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anxiety-94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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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백일 글쓰기들 1
1.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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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것들은 아득바득 버텨야 유지할 수 있을까.
탈색한 지 하루면 두피 위로 올라오는 검은 머리카락이나 아직도 교정기를 껴야 하는 오래전에 교정한 치열이나 옅은 주제에 정리해주지 않으면 엉망으로 자라나는 가냘픈 눈썹이나
그러니까 멀끔한 것들은 지키는 것이다. 거저 얻는 게 아니라. 언어도. 붙잡지 않으면 모든 게 자꾸만 달아난다 그런 생각을 한다 심지어는 생각마저도, 쓰지 않으면 곱씹지 않으면 자꾸만 달아나고 휘발되고 영영 사라져서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지 않고. 시간마저도.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사라진다 모든 분과 초와 그보다 더 잘게 쪼개지는 찰나가.
나는 아득바득 사는 게 싫지만. 그렇지만 나는 아득바득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일이 나한테는 버거우니까. 그냥 남들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그냥 목숨을 붙이기 위해서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학교에 가야 하고 때로 친구를 만나야 하고 책을 읽어야 하고 영화를 봐야 하고 음악을 들어야 하니까. 그러면 나는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고 돈을 벌고 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글을 읽고 그걸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글을 읽고 자꾸 남의 것들을 훔치면서 살아왔다 나는. 훔치면서 산 것이 아니라 훔쳐서 비로소 살았다.
나는 글을 아무렇게나 갈기지 않는 사람들을 동경하지만 누구는 나더러 갈기지 않는 글을 써서 동경한다고 말하고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또 누군가를 동경하고 나는 꼭 꼬리를 무는 동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꼬리를 문 동경의 긴 줄에 나는 또 꼬리일 테고.
결국 열등감을 굴리면서 살아왔다. 굴리든 태우든 먹이든. 그것에 목줄을 매이고 인생을 견인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훔치고 베끼면서 그게 나인 척하고. 그러면 원래의 나는 무엇이었나. 남을 훔치기 전의 나를 오래도록 미워한다.
나는 인생이 억울하다. 살아가야 하는 게 억울하다. 사랑하는 게 억울하고. 내가 억울한 게 억울하다. 억울해선 안 되는 것도 억울하다. 나는 내가 억울하고 억울한 내가 불쌍하고 나를 불쌍해하는 내가 싫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나를 미워하고 자주 동정하고 나를 동정하는 나를 미워한다. 영원처럼 그렇게 한다. 나를 미워해서 남을 훔쳤나. 정말로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을 훔쳤나. 오늘의 나는 알 수 없지만.
내일의 나는 알 수 있을까. 아무튼 쓴다. 기록하기 위해서, 휘발하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 알맹이가 없는 것들을 그저 쓴다.
2.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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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술을 마시냐고 물었다. 별로 안 마셔요.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그것도 별로 안 피워요. 그게 대체 어느 정도냐길래 하루에 한두 대, 아니, 이제 금연해요.
어중간한 말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흘려보내는 날들. 그렇지만 운동은 하지 않고 식단은 엉망이고 조금씩 살이 찌고 몸이 무거워지고 나는 실은 무얼 위해 담배를 포기했나.
어지러워서 그랬다. 자꾸 밤을 새우니까. 밤을 새우고 굶은 채로 담배를 피우다가 거의 쓰러질 뻔해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겨우 토하고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갔던 날이 자꾸 생각이 나서. 자주 굶으니까. 위가 쓰리니까. 그러니까 아프지 않으려고. 어지럽고 속이 쓰리고 수업 중간에도 토하러 나가야 하는 그 날을 피하려고. 그뿐이다 내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끼니를 챙겼겠지. 운동을 하고 일찍 자고.
실은 내가 나를 버리는 느낌. 내 인생에 내가 나를 데려가지 않는 느낌. 나는 그냥 침대에 몇 시간이고 굶은 채 누워 있고 또 나는 그냥 묵묵히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하고 학점을 받아오고 또 나는 때로 세상에게 분노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서로 친해지지는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시간이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진다. 나이가 든다. 이제 십 대는 훌쩍 넘겼고 또 2020년이 코앞이고.
