼んで 風を呼んで 君をそばに呼んで 季節の中を走りぬけて もうすぐ秋だね GET ROUND IN THE SEASON 夕暮れ時を二人で走ってゆく 風を呼んで 君を呼んで 東京の街のスミからスミまで 僕ら半分 夢の中 GET ROUND IN THE SEASON 해질녘을 둘이서 달려 간다 바람을 부르고 너를 부르며 동경의 거리를 구석 구석 우리들 이미 꿈속 백미러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은 기쁜 것 같은 외로운 것 같은 감기약으로 몽롱해진 듯한 그런 그런 기분으로 달리고 있어 달리고 있어 달리고 있어 달리고 있어 흥얼거리는 이 노래는 뭐지? 떠오르는 이건 뭐야? 바빠서 만날 수 없어 점점 더워지고 있어 이런 계절을 즐기고 싶어 너를 곁에 두고 바람을 부르고 바람을 부르고 너를 옆으로 부르고 계절 속으로 달려가면 이제 곧 가을이야 GET ROUND IN THE SEASON 해질녘을 둘이서 달려 간다 바람을 부르며 너를 부르며 동경의 거리를 구석 구석 우리들 이미 꿈속 GET ROUND IN THE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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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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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all right
/ Polaris
そばにいる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ほほえみあう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窓をあければ ホコリっぽい僕の街
ふくらむ思い あぁ 空へかえそう
ゆらゆらしていた 10年前の僕ら
今ならわかるよ すこしだけわかるよ
ここにある 君や僕のストーリー
いい波動は伝わってゆくから
そばにいる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ほえみあう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胸にはいつも 君のやさしい顔
ふかまる思い 今日も元気ですか?
あるいてゆく 君や僕の息づかい
くたびれたら 無理はしないでね~え
そばにいる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ほほえみあうだけで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変わりゆく空を見あげて
思うままに うたえばいい
寄り添うように 君と
並んで どこまでも
風のなか 風のなか あぁ 風のなか どこまでも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창을 열면 먼지가 날리는 거리
부풀어 오르는 생각 아아 하늘로 돌아갈 것 같아
흔들거리던 10년 전의 우리들
이제는 알아요 조금은 알아요
여기에 있는 너와 나의 이야기
좋은 파동은 퍼져나가니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가슴에는 언제나 너의 다정한 얼굴
깊어지는 생각 오늘도 잘 지내시죠?
걸어가는 너와 나의 숨결
지치거든 무리는 하지 마세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미소 짓는 것만으로도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It's all right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나는대로 노래 해도 좋아
너의 곁에서
나란히 어디까지나
바람 속에서 바람 속에서 아아 바람 속에서 어디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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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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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IN THE RHYTHM
/ Fishmans
歩くスピード落としていくつかの願いを信じて 걷는 스피드를 줄이고 몇몇의 바램을 믿으며
冷たいこの道の上を 歌うように 歌うように歩きたい 차가운 이 길 위를 노래하듯이 노래하듯이 걷고 싶다
楽しいことだけ知りたいね いつかの君を呼び出して 즐거운 일만 알고 싶어 언제가의 너를 불러 내어서
冷たいこの道の上を 차가운 이 길 위를
まわるようにまわるように歩きたい 빙글빙글 돌면서 걷고 싶다
WALKING IN THE RHYTHM
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
歌うように 歌うように歩きたい 노래하듯이 노래하듯이 걷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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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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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OROKI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vol.1 - Polaris 『천체(天体)』 Release Live in Seoul
1/12(土) 구릉열차(丘陵列車), Polaris (DJ DGURU) @ convent
1/13(日) Bigbet, Polaris @ vel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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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입장료 때문에 망설이는 분(특히 아티스트나 평론가, 학생 등) 계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메세지/메일 남겨주세요.
