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cestyoun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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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타이밍은 장난스럽게도 내가 이미 고갈될대로 고갈되어서 거의 눕다시피한 나날에 찾아왔다. 좋아하는 것에도 힘이 필요한데 내 자신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힘만 빠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글들을 읽어보니 앞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거의 단념을 하다시피 했는데 일년도 채 안되어서 이렇게 또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다. 내가 누워있어도 세상의 시간은 흐르는 이치라고 여겼는데 내 시간 또한 흐르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들이 흐르고 생각지 못한 어딘가에 다다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 관계를 어쩌지 못한다는 생각을 안고 주체적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감정과 시간만 허비했는데 이렇게 몇 자 적어보니 무얼 해야하는지 알겠다. 이 감정 자체를 즐기면서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생활을 하면서 감정을 견뎌왔었는데 생활이 무너진 지금은 감정을 즐기면서 생활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엉망인 꿈을 꾸었지만 잠은 충분히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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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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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에 문득 인스타 릴스를 만들어보다가 my favorite color에 대해 잠깐 고민해보았다. 사실 릴스에 넣을 적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노란색으로 정했는데 현재 쓰고 있는 폰케이스 색깔이 노란색이며 폰케이스와 함께 찍힌 내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폰케이스를 산 이유는 폰케이스에 로니와 꽤 비슷한 고양이 그림이 있었고 로니가 치즈냥이기 때문이다.
사실 로니에게 끌렸던 이유 중 한 가지는 치즈냥이기 때문이고 로니 이전엔 친구의 강아지였던 럭키를 몹시 좋아했는데 골든리트리버였다. 나는 노란 빛깔을 꾸준히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favorite color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노란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난 파���색도 좋아하고 연보라색도 좋아하고 갈색도 좋아하고 초록색도 좋아한다. 이 중에 하나를 꼽기는 은근히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이 의문은 릴스를 다 만들고 올리면서 묻어두었다.
그리고 오늘, 휴대폰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빠리의 사마리탠 백화점 내부 사진을 보았는데 나는 그 순간 my favorite color를 노란색으로 단언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단순하고 매우 긍정을 외치는 듯한 노란색이 아니라 반 고흐와 클림트와 사마리탠의 노란색을 좋아해온 것이다. 내가 어떤 느낌의 노란색을 좋아하고 심지어 이 느낌을 추구하기까지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방을 애써 노란색 벽지로 도배한 적도 있었다.) 나의 감정기복, 감성, 우울감 및 (끝내) 낙천적인 천성마저 모두 이런 노란색 느낌과 닮았다고 느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음악을 듣다가 마치 잊고 있던 할 일이 생각난 것처럼 휴대폰 배경화면을 사마리탠 사진으로 바꿨다. 내가 그토록 중시하는 채광마저 곁들어서 바로 내가 원하는 색감이었다. 이제 누군가 내게 favorite color를 묻는다면 나는 맑은 날의 사마리탠 노란색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소한 질문 같지만 취향과 선택 심지어 색깔은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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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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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매번 잠도 잘 못자고 매우 지겨워하면서도 괴로워했었는데 이번엔 잠도 푹 자고 크게 괴롭진 않은 상태다. 그동안 시차와 관련된 문제라고 여겼는데 시차보다 마음의 문제이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혹은 이번엔 새벽비행기를 탄지라 잠을 더 잘 잔 것일지도.
그래도 매번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지낼건지 생각 및 다짐해보게 되는데 이전만큼 절실하지 않고(절실했다고 귀국 후 잘 지냈던 것도 아니다.) 좀더 건강한 일상을 지내고 싶단 생각이다.
확실히 과거에 비해 여행이 점점 달라지는 것은 네트워크과 SNS의 발달 및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 더이상 내가 정말 혼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이전의 여행에선 외로울 때 엽서를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외로울 새도 없고 엽서를 쓸 여유도 없다. 내가 정말 여기 있다고 느끼기보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는 것에 급급해진다. 한편으론 그래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집착하는 수준으로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몰아치고 손을 뻗어 휴대폰 사진을 찍고 있자면 은근히 고소공포증이 몰려오는데 그 느낌이 오히려 정말 여기 있다는 감각을 깨우게 한다.