초등학교에서 했던 과학 그림 그리기 대회를 생각하면 2020년엔 세상이 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차가 날아다니고 해저 도시가 생기고 달까지 가는 엘리베이터가 생길 줄 알았지.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알약이 나올 줄 알았고 사람들이 장기를 교체해서 아주 오래 살 줄 알았지. 지구에서 달까지는 무슨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도 한참이다. 나는 차만 타면 멀미를 하고 자주 아프지만 귀신처럼 낫는 약이 나오지도 않는다. 아직도 나는 생리를 할 때마다 내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 어차피 하늘을 나는 차가 나와도 나는 네 평도 안 되는 방에 산다.
나는 뭘 선택해야 했을까 인생에서. 어떤 선택이 내 인생을 영영 바꿔놓았을까. 그치만 이제 그런 건 기억나지도 않는다. 시니컬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제 내가 내렸던 선택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 앞에 무슨 선택이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3.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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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때로 나는 너를 생각할 때 함께 이불을 뒤집어쓴 상상을 한다. 상상은 늘 이른 아침의 풍경이고 우리는 두 겹의 천과 그 사이를 도톰하게 메운 솜까지 투과한 햇빛 아래에서 서로를 본다. 완만한 곡선이 되는 너의 눈.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내 상상은 오롯이 내 시선 위에 있다.
한밤중의 어둠은 하나의 조명에도 소리 없이 깨지지만. 새벽과 아침의 언저리를 안개처럼 점령하는 가냘픈 햇빛은 내 창틀에서만 희미하게 조각난다. 사람들은 들짐승을 쫓듯이 어둠을 쫓는다. 그건 야만에 대한 증오. 사람들은 어둠을 몰아낸 자리를 구경하러 탑으로 탑으로 간다.
그렇지만 너는?
이른 아침의 투명한 햇빛보다는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 어울리는 우리는.
나는 자주 만약을 가정한다. 만약에 추위나 더위 둘 중에 하나만 정해야 한다면? 그러니까 영원한 여름과 영원한 겨울이라면. 영원한 아침과 영원한 저녁이라면. 만약에, 만약에 세상이 멸망한다면? 우리가 알던 세계는 영영 무너지고 우리는 모든 것이 멈춘 혹은 회귀하는 세상을 버텨야 한다면? 그게 우리가 갈아야 할 인생이라면? 그때 너는 무얼 그리워할래.
나는 도시의 불빛이 그리울 것이다. 우리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새겨넣은 풍경. 그 빛을 구경하기 위해 어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습지만. 그렇지만 나도 그리워할 것이다 그 자본의 산물을. 미워했던 것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고 사랑하는 것들이 미워하는 것들을 기르는 광경은 아주 기묘하고도 잦다. 이것도 우습다.
또 나는 우리가 아주 고상한 것들에 대해 고리타분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을 그리워하겠지. 실은 무의미한 것들. 아니 모든 것이 멈추고 또 회귀하는 순간에도 의미 있는 것들. 그렇지만 우리의 머리에서 오롯이 나오지는 않은 오래되고 거대한 것들에 대해서. 네가 새로운 걸 배우고 오래도록 생각하고 천천히 입을 떼던 풍경. 인간이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걸 경험하지 않은 네가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과 영혼 같은 안일한 소리를 늘어놓던 모습.
아니 우리 풍경은 이른 아침의 햇볕 같은 걸 매개하지 않아도 좋다. 다정한 영화에 나오는 흰 이불과 넓은 침대 아니 그런 건 고사하고 볕조차 들지 않는 방에서 나는 사니까. 구름이 끼면 한낮도 저녁 같은 좁은 방에 불을 켜니까. 너는 이른 한낮에 눈을 뜨고 너무 어두워서 아직 늦은 아침인 줄 알았다고 변명하니까. 그러니까 내 상상은 그저 상상이다. 불을 끄면 사물의 언저리에 빛 하나 매달리지 않는 어두운 방에 누워서 우리는.
