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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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레즈 라캥 - 에밀졸라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에 대해 잘 표현한 작품
사람은 비슷하다. 인류가 수만년의 시간을 통해 문명을 이룩해왔지만, 아직도 작은 벌레를 두려워하고 특정 사상과 아이디어를 종교화하여 사후 세계 및 도덕 윤리를 공고히하며, 특정 맛과 색을 본능적으로 선호하거나 두려워한다. "상한 맛"인 신맛은 훈련을 통하여 익숙해질 수 있고, "영양의 맛"인 단맛은 본능적으로 좋아하지만, 이후 훈련을 통해 조금 멀리하게 되거나, 어른의 능력인 돈으로 더 달짝지근한 맛을 찾아떠난다. 훈련을 통해 익숙해 지고 어색하고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크게 진화하지 못하였다. 죽음에 대한 것은 어떤가. 시대가 흐르면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존재하지만, 그 어느 시대도 그 죽음이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과거에는 종교에 심취하였고 현대에는 이 죽음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도록 산자와 죽은자의 거리를 떨어트려놓는다.
살인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떨어지지 않는 익숙해지지 않는 하나의 극단적인 경험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진보하면서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은 제한되고, 사회와 떨어지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도록 섬세한 배려를 한다. 사회가 허락한 살인인 사형은 점차 그 집행인의 죄책감을 더는 방향으로 발전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은 고통받는다. 사회가 허락한 또 다른 살인인 전쟁에서 과학기술은 칼에서 총으로, 그리고 이제는 원격 조정이 가능한 드론으로 산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의 거리를 떨어트려놓음으로써 익숙해지지 않은 살인의 추억을 희석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을 굳이 맞부딪치지 않아도 되는 현대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오래전부터 살인에 의한 죄책감은 문학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주요한 모티브였다. 사랑을 해서 타인을, 연인을, 혹은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더더욱 그래왔다. 사랑을 해서 힘들어하고, 사랑을 해서 죽이고, 사랑을 해서 스스로를 죽인다. 그리고 힘들어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하여왔고, 현실에서 이상으로 넘어가기에 너무 높은 현실의 장벽을 느껴왔다. 신랑의 친구라서, 현재 결혼 생활에서 얻은 부산물들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눈으로 인해,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장벽들로 인해 사랑은 좌절받는다. 그걸 대리만족하고 싶은 욕구가 인류 역사에 수없이 많이 남아있는 불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아닐까.
뻔하다면 뻔한 결혼을 한다. 불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도 아니다. 왠지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그리고 스릴이 넘치는 운우지정을 나눈다. 욕정은 이성을 누르고, 스스로를 합리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이 죽는다. 아니,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을 죽인다. 잃을 것이 있어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어서, 이를 합리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할 수는 있지만,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작은 물건을 훔쳐도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배우자 몰래 외도를 하면 쾌락과 욕망이 불안감을 넘어선 것일 뿐 그 불안감이나 죄책감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죽음이라면 그 불안감과 죄책감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더 극단적이고 잔혹한 이야기들은 많이 존재하고 상상해서 쓸 수 있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륜에 살인이라는 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에 멀쩡한 멘탈리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없기에 행하지 못하고 행하더라도 쉬이 탄로가 나서 사회의 처벌을 받는다. 더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현실적일까. 난 에밀졸라가 쓴 이 테레즈 라캥의 진행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실제 인간 본성에 더 어울리는 진행이라고 생각한다.
뻔하다고 하면 뻔한 이런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쓰고 또 사람들이 이를 다양한 형태로 즐기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결혼 혹은 어떤 형태의 결합을 통해 만나는 사람과의 지루함이 존재하고, 우연한 만남속에 꿈꿔오던(?)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일까? 그를 통한 대리만족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은 우리 안의 일종의 유전자의 문학적 선호도인가? 아니면 프리메이슨이 뒤에서 지속적인 작품 생성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불행하게 살도록 말이다. 어찌되었건간에 이 작품은 지루한 결혼과 지독한 사랑 그리고 끔찍한 결말에 대해 몰입감있게 묘사하였다. 불타오르는 욕정 끝에 일어난 살인은 죄책감으로 결국 행복한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죄책감은 죽음을 통해서야 사라진다.
결론은 그거다. 평생 사랑할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자고. 죄책감 생길 일도, 힘들어할 일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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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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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총균쇠 이후로 이런 류의 특정 사건에 의한 인류 혹은 역사의 변화를 짚어내는 책이 늘었다. 개별 연구자가 한 두 사건에 심도있게 연구를 하였다면 이런 류의 책들은 그들의 연구를 일정한 가설로 엮고 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대중적인 스탠스로 접근을 한다. 다 좋다.