비행기에서 내가 주로 했던 것은 휴대폰 사진첩 갈무리였다. 비행시간 동안 사진들을 삭제하다보면 어느 정도 사진첩이 정리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이에 내가 얼마나 방대하게 찍어댔는지 아직도 2019년도 가을에 머물러 있다. 지우다 지쳐 차라리 메모를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다. (잠은 이미 충분히 잤다.)
나는 사실 SNS 의존보단 기록 의존이 더 높다고 여긴다. 스마트폰 이전엔 다이어리 및 일기 쓰는 것에 집착했다. 하지만 SNS 등장 이후, 사진을 함께 올릴 수 있고 개인기록보다 갈무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SNS 기록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혼자 보기 위해 남기는 기록은 쓸 당시의 나만 이해하는 수준이라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면 스스로도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심정,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본다고 생각하면 문장이 이게 맞는지 문법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훗날의 나를 위해서도 읽혀지는 기록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기록에 의존하는걸까. 외부자극에 대한 내 아웃풋은 기록이 되었고 쉽게 기록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인스타스토리가 몇 년도부터 나왔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왜냐면 2017년 12월 이전 스토리기록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나는 스토리가 등장할 때부터 사용해서 거의 매일 스토리를 썼다. (스토리가 처음 등장했던 순간도 기억한다. 어느 여름날이었고 나는 출근길 버스에서 스토리 기능을 발견하고 테스트 사용을 해보았다.)
알콜성 치매를 두려워하는지라 본능적으로 스토리기록에 의존하는걸까. 스토리로 인해 과거의 기록을 되짚기도 하고 스토리를 보고 당시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생각나기도 한다. (스토리사용과 기억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스토리를 사용하지 않는/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의 뇌를 스캔한 이후 일정기간 동안 일정빈도수로 스토리를 사용하게 한 후 뇌를 스캔해보는 것이다. 왠지 기억력은 발달해도 전두엽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아 정말 궁금하다. 누가 연구 안해보나?) 그럼에도 스토리기록 의존을 염려하는 까닭은 즉각적이어서 생각의 깊이를 더 얕게 만든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외로울 시간을 빼앗고 생각해볼 시간을 뺏는다. 즉각적이고 시각적이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스토리 사용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남기는 기록을 좋아하며(이전엔 트윗유저였다.) 지금 비행기 안에서 짜파게티 냄새가 나는지라 어디서 짜파게티를 구할 수 있는지 두리번대고 있지만 둘러봐선 ���아낼 수 없다. 이런 기록마저 나중에 볼 적에 기억력향상에 도움을 주고 훗날 기록을 다시 보며 내 자신 객관화가 잘 된다. 하도 두리번대서 옆옆자리 승객이 나를 쳐다봤는데 “짜파게티 냄새 나지 않아요?”라고 물을 뻔했다.
잠깐 짜파게티를 구할 수 있는지 돌아다녀봐야겠다. 스토리에 올릴 수 있다면 누군가 알려줄 것 같은데. 와이파이가 되다 말아서 스토리를 못올린다. 그래서 남기는 메모가 와이파이 안되는지라 다소 길어졌다.
