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rocktheworlddude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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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서른의 삶
카페에서 에어팟끼고 아메리카노에 티라미수 먹으면서 손목에 찬 애플워치가 걸리적거려 귀찮아하며 아이패드에대만여행계획 끄적거리고 있는 내가 아이패드 화면에 반사되어 보이는데 넘 멋져보였어. 집에는 고양이까지 기다리고 있고 매일 저녁에 전화할 남자친구도 있으니 얼마나 멋진 인생이야. 역시 나는 물질주의였나봐. 자본주의 만만세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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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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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
일이 뜻 대로 안되는 것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것은 뜻이 없다는 거다. 이렇게 꿈과 계획이 없어본 적이 있었는가 싶은 정도로 무기력하다. 나는 항상 바빴고, 항상 뭔가를 해야 했고, 항상 뭔가를 계획하고 궁리했다. 지금은 다 무용지물인 느낌. 더이상의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거지로라도 계획을 세워본다.
1. 영어. 그놈의 영어. 이제는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파르타 식으로 수준을 쭉 올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 운동. 몸매관리나 체력보다는 정신건강을 위해서 하는 거다. 그나마 꾸준히 하는 루틴이 있어야 자괴감이 조금이라도 덜 들더라.
3. 여행. 물론 여행을 가면 안되는 시국이긴 하지만 국내로라도 가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다.
4. 돈. 미니멀리즘 한다고 돈을 쓸 일이 없으니 돈 벌 의욕도 없다. 여행도 못가니 돈을 벌 의지가 없다. 그렇다고 돈이 없길 바라는 건 아니다. 돈이 있다면 있는대로 기쁘게 쓰겠지. 지금 하는 블로깅이 어서 승인이 나서 수입이 생기길 바라는 중이다. 그 전에는 지원금으로 존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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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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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이별
사람이 이렇게까지 더러울 수 있는가를 겪었다. 어째서인지 코로나 사태와 결을 같이하는 그와 나의 연애 생활에 싸우고 헤어지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다 이지경까지 와버렸다.
2년간의 연애 기간 중 절반은 사랑의 기쁨보다는 내 뜻대로 안된다는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문제가 많았다. 헤어지고 만나고를 두어번 하다가 같이 동거하는 입장에서 이별할 각만 재보기 일쑤였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로 해외에 있던 차에 몸이 서로 멀어지게 되자 다시 싸움이 격해져 이별로 치달았다. 회복을 위한 싸움이 아닌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은 상처는 그 무엇도 씻어낼 수 없었고, 결국 이제는 진짜 헤어지는거라는 생각이 들자 미친듯이 외로웠다. 어차피 다시 이어지지 못 할 사람 아름다운 추억으로 묻어두려고도 했고, 새벽까지  시발새끼 시발새끼 하면서 슬픔보다는 분노에 찬 눈물을 흘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의 사진을 비롯한 흔적들을 모두 지웠고, 나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 문득문득 괜한 서러움에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으나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쿨한 관계니 굳이 연락처를 차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나에게서 빌린 돈을 받을 길은 열어두어야 했다. 그 때문인지 연인 사이가 아님에도 계속 연락은 주고 받았고, 그 와중에도 그는 내게 섹스를 요구하고 나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뻔뻔함에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냈다. 물론 다음날이면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너가 그리워서 그랬다는 그의 말에 친구로라도 그를 남겨두고 싶어 용서하곤 했다. 
그러다 사무치는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날 하필 그는 연락을 했고, 우리는 다시 만나볼까 하는 대화 끝에 섹스로 막을 내렸다. 다음날 나는 애인을 다시 되찾았다는 설렘에 일상적인 메세지를 보냈지만 결국 대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구질구질해 보이기 싫어서 전화만큼은 먼저 안하려 해도 차마 참을 수가 없어 연락을 먼저 했다. 일주일 째 통화다운 통화를 해보지 못했다. 내가 전화를 걸면 부재중으로 넘어가고 어쩌다 받아도 자기는 지금 자야하니 내일 다시 연락하자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직장문제와 비자 문제가 심각해져 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기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에게 더 보채지도 않았다. 그러다 대뜸 연락이 와서는 섹스를 해도 되겠냐는거다. 다시 만남을 이어가자고 약속하고 섹스를 한 후 대화다운 대화도 없던 그가 다시 연락해온 이유는 나랑 자고 싶어서란다. 하도 어이가 없었으나 분명 술취해서 실수하는거겠지라는 마음으로 내가 지금 며칠째 연락도 없는 있으나 마나 한 남자친구가 대뜸 자자고 하는데 거기에 응해줘야 할 이유를 하나라도 대보라 했다. 아니라고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하냐고 쏘아붙이고는 아님 말아라 딴 여자 찾으러 간다 했다. 나는 기꺼이 가라 했다. 안그래도 정 떼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도와주는구나 싶었다. 
나도 나름 아름다운 이별하고 과거의 연인은 추억으로 남겨두려고 했는데 이렇게 추악한 기억을 선물 받았다는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 바라는건 그저 그가 엿먹는것일 뿐.
평생 니는 그렇게 살아라 시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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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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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ATION
랑카위를 다녀와서 그런가 두뇌가 리프레쉬 된 기분이다.
랑카위 가기 전부터 컨텍하던 아뜰리에에서 내일 면접을 보자 한다. 포트폴리오 가지고. 보통 인턴 뽑을때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하지 않는데, 내가 5학년이다 보니 부담스럽게 느끼나 보다. 보통 5학년이나 돼서는 취직을 하지 인턴을 하지 않으니 얘가 무슨 심산인가 했을거다. 
준비된 포트폴리오는 있었는데, 막상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니 부끄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오늘 하루종일 수정했다. 평소에 작업을 할때 부담감이나 시간에 대한 압박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향한 자아분열을 느끼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그저 집중력의 문제만 약간 있었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해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영감이 떠오르고 결과물도 상당히 괜찮게 나왔다. 항상 작업을 할때 이런 기분이면 좋겠다. 아니면 작업의 대상이 포트폴리오다 보니 그런건가. 나를 표현하고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일이다 보니 산뜻한 기분으로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인턴이 됐으면 좋겠다. 낙담할까 과한 기대는 하고 싶지 않지만 기간이 너무 잘 맞는다. 최저 170받으면 정말 감사하겠지만 150만 받아도 하겠다고 할거다. 남들 취업준비할때 알바천국 들락날락하는 것도 싱숭생숭하고, 3개월 기간이 딱 맞다. 혹시 모르지. 인턴 하다가 다시 건축에 열정을 느낄지도. 혹은 3개월 후에도 프리랜서 일을 줄지 누가 아는가. 