알고 있는 사실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것들을 작가는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제국주의의 역할, 현대 사회 가치의 허구,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인본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가 책 구석구석 녹아있다. 인류, 아니 사피엔스에 대한 가장 드라이하고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후를 전망한다. 그 전망은 사실 좀 부족하고 급하게 마무리하는 듯 하지만, 중세 전쟁사학자의 전망칙고는 현재의 기술 수준과 그로 인한 파급력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썼다고 판단한다.
중세전쟁사를 전공했다면, 사람에 대한 믿음은 없을 수 밖에 없다. 현대의 수많은 조약들과 규제들, 교육과 믿음은 당시에 저질렀던 수 많은 잔인한 행동들을 반성하는 차원에서였을 것으로 믿는다. 단지 문제라면, 당시의 끔직한 인간의 모습들을 우리는 종종 문명화된 사회에서 잊는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탐욕적이며 잔인한 종인지를 망각한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생명공학 등에의 여러 규제들로 인해 아직은 인간에 대한 유전자조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저자도 말했듯, 그런 규제는 곧 유명무실해질 것이고, 나 역시도 이에 동의한다. 다만, 과연 어느 정도 선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고, 가능하다면 나의 대에서는 그 부작용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화식 문화가 전파되면서 나타난 현상들은 로버트 랭업의 육식본능, 식문화의 변화로 인한 문명의 발전과 쇠락은 프레이저의 음식의 제국, 그리고 사람의 이기적인 판단에 관해서는 생각에 관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책이며, 그 책들을 레퍼런스로 작업했음을 차후에 확인하였다. 내가 너무 마니악한 책을 읽지 않았음에 행복했고, 책을 조금 더 읽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하게 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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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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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트라나 알렉시예비치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죽지만, 문화권을 막론하고, 살인은 금기시 된다. 하지만, 전쟁이 금기시 되지는 않는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집단과 집단 사이의 살인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현대에 들어서야 이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포로를 죽이는 것은 범죄이며,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범죄이고, 전쟁이라 하더라도 학살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룰이다.
이 책은 그 계기가 된 세계 2차대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나라이자, 가장 잔혹했던 레닌그라드 봉쇄의 나라 쏘오련의 전쟁 후기를 모아놓은 문학 작품이다. 과연 남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 문학 작품일 수 있을까하는 사소한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깨끗하게 사라진다.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노력만으로도 노벨상 이상의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더불어 이 이야기들을 손에서 뗄 수 없게 이야기로 풀어내려갈 수 있는 능력은 21세기에 들어서 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전쟁은 권력자에 의해 일어난다. 2차 대전은 나치와 파시스트들에 의해 일어났고, 수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의 희생하였다. 장기화된 전쟁이었던 만큼 후방에 있을 여성들도 전쟁에 참전을 하게 되고 이 책은 그 여성들 - 젊은 나이게 전쟁에 참전하게 된 - 의 이야기이다. 책은 다양한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떻게 해서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거기서 어떤 역할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수행하였는지, 그리고 전쟁 후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파시스트를 물리치기 위해 참전을 하고, 많은 이들을 죽이고 돌아와서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에서부터, 우여곡절 끝에 참전을 하여, 하루하루를 공포와 긴장 속에서 살아남고, 다시는 돌이켜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까지. 한 두 사람의 영웅과 한 두 사람의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상처와 죽음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동지의 죽음에서 공포와 분노를 느끼고, 전쟁이 끝난 후에 해방감과 환희를 느끼고, 전쟁 중에는 남자같은 여자로 악착같이 살아남고 싶어하고, 또, 전쟁 속에서도 여성임을 느끼고 싶어했다. 수십, 수백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나오는 목소리를 결국, 전쟁은 인간이 겪지 말아야할 극단적인 경험이며, 전쟁이 끝난다고 하여도 이들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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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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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
다양한 논의를 하다가 보면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잊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인 입장서 보자면 세부 가정들에 대한 논의를 하다가 기본 법칙을 어기게 되는 그런 경우이다. 사실 이 차이가 업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과 취미로 하는 사람의 차이이기도 하다. 현대사회 - 그러니까 성별에 의해 참정권이나 행동에 법적제약임뒤따르지 않는 사회에서 논의되는 페미니즘은 종종 그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듯 싶다. 그건 논의에 참가하는 남자들의 몰이해엠기반을 둔 논쟁이었기 때문이다. 차별을 받는 사람은 차별을 받기 때문에 차별에 민감하지만 차별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 차별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집단 간 나타나는 차별은 개별인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비장애인보다 글과 그림을 잘하는 장애인이 있다고 해서 장애인이 글과 그림에 있어 어려움이 없다 말해도 안되고 성공한 한 두 여자 국회의원이 있다 해서 여성 상위 시대라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유독 성별에 의한 격차가 해소되지 못하는 건 다른 요소에 비해 선천적 차이 - 생물학적 차이 - 가 존재하며 그 차이가 역할의 차이로 존재해 왔기 때문일 것이며 또 후척적으로 그 구조가 바뀌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입장에서 평이하지만 흡입력 있는 어투로 이야기를 이끌어간 이 책은 현존하는 부조리를 공감할 수 있게 잘 표현하였다. 지역적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이를 핑계로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사람도 분명 많이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변명과 핑계를 만들어내고야 말것이다.