-아이폰 메모에 남겼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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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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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는, 내가 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적마다 나를 만나러 한국에 왔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흔치 않은데 이상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그런 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한국에 오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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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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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바다
삼월부터 바다가 그리워진다. 그리워지는 사람은 없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먹먹해지던 기분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감정들도 세월의 주름처럼 자연히 접히는 것 같다. 자연만 덩그러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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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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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이란 가정이 내 생각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겠지만 내가 불쾌하게 느낀 것에 대해 굳이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느낌만으로도, 내게 중요한 것들을 분간할 수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실 남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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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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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할 이유가 없으며 그립지도 않고 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또한 함께 있는다고 마냥 즐겁거나 편안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있는건지 의문을 가지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과거 내가 좋아했던 사람의 일부를 희미하게 닮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면모인 것도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의 파편이나 쫓고 있었고 어떤 파편이라도 쥐려했단 것을 깨달으며 참담하게 슬퍼졌다. 그 사람 또한 내가 절절하게 좋아했던 게 아니었는데 세월이 지나 아득해지고 찬란한 여름의 빛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내 기억 속의 소년은(소년의 나이는 아니었지만 남자의 실체는 소년이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는 그것을 능가할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또다시 나는 홀로 가라앉고 사람들 사이를 얕게 흘러가겠지. 내 삶은 이렇게 끝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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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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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다시 밀리기 시작한 시점에 발목을 다쳐 반깁스신세가 되었고 이를 핑계로 아예 집안일을 손놓고 있었다. 내일은 꼭 하겠다는 다짐만 며칠째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새벽이 되면 환한 조명이 부담스러워 방안 테이블 위 스탠드와 침대 맡 조명만 켜고 다른 불을 끄는데 엉망인 방안마저 조명발을 받는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아늑한 더러움. 내가 엉망이 되어도 이런 느낌을 구현해낼 수 있는걸까. 현상과 본질을 분리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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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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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호떡 파는 트럭 앞에서 호떡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어느 할머니를 보았다. 등이 구부정한 노인이 호떡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모습이 처연해보여서 나는 그저 슬퍼졌다. 동시에 친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불가하고 나를 알아보는 할머니를 더이상 만날 수 없단 사실에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올 것만 같았다. 모르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그저 슬퍼보였듯이 내 뒷모습만 봐도 슬퍼보였다는 게 이제야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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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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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연락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대답이라는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 스스로 부담스러웠다. 문득 누군가가 생각난다면, 그래서 그리워진다면 그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굳이 그 추억으로부터의 생존자들을 꺼내어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 그럴싸한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는 몇몇 사람들은 존재했다. 내 연락이 귀찮아도 내가 상관할 바 없는 막역하게 친한 이들이거나 내 연락을 귀찮아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가지고도 내가 아쉬워서 연락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정작 연락이 필요한 경우에도 부담감을 운운하며 연락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깨달으며 나는 그저 이기적인 사람이자 이 모든 건 이기적인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대답하는 게 귀찮은 것이다. 특히 내가 내키지 않는 사람이 내게 연락을 계속할 경우에 나는 분노마저 느낀다. 때문에 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내 연락으로 인해 분노나 귀찮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에, 연락하지 않으면 된다는 간편한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사실에 그는 우리와의 약속에 오지 못하고 빠리로 떠나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속이 지난 다음날, 잠에 깨어나고서 문득 그의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가 내게 직접 얘기한 건 아니지만, 전해들었으니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고 안부 및 그의 아버지가 괜찮으신지 물어볼까 싶어서 그에게 몇 자 쓰기 시작했다.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상황에 내 연락이 불편하지 않을까, 내게 직접 연락한 것도 아닌데, 등의 걱정이 들었고 또 이 무거운 주제를 프랑스어로 풀어쓰기도 어렵게 느껴졌다. 결국 쓰기 시작한 몇 자를 도로 지웠다.
하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굳건히 믿었지만, 좀더 살다보니 어려운 상황에서 먼저 오는 연락이 분명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말을 풀어내기까지 무겁고 어려워서 번거롭게 느껴진다는 게 진짜 이유다. 그래서 마음은 함께 무겁고 슬프지만 나는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친구 또한 그의 안부가 걱정되고 안부를 물을 생각이었지만 나와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친구는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얘기를 하면서 사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친구는 그에게 안부를 물었고 나는 그에게 진작 안부를 물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이런 내 입장도 짐작한 것인지 알 수 없다만 친구에게 내게도 자신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안부 메세지를 남겼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막막했고 좀더 경우에 맞는 표현이 있을지 찾아보았지만 결국은 내가 쓰는 프랑스어 수준의 메세지로 보냈다. 그것이 가장 진심인 것 같았다.
