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더라. 맹목적으로 삶의 터를 옮기겠다고 대전으로 향하는 기차였던가. 내 옆자리에 한 아주머니가 앉았다. 처음에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분이 우물쭈물 말을 걸어왔다. 조용히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학생, 어디로 가요?" 나는 대전으로 간다고 했고, 반가워하며 자신은 대전에 산다고 했다. 본가에 가냐고 물으시길래 살러 간다고 답했다. 어린데 대단하네. 그 후로도 내가 거주하게 될 동네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거리, 운영하고 있는 학원, 군대에 있는 자식 등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셨고, 덩달아 나까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내 전화번호를 물어왔다. 혼자 타지에서 살게 되는데 혹시라도 필요한 일 있거나 힘든 일 있으면 꼭 연락 줘요. 딸 같아서 그랬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일찍 내렸고 이후 기차의 바퀴와 철로가 규칙적으로 부딪히는 소리만 공간을 메웠다. 질리도록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휴대폰에는 그 사람의 전화번호가 없다. 나는 대전에 사는 1년 동안 그녀의 전화번호가 필요했던 적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대화는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일면식도 없던 대전이라는 생면부지 도시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낸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덕이기도 하지만, 20대 자식을 두고 학원을 운영하는, 그날 그 시간에 기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않았을 처음 보는 그 아주머니의 말 또한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 버팀목으로 자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단한 친절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삶이라는 것은 연속된다.
나는 아주 가끔 생이 흐릿할 때면 그 아주머니의 휴대 전화에 저장되어 있을 하나뿐인 나의 전화번호를 떠올린다. 그러면 대전으로 향하던 기차 안의 쿰쿰했던 냄새와 벗겨진 나무가 즐비했던 창밖의 겨울이 내 삶의 장면으로 바뀌며 선명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