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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픽셀화되는 세계 ○ 참여 작가 : 석경목, 송기철, 이은희, 장진영 ○ 기획 : 김효영 ○ 기획보조 : 강주영 ○ 전시 전경 촬영 : 주용성 ○ 전시 기간 : 2021년 9월 28일(화) ~ 2021년 10월 24일(일) ○ 전시 장소 : 공간 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미로50번가길 3, 지하 1층) ○ 관람 시간 : 11:30-19:30 (매주 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 관람 시 유의 사항 : 관람 시 마스크 착용, 전시장 입구에서 손 소독, 방문자 명부 작성 필수입니다. ○ 주최/주관 : 공간 힘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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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풍경>
3채널 영상, 컬러, 7초/56초/1분20초, 반복재생, 2021
서사를 이어가는 주인공과 달리 익명으로 존재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초점 바깥의 불투명한 존재이며, 별다른 대사없이 한 장면의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는 역할을 행한다. 그들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활동-움직임은 돋보이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평연하기에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중심에서부터 벗어난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관객은 그들을 응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특별한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시선을 바라지 않는 무심한 풍경이 된다. 이러한 풍경을 주목하여 반복적으로 관조하다 보면 본래 영화-장면의 맥락과 서사, 영화-이미지의 주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어느덧 가장자리의 무심한 풍경은 중심의 자리를 지워내고, 예기치 못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와 같은 부재를 직시하며 영상 이미지의 인과관계에 포획되지 않은 이미지가 가진 우연적인 잠재성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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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re new ways to spend your time!>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1분52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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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8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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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Keep back from the platform edge
○참여 작가 : 강유환, 민영영, 석경목, 정현민
○워크숍 진행 및 기획 : 홍진훤
○포스터 디자인 : 물질과 비물질
○사진 : 권하형
○전시 기간 : 2020년 10월 16일(금) ~ 11월 8일(일)
○전시 장소 : 공간 힘(부산시 수영구 수미로50번가길 3, 지하 1층)
○관람 시간 : 13:00~20:00(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 시 유의 사항 : 관람 전 마스크 착용과 전시장 입구 손 세정제 사용, 관람객 정보수집 동의서 작성 필수
○주최/주관 : 공간 힘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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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620323> 2020, 설치, 192x128cm, 250cm, 로열티 프리 스톡 벡터 ID : 516620323
<헤드 스탠드> 2020, 잉크젯 프린트, 100x150cm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미로 50번가길3 2층, 매물 광고> 2020, 전세 천만원, 월세 칠십만원, 51평
<이미지 세개 / Dummy> 2020, 잉크젯 프린트, 27x48cm, 로열티 프리 스톡 일러스트  ID: 1163116003, 1139537231, 49914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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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Image> (2020)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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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pe Skipping II (2020)
퍼포먼스, 영상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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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pe Skipping I (Gwanghwamun, 2020)
(퍼포먼스, 영상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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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th of light, 2019
대도시의 밤을 장식하는 조명은 하루가 다르게 더 높아지고 더 밝아진다. 하지만 우리 시대 마천루의 눈부신 조명이 무색하게도 오늘날 세계를 밝히는 작업은 점점 요원해보인다. 한때 세계를 인식하는 출발점이었던 ‘계몽’(Lumières)의 프로젝트는 동시에 (도래할 시간과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유토피아의 기획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너무나 손쉽게 폐기되어버린, 세계를 붙잡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이름이었던 계몽과 유토피아의 자리에는 이제 다만 소비자본주의의 환등상만이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잃어버리고 만 ‘미래’라는 시간은 마천루의 층고라는 공간에 대한 욕망으로 전치되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더 이상 미래라는 불확실한 시간이자 가능성이 아니라, 수많은 복제품마냥 경쟁적으로 솟아오르는 마천루와 그것이 가리키는 강고한 현재주의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끊임없는 현재가 소환하는 미래상이란 볼품없다. 자본주의적 현재 이후에는 ‘세계의 종말’만이 있는 것이다. 오늘 범람하는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그래서 반-미래적이다. 그것은 도래할 시간이라기보다는 악화된 현재를 공간적으로 표상할 뿐이기 때문이다. 디스토피아적 (반)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곧잘 공간으로 표현되거나 상상되는 이유다. 마천루의 눈부신 조명은 결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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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나무가 기형적인 것은
토양이 나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비난한다
불구자라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시대-
(호외 퍼포먼스 中,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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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죽이거나, 자본의 거대한 굽에 밟혀 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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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한국 대형교회의 성격은 90년대 이전의 강북형 대형교회와 90년대 이후의 강남형 대형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70년대와 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등장한 보수 대형교회들은 빈번히 대형집회를 열어 반공, 친미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며 독재권력을 옹호하는 주요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했다. (오늘날까지도 매주말 광화문에는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빈번히 휘날린다.) 이런 방식으로 정권의 비호 속에 성장한 대형교회들은 모두 성장 이데올로기를 체현했는데, 이는 교회라는 공간이 성역이 아닌 그 어느 곳보다도 세속화된 성격을 지닌 것에서 비롯되었다.
   개발독재시기에 이루어진 압축적 경제성장은 승자독식주의라는 ‘성공’이데올로기를 전 사회화했다. 이 시기에 지어진 대형교회의 외관은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을 충실히 재현한다. 또한 ‘교회차량’까지 동원하는 이른바 ‘교세경쟁’은 상권경쟁과 다름이 없을 정도다. 거대한 건물과 수많은 교인들로 표상된 교회의 규모는 ‘성공한 교회’를 가늠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성장 이데올로기는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기독교를 낮은 단계의 기복신앙 수준에 머무르게 했다.
   90년대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등장한 대형교회들은 이전의 대형교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물론 정치적으로 친미 성향의 보수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지만, 그나마도 이전 세대의 대형교회에 비해 스스로의 정치성을 드러내기를 조심스러워한다. 또한 교회 내부의 조직체계도 이른바 제왕적 담임목사로 대변되는 권위주의적이고 위계화된 조직질서 대신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수평적 부서 시스템을 조직체계로 삼는다. 그러나 이렇게 비정치적이고 탈권위적인 ‘듯한’ 강남형 대형교회는 사실 고도화된 후기자본주의의 논리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강북형 대형교회가 욕망을 전면화하는 공간이었다면, 강남형 대형교회는 욕망이 내면화된 공간이다. 강남형 대형교회는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노력을 바탕으로 한 성공담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어떤 기시감(데자뷰)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바로 무한경쟁과 스펙 쌓기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 사회에서 소시민적인 안락한 삶의 구현을 통해 (경제적으로)하나님께 봉사하기를 말하는데, 이는 공동체적, 연대적 삶에 대한 가치관보다 미국식 기부문화로 대표되는 개인의 경제적 성공과 그에 기초한 사적 나눔을 내면화한다. 실제로 강남형 대형교회는 중산층 전문직 종사자를 주된 구성원으로 출발했다. 결국 추구하고 표현하는 방식만 다를 뿐, 한국의 대형교회와 그 신도들 모두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성장, 성공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교회가 세속의 모순을 지양 또는 극복하는 종교적 공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세속을 재현함과 동시에 세속적인 가치와 욕망에 충실한 인간을 길러내는 곳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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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querade, 2015 [한겨례 다큐멘터리 사진전 : 갤러리 IS]
‘복면시위 = 폭력시위’ 라는 자의적인 비약을 하고 있는 정부의 ‘복면금지법’에 대해 보란듯이 평화시위로 보답한 제2차 민중총궐기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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