숨막히는 세계에 작은 숨구멍이 될 수 있는 공간, 돈이 없어도 좋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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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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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cturne
/ Polaris
青い闇に ただよう きみの 声のなかで かざす ひかりよ
ぼくが ふれたのは きみの きれはし ああ、そして いつもひろがる 世界の きれはし
きみが ふれたのは 空の つぶやき ああ、そして あるきだしてる 歩をたしかめながら
星のしずくに ぼくらが うつる はじけるように 吸い込まれたら
青い闇に ただよう きみの 声のなかで かざす ひかりよ
星のささやきが 水にはねかえる 風の思い出に 体温 脳内 ふれあう
さざなみのように いしき つながり ちいさな 日々に いとしい かたち
寒い星に つなぐ ぼくら しろい月に いのち を描く
青い闇に ただよう きみの 声のなかで かざす ひかりよ
파란 어둠을 떠도는 너의 목소리 안에 반짝이는 빛이여
내가 닿은 것은 너의 조각 아아 그리고 언제나 넓어지는 세계의 일부분
네가 느낀 것은 하늘의 중얼거림 아아 그리고 걸어가고 있어 발걸음을 확인하면서
별의 물방울에 우리들이 비친다 터지듯이 빨아들여진다면
파란 어둠을 떠도는 너의 목소리 안에 반짝이는 빛이여
별의 속삭임이 물에 튀어 되돌아오고 바람의 추억과 체온 뇌가 서로 맞닿는다
잔물결처럼 의식이 이어지고 자그마한 나날에 사랑스러운 모습
추운 별과 이어진 우리는 하얀 달에 가장 소중한 것을 그린다
파란 어둠을 떠도는 너의 목소리 안에 반짝이는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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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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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星
/ Polaris
だれもいない部屋 君とふたり 流れ星みたい ああ今はそれだけでいいのさ
深く誇りたかきも やさしい星々にゆだね 時は流れる あぁ
なつかしい部屋 記憶 子供の頃のぼくら思い出す あれから時が経ち
古い賛美歌が鳴る 星たちに守られ ぼくら大人になった
見えた見えた 流れ星だ 忘れかけてた天使なら 見えた見えた 流れ星が 忘れかけてた天使なら
あれがぼくらの流れ星 忘れかけてた天使なら
見えた見えた 流れ星だ 忘れかけてた天使なら
유성
아무도 없는 방 너와 둘이서 유성을 보고 싶어 아아 지금은 그것만으로 좋아
깊이 존경하는 높은 사람도 다정한 별들에 말하지 시간은 흘러가고 아아
그리운 방 기억 어린 시절의 우리들이 떠올라 그 때로부터 시간이 흘러
오래된 찬송가가 울려퍼지고 별들이 지켜주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지
봤어 봤어 유성이야 잊고 있었던 천사라면 봤어 봤어 유성이 잊고 있었던 천사라면
그것이 우리의 유성 잊고 있었던 천사라면
봤어 봤어 유성이야 잊고 있었던 천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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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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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쟁취하세요. 
<오도로키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 vol.1 - Polaris"> 이벤트에 대해 간략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우선, 이번 이벤트는 우정과 친목을 위한 특별 공연으로, 필수 경비를 제외한 국내외 아티스트의 개런티가 없습니다. 물론, 이벤트를 준비하는 오도로키 스태프들의 인건비도 없습니다. 컨벤트와 벨로주 등 공연장도 최소 대관료로 소중한 공간을 흔쾌히 빌려주었습니다. 이벤트 참여자(관객)들을 위해 입장료도 매진을 기준으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현재 예매를 기준으로 예상 적자는 600만원 정도입니다.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조금이라도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페이스북 광고도 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ODOROKI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vol.1 - Polaris 『천체(天体)』 Release Liv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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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OROKI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 vol.1 - Polaris 『천체(天体)』 Release Live in Seoul
* 일시: 2019년 1월 12일(토) open 19:00 / start 20:00
* 장소: 컨벤트 ( 마포구 와우산로 17길 19-22 | https://www.facebook.com/conventseoul/ )
* 출연: 구릉열차, Polaris (DJ DGURU)
* 입장료: (예매) 30,000원 / (현매) 40,000원 / (양일권) 50,000원 (선착순 150매)
* 일시: 2019년 1월 13일(일) open 18:00 / start 19:00
* 장소: 벨로주 ( 마포구 잔다리로 46 스튜디오빌딩 지하1층 |
http://www.veloso.co.kr/ )
* 출연: Bigbet, Polaris
* 입장료: (예매) 30,000원 / (현매) 40,000원 / (양일권) 50,000원 (선착순 150매)
[예매방법]
(예매 기간) 2018년 12월 3일(월) 낮 12:00 ~ 2019년 1월 10일(목) 낮 12:00
예매를 원하시는 분은 “MS vol.1 - Polaris 예매 양식(reservation form)”
https://goo.gl/forms/Q5YZ9sUsRNir9QyG2
을 작성하신 후, 해당 금액을 [신한은행 110-320-185832 (예금주: 고현진)]으로 입금해 주세요. (예매 양식 제출 후 24시간 내에 입금하지 않으면, 예매가 취소될 수 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환불]
예매취소 및 환불을 원하시는 분은 [email protected] 앞으로, 계좌번호와 함께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공연 일주일 전( ~ 1월 3일(목))까지 : 환불 수수료 0%
- 1월 4일(토) ~ 1월 10일(목) 낮 12시까지 : 환불 수수료 20%
- 1월 10일(목) 낮 12시 이후 : 환불 불가
[현매]
예매 수량(150매) 중 남은 티켓에 한하여 공연 당일 현매를 진행합니다. 현매 수량은 예매 종료(1/10(수) 낮 12시) 이후 오도로키 홈페이지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지할 예정입니다.