후 2019년도는 시작이 정말 좋은데 이 기운 끝까지 갔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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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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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걸음
겨울 휴가로 랑카위에 온지 4일째, 언제 정했는지 모르게 우제이와 내년은 좀 더 길게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서로의 상황을 고려해 가면서 정한것이 랑카위에 몇달 있다 내년 중으로 호주로 같이 떠나는 것으로 결정났다. 몇달동안 세운 계획이었다. 스스로 확신은 없었지만. 랑카위에서 지내는 요 며칠동안 나도 모르는 새에 이곳에서의 내년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음에 오면 뭐 해야지, 뭐 해야지...친구들에게 내 고민과 계획을 말하고 염려와 격려와 응원 그리고 축하를 받았다. 몇 주 전 아빠와 술 한잔 하면서 취업 전 2년 정도 좀 더 모험을 하고 싶다 했다. 3년까지도 괜찮다는 응원을 들었다.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던 밧줄이 풀리면서 온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 누구에게 듣는것보다 기쁜 격려, 허락에 가까운 격려였다. 근데 그 격려에는 우제이가 빠져있었나보다. 방금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내년 계획을 다시 물어봤다. 랑카위에 있다가 갈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니 한숨이 돌아왔다. 아직 몇달이라고는 얘기 안했는데. 분명 한 번의 한숨을 더 들어야 할 것이다. 통화를 끊고 나니 몸 속의 피가 다 돌기도 전에 다시 한번 밧줄이 옭아매는 기분이다. 어제의 흥분은 사그라들고 또 다시 근심의 시작이다. 
20181230 랑카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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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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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세우는 2019년 계획
이번 겨울 랑카위에 2주정도 다녀올거다. 사랑하는 우제이 보러. 3월까지는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겨울을 보낼 생각이다. 돈도 벌고 커피도 배우고. 2월 부모님 25주년 결혼기념일에는 엄마의 소원이라고 했던 63빌딩에서 저녁을 사드릴 거다. 언제 또 해드릴지 모르는 결혼기념일 선물이니까. 3월 돈이 어느정도 모이면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딸거다.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한 대비. 워홀을 그때까지 갈 계획이라면 비자 신청도 해야겠지. 그리고 보국 클래식 눈꽃빙수기, 가오몬 타블렛, 아이폰을 사들고 (카메라 소리 때문에 아이폰은 말레이시아에서 사는게 낫겠다) 랑카위를 갈거다. 우제이 이름으로 연 게스트하우스에 작게 카페를 열거다. 거기서 빙수를 팔아야지. 1년 내내 더우니깐 한국식 눈꽃빙수가 잘 팔릴거다. 비건을 위해 두유로 만든 메뉴도 추가해야지. 가게 인테리어 컨셉은 약간 무인양품 스타일. 서양인이 많이 오니 뭔가 동양의 미를 보여줄 수 있다. 진짜 동양인이 보여줘야지 그런건. 식물도 많이 놓고 나무로 가구를 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낼거다. 인터넷도 빵빵하게 해야지. 고양이와 물고기 베타도 키울거다. 운동을 열심히해 체력을 기르고 매일 아침 초록색을 보면서 눈을 좋아지게 할 거다. 게하와 카페가 잘되면 면허를 따 작은 차를 살 거다. 몇년 째 갖고 싶었던 소니 카메라를 사 섬 곳곳을 찍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내 글을 곁들어 올릴거다. 가게가 한가할때는 타블렛으로 일러스트 그림을 그릴거다. 흥미를 못붙여도 괜찮다. 2만원도 안하는 가오몬 타블렛이니까 시도만 해도 본전 뽑는거다. 영상도 완전 고품질로 뽑아서 유튜브에 간간히 올려봐야지. 가게만 잘되도 풍족한 일상생활에 여행도 간간히 갈 수 있고 돈도 많이 모을 수 있을거다. 그동안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못 샀던 것도 사야지. 얼마 하지도 않는거 돈 없어서 못 사면 진짜 서럽다. 1년동안은 가게일로 돈을 대고, 나머지 시간에 창작활동에 불을 지필거다. 글, 그림, 사진. 그동안 두려워서 못했던 것들. 시간을 핑계삼아 미뤄두었던 것들. 응 너 하고 싶었던거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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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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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ㅕㄱ시 시험기간에는 공부빼고 다 재밌어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넷���릭스보는게 사는 재미인 것이 문제라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일상이 얼마나 재미없으면 잠자는 것보다, 넷플릭스보다 재미없을까. 물론 넷플릭스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인생이 넷플릭스보다 재미가 없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어린시절 소풍날 아침처럼 설레어서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것처럼 그런 일상을 살고 싶다. 
졸업 후 취업, 워킹홀리데이, 대학원 문제때문에 불안해 교수님 찾아가고 친구와 얘기하고 인터넷 뒤적거리던게 다 확신이 없어서이다. 불안함때문에 전공을 살릴 일을 찾거나 공부를 할 계획을 한다면 나로써는 당당하지 못한 일이 될 것같다. 불안함이 그 모두를 정당화 시켜줄 수는 없다. 적어도 나한테는. 다른 사람들이야 불안함에 입시를 치르고, 취업 준비를 해도 나는 아니다. 나 스스로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입시를 시작한게 불안함과 그 나이에 입시말고는 할 게 없다는 판단이 있었지만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작은 갈망이 있어서 였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시점에 취업한다면 그닥 모나지 않은 인생계힉이지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5년이나 공부해놓고 딴짓할 궁리만 하는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내가 건축을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나 내가 건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가 않다. 5년의 시간을 헛되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나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아직은 더 방황해도 되지 않을까. 더 모험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 아니면 못 할 방황이 아닐까. 그렇기에 졸업하고 뭐 할지에 대한 고민이 불안감에서 설레임으로 바뀌고 있다.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를 광탈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마음 먹은 중 아무리 궁리해도 그다지 설레지가 않았다. 돈벌러 갈 생각이긴 하지만 거기까지 가서 딸기 따고, 호텔 청소하고 또 그렇게 모은 돈을 여행하면서 팍팍 쓸 수 있을까. 분명 목돈 만들 생각으로 여행은 커녕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살 것이다. 그 돈으로 대학원을 갈 생각을 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은 공부에 1,2년 번 돈을 선뜻 내놓을 수 있을까. 내 청춘 1년과 맞바꾼 돈을? 대학원을 위해 워홀을 간다는 것 역시 현명한 논리는 아닌 것 같다. 
