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nicepar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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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이새키실격
나는 19살에 인간실격을 처음 읽은 뒤로 인간실격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향한 광범위한 편견이 생겼다. 왜냐하면 나는 1) 허무/비관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 2) 픽션에서 여성상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를 좋음 척도에 크게 반영하는 사람이어서다. 그래서 22살에 다시 읽은 인간실격은 나의 편협하고 어렸던 편견을 해소하기는 개뿔 이제 나의 편견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인간상으로 귀결된다: 왕따 경험을 보유한 20대 우파 남성(당신이 남성기/남성 정체성의 소유자인지에 대한 진위여부는 고려하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 요조라는 젊은 남성 캐릭터가 실질적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비해 그 매력이 너무나 특정한 인물 군집의 것이다―인간사회라는 곳에 너무나 큰 부담을 느끼며, 순수한 모습인 채 사회에 내던져지지만 그것마저 이기적인 인간들의 술수에 더럽혀지고, 끝내 인간 실격자로서 정체화하고야 마는―이 소설 나올 때쯤이나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지금은 그냥 우울계 커뮤남이다. 와중에 "저"는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미남이라는 컨셉이라 온 세상 여자들이 알아서 제게 꼬이고 그들과 섹스하지만 사실 제게 그것들은 의무적인 섹스였고 제가 실제로 사랑한 여자는 하나뿐이었다는 하렘 판타지까지 완벽하다. 커뮤남 이전에 다자이 오사무가 있었다.
"가면을 쓴 것 같은 나의 사회적 자아"나 "본심을 숨기기 위해 연기하는 익살"에서 주인공이 자기연민을 느끼는 장면이 많고 이 부분을 말돌림 없이 그대로 짚어내는 점은 분명 어느 시대까지는 날카롭게 독자의 심금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게 현재까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나 하는 생각이 됐다. 그러면 그건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해서 어떤 부분을 드러내는 걸까? 하는 생각도.
소설은 읽는 내내 으이구 이 답답이새키같은 말밖에 안 나온다. 요조에게는 거절하는 능력이 없다. 인간 종족과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극심한 공포를 느껴서 그렇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수락하고 수락하다 보니 어쩌다 사회운동가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정부情夫가, 아빠가 되기도 하고 모르핀 중독자나 정신병자가 되기도 하고 그래서 생사도 확언하기 힘든 나중이 되어서는 지나가는 회상으로 일명 하나님같은 남자라는 평을 얻게 된다. 확실히 하나님같기는 한데, 끔찍하게 보편적이어서 그렇다. 하나님이 사람들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그들(나는 하나님 성별을 모르지만 하나님이 한명이 아닐 것임은 좀 확신하고 있다)이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여튼 하나님이 지금 인간세계에 내려와있다면 레전드 폐급 소리는 좀 듣고 살 것이다. 눈치도 없고 줏대도 없어서.
그래서 요조는 하나님이거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는가? 하나님과 그 아들이 가장 많이 한 일은 말하기였을 것이다. 그가 일으킨 기적은 그가 설파하는 지혜를 믿음직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의 입에서 나왔던 말이 그를 위대하게 하지 물 좀 술로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좋아할지언정 받들어주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술을 물로 만드는 게 더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는 일이고 그래서 서울에 클럽을 운영하는 그리스도들이 100명쯤은 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여튼 돌아와서 요조라는 사람(이거나 캐릭터이거나 다자이 오사무의 페르소나)의 수기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한국 청년들을 매료시켰다. 1948년 소설이라는 점을 들면 더 인상적이다. 앞서도 말했듯 "익살을 연기하는 나"라는 자기객관화 겸 모에화는 나를 포함하여 내 또래라면 어느 순간 경험하게 되는 삶의 특이점처럼 작동한다. 그 회유하기 힘들다는 20세기 청년상에 자기 자아를 또렷하게 남겼다면 그는 물론 하나님이고 인간실격의 수기는 성경이 아닐까? 이쯤하면 대강 알겠지만 나의 MBTI에는 N이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이 쓴 인간실격 서평도 읽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인간 민낯에 대한 얘기가 있더라. 다른 사람들은 누가 개떡같이 굴고 다니면 그게 원초적인 인간이자 인간 본성으로 보이고 거기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나보다. 그리고 꼭 허구한날 술처먹고 섹스하러 다녀야 하는데 거기서도 참 퇴폐미 많이 느끼고 좋아하는구나 싶다. 아니 섹스도 같이 술처먹고 섹스해야 재밌지 지혼자 술처먹고 기어들어온 애랑 섹스할 맛이 나는지 나는 그게 더 의문이다. 고추도 정신머리는 차리고 있어야 선다.
하여튼 그래서 인간실격을 읽었다. 이제 사는 중에 다시 안 읽어도 별 불만 없을 것 같은 소설이다. 요조는 삶의 무지막지하게 큰 부분을 방어기제로서 살아갔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재즈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수기를 쓸 때만큼은 완전히 재즈였다고 평할 수 있겠다. 재즈 실격이었다가 마지막쯤 기사회생하여 쇄신하셨다. 그래서 5재즈 중 2재즈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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