☆ ODOROKI presents 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vol.1 - Polaris 『天体』 Release Live in Seoul
日時:2019年1月12日(土)
開場:door open 19:00 / live start 20:00
出演:guruengtrain、Polaris (DJ DGURU )
会場:convent ( 19-22, Wausan-ro 17-gil, Mapo-gu, Seoul |
https://www.facebook.com/conventseoul/ )
料金:前売 30,000won / 当日 40,000won / 2日通し 50,000won (限定 150枚)
日時:2019年1月13日(日)
開場:door open 18:00 / live start 19:00
出演:Bigbet、Polaris
会場:veloso ( B1, 46, Jandari-ro, Mapo-gu, Seoul |
http://www.veloso.co.kr/ )
料金:前売 30,000won / 当日 40,000won / 2日通し 50,000won (限定 150枚)
<予約方法>
2018年12月3日(月) 12:00~ 2019年1月10日(木) 12:00まで、一般予約(1日 30,000won / 2日通し 50,000won)を受付いたします。
[MS vol.1 - Polaris reservation form] https://goo.gl/forms/Q5YZ9sUsRNir9QyG2 より予約受付。
(日本からの方の場合、入場料は当日払っても大丈夫です。)
[artists info] 
* Polaris
http://polaris-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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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1월 미니앨범 <Polaris>로 데뷔. 강인한 리듬의 압도적인 그루브와 투명감 넘치는 오오야의 보컬이 어우러진 앙상블, 역동적인 사운드와 일상의 희로애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세계관은 Polaris만이 표현할 수 있는 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Home>, <Family>, <Union>, <공간(空間)>, <Music>, <천체(天体)> 여섯 장의 오리지널 앨범을 발매했다. 라이브에 대한 평가도 높아, 후지록을 포함한 수많은 페스티벌에서 인상적인 공연을 펼쳤다.
2006년 <공간(空間)> 발매 이후, 오오야와 카시와바라 모두, 각자의 솔로 활동을 병행하기도 했다. 오오야는 2010년 2월, 활동 거점을 베를린으로 옮겨, 솔로 프로젝트 “SPENCER"를 시작했다. 카시와바라는 FISHAMNS 활동 외에, 2011년 모테기 킨이치(토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FISHMANS), 가토 다카시(토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LOSALIOS) 등과 "So many tears"를 결성했다.
2012년 9월, "빛나는 소리(光る音)"를 발표하고, 6년 만에 Polaris 활동을 재개했다. 2018년 6월, 3년 4개월 만의 오리지널 앨범 <천체(天体)>를 릴리즈하고, 현재 일본 전국 투어 중이다.
참고로, 2013년 11월, 2017년 9월, 공중캠프에서 공연한 적이 있으며, 이번이 세 번째 내한 공연이다.