전공을 못 살려도 괜찮다. 아무래도 괜찮다. 여태껏 알바 하고 여행하면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보면 인생에 큰 고비가 없다면 돈 없어서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뭘 해도 먹고는 살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는 거다. 어떻게 사는게 진짜 인생인가 싶은 요즘 일상이 재밌는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연봉 좋은 직장에 다닌다 한 들 그 일이 행복하지 않으면 하루의 반을 행복하지 않게 보내는 것이고 결국 인생의 반이 행복하지 않다면 우울할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의 성취감이나 사회적 지위가 주는 행복감도 있겠지만 나는 내 일상이 더 소중하다. 
더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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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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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 일기로 끄적거리기에는 텀블러가 짱이다.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까 해서 윅스도 끄적여보고 그거로는 성에 안차 자바스크립트까지 건드리려니 엄두가 안나 다시 텀블러로 돌아왔다. 남들이 내 글 좀 알아줬으면 해서 네이버블로그도 끄적거렸으나 레이아웃은 텀블러를 못따라온다. 
말레이시아에서 썼던 글들을 쭉 보니 새삼 좋아서 다시 일기를 쓴다. 머리도 복잡하고 생각도 많아지고 해서.
졸업이 코앞이다. 엄한짓만 안하면 졸업은 할 듯하다. 문제는 그 다음. 지금 체력이나 정신적으로는 어디 취업준비를 하거나 공부를 이어나가기 막막한 상태다. 아직 둘러둘러 해보고 싶은것도 많은데,,, 물론 취업한다고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은 안한지 오래다. 돈은 필요하지만서도,, 그래도,, 아직 내게 취업은 아니다. 대학원도 가고 싶고, 워홀도 가고 싶고, 남자친구도 보러가고 싶고, 돈도 벌고 싶고, 세계일주도 가고 싶고,,, 문제는 이것들을 언제하느냐고,, 조율하기가 어렵다. 내 머릿속에서만 어려운것일수도... 글을 시작해보니 별것도 아닌걸로 고민했나 싶기도 하다. 졸업하면 알바 조금해서 모아둔 돈으로 랑카위가서 몇달 지내다가, 우제이 준비되면 같이 호주가는거다. 1년이 됐든 2년이 됐는 놀고 여행하고 일하고 돈벌다가 때가 되면 그때 대학원을 가는거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취업이 안될소냐. 설령 어려운 일이 생겨도 그때가서 생각하면 된다. 그간 아무것도 안하고 논건 아니니까. 외국에서 비비다가 정 안되면 그때 한국 오면 되지. 어디가서 굶어죽기야 하겠는가. 
고민 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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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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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가 그렇게 안되나
캄보디아에서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삐걱 댔다. 돈문제로 시작한 작은 다툼이 불거져 한국에 돌아와 목욕탕에서는 돈때문에 연애도 못하나 하는 서러움에 눈물 콧물 빼가면서 때를 밀었다. 이번 다툼은 후폭풍이 꽤나 오래 갔다. 엄마와 대화를 해도 끝이 정해진것만 같아 아예 대화를 피했다. 그러다 차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려는 찰나 우제이의 재촉에 다시한번 동거 문제로 관계가 우그러졌다. 나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고 싶은데 어디까지나 나는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다. 종속이 나쁘지만은 않다.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기에 종속감이 결핍된 나는 그것에 항상 목말라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걸 종속감이라는것 때문에 실현하지 못한다. 항상 반대에 부딪혀도 결국은 내가 원하는대로 됐지만 이번만큼은 완강하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동거를 못한다면 우제이를 내가 볼 수 있는 건 언제가 될 지 모른다. 그 소식을 전할 내 마음도 편치 못할 거고 지금 힘든 상황에 있는 우제이가 안쓰럽다. 동거를 할 수 있다 해도 일이 술술 풀리는건 아니다. 졸전을 앞둔 내가 우제이도 신경써야 하고 학교생활도 신경쓸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저 눈을 감았다 떳을때 이 순간이 지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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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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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많은 밤
어제 이태원 친구집에서 밤을 지새고 아침에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수업은 어차피 못갈듯하여 하루종일 자다가 지금은 침대에 누워 요양중이다. 설계 과제를 하려하니 참 하기가 싫어 컴퓨터만 켰다 껏다를 반복했다. 며칠째 이것만 반복중이다. 교수도 이제좀 해오지 하는 말도 나오고 다른 친구들이랑 비교해서도 확실히 내가 뒤쳐진다. 그렇다고 프로그램 다루는 수준이 엄청 차이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이렇게 허덕이는가에 대해 고민을 햇다. 텀블러에 오랜만에 들어와 말레이시아에서 써온 글들을 읽어 보았다. 참 생활 리듬이 단순했고, 고민도 단순했다 별 걱정이 없이 한학기 잘 보내다 온 것 같다. 근데 나는 왜 여기서 허덕이는가. 너무 많이 쉬어 감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교수를 잘못 선택한 것인지. 둘 다인것 같다. 하나만 이었으면 그나마 따라갈 만 했을텐데. 말레이시아 다녀오고 생각도 변했다. 목표점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점점 나에 대한 확신과 불신이 증대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더 구체화 되고 있다. 이전에는 나도 의식하지 못한채 나는 이정도 직장에서는 일해야지, 이정도 재산은 갖고 있어야지 하는 집착이있었다. 이성적으로는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가치관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지금은 어떠한 하루를 살아야 행복하겠다 하는 고민이 강하다. 내가 비록 번드르르한 건축가이고 번드르르한 집에서 살 지언정 밥도 못먹고 잠도 못자고 닭도 못키우는 그런 삶이 행복할까. 아니면 작은 게스트하우스나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도 마당도 가꾸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깨워주고 아침에 맛있는 열대과일을 먹으면서 음악도 듣고 운동도 하고 소소함에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은가. 물론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어느것을 포기해야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까. 