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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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책들
- 대충 대충 읽어서 책을 정말로 '읽었냐'고 자문하면 그다지... 그래도 읽은거 나마 기억해야 하니까. 쓴 순서는 기억나는대로.
- "천개의 찬란한 태양": 미국으로 간 아프간 출신 작가가 적었다기에 왠지 폄훼하는 시선이 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안 읽었다. 진중문고에 꽂혀 있는 책을 화장실 가는데 슬쩍 보기만 하자는 생각에 들고 갔는데, 그대로 다 읽어버렸다. 왠지 박완서의 소설과 비슷했다는 느낌....인데 좀 더 극적인 느낌? 아무래도 아프간의 상황이 상황이라 그렇겠지.
- "내 젊은 날의 숲", "흑산": 김훈 소설은 처음으로 다 읽어봤다. 재미는 있는데 뭘 말하고자 하는건지 이해가 잘 안됨.... 대충 읽어서 그런건가, 내가 생각이 없는 건가. 건조한 문체는 멋있더라.
-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가 떴을때 영화로 보고 싶었는데, 왜 인지 안보고 이제사 부대에서 읽었다. 기대한 바와는 달랐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한 2, 3일 정도 이 내용만 생각했다. 요즘 읽은 책들 중에 여운이 제일 오래 갔다.
-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로스트 심벌": 예전에 읽기는 했는데 심심해서 다시 읽음. 놓친 부분이 참 많았구나 싶더라. 재미도 있었다. 근데 전반적인 이야기가 다 똑같은 느낌.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사실인양 써놓은게 좀; 별루.
- "살모사의 눈부심": 오밀조밀하게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저 시대 오스만 궁정을 말하기를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그 기대는 한참 빗나갔다. 그래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이거 보면서 광인 이브라힘이나 쾨셈 술탄, 오스만 궁정의 노예제, 예니체리, 관료제 등, 공부 좀 해볼라고 했는데, 그런 의도는 완전 날라가서.... 아쉬움. 결국 제대로 남은건 이브라힘 밖에 없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유명사의 번역이 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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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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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아쉬운 영화였다. 하정우를 비롯한 군도쪽에 더 집중을 하던가, 아니면 강동원에 집중하던가 했다면 더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전자를 택하기에는 조윤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긴 했다.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잇더라. PS 나도 좀 늘어지는 부분이 없진 않다고 느꼈는대, 같이본 사람들은 너무 지루했다고 그러더라. 개인 취향 많이 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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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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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총리의 아르메니아 문제에 대한 성명
2014년 4월 23일, 집단학살 99주기를 하루 앞둔 이 날에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총리는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한 특별 성명을 발표했다. 터키의 지도자가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많은 한계(단지 '1915년의 사건' 정도로 표현한다거나, 책임 인정이나 사죄는 하지 않았다)가 있기는 하나, 동시에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이를 우리말로 옮겨서 또 올린다.
이 번역은 에르도안 총리의 특별 성명을 《휘리예트Hürriyet》에서 비공식적으로 영어로 옮긴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내가 옮긴 영어 번역본은 "Turkish PM Erdoğan's April 23 statement on Armenian issue"에서 확인할 수 있다.
"4월 24일은 우리 아르메니아계 시민들과 세계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자유로이 교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분명히,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몇년은 어려운 시기였으며, 터키, 쿠르드, 아랍, 아르메니아 등 종교나 인종적 기원과 상관없이 수많은 오스만 신민들에게 고통스러웠습니다.
양심, 공정함, 인류애 등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건 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종교나 인종 따위로 색안경을 끼고 들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확실히, 고통 받은 줄을 세우거나, 비교하고 또 부정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일입니다.
터키의 격언에 이르기를, "불은 떨어진 곳에서 탄다"라고 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다른 신민들이 당했듯,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이 시기에 겪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은 인류의 의무입니다.
터키에서는, 1915년의 사건에 대해서 다른 의견과 생각을 개진하는 것은 다원적인 시각과 민주적이고 현대적 사고 방식을 가져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터키에서 이런 분위기가 있는 것을 이용해 혹자는 비난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도발적인 언행이나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설사 이것이 역사적 문제에 대해 더 심도깊은 이해를 하게 해주고, 다시 우정을 나누게 해준다하여도, 공감과 관용 등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터키 공화국은 계속해서 국제법에 맞추어 이 모든 생각들에 접근할 것 입니다.