내 마음이 함께 무겁고 슬프더라도 연락하지 않는다면 전해지지 않는 마음이다. 어쩌면 그 마음 또한 쉬이 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될지도 모른다. 일어난 일을 기록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일어난 일이 되지 않듯이 떠오른 마음에 연락하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된다. 누군가에게 부담이 된다하여도, 꾹꾹 쓴 마음은 진심이 되고, 닿지 못한다고 하여도 진심은 내게 남게 된다.
연락하기 번거로울수록 정말 필요한 연락이고 나는 좀더 마음을 꾹꾹 눌러써야할 필요가 있다.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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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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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허하고 재미없고 덤덤한데 문득 글이 쓰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그리운 조각조각만을 성기게 엮어서 청자로 만들어내고 싶다. 그들이 다 보고 싶다가도 아무도 보���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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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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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리는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성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너그러움이 우리를 너그럽게 하고, 그들의 모순이 우리를 모순되게 한다. 개성이란 읽는 이와 쓰는 이 양쪽이 다 필요한 언어와 같다.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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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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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한 글자에도 무너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모든 연민이 솟아올랐다. 그녀도 여자였다. 어떤 수식어를 붙이기 이전의 여자였다. 아니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적 약자인 여자였다. 그녀의 변변찮았던 언행들을 다 옳았다고, 괜찮다고, 잘했다고 토닥이고 싶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무너지지 말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나도 덧없이 무너지는 일상을 질질 끌고 가는 입장에서 누가 누구를 응원하고 어떤 자세나 태도를 조언할 수 있나 싶었다. 무너져도 어쩔 수 없지만, 그게 파멸은 아닐 것이다. 고꾸라지고 익사의 위기일 수도 있지만 패배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만큼 크게 소리내어 울어버린다든지 어스름한 이른 아침에 박차고 나가 달리기를 한다든지 어떤 모습으로 계속 이어져갈 것이다.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상처 받고 있는지 단번에 가늠되었는데 잘잘못과 인과응보를 가리기 이전에 여자가 얼마나 연약한가 크게 동조를 느꼈다. (물론 남자도 연약하지만 연약함의 성질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견해로 남자의 연약함은 소년과 로봇 사이에 있고 여자의 연약함은 편집증과 결벽증 사이에 있는 듯하다.)
그녀도, 나도, 우리 여자도 강해졌으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수년 전 겨울, 에펠탑에 올라가서 그 철탑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던 경험이 떠올랐다. 겨울바람과 사람들의 발걸음에 의해서 미세한 진동이 발밑에서 느껴졌었다. 여행에 돌아와서 당시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을 적에 그녀는 가만히 듣더니 단호한 어조로 흔들리는 것은 철탑이 아니라 네 자신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철탑의 진동은 감상적인 착각이 아니라 과학적인 설계다. 다른 프랑스 친구는 이 얘기를 듣고 맞다고 하였다. 그렇게 흔들려야 부서지거나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경험담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수십번 얘기해온지라 사실 이제는 경험과 느낌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다듬어진 말 속에 기록된 경험을 반복해서 재생할 뿐이고 스스로도 지겨워져서 더이상 하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이야기할수록 정작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느낌이 사라지는데 그것은 철탑의 진동에 의해서 내가 실존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땐 마치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깨달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에도 진동을 느끼고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게 당연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강한 것일테다.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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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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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가만히 보기만 해와도 누가 왜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겠는데 본인이 아닌 척 연기하는 게 가소롭고 가증스럽고 처량해보인다. 허튼 연기하지 말고, 멀쩡한 척 하지 말고, 존재한다고 버둥거리지 않았으면 싶다. 내게 거슬려서가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나와 별달리 상관 없으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봐왔으니 나는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고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듯이 조금 흥미롭고 조금 짜증스러움을 느낄 뿐이다. 그래도 당사자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 지(정확히는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 지)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을지 막연하게 짐작가는데 다 자업자득인 셈이라 한편으론 조금 고소하다. 그래도 대단한 악감정은 없으므로, 그저 짜증나고 처량한 캐릭터이므로 그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서 꽁꽁 싸맨 자기 상처가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버둥거리지 말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과 흐름에는 자신의 성격에서 비롯한 언행에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데 대체로 이유가 있듯이(인과응보라는 상식적인 선에서 말이다) 본인이 피해를 입은 것에도 응당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피해를 주거나 피해를 받고 있는 그 자신은 현재의 그 자신이 가능한대로(그러나 가능하다는 말이 최선이란 말과 동일한 뜻은 아니다.) 애쓰고 있는 노릇일테다. 이것이 아마 우리가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이자 우리가 막장드라마를 찍는 이유일 것이다. 조용히 응원이나 하는 수 밖에 없다.(사실은 응원 안함. 내 자신이나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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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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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 전에 자기 위해 짤막하게 남기는 기록
1. 언제부터, 왜 잘 못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못지내고 있다. 다이어리를 안써서인지, 집이 너무 더워서인지, 일상의 흐름이 끊겨서인지 셋 다 인지 싶다.