스스로는 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건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해온 고생과 이루어낸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7년을 하나만 바라보고 공부했는데, 마지막 결과가 눈앞에 있는 순간 나는 다른 길로 들어서기를 갈망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건 아닌지 도피하고 싶은건 아닌지 신중하게 고민해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있었던 신념들이 바쁜 일상으로 한구석에 묻혀지고 나는 눈가림막을 씌운 경주마 마냥 한곳만 보고 달린다. 신념이 사라져가니 결국에는 목적의식 없이 달리고 있다. 신념과 목적이 사라지니 점점 지쳐간다. 내가 왜 이걸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느 종착지에서 멈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밤새 친구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점점 신념이 사라져 간다고. 인생에 대한 신념은 물론이거니와 건축에 대한 신념도 사라졌다. 바쁜 일상에 나를 스스로 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잘못도 있지만 학교와 사회의 시스템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도저히 내가 신념을 찾도록, 사색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감을 그렇게 돌리는데, 당연히 고민해야 할 것들을 뒤로 밀쳐내 버리는데. 오히려 군복무 시절 생각을 많이하고 책을 많이 읽었던 남학생들이 앞으로 치고 나간다. 더이상 나는 이런 건축을 지어야지 하는 생각이 없다. 원초적인 아이디어긴 하지만 처음 건축을 선택한 이유는 내 집을 내 손으로 짓고 싶어서였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참 많은것을 이뤘구나, 목표에 점점더 다가가고 있구나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내 집은 무슨.. 사무소에 취직이나 잘되면 다행이지 하는 생각 뿐이다. 과거의 어린 나에게 부끄럽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거 같아 더욱 부끄럽다. 과거의 목표가 한 장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억지로라도 일상을 단순화시켜 한 템포 쉬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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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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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구독하는데 페미니즘 관련 글을 주로 포스팅한다. 미러링도 자주 하고 꽤 논리적으로 여성혐오를 지적하기에 나도 무의식적으로 성차별 했다는 것을 양파의 글을 읽고 많이 자각한다.
최근에 메갈, 미친 페미를 물리치는 법에 대한 글을 썼는데 물론 성차별 심한 남성을 퇴치하는 법을 비꼬아 쓴 글이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을정도로 그와 닮아 놀랐다. 고향이 경상도 대구라는것부터 시작해 자신이 희망하는 여성상, 지나가는 여성들의 대상화, 외모 평가, 군대 시절 성매매를 할 뻔했다는 경험담과 과반수의 남자들이 그러하니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 내가 그때 뭘 모르긴 몰랐구나. 그것도 모르고 커다란 사진기와 프린터를 들고 고아원을 돌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에 푹 빠졌었다니. 그마저도 고아원 아이들이 이미 자시의 사진을 갖고 있어 그가 생각했던 그림이 안나와 실망했던 모습은 애써 무시했다. 날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수만번 무시했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충격적이다. 박근혜의 정책이 정말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지역감정 없이 그의 정책만 보고 판단했으면 좋겠다.aka. 대구사람. 나는 가슴큰 사람이 좋아라고 했다 한참 뒤 나와 로맨틱한 분위기일때 내가 스스로 가슴 작다고 자폭하며 가슴 큰 사람이 좋다며? 하니 아닌데 나 가슴 안보는데 라고 말을 바꿨던거. 와 앞에 가는 여자 엉덩이 장난 아니다. 혹은 여고생 둘을 두고 누가 더 낫냐. 혹시 이런 내 말이 불편해? 하.. 물어볼건 또 뭐람. 그때 난 또 쿨한척 하려고 나도 보는데 뭐 신경쓰지마 했다. 아휴 멍청이. 군인 시절 친구랑 성매수 경험. 친구는 했지만 나는 도망쳤다라고 했지만 한국 남자들은 모두 다 하는거 아냐. 나는 정상이다라는 뉘앙스의 발언. 
이상한 남자임을 그는 온 몸으로 샤우팅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알아채기까지 3년이 걸렸네. 인도에서 인턴하다가 왔다고 태국에서 만난 몇몇 고등학생이 김종욱이라고 불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김종욱을 찾아다녔나 보다. 어휴 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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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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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너무 일찍왔다
출국수속까지 다 받고 보딩 게이트에 있는데 두시간이나 남아 노트북을 켰다. 밀린 일기도 쓸겸. 무이네에서 쓰고 계속 안썼다. 생각은 참 많이 했는데.
무이네는 별로였다. 리조트에서 돈쓰면서 놀지 않는 이상 그닥. 남자에 목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결국 1박만 하고 밤버스타고 호이안으로 넘어왔다. 17시간 버스는 넘나 힘든거. 계속 잤는데도 피곤이 가시지가 않았다. 아침 7시에 호이안에 도착해서 점찍어둔 호스텔로 오토바이타고 넘어가는데 나름 흥정했다 했지만 4달러는 너무 비싸게 준거 같다. 하루 숙박비가 5달러인데. 오는길에 비도 맞고 찜찜해서 씻으려다가 아직 다른 게스트들이 자고 있길래 방해하고 싶지 않고, 나도 좀 쉴겸 짐도 안풀고 침대에 쓰러져서 계속 잤다. 한시간정도 잤나. 일어나서 씻고 나오니 숙박객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위스에서 온 독일인 수지, 뉴질랜드에서 온 칠레인 카밀라. 카밀라는 오펀블랙의 코지마를 닮았다. 커다란 안경. 엄청 예쁜 얼굴은 아닌데 차분하고 안정적이고 타인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뉘앙스와 행동. 여기서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이고, 책도 읽고. 아, 여기에 책을 안가져온게 너무 아쉬웠다. 책읽기 딱 좋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짐 때믄에, 스마트폰 때문에 책은 챙기지 않았는데 노트북대신 책을 챙길걸. 노트북은 일기쓸때만 썼다. 플로리스트라는 수지는 말이 엄청 많았다. 그랩타고 올드타운 갈건데 같이가지 않겠냐고, 오늘 비도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카페가서 쉬자 내가 어제 다녀온 사진갤러리도 가자 거기 엄청 좋아! 하고 쉼없이 떠들면서 나랑 카밀라를 데리고 시장, 개럴리, 카페를 데리고 갔다. 시장에서 먹은 화이트 로즈랑 월남쌈 그리고 스프링롤은 정말 최고였다. 베트남에서 제일 좋은게 음식이다. 화이트 로즈에는 뭘 뿌렸는지 소스가 환상적이었다. 밥먹으면서 수지가 옆에 앉은 이스라엘 아줌마랑 얘기 나누는걸 들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6개월동안 여행할 예정이라 한다. 수지가 하 그렇게나 오래요? 하니 아줌머니가 하는 말이 나 은퇴해서 시간 많아. 돈도 엄청 많고 하하. 졸라 멋있었다. 