그럼에도, 1915년의 사건을 이용하여 터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가 공유하는 고통입니다. 이 고통스러운 시기를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은 인도적이고 학술적인 책임감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러 종교와 인종의 수많은 사람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시기에 비인도적인 결과─예컨데, 강제 이주─를 맞닥드린 사람들이 많지만, 터키 사람과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동정과 인도적 태도를 서로에게 가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세계에서, 역사로부터 증오를 끌어내고, 새로운 대립을 만드는 것이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정신은 여러 차이와 상관 없이, 서로를 조심스레 이해하고, 서로 타협하고, 미움을 비판하고, 상호 존중과 관용을 가지고 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터키 공화국은 1915년의 사건을 학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역사학회를 설립하기를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학술적 연구는 터키어, 아르메니아어 등 여러 사료들에 기반해서 이루어질 것이고, 1915년의 사건에 대해 빛을 비추고, 정확하게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 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모든 기록 보관소를 모든 학자들에게 공개할 것 입니다. 오늘, 엄청난 양의 문서들이 우리의 기록 보관소에서 역사학자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있게 단언컨데, 터키는 역사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언제나 학자들과 광범위한 연구들을 지원할 것 입니다. 수세기 동안 소아시아에 함께 살아온, 여러 인종적·종교적 기원을 지닌 사람들은 예술에서 외교까지, 국가 행정에서 상업까지 모든 면에서 많은 공통적 가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들은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슷한 문화와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성숙하게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고통을 공유하기를 기원하고, 또 그리하리라 믿습니다. 이 기원과 믿음 속에서, 우리는 20세기 초에 생명을 잃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그들의 손자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인종적 또는 종교적 기원과 상관 없이 우리는 같은 시기, 비슷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오스만 신민들에게도 애도와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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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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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사태에서 중앙아시아가 배워야 할 점들
크림이 러시아에 합병되는 결정이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나라들은 조지아가 러시아의 아래에 들어갈때 충분히 반발하지 못한 나라들이다. 2008년, 러시아가 조지아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트빌리시에 자치 공화국인 남 오세티야와 압하지야 지역에 불법 정부를 세웠지만, 이에 맞서 러시아에 제동을 건 나라가 없었다.
모스크바의 정부 수령,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대표되는, '복고주의자'(geri dönüş)라 불릴 수 있는 정치인들은 근방 정책(the near abroad)로 불리는 정책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우선, 옛 소비에트 지역 전체에 러시아의 군대를 보내, 어떤 대가를 치뤄서든지 이익을 지켜내고자 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크림에서 러시아 합병을 위한 투표가 시작된 2014년 3월 16일, 국제 사회는 두 의견으로 분열되었다. 그 결과, 투표로부터 5일 뒤. 푸틴이 합병 조약을 서명하였고, 러시아측은 즉각 군대를 보내 유럽 연합과 미국은 조약이 불법이라고 발표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취하겠다는 제제 결정은 크림 점령에 비교해볼때,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중앙 아시아의 공화국들은 이 문제에 대해 (길게 보면 스스로에 대한 위험이 될수도 있으나)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 할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크림의 투표를 처음에는 주州들 사이의 문제로 인식했다. 아스타나Астана(카자흐스탄의 수도)는 3월 16일의 선거를 크림 사람들의 자유 의지를 반영한 것이며, 사람들 스스로 분리 독립이라는 운명을 결정했다고 보았다.
키르기즈스탄은 카자흐스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는 것이 '발생한 사실'으로 보았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애초부터 국제 연합(UN)과 국제법에 사태가 어떻게 이어지든간에 (적어도 침묵으로 일관하겠다고) 러시아를 지원하는데 가까운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의 눈으로 보면, 크림 사태에 대한 반대들은 별거 아닌 문제만 야기하는 것이다.
1. '인종적으로 러시아계이고/이거나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민족자결권'. 이 권리은 현재 국제법 상 애매하게 적용될 수 있다. 과거에 모스크바는 긴 시간동안 체첸 사람들의 '민족자결권' 행사 앞에서 군대를 보내, 체첸 사태를 군사적으로 '해결한' 나라이다.