지역적인 특성을 넘어서 보편적인 감성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번역가의 우수산 번역은 원문의 느낌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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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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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황선도 저. 부키 출판사
도시에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사먹는 것들이 또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이야기되는지 가볍게 읽어볼 수 있는 책 30년간 국립수산과학원 및 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일을 한 황선도 박사가 한달에 하나씩 물고기 종류를 소개한다. 해당월은 제철생선인 경우가 많고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인 경우가 많다. 1월 명태 2월 아귀 3월 숭어 4월 실치와 조기 5월 멸치 6월 조피볼락가 넙치 7월 복어 8월 뱀장어 9월 갈치와 전어 10월 고등어 11월 홍어 12월 꽁치와 청어의 순서다. 일전에 읽은 “대구” 책에서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들이 많다. 너무 이른 새끼부터 잡고, 너무 많이 잡고, 개발이 많이 되어서, 생선들이 씨가 말라간다고. 명태도 뱀장어도 조기도 그렇다. 예전에는 많고 맛도 있었는데, 요새는 그렇지 못하다고. 안타깝다. 제철 생선을 이야기하지만, 사먹을 수 있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생선들은 대부분 양식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키우는 육지 동물들 - 소, 돼지, 닭 - 들 사실 모두 양식이고, 또 양식을 해야만 안전하게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복어의 경우, 개체에 따라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독성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생태계 상위 계층에 있을 수록,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도 늘어난다. 특히 요새 문제가 되는 녀석들은 마이크로비즈 같은 녀석들이다.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뱀장어의 경우, 바다에서 민물로, 민물에서 바다로 오가야 알을 낳고 성장을 하는데, 그 개체수가 점차 줄어든다. 환경 오염도 오염이지만, 강의 둑이 막혀서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서 양식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으면 한다고 한다. 넙치 (광어) 에 성공했듯이 뱀장어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아니나 다를까 올해, 뱀장어 양식이 성공을 하였다. 지금까지의 뱀장어는 새끼를 잡아다가 키우는 식이었다. 새끼는 주로 유럽에서 사오는데, 그 수출도 원활하지 못하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판에, 새끼를 부화하여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 책의 저자는 아주 기뻐하지 않앆을까. 책에서는 유럽이 최대 수출국이라 하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중국으로 넘어간지 오래인가보다. 우럭과 광어를 조피볼락과 넙치로 부르는 게 맞는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다만, 지역마다 또 세대마다 통일된 이름으로 생선을 불러주면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은 같다. 포항에서 즐겨 먹었던 물곰탕이 곰치가 아닌 물메기이고, 서해안의 곰치는 사실 꼼치라는 이야기... 늘 헷갈린다. 일단 무섭게 생긴 곰치는 아니라고 한다. 생긴 것을 보니, 맛이 그러한 것이 이해는 간다. 맛있는 회로 먹는 민어와 구이로 먹는 조기가 사실은 모두 민어과로 친척이고, 비싼 부세 혹은 보리굴비는 예전에는 안비쌌으며,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비늘을 세어서” 라니 참 놀랍고도 신기하다. 사실 모양을 보면 다르기도 하고, 또 같기도 한데, 관련해서 수산 시장서 물어본다고 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아저씨들은 그냥 너무 카더라가 많던 이야기들을 저자는 무척 잘 정리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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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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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온다. 한강.