카페에서 수지랑 카밀라랑 헤어지고 올드타운을 걸었다. 비가 와도 좋았다. 페낭이랑 비슷한데 이곳저곳에 등을 잔뜩 걸어놓아 분위기가 한껏 있었다. 티켓으로 명소 다섯군데를 갈 수 있는것도 좋았다. 관광상품을 잘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한국인 관광객도 엄청 많았다. 호이안에서 묵는 삼일 내내 삼시 세끼를 베트남 정식과 과일주스를 먹고 카페에 가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폈다. 그냥 창밖에 내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가끔 그림도 그리고. 오후에 좀 힘이 들면 숙소에 돌아가 샤워하고 잠시 쉬다가 다시 그랩을 타고 나와 저녁을 먹고 강을 보면서 맥주나 보드카를 마셨다. 마지막날은 드디어 해가 나왔다. 자전거 타고 안방비치에 갔다. 며칠 비가 와서인지 바다는 흙탕물이었다. 그냥 서해바다 보는 기분. 대신 해가 좋아서 테라스에 거의 누워있다시피 앉아 풍경을 바라봤다. 
어제는 호이안에서의 마지막날이었고, 보름이라 랜턴축제를 했다. 축제라고 엄청 특별한건 아니고 저녁 두시간 동안 랜턴을 제외한 가로등불을 끄고 강에 촛불을 띄우고 등을 단 쪽배가 돌아다니는 정도이다. 그래도 로맨틱하고 베트남 여행의 멋진 마무리 였다. 해피아워여서 뜻하지 않게 보드카를 한잔 더 받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한잔 반만 마셨다. 히. 
호이안의 안좋은 점은 한국인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순간 나 역시 인종차별을 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호이안에 한국인이 하도 많아서 상인들이 곧잘 한국어를 하고는 했다. 호이안 올드타운을 씨클로타고 일렬로 돌아보는 사람도 한국인 단체관광객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이 시끄럽지는 않았다. 자전거탈때 가끔 씨클로가 있으면 불안하긴 했지만 그들은 유모차에 탄 아기마냥 조용히 지나갔다. 묵는 숙소도 달라 딱히 부딪힐일이 없다. 내가 정말  피해야 하는것은 술냄새와 땀냄새를 풍기는 시끄러운 젊은 서양인들이다. 어글리 코리안보다 더 싫었다. 현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그저 좋은 날씨와 싼 술값에 홀려 온 이들이다. 물론 나도 그 두가지 모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시끄럽게해도 되는건 아니지. 방비엥에 가면 많은 한국인들이 무이네의 서양인들처럼 지낼 것이다. 인종과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 인종차별을 하진 않는지 앞으로 좀 더 주의해야겠다. 
20171103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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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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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호기롭게 노트북 켰는데
와이파이 비번을 모른다. 뭔가 분위기 있게 놀고 싶은데 서양애들이랑 바에서 놀기는 싫고 술은 마셔야겠고.
오늘 아침 8시 버스로 무이네에 왔다. 오늘 아침 역시 록이 차려주는 아침 맛있게 먹고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 기분이 좋은데 록이 먼 길 떠나니까 챙겨주는거라면서 물, 과일, 과자를 봉지에 바리바리 싸줬다. 록이 여기서 만난사람중 제일좋아. 하 록이랑 결혼하고 싶다. 어제도 숙소 돌아오니깐 길고 힘든 하루였지? 하고 물어봐주는데 베실베실 웃음이 나왔다. 슬리핑 버스를 타고 5시간을 오는데 도대체가 왜 내가 탄 버스에는 동양인만 있는거지. 호치민에서 무이네 가는 한국인은 버스에 다 탄거 같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렸을 때 다른 슬리핑버스도 도착했는데 거기는 서양인이 전부였다. 여기 시스템이 참 궁금하다.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이것도 인종차별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인건지. 아님 서양인들에게 유명한 버스회사가 따로 있는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버스가 숙소 바로 앞에 내려줘서 바로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체크인하면서 원래는 내일 이른 아침부터 하는 투어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오늘 한시투어도 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래 예약했다. 짐 풀고 간단하게 반미로 점심먹고 투어에 갔다. 일곱명씩 두 지프차에 타서 갔다. 처음에 간 곳은 요정의 샘물? 일년내내 물이 안마른다고 요정의 샘물인데 인터넷 서치로 알아낸거다. 가이드는 영어를 못해서 사십분뒤에 여기로 와 한마디만 해주고 낡아서 열기 힘든 지프차 문 열어주는게 전부였다. 가이드보다는 드라이버에 가깝지. 한참을 걸어도 끝이 안보이길래 이쯤 돌아가야 하나 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먼저 가고 있는 커플에게 알려줘야 할거 같아 주춤대는 동안 뒤에서 따라오던 스페인 남자가 나보고 가란다. 어어어.. 내가 가? 흠. 누군가는 가야하지 않을까? 이씨 뭐야 우리 지프차도 아닌데 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가니 뒤에서 다시 불러세운다. 좀만 더 가면 폭포가 있대 가자. 늦는건 어쩔 수 없지모. 하고 앞으로 갔다. 그시키는 샌들까지 신어서 성큼성큼 잘만 갔다. 샌들신었으면 애당초 지가 가지. 한참을 더 가 나온 폭포는 아주 작았다. 거기서 사진 한방 찍고 다시 한참을 걸어 돌아왔다. 여길 왜 걷는진 모르겠는데 발만 잠길정도의 얕은 물에 부드러운 모래 감촉이 좋아서 발 마사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같은 지프차에 나 말고도 다른 커플이 폭포를 보러 갔기에 코리안 타임은 신경쓰지 않고 늦게 돌아갔다. 