2. 크림 국민 투표의 합법성에 대한 쟁점들과, 우크라이나에서 시민들의 활동, 러시아의 크림 점거에 대한 논의에 중앙 아시아 정부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다.
떨어져 나가는 중앙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
소비에트 연방이 1991년에 해체되면서, 독립한 중앙 아시아 국가들은, 지정학적 문제를 무시한 독립과 잦은 집권당의 변경으로 시민혁명은 시작부터 불안하게 진행되었다. 이 지역에서 시민혁명 기간동안 홀로 '민주주의 섬'이라 불릴 수 있는 키르기즈스탄에서만 수행되었고, 더욱이 이 역시 많은 고초를 겪었다.
우크라이나에서와 유사하게, 시민혁명에서 다른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이 겪은 과정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실재와는 동떨어져 있다. 그리고 확실히 중앙 아시아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민혁명 운동에서 발생한 나라들에서, 운동의 결과로 형성된 정권과 운동권의 능력은 충돌했다. 그러나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에서 이 요소들의 존재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단지 '대중 운동과 이 지역 정부 사이에서 만들어진 불안'이라는 시각으로 보아졌고, 우크라이나 위기는,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의 시각에서 심대한 불안을 야기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하나의 메세지로 받아들인다. 모스크바는 크림 점령과 국민투표를 실행할때 '크림 반도에 사는 러시아인들'과 더 나아가 '러시아어 사용자'들을 근거로 삼았다.
모스크바는 크림 반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과 '러시아어 화자'들을 보호한다고 밝혔다.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 모두는 러시아계 소수민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 나라들을 모두 합쳐보면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가 러시아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에게 그 의미는 중요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크림 합병에서 중요한 또 다른 사실은, 얄타에도 러시아 군인들이 존재하고, 모스크바의 태도에 대한 지지는 여기서 나온다. 유사하게,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 역시 현재 러시아 군대 국내에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키르기즈스탄에도 군 부대가 있고, 카자흐스탄에는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Байқоңыр ғарыш айлағы)를 구실로 해서 군 부대가 존재하는데, 모스크바가 통제하는 해외의 군부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7,000명 이상이 있는 타지키스탄의 것이다.
러시아는 (또한 이들 경제에) 지분도 많이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함께 관세 동맹(Gümrük Birliği)을 맺고 있는데, 이 때문에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즈스탄, 튀르크메니스탄 등의 경제가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가장 심대한 요소는,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은 즉시 차단할 수 없고, 갈수록 깊어지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될때부터, 몰도바에서 독립한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 역시 러시아에 합병되기를 원하고 있듯, 옛 소비에트 연방 전체에서 도미노처럼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중앙 아시아의 나라들은 과거부터 독립할때까지 모스크바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퍽 잘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앙 아시아에 가진 관심의 문제점은, 자연적인 국경,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연방의 유럽 연합 대사 블라디미르 치조프Vladimir Chijov는, 크림 사태에 대해서, 크림은 '다시 통일되었다'며, 러시아 사람들은 즐거움을 단적으로 묘사했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협조를 받을 필요가 있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다 년간 인고했으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오래된 관계를 복구하려는 시도만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가깝게는 옛 소비에트 연방을 추종했던 모든 곳에서 모스크바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간신히 평안을 느끼고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의 관점에서, 위협을 지각하고 있을수도 있다. 크림 사태는 푸틴 치하 러시아의 '정당하고 기본적인meşru bir temel' 근심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이 지역 정권들의 시각에서, 새로운 정신적 장벽을 세우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창조한 지각이 20년 간 먼 간격으로 중앙 아시아 공화국들에게 크림에 집중하라고 말하고 있다.