어느 날엔가 불이 꺼진 네 방의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봤었지 우리는. 그게 꼭 밤하늘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지 별 하나 없었지만.
4.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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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실패하지 않고 평생 안일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는 축복이다. 언니를 사랑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지만 남은 언니의 인생이 무료할 정도로 순탄하기를, 그리하여 언니가 영영 안일하고 오만한 인간으로 살기를 바란다. 제가 오만한 줄도 모르고 사회적으로 적절한 취향과 고상한 취미를 가지길 바란다. 그러니까 언니의 인생이 다소 재수 없기를 바란다.
언니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건 언니의 인생이 아까워서다. 아직 말도 안 되게 젊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우리 언니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게 싫어서. 남편보다 일찍 퇴근한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하고 저녁밥을 차릴 게 싫어서. 언니는 우리 가족 중에서 맨 먼저 유럽에 다녀왔다. 갈비뼈가 보이는 배꼽티에 엉덩이 살이 훤히 보이는 짧은 반바지를 유럽에서 사 와서는 우리 집에 처음 그런 걸 들였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부러 밝은 톤으로 덮지 않았고 평소에는 빌빌거리다가도 덤빌 때가 되면 거짓말처럼 겁먹지 않는 법을 알았다. 엄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울리는 옷을 골랐고 촌스러운 걸 싫어했고 하고 싶은 머리를 몽땅 해보고 살았다. 우리 언니는 그랬다.
언니는 요새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퇴근하고 저녁에. 언니 옷장에는 검은 발레복에 분홍색 타이즈가 들어 있었는데 그걸 입고 월요일 수요일 혁신지구에서 발레를 배운다고 했다. 수업에 일주일 나간 뒤에 자기 자세가 벌써 발라지지 않았냐고 농담을 했다. 농담인 걸 알지만 언니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투로. 언니는 쾌활한 사람이다.
오래 언니를 싫어했던 건 언니가 짜증이 날 만큼 쾌활한 사람이어서였다. 웃음도 말도 많고 치부라고 꽁꽁 숨기려 드는 법이 없어서. 엄마나 나는 아주 방어적인 사람이다. 엄마를 빼닮아서 나는 그러라고 배운 것도 아닌데 내 결점을 전시하지 않았고 스스로가 멍청하게 느껴질 때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렇지만 언니는. 우리 언니는 모든 면에서 나와 반대인 사람이다. 친구도 많고 우울증도 없는 멀끔한 우리 언니. 오래 언니를 싫어했던 건 언니가 문제여서가 아니라 내가 언니의 밝음을 견딜 만큼 밝은 사람이 못 돼서였다.
나는 언니와 아주 느리게 친해진다.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를 키워도 이것보다는 빠르게 유대감이 생기겠거니 싶은 속도로.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가진 이해의 총량에서 서로에게 할당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우리는 아주 거대하고 느린 톱니바퀴 같다. 홈이 거의 맞물리지도 않는 불량품 자매 바퀴. 그렇지만 느릴 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번 홈, 아니 다음 홈이 또 엇나간다 해도 큰 기대 없다. 우리는 딱 그 정도 사이로 각자의 축을 따라 돌지만. 그렇지만 아주 가끔 서로의 인생을 들여다보려고는 한다. 혼자 타지에 사는 어린 동생과 다 커서도 허구한 날 본가에서 부모님과 싸우는 언니의 인생을 서로 조용히 걱정하면서. 아주 가끔 잔소리를 하는 정도.
시간이 더 지나면, 내가 더 자라면. 그때 우리는 무엇이 될까 궁금할 때가 있다.
5.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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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서울은 내 친구들과 애인을 인질처럼 데리고 있었다. 서울에는 가족도 통금도 없었고 친구와 애인과 학교와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이 도시는 내게 퍽 우호적인 곳이었던 셈이다.