(출연 멤버: 오오야 유스케(オオヤユウスケ, 기타/보컬), 카시와바라 유주루(柏原譲, 베이스), 카와카미 유( 川上 優, 드럼(서포트 멤버)))
[폴라리스 관련 영상]
Polaris - 光と影 http://youtu.be/dwfGl4ZwIZw
Polaris - 天気図 http://youtu.be/Dx0tCFB7hNk
Polaris - 深呼吸 http://youtu.be/vSWOKSeoS5I
Polaris - 檸檬 http://youtu.be/Cnk0Z9lIz1c
Polaris - コスモス https://youtu.be/_4KQoIrdZJA
Polaris - 空間 https://youtu.be/MgHnB0NHTWw
Polaris - 12時間 @ りんご音楽祭2014 https://youtu.be/rin9WcaHxC8
Polaris - 光る音 (almost full ver.) http://youtu.be/4p0YB1_Xnfs
Polaris - Neu https://youtu.be/gW67dRpoRhM
Polaris - 流体 https://youtu.be/LNjaPAytPxw
Polaris - 大気圏 https://youtu.be/wucE7guk-mU
Polaris - コスタリカ @ 野音2004 http://youtu.be/VGmpL5eYa0Y
Polaris - 季節 @ TAICOCLUB'13 http://youtu.be/tUdgYRWlk_E
Polaris - とける @ "色彩” https://youtu.be/Hsgt-Eh0bFY
Polaris - SEASON https://youtu.be/Saf3XEOxxco
Polaris - オハナレゲエ https://youtu.be/22RomeE3DNA
Polaris - Gradation   https://youtu.be/PdYMSs4c3EY
* 구릉열차(丘陵列車 guruengtrain)
http://www.facebook.com/guruengt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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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김문희(세컨세션, 문앤바운서스 등), 정지완(우리는속옷도생겼고여자도늘었다네, 헬리비젼), 이제희 3인조로 결성하여, 클럽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 2015년 flat tracks에서 <구릉열차 1st EP>를 발매했다. (출연 멤버: 이제희(기타,보컬), 김문희(베이스), 정지완(드럼), 이승영(키보드 세션))
“로버트 존슨 Robert Johnson이 어느 교차로 Cross Road Blues에서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가져왔던 그것은 각 지방의 특유한 풍속과 결합하여 셀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지구 곳곳에 퍼져있었다. 그것은 형식, 정신 Spirit, 기술 등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음악가들의 영혼에 들어가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움직였고 수많은 음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권력과 자본가들에 의해 그것은 각종 액세서리와 화학조미료들로 치장되어 보이지 않거나 아예 없는 음악들로 인해 점점 수가 적어지며 사라져 가고 있지만 오래간만에 그것을 가지고 있다 의심되는 새로운 음악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구릉 열차란 밴드이고 결정적인 단서는 그들이 가져온 이 앨범에 들어있다. 구릉열차의 기관사들은 레게 Raggae, 덥 Dub, 프로그레시브 Progressive, 사이키델릭 Psychedelic, 소울 Soul, 훵크 Funk, 팝 Pop, 헤비메탈 Heavy Metal 등의 다양한 스타일을 함께 태우고 때론 한가하고 때론 분주하게 앨범 속을 질주한다. 이곳저곳을 경유하는 짧지만 길게 느껴졌던 30여 분간의 여정에서 앞서 언급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사용하는 양질의 연료에 있었다.
그 연료들은 밥 말리 Bob Marley, 피터 토시 Peter Tosh 마빈 게이 Mavin gaye, 더 미터스 The Meters, 블루 치어 Blue Cheer, 블랙 사바스 Black Sabbath,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길 옥윤, 호소노 하루오미 細野晴臣, 토드 룬드그렌 Todd Rundgren 등의 음악가들이 여러 클래식 레코드에서 사용한 작금에 흔하고 널린 패션 Fashion이 아닌 영감 靈感을 움직이게 하는 패션 Passion들이고 이 연료는 기관사들의 능숙한 운행과 더불어 엔진을 더욱 뜨겁게 달궈 레일 위의 승차감을 환상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냥 타보라 구릉열차는 승차권을 가지고 있거나 없거나 누구든 탈 수 있다.
이것이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가 [모크샤 Moksha]에서 말했고 앨범에서 그들이 연주한 무임승차 Free Ride일 것이다.”
- 황명수 (코코어 기타리스트), <구릉열차 1st EP> 소개글 중
[구릉열차 관련 영상]
구릉열차(Gurueng Train) - Taxi
https://youtu.be/anQgi761YSs
구릉열차(Gurueng Train) - 문밖에
https://youtu.be/kOhtor_lJ3M
* DJ DGURU
https://soundcloud.com/dg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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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신스와 드럼의 조합으로 이뤄진 일렉트로닉 라이브 밴드 ‘IDIOTAPE’ 의 리더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디제이인 DGURU(디구루)는 한국 일렉트로닉 뮤직��에서 독자적인 포지셔닝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2000년, 일렉트로닉 디제이로 음악을 시작하여, 여러 클럽에서 레지던트 DJ로 활동하는 한편, 록에서부터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한 음악 장르를 접목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사운드를 만드는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Address> 음반을 발표하며 뮤지션으로서 그간 쌓아온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Glastonbury, Summer Sonic, Sonic Mania, WOMB 등 국내외 각종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였다. 2008년부터 리더로 활동해 온 이디오테잎은 전자음악과 밴드 음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한국 일렉트로닉 씬에서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서 있다.
라이브씬과 클럽씬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는 항상 관객이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사운드를 발견하려 노력하며, 최적화된 사운드로 무아지경의 몰입을 탐색한다. 강렬한 루프들을 끊임 없이 풀어내는 호흡과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운드를 통하여 청자의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 시키며, 그 순간, DJ와 밴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원초적인 사운드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황홀경을 창조한다.