2. 못지내면 이유나 따지고 있지 말고 못지내고 있다는 표시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집안부터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했다. 포스터마저 떨어졌다.
3. 그러나 기분이 착잡하고 시간이 없는 관계로 화장실 청소만 간단히 했다.
4. 발을 열심히 씻다가 카우아이 트레일을 다녀오고 나서 들려버린 오른발 두번째 발톱 안으로 무심결에 손톱을 넣어봤는데 그동안 멍인 줄 알았던 것이 빠져나왔다. 조금 경악스러웠지만 발톱 안이 썩진 않은 것 같다.
5. 손에서 벗어난 애착관계는 미련이 아니어도 씁쓸하다.
6. 좁은길의 여주인공이 제롬에게 매달리듯이 나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상에 매달려야할 듯하다.
( 그런데 나는 몇 걸음만 떼어 놓아도 현기증이 났고 네가 밑에서 고함을 치곤 했지. '그러니까 발 밑을 보지 말란 말야. 앞을 봐. 목표를 정해서 쉬지 말고 그대로 나가' 그리고 마침내 너는 담 저쪽 끝에 뛰어올라가서는 나를 기다려 주었지. 그러면 나는 떨리지 않았어, 더 이상 현기증도 나지 않았고. 나는 너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팔을 벌리고 있는 네게로 나는 뛰어가는 것이었지. 너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제롬,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네가 강하다고 느껴야 해. 네게 나를 의지하는 것이 필요해. 약해지지 말아 줘.)
7. 내 일상아, 약해지지 말아 줘. 내일은 설거지를 마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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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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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조깅을 했다. 그전에도 몇번 뛰어본 적은 있지만 조깅이라고 할 만큼 뛴 건 이번이 사월 이후로 처음이다. 오월은 종아리를 다쳐서 못뛰었고 유월은 럭키를 산책시키는 데에 모든 시간을 할애해서 못했었다. 그래도 좀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조깅을 할 생각이었는데 럭키가 원래 집으로 돌아갔다. 떠나는 날은 매우 슬펐는데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마치 마법처럼 너무 평온했다. 럭키에 대한 생각은 했지만 희안하게도 그리운 건 아니었다. 고스란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듯했다. 그래서 나는 가뿐하게 외출 준비를 했고 퇴근 후에는 그동안 못간 헬스도 다시 갔다.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있어서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도 사라졌고 운동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의외로 슬프지 않았다. 럭키가 없어서 휴대폰을 오래 들여다보긴 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는 리트리버 사진들은 여전히 귀여웠고 내가 스토리에 올린 럭키 모습들도 여전히 귀여웠다. 슬픈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늘은 늦게까지 잘 잤다. 도중에 럭키가 물거나 거실에서 오줌 싸는 소리가 들리거나 내게 올라타서 깨는 일이 없었다. 일어나서 럭키 생각을 했지만 괜찮았다. 잘 잤다는 생각도 연이어 했다. 일어나서 럭키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럭키를 쓰다듬으며 느꼈던 행복한 느낌도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럭키가 없다고 불행한 건 아니었다.