대구에서 온, 러시아어를 전공하던 어떤 오빠는 서울이 너무 좋다고 했다. 대구는 계획도시라 건물들이 반듯하고 폐허가 없다고 했다. 서울은 낡은 것이 그대로 있어서 좋다고. 제주도에서 온 여자애는 서울이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애의 이모는 제주도를 더 답답해한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서울을 얼마만큼 미워하고 얼마만큼 좋아하나. 사실 서울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는 제 고향을 얼마나 싫어하느냐에 달린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곱씹으면 나는 서울을 미워한 적 없다. 사랑한 적도 없고. 서울과 사람을 떼놓을 수는 없는 법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울이 아니라 서울 사람을 미워했다.
처음 서울에 살러 올라가던 아침에, 엄마는 나를 껴안으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엄마는 누구한테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하려나. 우리 아빠는 누구한테 같이 쌍희반점 가자고 하려나. 그 이른 아침의 기차에서 나는 혼자 울면서 아지랑이를 들었고 엄마가 한 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일기를 썼고 내 인생의 커다란 한 발짝을 내딛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만 그랬다. 진짜는 아니고.
나는 우리 가족 중에 처음 상경한 사람이었다. 사실 나보다는 언니가 서울 생활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서울에 산 지 몇 년이 됐어도 가본 곳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고, 블루 보틀이니 버터밀크니 하는 곳엔 갈 생각도 없었다. 한강에서 치킨을 시켜 먹어본 적도 없고 남산 타워를 올라간 적도 없다. 그런 건 우리 언니 전공이다. 그렇지만 언니의 공식적인 전공은 교육학과다. 언니는 부산에서도 유럽까지 교환학생을 잘만 다녀왔고 공무원 시험을 쳤고 취직도 했다. 언니는 자기 전공이나 직업은 서울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후회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너는 지방에 있지 말고 서울에 가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평생 생각해왔던 것보다 언니가 나를 더 높이 쳐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한테 서울 하면 떠오르는 건 종로의 이미지가 다다. 창경궁 앞에서 안국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다음 역은 창덕궁, 인사동, 경복궁. 충무로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광장시장엘 간다. 동묘 앞, 관우의 사당 앞에서 노인들이 낡은 물건을 파는 곳. 광화문쯤 가면 사람을 압도하는 폭의 차선과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을 입증하지만 낙원 상가 같은 덴 그렇지도 않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상암은 거리가 휑해서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은 뭘 위해 서울로 아득바득 악을 쓰고 오나. 우리는 그걸 ‘오른다’고도 한다. 언제 올라가? 그건 서울에 언제 가냐는 뜻이다. 언제 내려가? 그건 언제 지방에 돌아가냐는 뜻이다. 그 사다리 같은 위계 위를 몇 번이고 오르내린다. 순종한다.
때로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이상하다. 그런 사람들은 서울이 자기의 동네라는 게. 명절에도 귀성길에 오르지 않는다는 게. 고향을 떠나기 위해 악을 써본 적 없다는 게. 우리가 ‘인 서울’ 같은 단어를 수백 수천 번 말하며 공부하던 시절에 그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입시를 했을까. 솔직히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의 인생이란 건 상상하기도 힘들다. 나는 아직 서울말을 할 때는 혀뿌리에 힘을 준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외국어를 하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운다.
나는 고향이 싫어서 떠난 사람은 아니다. 사투리를 감추는 사람도 아니고. 고향은 내 정체성에서 다소 비대한 부분이다. 서울을 사랑해서 온 것도 아니다. 그냥, 남들 다 가길래 따라 왔다. 달리 어딜 갈 수 있었을까 대구? 광주? 서울이 아니라면 애초에 고향을 떠났을 일도 없다. 한국 안에선 어딜 여행해도 부산보다 좋아지는 곳이 없었다. 인구 밀도 교통 체계 물가 풍광을 동시에 고려했을 때 그랬다. 바다를 끼고 자란 사람은 평생 바다를 그리워하게 된다. 어촌마을에서 통통배 타고 자란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됐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람은 크면 제가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제 인생을 꾸리기 위해서는 완전한 타지에 놓여도 봐야 한다고, 보는 눈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모텔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아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조그만 고향 동네를 떠나기도 해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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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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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우월감 충족이 상식보다 우선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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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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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에는 진귀한 힘이 있어.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의 발음이 명랑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는 네 이름 뒤에는 너만이 따라붙어. 동명이인을 봐도 너를 떠올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 이름이 온전히 네 것이라는 거니까.