돌아가니 드라이버는 폰을 보고 있고 앉아서 마저 일행 기다리자고 눈짓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그때 옆에서 같은 지프차 남자가 소리를 지르길래 깜짝 놀라 쳐다보니 자기 친구가 기다리는동안 그새 맥주를 사온 모양이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허이구 망나니들. 다음은 화이트샌드듄이었는데 술도 들어갔겠다. 말 통하는 망나니 친구들도 있겠다. 그 작은 집차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거기서 나 빼고 모두 영어가 모국어인 모야이었다. 망나니 네명을 빼고서는 나 그리고 한국 스코틀랜드 커플이었는데 한국인이라는 그 여자는 교포 느낌이 있어 한국인이라 했을때도 아 그래? 그러고 한국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화를 하다가 내가 영어가 잠시 막혔을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내가 끝까지 말을 마치도록 기다려줬따. 그래서 결론은 나는 그녀가 한국어를 하는지 안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세계여행을 하는중이라는데 그 방법도 괜찮은거 같다. 아직도 필요한 영어 선생은 많을테고 돈벌면서 여행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화이트 샌드듄에서는 에이티비 타는데 이십만동 부르길래 허이구 비싸 하고 걸어서 사막 다닐 생각으로 담배 피고 있었다. 그사이에 그 커플이 지프차 같이 탈 사람을 모으길래 다가가니 다섯이서 육십만동 달란다. 너무 비싸다고 망나니 네명은 걸어간다고 가버리고 셋만 남았다.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네 하고 걸어가려는 찰나 직원이 에이티비 한명당 십만동씩주면 태워줄게 대신 호수는 아니고 언덕까지만. 오키. 하고 나는 혼자. 커플은 같이 드라이버 뒤에 탔다. 근데 제길 뭐 그렇게 운전을 빨리 하는지 입에서 비명이 다 나왔다. 모래언덕 내려가는데 롤러코스터 탈 때 그 영혼이 늦게 내려오는 그 기분이 났다. 언덕에서는 십분동안 있었는데 모레 바람이 다리를 마구 때려서 고통스러웠다. 괜찮은척 사진도 찍고 드라이버만 마냥 기다렸다. 드라이버가 데리러 와서는 나를 태우고 가다가 내가 제발 천천히 운전해달라하니 에이티비 뒤쪽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내 손을 끌어 자기 허리를 감아 잡도록 했다. 그러고 멀찍이 떨어진곳에 도착해서는 내가 운전하게 해줬다. 자연스럽게 내 허리를 잡으면서. 나보고 몇 살이냐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허이구. 결국엔 호수까지 돌아서 갔다. 내 허리를 만졌으면 그정도는 해줘야지 흠.
다음은 레드 샌드듄. 똑같은 모래 사막인데 모래 색이 더 붉고 완만했다. 일몰이랑 시간도 겹쳐서 뷰가 좋은 곳이었다. 거기서 엄마랑 영상통화하면서 잔뜩 자랑하고 약속한 시간이 다 돼 내려왔다. 약속장소에 드라이버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질 않아 화장실도 가고 음료수도 사먹으면서 한참을 기다려서 일곱명 전부 이거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드라이버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늦었다면서. 우리는 픽업장소가 여기 아니냐. 뭐 이런식. 여행지라면 간혹 그런일도 있어 별 대수롭지 않게 있는데 드라이버가 제대로 화가 났는지 문을 쾅쾅 닫았다. 아마 퇴근시간이 늦어져서겠지. 그 망나니들은 그와중에 우 화났다 화났어 이러고 있고. 술에 취해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대화를 나눴다. 나도 귀청이 떨어질뻔해서 몇 번을 뒤돌아봤다. 나는 그나마 조수석에 앉아서 괜찮았는데 그들 사이에 낀 커플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한참을 운전하다가 드라이버가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쳤다. 그럴만도 하지. 그즘했으면 조용할법도 한데 계속 떠드니 드라이버는 겟아웃을 소리치며 진심으로 차를 길가에 멈춰 세워 뒷자리 문까지 열었다. 그제서야 망나니들은 쏘리 하고 입을 닫았다. 그제서야 조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너무 씻고 싶어서 샤워먼저 했다. 그리고 바닷가에 온 만큼 해산물을 먹고 싶었는데 흥정도 해야된다하고 나는 혼자라 양이 어떨지도 모르겠고 유명하다는 맛집은 죄다 지나쳤다. 골목을 좀 더 걷다 보니 해산물을 파는데 호객힝위도 많이 하지 않고 손님도 좀 있는 식당에서 메뉴를 한참을 들여다 봤다. 한참 뒤에 직원이 와 말을 걸며 뭐 먹고 싶냐하고 나는 새우 먹고 싶다고. 바비큐로 주는거야? 버터랑 갈릭도 해줄래? 내가 혼자 먹기 많거나 적기는 않겠지? 얼마야? 메뉴판이랑 너가 말한 가격이 다른데 뭐가 맞는거야? 싸게 해줄거지? 알았어 그러면 맥주도 시킬게. 그러고 조용히 기분좋게 새우를 먹었다. 양은 좀 부족한 듯 했지만 맥주까지 다 비우고 앉아서 담배도 피니 딱 적당하게 배가 불렀다. 숙소 돌아와서는 뭐 할까 하고 하릴없이 마당을 왔다갔다 하는데 직원 하이 이름이 하이래. 가 와서 말을 계속 걸었다. 현지인 같은데 느끼하고 흠 암튼. 바에는 왜 안가냐 그러고 왜 여기 하루만 있다 가냐 그러고 하여간 지금은 바에서 하이가 따준 맥주 마시면서 풀장 앞에 반쯤 누워 일기를 쓴다. 방에는 누가 있어서 계속 있기 그렇고. 그나저나 밤이 되니 여기도 춥다.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내일은 호이안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은데 아마 한시버스타고 가지 않을까 싶다. 새벽 한시에 도착한다해서 좀 걱정이긴 한데 숙소 잡아놓고 움직이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수영해야지.
20171030 무이네에서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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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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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터질거 같다
음식은 맛있는데 혼자 먹으니깐 배가 아플정도로 부르다. 