한강을 좋아한다. 그 담담하게 우울하고, 나즈막하게 강인하면서도, 나약하지만, 또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린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사실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또 어떤 순간의 어떤 이유는 항상 있어왔으며,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는 모습을 가장 잘 그려낸다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 연작에서의 사람들 각각의 모습이나, 내여자의 열매에서 보여지는 종교적인 모습에서도, 사람의 모습이 너무 공감가고, 또 그래서 나에게 있어 가장 애정하는 작가다. 그런 그가 광주의 모습을 소설로 써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자 마자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책을 사면서 걱정도 되었다. 지금까지의 그녀는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여왔고,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광주의 이야기는 그러기엔 너무 크고, 어렵고 또 무엇보다도 누가 될 수 있는 이야기라서 그랬다. 안그런가. 숭고한 희생으로 그려낼 것인가 아니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낼 것인가. 아니 이야기 자체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고, 작품은 지금까지 읽은 모든 한강의 책 중에서 가장 멋진 작품으로 남아있다. 아직,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지 못하였고, 또 앞으로 나올 수 많은 책들이 남아있지만, 이 책은 언제까지나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부분적으로 꼼꼼하게 그려낸다. 개인에게 잊혀질 수 없는 끔찍한 광경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 할 수 밖에 없던 작고 큰 일들이 모여서, 어떤 모습으로 지금 남아있는가를 보여준다. 동호와 정대의 이야기, 은숙과 진수의 이야기. 남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살아남았지만, 영혼이 부서지고, 영혼이 부서졌지만, 그걸 어렵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장 한장 읽으면서도 안타까웠고, 고통스러웠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랬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인간의 잔인함과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인간의 숭고함이 얽혀있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그들의 모습들을 전달한다.
나 개인에게 광주는 관계가 없던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고,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는 민주화된 사회에 살았으며, 누군가의 사진따위가 학교나 관공서에 걸려있는 일따위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진으로 몇번 광주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지, 현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은 이 과거의 일을 현재로 이끌어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당시의 비인간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그때의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없어지지 않는 피폭의 피해처럼 사람의 유전자를 바꿔놓는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이 크게 와닿는다. 시간은 많은 일을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일들도 많이 있다. 난 시간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닐까.
근래 일베 등 군필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무임승차자’ 이야기가 있다. 남자들이 어렵게 지킨 나라, 남자들이 어렵게 벌어온 돈을 여자들이 쉽게 그 열매를 따 먹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은 소위 2등 시민이 되어 덜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 맞으며, 자신들과 같은 군필자들은 더 많은 권리를 누려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묻겠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 중, 과거 이런 민중 항쟁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무임승차자이며 유공자만이 1등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인가. 일베를 중심으로 한 남초 커뮤니티들은 그런 역사에는 눈을 감는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 빚이 많다. 또 그렇기에 기억하고,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보듬어야할 것도 많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겁하게 살아남더라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는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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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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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삼만원 넘는 밥을 먹어오던 자들이 고등학생에게 점심을 주고 취준생에게 생활 자금주는 것을 반대한다라니 너무 도덕적이어서 웃음이 다 난다. 필요도 없는 공짜 점심을 늘 얻어먹던 자들이 필요한 복지는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반대를 한다니 너무 참 한국적이지. 늘 이야기한다. 한국이 돈이 없어서 못하는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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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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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웃긴 건,
사실 성경에는 남자가 여자처럼 교합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있지만,
여자랑 여자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거든.
뭐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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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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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만나면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어느 정도 맞는 게 좋은 것이고,
어느 정도 맞추는 게 좋은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뭐, 이 말은 아직도 난 결혼이 멀었단 이야기가 될 것이고,
좀 슬프기도 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한심한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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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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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이란 건
때로는 습관적으로 행한다는 말도 되고
때로는 아무생각없이 행한다는 말도 되겠지.
내재화하되, 고민하고
고민하되, 에너지 소모가 적은 방법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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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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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허청에서 연락이 오고
한국 특허 법인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그 둘다 특허를 제대로 이해한 듯 하지 않은 메일을 보니,
그걸 업으로 삼지 않고 그냥 취직을 한 것이
참 다행인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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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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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바뀌었으면 하는 모습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꾸준하게 노력을 해야만한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무거워서, 너무 무서워서 
조금 더 가볍게 보이고자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또 어절 수 없구나 싶다.
잘해보고자 고민하는 모습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무섭게
어떤 사람에게는 무겁게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모습인가보다.