시간은 배려 없고, 현실은 시궁창 같고, 사랑은 걸레짝 같고, 행복은 뜬구름 같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너를 생각해. 시궁창 같은 이 곳에도 어느 따뜻한 방랑자가 내린다면, 나는 그에게 네 이름을 붙일 거야.
사랑해. 네 앞에서 내 사랑은 모서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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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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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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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I love you
#3.
우리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반복된 실수를 마냥 미워할 수는 없지, 반복될수록 우린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서 서로를 점점 ‘진짜’ 알게 되니까, 그래서 반성과 사랑은 점점 깊어지니까. 너를 진짜 알아가는 모든 시간들을 포기하지 않을래, 네 마음 말고 네 눈동자 색부터 알래.
#9.
어떤 책에 쓰여 있기를, 사랑은 향수와 같아서 처음엔 향기에 취하지만 금세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고 했다. 그러나 매일 같은 향수를 쓰다보면 결국 그 향이 몸에 배어서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그 향이 은은히 퍼지기 마련인 것처럼,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랑이 은은하게 묻어나는 것처럼, 내 옆에 당신이 없는 찰나에도 내게선 오로지 당신의 냄새가 나는 것처럼.
#17.
나는 나약하고 무책임했어. 내 멍청한 모습마저 안아줄래? 나는 이제 나 말고 우리를 아낄 수 있는데, 사과 말고 사랑만 줄 건데, 진짠데.
#55.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당신에게서 더 이상 멀어지지 않는 일.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아무리 손닿지 않아도, 당신이 나를 아무리 밀어내도 당신을 거절하지 않는 일.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당신을 비우는 일, 당신을 미워하는 일,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
#.100
언젠가 누가 사랑이 무어냐고 내게 물어온다면 나의 대답은 언제나 당신의 이름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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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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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다소 실망을 했더라도 누군가도 나에 대해 실망했다가 조용히 극복해 준 때가 있을테니 나도 남에게 그래야한다는 건 알면서도 늘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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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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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나한테 있었던 모든 일들이 인생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되면 우리의 일부가 부서진다. 그 부서진 틈 사이로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
우리에게는 늘 도전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더이상 도전으로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별 일이 아닌 것 같을 것이다. 걱정이 안되고 더이상 문제로 느껴지지 않게 되는 날이 온다.
저항할수록 지속된다.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저항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누르게된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일에도 불이 붙게 된다. 나는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환영해보려고 노력했다. 팔을 벌려서 그 감정들을 안고 있는 것을 상상해봤다. 그러면 그 감정이 증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들이 다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 감정은 다시 나타나게 된다. 그치만 다시 나타날 때 그 감정은 약해져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그 감정들을 환영해주고 안아준다. 이것을 반복했다.
모든 고통은 우리의 생각에서 온다.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온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우리 인생을 창조하기도 하고 고문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것을 말할 때마다 그것에 집착할 때 마다 우리는 그것에 힘을 준다. 더 크게 만들어버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은 실제와 많이 다르다. 보이는 것과 많이 다르다. 우리가 생각해낼 수 없는 것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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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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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나귀 한 마리가 우물에 빠져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당나귀 울음소리를 들은 주인은 우물로 가서 당나귀를 끌어내려 했으나 손으로는 건져 올릴 수 없어서 낙담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 당나귀는 이제 늙어서 얼마 살지 못 할거야. 게다가 곧 새 당나귀를 사려던 참이었지. 마침 이 우물은 물이 다 말랐구나. 우물에 흙을 채우면 옆에 새 우물이 생길테니 일거 양득이야. 새 우물을 파면서 동시에 당나귀를 파묻는거지.’
주인은 망설이지도 않고 이웃사람 둘을 불러서 삽으로 땅을 파서 우물에다 흙을 던져 넣기 시작했다. 당나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즉시 알아차리고 더욱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은 채도 않고 흙을 계속 채워갔다.