청소를 했고 럭키에 대한 흔적들을 몇몇 발견했고 귀엽거나 애틋했지만 커다란 감흥은 없었다. 그리고 조깅하러 나갔다. 나가는 길에 럭키와 산책하던 모습이 겹쳤다. 여기서 럭키가 뛰었고 오줌을 쌌고 리드줄을 물어댔고 똥을 쌌고 사람들이 럭키에게 관심을 가졌었단 기억이 자연스레 들었고 나는 문득 조깅하는 동안 슬퍼지는건가 싶었다. 하지만 우선 든 생각이 나들목까지 혼자서 너무 빨리 가뿐하게 도달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는 감회였고 이후에 조깅을 하면서도 이곳까지 이렇게 빠르게 단번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흥을 느꼈다.
럭키를 보고 심하게 짖어대던 웰시코기도 보았다. 약간 살집이 있는 견주를 보고 그 웰시코기인 줄 알게 되었다. 나는 견주를 스쳐지나갔는데 견주는 당연히 나를 못알아보았고 웰시코기도 평온하게 지나갔다. 럭키와 뛰어서 나갔던 나들목을 걸어서 나갔다. 럭키가 잔뜩 흥분해서 리드줄을 물고 뛰어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전부터 내가 늘 조깅하러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럭키와의 추억으로 범벅이 된 길이 되었다. 나는 럭키처럼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럭키와 재밌게 잘 놀았었던 닥스훈트도 보았다. 견주와 휴대폰번호까지 교환했던지라 나는 인사라도 할까 싶다가 뛰는 걸 멈추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나갔다. 견주도 나를 못본건지 못알아보았다. 잠수교를 건너갔고 스쳐간 여자의 향수인지 좋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달리던 길이자 럭키와 간 적 없는 길로 뛰었다. 이곳이 새삼 그리웠다. 그러나 뛰면서 럭키와 이곳에 오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졌다. 여름이라 한강을 거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실 예전에는 사람이 많으면 뛰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심지어 나처럼 달리고 있는 러닝동호회 사람들도 방해물처럼 여겨졌었다. 내 앞의 사람들을 피하고 외면하며 뛰어야하는 장애물 달리기처럼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럭키와 산책하면서 러닝동호회 사람들이 뛰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그 모습이 좋았고 그리운 느낌마저 들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처럼 조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뛰면서 그들을 보는 게 즐거워졌고 산책하는 강아지들도 챙겨보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길을 걷는 것이기 때문에 방해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날벌레들은 여전히 방해물이었지만 럭키와 산책할 적엔 들판에서 많이 물렸던지라 뛰느라 물리지 않는 것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페이스는 예전보다 늦어졌지만 그동안 못뛴 것도 있고 물이 고인 길에선 천천히 뛰었기에 당연한 것이어서 신경쓰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실 페이스에도 많이 신경 썼고 페이스가 떨어지면 더 빨리 뛰고자 했다. 오늘은 페이스 안내 음성을 유심히 듣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이것도 일련의 행복이었다. 동작대교를 건너서 돌아오는 길엔 럭키가 다른 강아지들과 한참 뛰놀던 들판을 지나게 된다. 나는 그 들판에 강아지들이 있는지 쳐다보았고 들판에 있는 사람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멀리서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알아봐도 나는 갈길을 뛰어갈 뿐이었다. 좀전에 만났던 닥스훈트와 견주를 다시 마주쳤다. 아까와 거의 비슷한 길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인 듯 싶었다. 나를 알아본다면 인사할 생각에 견주를 쳐다봤는데 견주는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아마 견주는 내가 럭키와 있어야 나를 알아볼지도 모른다. 나도 그 견주를 알아본 건 닥스훈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재밌어서 웃으면서 지나갔다. 마치 어떤 뻔한 영화의 엔딩 같단 느낌이 들었다. 그럭저럭 해피엔딩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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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youn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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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기억될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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