두개 혹은 그 이상의 행동들이 더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이는 날은 언젠가는 올 것이고,
그게 또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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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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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를 타고 서울에 가니, 사랑을 해도 바쁜 시간에 혐오를 확산하느라 시위를 하는 시위대를 마주쳤다. 남이 침대에서 무얼하든 난 상관도 없는데, 그들은 남이 침대에서 하는 행동으로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무너진다고 공포를 주입하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필그림들이 처음 그 땅에 발을 딛었을 때, 혹은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끌어올 때, 그들이 내세운 이유도 성경이었다. 그들은 "선택"받은 자들이고, 이들은 아니며, 우리는 이들을 노예로 부려도 된다고.
자신과 다른 남을 다르다는 이유로 노예로 부리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어찌보면 인간의 본능 혹은 권력욕에 기반을 둔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을 당연시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21세기에 걸맞는 행동은 아니다. 우리가 20세기에 혹은 20세기 동안 배운 것은 남들도 나만큼 중요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하거나, 혐오해서는 안된다는 것 아니었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이야기대로 “피땀으로 세운 나라" 가 동성애때문에 무너질 리도 없다. 타락의 징표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이 아니라, 이성애자들의 성매매일 가능성이 높고, 쾌락과 돈에만 탐닉하는 현대 문명일 가능성은 더더욱 높다. 그런 것보다, 멀쩡히 잘 있는 동성애를 건드리는 것은 결국 약자를 향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겠다는 것 밖에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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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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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페이스북 활동 목록에 또 이상한 사기글이 올라와서 글을 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올리브유를 이용한 간 청소" 그거, 효과 없어요. 하지 마세요. 해봐도 손해 아니지 않느냐. 자기 몸에만 하면 손해가 아니지요.
(http://m.cafe.daum.net/J-J/3YzW/1047?q=%EC%A7%91%EC%97%90%EC%84%9C+%EA%B0%84%EC%9D%84+%EC%B2%AD%EC%86%8C+&sns=URLCopy)
문제는 그런 '이미 실패로 확정된' 것들이 수십년의 사이클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 아직도 어떤 대륙에서는 "여성의 바람기를 잡는다"며 FGM을 시행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은이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며 먹입니다. 전세계 에이즈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에이즈 안걸린 사람과 성관계를 가져야한다는 믿음이 팽배해서 그렇습니다. 그 결과 에이즈가 안걸린 게 확실한 영유아들을 집단적으로 ��간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슬픈 현실이죠.
http://en.wikipedia.org/wiki/Mercury_(element)
http://ko.wikipedia.org/wiki/%EC%97%AC%EC%84%B1_%ED%95%A0%EB%A1%80
대장을 청소하기 위해 가장 좋은 건 역시 대장내시경.... 내시경 좀 찍어보면 알겠지만, 내장은 제법 깨끗합니다. 뭐가 덕지 덕지 붙어있으면 그거 좀 위험할 거예요. 간이 안좋거나, 담도가 막혀있다면, 그에 맞는 검증된 치료법을 찾아야해요. "천연의 재료라 부작용이 없다"는 이야기 참 웃긴 이야기에요. 부작용이 없으면 작용도 없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또 21세기로 넘어오면서 나타난 가장 큰 과학적 특징은 개인의 경험을 평균화하고 그렇게 평균화된 결과 안전하게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치료법들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평균화가 얼마나 유효적절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시금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런 일종의 대체요법들은 몇가지 큰 가정들을 합니다.
1. 천연의 재료라 부작용이 없다.
2.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의사들이 돈을 벌지 못할까봐
알려주지 않는다.
3. 어떤 의사가 발표한 내용이라더라.
4.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결과물 사진
정도가 있겠네요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질과 공장에서 합성한 물질의 차이가 없느냐. 라고 묻는면 그렇진 않다고 말을 하겠습니다. 랩에서 배양한 인공고기와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의 엉덩이살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전함에 있어서 둘의 차이가 있느냐. - 장담할 수 있는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샘물이 병에 든 물 보다 더 깨끗할까요? 어느 정도의 샘물이면 병에 든 물보다 깨끗할까요? 그 샘물을 페트병에 담으면, 될까요? 등등. 내려가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물물을 마시지 않고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는 것이 사악한 음료수 장사들이 사람들이 샘물을 못마시게 해서 인가요?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환경 오염 덕분에 실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안전하지 않은 요소들이 샘물 안에 이제는 많이 섞여서 그런 부분들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호르몬까지 검출된다고 하니, 문제가 사실 심각한 편입니다. 그런 불안한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저렴하게 제거하는 방법이 페트병에 든 물을 마시는 것이지요. 