당나귀는 곧 울음을 멈추었다. 주인이 우물 안을 들여다보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나귀가 떨어지는 흙덩이를 모두 발로 밝아 다져서 평평하게 하였던 것이다. 얼마 후에는 모두가 경악할 수 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흙바닥을 충분히 높인 당나귀가 스스로 우물 밖으로 뛰어나온 것이다.
살다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앞으로도 많은 문제가 끌려들겠지요. 하지만 새로운 흙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그것을 떨쳐낼 수 있고, 오히려 그것 덕분에 좀더 높이 솟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가장 깊은 우물로부터 한 발짝씩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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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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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투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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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건조해져 피가 곧 얼어서 슬러시처럼 사각거릴 거야 빨대 꽂고 머릿속에 폭포 쏟아질 때까지 빨아 마실 거야 웅크린 발끝이 깨질 때까지 그러고 싶어 빨간맛은 암만 봐두 겨울이랑 더 어울리지 않니 우리가 같이 겨울을 보낸 적 있었나 너는 나만큼 빨강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본 적 없다구 했는데
오래 전부터 나를 늘 찾고 있었다고 했지 모방작들 앞에서는 자꾸만 화가 났다고 했지 난 네가 화를 내는 것조차 이렇게 다정하고 눈물 나는데 너의 높은 언성과 나쁜 말들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레고리를 발견하는데 화가 나다가도 참아진다는 그 말이 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제 몸을 떼어 주려는 것마냥 구는 네가 좋아서 구석구석 빨아 먹구 싶은데
붉은 피부 위로 올라온 너의 검푸른 핏줄이 좋아 기생이라는 단어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해서 좋아 내 하얗고 부드러운 손등이 너와 스칠 때마다 내가 귀엽고 나빠져서 좋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눈으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수없이 속삭이는 고백이 좋아 나와 너무 다른 네가 아침마다 내 이마에 키스하고 출근길에 오르는 게 참을 수 없이 좋아 물속에서 숨을 참는 기분이 들어 눈 마주치고 있는 시간동안은 호흡도 약간 사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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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우리만 아는 제일 나쁜 농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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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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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차별의 경계에서 어느 선을 오가는지 구별 못하는 아둔함이 지금을 만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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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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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부추기는 이념은 이념일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있다고밖에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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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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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안녕, 사랑하는 당신. 짧은 편지를 적어봅니다. 지난 봄에 제가 한 일은 먹고 마시고 운 것 밖에 없는데, 벌써 구름이 길게 걸려있는 계절에 도착했습니다. 어린날에 당신에게 말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지요. 이제 진짜 여름입니다. 흘리는 소리로 혼잣말을 하면 당신은 말해주곤 했지요. 여름에 가짜도 있냐고요. 그렇네요. 오늘까지 제가 살아온 여름은 잊고 싶은 적이 있었지만 가짜는 없었습니다. 그 모두가 진짜 여름이었네요. O.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릅니다. 소설의 그녀는 담쟁이덩굴 잎이 다 떨어지면 ‘안녕’이라고 말하려 했다지요. 매해 여름마다 다음 여름을 생각합니다. 다시 찾아온 여름에는 맨드라미에게 인사해야겠다고 기약 없이 약속하고 싶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눈 앞에 계절을 살지 못하고 오지 않은 계절을 미리 그리워한다는 일은. 미련이 옮았나 봅니다. 잠시 비 그친 저녁 바람이 좋습니다. 풀잎들이 물기를 살짝 머금었고요.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또 피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어느 비 그친 주말 저녁, 우리가 너무 젖은 날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승희,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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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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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보니까 알겠더라 사랑받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랑을 주기만 하고 그걸로만 만족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난 그냥 사랑을 못받던 거였어. 지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주는 사람이라서 너무 좋더라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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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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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랑 간 을왕리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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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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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더 맘에 들었대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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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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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날 괴롭히던 그 사람은 내 집에서 나갔고, 새로운 누군가는 나한테 기분 나쁘지 않은 파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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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xiety-94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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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머릴 쓰담는걸 참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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