단절되었던 70년대와 80년대의 대중음악의 뿌리를 지금의 음악과 연결 하는 것,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에 채워질 일렉트로닉 뮤직에 대한 고민이 그의 관심사이며, 공연 안에서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정서와 감정을 소중히 한다. 그 감정의 합이 이루어져야 가장 좋은 상태를 만들어 냄을 믿으며, 그 믿음을 토대로 댄스 플로어에서 당신에게 순수한 형태의 감동을 전달할 것이다.
* 빅베트(Bigbet)
http://bbdtrio.tumblr.com | https://www.facebook.com/Bigbet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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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단어가 있다. 들으면 알 것 같지만 사전적으로 규정하면 재미없어지는. 음악장르가 아닌 어떤 음악스타일을 지칭할 때 등장하는 이름들이 주로 그렇다. 인디팝, 인디록.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듯한 이 명칭들의 애매함을 비웃곤 하지만, 이따금 이 단어가 등장해서 찰싹 달라붙는 순간이 있다. 빅베트(Bigbet)의 음악이 그렇다.
빅베트(Bigbet)은 그 동안 2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등의 드라마 OST에 참여했던 빅베이비드라이버를 주축으로 결정된 3인조 인디록 밴드이다. 빅베이비드라이버로 활동하는 최새봄이 기타와 보컬을 맡고, 그의 이전 밴드였던 아톰북 시절부터 함께 했던 백옥성이 베이스를 맡아 리듬감 넘치면서도 순진했던 초기 인디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비둘기우유”의 드러머이기도 한 이용준은 특유의 섬세한 연주로 빅빅베트(Bigbet)의 삼각형을 완성한다. 이 셋은 2011년의 어느 시점부터 여유롭게 사운드를 다듬어 왔다. 2013년 4곡이 담긴 데모를 레코드폐허에 출품했으며, 아주 가끔 공연을 하며 관객들과 호흡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느리게 조율해오던 취향의 윤곽이 분명해진 2015년 겨울, 트리오는 녹음할 곡을 정하고, 가장 적합한 녹음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6년 2월,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아쉬움으로 광주음악창작소의 피크뮤직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8곡의 원테이크 녹음은 일렉트릭 뮤즈의 수장인 김민규의 프로듀싱과 믹싱, 후반 녹음으로 마무리되었다. 2018년 11월 <B22/무지개소년> 싱글을 발매했다. (출연 멤버: 최새봄(보컬, 기타), 이용준(드럼), 백옥성(베이스), 기경서(기타))
[빅베트 관련 영상]
Bigbet - 무지개 소년 Rainbow Boy
https://youtu.be/Ze5NpETkKQg
Bigbet - B22
https://youtu.be/MMC4rPi-QHI
Bigbet - A Line in the Sky
https://youtu.be/gVjZ5w7DfTk
Bigbet - Golden boy
https://youtu.be/ar0110e1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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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OROKI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는 Fishmans의 「感謝(驚)」와 「WALKING IN THE RHYTHM」에 나오는 가사를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해 마련한 시간입니다. “즐거웠던 때가 지나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외로운 사람이었어 / 서로 기댄 어깨도 믿을 수 없었고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지 / 위로도 없이 친절함도 없이 가만히 지나가는 계절을 /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그 사람에게 // 여름방학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짓던 나를 / 너는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 그림자도 없이 동경도 없이 가만히 지나가는 계절을 /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그 사람에게 // 놀라움과 감사를 담아” 만든 이벤트(사건)입니다.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 / 노래하듯이 걷고 싶”은 同志(같은 뜻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자리입니다. “옳지 않아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그래 전부(正しくもない ウソつきじゃないよ そう全部) / 약속하지 않아 지름길로 가지 않아, 그래 전부(指切りしない 近道しないよ そう全部)”
2018.11.23
ODOR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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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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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mans는 시부야케가 아닙니다만... 여튼, Polaris 공연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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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DOROKI presents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vol.1 - Polaris 『천체(天体)』 Release Live in Seoul
1/12(土) 구릉열차(丘陵列車), Polaris (DJ DGURU) @ convent 1/13(日) Bigbet, Polaris @ veloso
https://tmblr.co/ZmjqyX2d_pCP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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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runosukimanikiss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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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LIFe - stereo
Polaris 오오야 유스케가 1994년~2000년까지 활동했던 LaB LIFe의 stereo(1998) 입니다.
"슬픈 일은 오늘까지, 즐거운 일은 오늘부터 즐거운 일은 오늘까지, 슬은 일은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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