의사들이 - 하나의 집단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어떤 타자화된 악마로 본다면, 공감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검증된 방법 + 좋은 방법이라면, 그걸 하나의 믹스로 만들어서 "간 플러싱 용액" 으로 의약품 회사에서 팔겠지요. "천연 올리브유 함유, 엑스트라 버진." 그걸 굳이 사람들이 매번 만들어 먹게 했겠습니까. 그냥 소금물, 설탕물일 링거액도 다 팔아먹는 제약회사들이 말이지요. 아니란 이야기는, 그 효능이 별 볼일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사가 발표한 내용이더라. 이 올리브 간 세척은 Hulda Regehr Clark 이라는 대체요법사가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Hulda_Regehr_Clark
특징적으로는 모든 질병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 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등 - 발생하며, 그것을 제거하면 모든 병은 고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에이즈와 암까지도. 구체적으로는 장흡충 Fasciolopsis 에 의해서 그런다고 했는데, 참 ... 웃긴 일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보고가 되던가 안되던가.. 야채를 생으로 먹으면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asciolopsis_buski
만약, 그런 걸로 뭔가가 청소가 된다면, 직접적인 수치 - 간 수치나 담도의 사진이라든가 등등으로 보여줘야지, 올리브유 잔뜩 먹고 며칠간 다른 거 안먹은 후 나온 똥 사진 같은 건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당연히, 그런 요법들이 "서양" 혹은 "일본" 등에서 흔하게 시행되지 않으며, 일반적인 치료 방법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습니다.
http://www.webmd.com/balance/natural-liver-detox-diets-liver-cleansing?page=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극단적인 방법론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종종 끕니다. 때론 체감적으로 어떤 모종의 변화가 있다고도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그런 형태의 극단적인 식이요법 - 기름과 소금만 먹고 며칠씩 있거나, 탄수화물 혹은 단백질이 전무한 식단을 짜거나 - 하면 체중 감소 혹은 근육 감소 등의 부작용들이 때로는 몸에 좋게 느껴지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단식은 수행자의 필수적인 요소로 때때로 인식되어 왔으며, 안전하게 시행할 경우 건강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확대되어 몸에 누적된 어떤 일종의 독을 빼 내거나, 혹은 녹여낸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시대가 영양과잉의 시대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의 독소를 빼내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고, 그를 견디기 위해 메스꺼움이나 발열, 설사등을 억지로 참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 아니 그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적당히 먹고, 적당한 운동, 긍정적인 생각, 이 이상 몸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움직이고 상식선에서 행동하세요. 제발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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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isthisajoke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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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
대한민국 뿐 아니라, 많은 수의 developed 국가들은 저 세가지 자유를 인정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유를 인정하는데 있어, 무엇을 인정하느냐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누구든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표현 역시,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종교의 자유도 있어서, 누구든 어떤 형태의 종교를 가질 수도 있다. 로마카톨릭일 수도 있고, FSM일 수도 있다. 증산도일 수도 있고, 요새 문제가 되는 구원파라고 해도,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물론, 한 사람이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함은, 일종의 판단의 잣대가 될 수는 있다. 대외적으로 특정 교리 - 남존 여비 사상이랄지 - 를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은 남녀평등의식에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의심해볼 수 있으며, 종말론을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은 합리적인 인식이 조금 떨어진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 그런 이야기를 설파하고 다니는 본인의 책임이다. 엇, 그럼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이야기인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믿든, 그에 대한 자유가 있다. 그 누구도 무엇을 믿어라 믿지 말아라 강요할 수 없다. 특정 종교의 교리서를 밟고 지나가야한다거나, 누군가의 초상화를 불태워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자유다. 그 종교를 누군가가 캐내고, 그 캐낸 정도를 가지고 사회생활상의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분명 종교의 자유에 침해가 되는 사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말끝마다 신의 뜻을 입에 달고 살고, 그 신의 뜻을 참칭해서 자신의 주장을 하거나, 자신의 교리를 빌미로 타인의 자유와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본인이 져야하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뜻이, 종교가 스스로의 반 사회적인 행동에 방패가 되어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에서 한 행동이고, 말이라 그것을 고려해달라고,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종교와 공적 업무를 충분히 분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동일하게 다른 종교 신자, 불교도나 무슬림이 그 종교 시설에서 이야기한 이야기가 동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수쿠크법과 같은 법들이 종교를 이유로 반대되지 않고, 현실 사회에서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그 긍정적, 부정적 역할이 논의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 개인의 경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인데, 내 경험과 편견이 그릇되었음을 누군가가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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