아침에 7시 알람 맞춰놨지만 늑장부리다 8시에 일어났다. 조식을 9시까지만 한다길래 겨우 일어났다. 후기에 조식에 대한 칭찬이 잔뜩인데 조식을 놓칠순 없지. 후다닥 세수하고 옷갈아입고 1층 내려갔더니 식당처럼 나보고 앉으라 하고 메뉴까지줬다. 뷔페식일 줄 알았는데 메뉴도 엄청 많아 고르는데 한참 걸렸다. 하도 많아서 모짜렐라라는 단어보고 그냥 그거 달라했다. 각종 열대과일로 시작해서 바게트와 버터, 쟈스민 티, 메인으로는 오므라이스에 간단한 샐러드, 베이크드 빈, 그리고 믹스베리 스무디. 뭐 하나 대충있는게 없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계속 제주도 게하가 생각났다. 스텝, 직원, 사장은 자기 목적이 각자 있었다. 투숙객은 그저 손님일 뿐. 투숙객이 요구한 무언가 그 이상은 해주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도 투숙객은 돈벌이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우리를 어이구 불쌍한 외국인 여행자네 이 험한 호치민에서 길잃지 않게 내가 돌봐줘야지. 하는 느낌었다. 어떻게 그러지. 제주도 게하 사장들은 관광객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었는데. 한국인들을 상대해서 그런가. 록은 사근사근한 베트남 영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설명해준다. 록 보다는 영어가 조금 부족한지 말보다는 미소가 더 많은 다른 직원은 내가 물을 사고 돈을 건넬때 공손하게 두손으로 주고 받았다. 아침을 준비할때는 다소곳한 앞치마도 둘러 보기 좋았다. 주방에서 아침을 요리해줬던 아주머니는 밥을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음식 어때? 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엄지척을 하며 입에 음식을 한가득 물고 아주 맛있어요! 고마워요! 했다. 진심으로 맛있었다. 아침을 맛있고 기분좋게 먹으니 하루가 다른 기분이다. 
방에서 가방 싸들고 나와 전쟁 박물관으로 갔다. 여전히 베트남 오토바이는 적응이 안돼서 건널목에서 주춤주춤하는데 오토바이 탄 아저씨가 기다려 아직이야. 조금 있다 건너야해 하면서 내 옆에서 오는 오토바이를 막아주면서 같이 건너줬다. 자 쉽지? 이렇게 건너면 되는거야 하고 어디서 왔냐 한다. 설마 삐끼?하면서 코리아라고 하니 노트를 주섬주섬 꺼내면서 몇장을 펼쳐 보여준다. 노트에는 한국어로 재밌게 호치민 여행 하고 가요~ 30대 처자 둘이. 뭐 이런식의 후기글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오토바이로 가이드 시켜주는 드라이버인 모양이었나부다. 흑. 땡큐만 하고 그의 시선을 피하고 다시 바삐 걸었다. 그는 내 뒤통수에 대고 어디가는데에?! 전쟁박물관??! 내가 태워줄게~하고 외쳤다. 어휴. 여기 삐끼들은 상냥하고 미소가 예뻐서 거절하기 힘들단 말이지. 지도를 보며 한참을 걷는데 서양인 관광객 둘이 바쁘게 걷는 나를 잡고 전쟁박물관이 어디냐 묻는다. 오토바이 드라이버에게 길을 물었던 모양인데 말이 안통했거나 호객행위를 했는지 나를 다급히 불러세웠다. 나도 거기 가요! 지도 보면 이쪽으로 가면된데요 같이가요. 하고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눴다. 아줌마 제니는 호주에서, 아저씨 앤드류는 뉴질랜드에서 왔다한다. 나는 숫기도 없고 원어민 보면 영어가 쏙 들어가는데 이때는 웬일인지 짧은시간이었는데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대화가 이어졌다. 처음엔 내가 여기 사람인줄 알았나 보다. 아냐 한국인이야. 근데 쿠알라룸푸르에서 왔어. 거기서 교환학생인데 중간방학이라 여행온거야. 어디로가? 나는 무이네로 갈거야. 다낭이랑 호치민 사이에 있는 곳이래. 호이안도 좋아.  다낭이랑 가까워. 건축물도 유명하고. 오 나는 건축을 공부하는데 잘됐다. 거길 꼭 가봐야겠어. 아 그래? 내 딸도 건축을 해! 대학원 졸업하고 일 구하는 중이야. 건축은 일 구하기 힘들지? 맞아. 아주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지. 잠깐만 저기 저 코코넛워터 사는 커플에게 얼마에 샀냐고 물어봐야겠다. 1달러에 샀다고? 나는 5달러에 샀는데. 뭐? 5달러? 하하하. 어이! 오토바이 태워다줄게! 아냐 우린 그렇게 게으르지 않아 걸어서 갈거야. 여기 사람들은 거절하기 힘들어. 맞아. 이름이 뭐야? 조! 오 내 딸 이름도 조야! 나중에 또 보자 안녕~ 이런식이었다. 상쾌한 아침대화였다. 