Orta Asya için Kırım dersleri
알자지라 터키어판에서 번역. 초안임. 계속된 수정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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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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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마태복음> 14장 5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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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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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태복음> 8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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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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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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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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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장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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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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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으니 지식을 더 하는 자는 근심을 더 하느니라
<전도서> 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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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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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3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돌며 저리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1: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1:10 무엇을 가르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전도서> 1장 2절 ~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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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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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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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릴 이날즉이 설명하는 '크림 사태'
"크름Kırım 반도(크림 반도Crimea를 터키어식으로 읽은 것)는 아나돌루Anadolu를, 해협을, 이스탄불을 위협할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세계적인 사학자, 할릴 이날즉Halil İnalcık은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있어서 소아시아, 보스포루스 해협을, 이스탄불을 위협하는 지정학적 요충지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그의 표현을 따르면 "크름 반도는 튀르키예Türkiye(터키의 국호를 터키어식으로 읽은 것)를 위협하는 요충지이다. 근래 세바스토폴에서는 러시아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기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튀르키예를, 해협을, 이스탄불을 향한 위협이다."
본디 크림 튀르크인 할릴 이날즉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위기의 배후에는 크림 자치 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려는, 그리고 마침내는 크림 자치 공화국을 러시아 연방에 넣으려는 계획이 있음을 역사적인 배경을 Anadolu Ajansı 기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케임브리지 국제 인명 센터에서, 세계의 사회학자 2000여 명에게 할릴 이날즉은 크림 반도의 역사적 중요성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크림 반도는 1475년에, 파티흐 술탄 메흐멧(Fatih Sultan Mehmet)의 시대에 게딕 아흐멧 파샤(Gedik Ahmet Paşa)에 의해 정복된 뒤, 크림 칸국은 오스만 제국과 운명 공동체가 되었으며, 동유럽에 있는 오스만 제국의 세력권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날즉은 에블리야 첼레비Evliya Çelebi의 표현을 빌려, 크림 칸국은 북방에서 오는 위협을 마주하는 'sedd-i sedid'(강건한 장벽)이었다고 말했다.
타타르란 잘못된 용어로, 큽착 튀르크Kıpçak Türk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날즉은 제정 러시아의 오스만 제국 지배 아래에 있는 크림 튀르크인들에 대해 침략들과 크림 반도를 차지하려는 수차례 시도들이 크림 반도의 튀르크인들을 '타타르Tatar'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연관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날즉은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용어를 고치고 싶다."
"타타르는 몽골어이다. 1240년대에 동유럽에 출연한 몽골 국가 속에는 타타르라는 부족이 있었다. 이떄부터 크름 칸국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들어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땅은 조치 울루스의 것이었다. 몽골 제국의 신민들은 타타르라 불리었다. 따라서, 타타르는 잘못된 용어이며, 큽착 튀르크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큽착 튀르크인은 여전히 기저층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큽착어도 남아 있었다. 타타르라는 용어는 몽골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를 알기에 튀르크가 아닌 타타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오늘날 아제리Azeri(= 아제르바이잔) 사람들 마저도 타타르라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제리 사람들 역시 아나돌루 튀르크이다."
마침내 모스크바의 군주, 최초의 러시아 짜르 이반 뇌제는 카잔과 오늘날의 폴란드 등에 해당하는 동유럽 지역의 패자가 되었는데, 이날즉은 "러시아 제국은 이때부터 크름 한국과 흑해 연안을 장악하려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크름 한국은 모스크바 제국을 막는 오스만 제국의 댐이 되었다. 그러자 러시아의 짜르들은 대신 카작Kazak이라 불린 아스트라한, 카프카스, 테렉 강 등지의 돈 카작인들, 테렉 카작인들에 대해 원정을 수행하여 이 지역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없애려 했다. 그리하여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에서는 크름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날즉에 따르면, 오스만·러시아 전쟁과 1774년의 퀴췩 카이나르자Küçük Kaynarca 조약으로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에 대한 예방 조치라 할 수 있는 크림 칸국의 독립이 성립되었고, 마침내 1783년, 킵착 튀르크인들의 땅인 크림 반도 점령이 이루어졌다.
유명한 사학자, 이날즉은 "카프카스 인근의 흑해 연안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갔다. 러시아는 흑해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옛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 임을 주장하고, 이스탄불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사람들은 흑해 북방에 정착하였고, 크름 반도에도 러시아 정착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라고 말했다.
소비에트 연방 시대, 스탈린 집권기에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이날즉은 "스탈린은 하루 아침에 러시아 사람들을 이용해 30만 크름 튀르크인들을 말이나 태우는 열차에 실어 중앙아시아의 우랄 해 근방으로 추방하였다. 튀르크 인구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말했다.
터키를 위협하기 위해 크림 반도를 점령하다
크림 사태를 러시아가 소아시아를, 보스포루스 해협을, 이스탄불을 위협하는 것이라 보는 이날즉은 "크름 반도는 튀르키예를 위협하는 요충지이다. 근래 세바스토폴에서는 러시아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기를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튀르키예를, 해협을, 이스탄불을 향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다.
할릴 이날즉은 이에 대해 터키가 취할 수 있는 대응책으로, NATO와 같은 조직으로 대표되는 서방국들과 협조가 있다고 주장했다.
크림 반도�� 인구 60% 가량이 러시아계라며, 이날즉은 이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러시아는 튀르키예를 위협하기 위해 크름 반도를 장악했다. 이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 고향이 당하고 있는 수난은 터키에 대한 위협이다. 푸틴은 오늘 군대를 크름 반도에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크름 반도는 러시아의 것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신유라시아주의는 터키에 대한 위협이다
이날즉은 '신유라시아주의'(이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참고)라 정의되는 최근 러시아의 목표와 크림 반도 합병이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반복해서 제정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연사시킨다"라고 이날즉은 말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러시아 정치인들의 목표는 유라시아주의이다. 이를 신유라시아주의라 부르는 것은 그 의미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러시아는 '폴란드에서 중앙아시아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들을 러시아의 세력권 아래에 묶여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라시아주의라는 아시아와 유럽의 우리 우방국들을 두렵게 했던 팽창주의는 고르바초프의 시대에 끝이 났다. 독립한 크르그즈스탄(키르기즈스탄의 키르기즈어식 표기), 튀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등의 나라들은 이에 연대하고 있다. 푸틴의 모든 노력은 유라시아주의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패권을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다. 다시 러시아의 멍에를 씌우기 위함이다. 신유라시아주의는 튀르키예에 대한 위협이다. 푸틴이 크름 반도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제정 러시아의 부활과 같다."
Halil İnalcık'tan "Kırım" açıklaması
크림 반도가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우던 때에, 크림 반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터키의 입장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또 번역했다. 고대로부터 터키 지역의 큰 나라들은 대개 크림 반도에도 세력권을 구축했었다. 또, 크림 타타르인들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터키로 많이들 이주했다. 할릴 이날즉의 가족들 역시 그런 크림 타타르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할릴 이날즉의 가문은 1905년, 크림 반도를 떠나 이스탄불로 향했다. 할릴 이날즉은 1916년 경에 태어났다. 할릴 이날즉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스만사 학자이다.
할릴 이날즉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침소봉대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고, 몇몇 발언에 대해서는 그게 역사적으로 적절한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인터뷰 전문이 아니라 기자가 발췌한 기사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터키의 크림 타타르는 또는 터키의 학자는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사례 하나를 찾는 정도로 이 기사를 읽고 또 번역했기 때문에 크게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고유명사의 표기는 대체로는 관례를 따랐는데, 몇몇 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할릴 이날즉의 말을 인용한 부분에서, 터키나 튀르크계 고유명사들의 표기는 되도록이면 터키어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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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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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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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큰 규모의 신문사라고
가끔 가서 좋은 기사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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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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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애 폰 만지면서
외박이든, 휴가든, 가끔 나와서 윈도폰을 만질때마다 놀란다. 한국에서 윈도폰 쓰는게 점점 다 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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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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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mia 520: ~ 1일차
1.
 본래 사용하던 스마트폰, 갤럭시 넥서스가 여러모로 쓰기가 불편한 상황이 왔다. 때문에 새로운 휴대전화를 알아봤는데, 갤넥이 약정이 끝나지 않은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약정을 걸고 전화를 사기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알아본게 자급제 휴대전화였다. 여기에 더해, 갤넥이를 쓰면서 안드로이드 외의, 다른 os를 사용한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 손이 조금 작아 4인치 이하의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AMOLED 사용 제품은 좀 피하고 싶었다. 갤넥이를 쓸때 잔상이 딱 약정 기간 끝나고 터져줘서 짜증이 많이 났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근 7개월 정도를 잔상 남은 꼴을 보면서 갤넥이를 썼다)
 처음에는 아이폰 4로 넘어가려 했다. 운이 좋게 공기계를 얻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불발로 끝이났다. 그 다음으로는, 그래도 안드로이드 os가 싫어 아이폰 중고를 알아보았지만, 가격이 내 생각보다 많이 나와 이쪽도 포기했다.
 그래서 다다른 결론이 윈도폰이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스마트한 사용을 하지는 않았기에 네이버 라인이나 카카오톡 정도만 별 문제 없이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알아보니 수입 대행사로는 홍콩폰이나 익스펜시스가 많은 추천을 받길래 두 사이트를 비교해보았다.
2.
 우선 두 사이트에서 눈에 딱 보인 차이는, 가격 차이가 정말 많이 난 것이었다. 익스펜시스가 싸서 이쪽을 일단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익스펜시스쪽의 가격은 관세와 배송비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다 더해도 익스펜시스가 약간, 아주 약간 싸기는 했는데,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다 싶더라.
3.
 그 다음으로는 어떤 전화기를 사느냐였는데, hTC쪽은 왠지 마감쪽이 불안해서 패스, 삼성이나 LG는 윈도폰에 비중 자체를 거의 두지 않는 것 같아 제외했다. 그러자 노키아의 루미아 시리즈가 남았다. 되도록 30만원 이하로 처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자 루미아 520과 루미아 620이 남았다.
 두 기계의 가격 차이는 3만원 가량이었다. 이런 저런 사양 차이가 있었지만, 내가 주목한 차이는 화면의 차이, 전면 카메라 유무, 플래쉬 유무였다. 이정도면 감수할 수 있지 싶은 생각에 좀 더 상위 제품인 루미아 620을 주문했다. 그런데 막상 주문하자 루미아 620 재고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재고가 있다고 표시되어 주문했는데 말이다. 언제쯤 재입고되겠냐 묻자 회사측도 모르겠다더라.
 중간에 취소하고, 다시 홍콩폰으로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귀찮아서 그냥 루미아 520으로 바꾸어 주문했다.
3.
 자급제폰도 처음이고, 해외 주문도 처음이었지만, 그냥 시키는대로 하니 별 문제는 없더라. 중간에 주문 바꾸느라 든 시간을 제외하고 4일 정도만에 온 것 같다. 내가 관세 관련 서류 같은 것을 늦게 보내줘 좀 늦게 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4.
 폰이 도착했는데, SiM 카드가 마이크로 SiM이더라. 갤넥이는 일반 크기의 SiM을 써서, 어찌할까 고민하다 일단 wifi를 물려서 쓰기로 했다. 만약 내일 대리점이 연다면, USiM 카드를 살 수 있으니 잘라보기로 결정했다.
 대충 어플리케이션 상점을 둘러보니, 정말 수량이 적기는 하더라. 딱히 스마트폰으로 작업을 할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튜브있고 페이스북 되니 뭐가 큰 문제겠냐 싶다. 아직은. 원노트도 쓸만하고, 대중교통앱, 날씨앱 정도면 내게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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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choi-blog · 11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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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z
 이 영화가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왜 원작 책의 정발명인 "세계대전 Z"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분위기나 기본적인 설정, 몇가지 이야기를 뽑아 블록버스터 영화에 걸맞게 만들어, 소설과는 그 느낌이 아주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마 원작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갔다면 실망했겠지.
 그와 별개로, 영화가 나빳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썩 재미있는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좀비의 느낌도 내가 아는, 다른 영화들의 느릿느릿한 좀비들과 달라 흥미로웠다. 무서운 장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걸 싫어하는 편인데(그렇다고 전적으로 이런 문제 때문에 영화를 안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초반에 많이 나와서 (게다가 이런 쪽으로는 별 생각도 없었고) 소리 지를뻔 했다.
 출연진에 대한 느낌은... 사실 브래드 피트 형이 참 멋있어서 다른 사람은 어떤 느낌이었는지, 연기는 어색했는지, 아니었는지, 그렇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브래드 피트는 참 멋진 사람이구나. 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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