전쟁박물관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저지른 모습이 담겨있었다. 전시 상황을 그대로 사진을 전시해 놨는데 물리적 폭력, 살해, 폭격부터 해서 화학물질 살포까지. 현재까지 베트남전 피해인구는 기형아, 장애아로 계속 늘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살해 직전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 폭격에 맞아 갈기갈기 찢긴 사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지 새삼 느꼈다. 미국이 잔인한게 아니다. 인간이 잔인한거다. 내가 아는거 모르는거, 짧은 영어를 읽어가며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종합해보면 인간이 잔인한거다.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주도했던 여러나라중 가장 대표격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의 한 인물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베트남전 종식을 위해 분신자살까지 했다. 한국인으로써 역사속 일본인은 결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과거의 일본인이 흉악한 행위를 저질렀지만 현대의 일본인은 역사적 사건과는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일본인으로써 과거 행적에 대한 책임이 없을까? 독일인은 여전히 히틀러와 나치 행각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들의 조상들의 행실에 대한 죄책감을 이고 있다. 유대인 비하 언행은 다른 인종에 비해 사회적으로 더 엄격하다. 전쟁 박물관 전시 막바지에는 베트남 대통령과 오바마가 대담을 나누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과거 미군의 행적에 대한 사과와 아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뤄지는 자리였다. 그 보상으로 베트남인은 미국을 용서할까? 아무리 보상 받는다 해도 내 몸이 불구인데, 내 자녀가 장애아인데. 물론 당시 미국내 반전 평화 운동도 많이 일어났었다. 평화를 갈구했던 미국의 많은 히피들이 닉슨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고, 밥말리의 노래는 평화의 노래로 울려퍼졌다. 범 국제적 관계에서 어느 나라는 나쁘고 어느 나라는 착하다 할 수 없다.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지 않으니깐. 그렇다고 다수가 소수를 대변하지도 않고. 미군의 폭격은 베트남뿐이 아니라 주변의 캄보디아와 라오스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몇년전 라오스에 갔을때 미군 폭격으로 거대한 웅덩이 아니, 지하 동굴에 가까운 구덩이를 봤다. 가이드 콩은 미군이 라오스에 한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 하지만 괜찮아. 내가 이렇게 너네들한테 알려주고, 너네는 친구들한테 알려주면 결국엔 모두가 알겠지. 했다. 그때도 계속 생각했던건 미국인으로써 라오스에 오는게 부끄럽지는 않을까. 나라면 부끄러움을 넘어 두려울것 같은데. 한국인도 당당할 수는 없다. 한국 남자들이 동남아에 가서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손털고 돌아오는 일은 코피노라는 결과가 되었다. 필리핀은 한국인에게 인기많은 휴양지임과 동시에 반한 감정이 심해 한국인 살인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식민통치 시절이 없어 비교적 떳떳한 편이지만 그러면 뭐하나. 현대 한국인들은 낮은 문화수준을 자랑한다. 서양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에게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하며 국제 매너도 꽝이다. 젊은 한국인들은 남자여자 가릴거 없이 동남아의 밤문화를 즐긴다. 정확히는 동남아의 관광지의 서양인들의 밤문화라 생각하는 문화. 한국인이라 한정할 수도 없겠지. 나는 지금 5인실 도미토리쓰는데 11시가 넘은 지금까지도 나 혼자만 방에있다. 다른 투숙객은 모두 서양인인데 밤을 즐기는 중인가보다
빨랑 자야지. 낼 맛있는 아침 먹으려면 ㅎㅎ 아침이 맛있으니 하루가 기대가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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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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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했다
어제는 걱정이 많이 됐었다. 준비는 비행기표 끊은게 전부인데 정작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크릿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찌감치부터 설계실가서 열심히 매스모델 만들고 정신없이 보내고있는데 교수는 지각이나 하고. 그래도 대기시간동안 할 말을 생각했는지 이번 크릿은 저번보다 길었다. 말이 안되서 모형이라도 나름 상세하게 만들어서 보여주니 내가 뭘 하고 싶은건지는 교수가 아는것 같다. 말도 저번보다는 트여서 내가 무슨 과정을 통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그래도 교수는 모형에 눈이 꽂혀서 내 말에는 영혼없이 음흠만 하고 모형만 뚫어져라 살펴봤다. 그래도 다른애들은 모형 안가져오고 이론만 잔뜩 씨부려서 교수가 내 모형보고 좀 놀라기는 했다. 컨셉에 대한 코멘트도 해주고. 대기시간도 길고 쓸데없이 늦게 끝난 하루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기숙사 돌아와서는 짐싸고, 숙소 예약하고 루트 대략 짜고 크리틱 정리하고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 엑산은 계속 전화해도 되냐고 문자 보내고 결국 통화를 해서는 제발 자기가 날 공항에 데려다 주게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다. 내가 누구도 데려다 주고 누구도 데려다 줬는데 너는 왜 안되냐. 나는 너를 돌봐주고 싶은데 너는 얼마 안 있으면 한국 갈거고 그러면 그때는 내가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 하고. 부담스럽다고 설명하고 싶은데 도저히 영어로 뭔지 모르겠어서 미안한 기분이 든다. 죄책감이 든다.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라고 설명하니 그럼 버스타고 갈거면 버스비를 자기한테 주면 되지 않냐 그럼 괜찮지 않냐. 하길래 결국 그 자식 똥고집 못이기고 그래 그럼 데려다 주겠니 했다. 오늘 아침에는 4시간밖에 못잔 탓에 너무 일어나기 힘들엇지만 엑산이 전화도 하고 문자도 오질나게 보내는 바람에 일어났다. 엑산 차에 타면서는 그래도 버스보다 차가 편하긴 하네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내가 바보같이 공항이 KLIA인지 KLIA2인지도 확인 안하고 2는 국내선만 있다는 엑산말 듣고 1로 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시간을 넉넉히 잡았기 망정이지. 그래도 엑산 피자 먹이고 보낼 시간은 있었다. 고맙긴 한데 너무 부담스럽다. 수시로 문자오는것도 귀찮고, 내가 쓰레기인건가. 내가 좋다고는 했지만 친구로써 좋다고 한거고 나한테 하염없이 잘해주기만 하는데. 영 불편하다. 
11시 55분 비행기였는데 그때 보딩 시작하고 한시간 뒤에 이륙했다. 잠이 부족했던 탓이었는지 뒤로 제껴지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고개 푹 고꾸리고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잤다. 공항에서는 내리자마자 삐끼가 어찌나 많던지 생글생글 웃는 얼굴 보면 알고도 속을거 같아 눈도 안마주쳤다. 공항버스타고 숙소찾아와서는 짐 풀고 다시 나갔다. 여행 일정을 안짰는데 그닥 걱정이 안되는게 게하 직원에게 밥먹게 식당좀 추천해달라 하니 관광지 다 찍혀있는 지도에 루트까지 짜줬다.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 로비에 앉아서 폰으로 맛집찾아보고 있으니 뭐 필요한거 ���냐면서 물어본거였다. 길못찾을까봐 숙소 골목 입구까지 같이 나가줬다. 친절해. 아주 칭찬해. 
여기는 쿠알라룸푸르보다 길건너기가 어렵다. 쿠알라룸푸르는 자동차가 운전좀 험하게 한다 뿐이지 그것도 손내밀고 건너면 건너게 해준다. 여기서는 오토바이가 너무 많아서 길을 걷기가 힘들다. 오토바이는 차도로 인도로 마구 다니고 길을 건널때 언제쯤 내게 올지 가늠이 안된다. 내가 길을 피하려 해도 어느 방향으로 피할지도 모르겠고. 쌀국수 한번 힘들게 먹으러 갔다. 그래도 베트남에서 첫 끼는 쌀국수 먹어줘야지. 베트남 첫인상은 공원이 아주 잘돼있다는 거다. 아니 사람들이 잘쓰는건가. 조깅하는 사람들은 기본이고, 타이치, 스트레칭,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 사람, 사춘기 소녀들이 립스틱과 거울을 돌려가며 옹기종이 모여있기도 하다. 기타를 들고와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기도 하고 연인들은 벤치에 누워서 속닥인다. 성북동엔 그런 공원이 없다는걸 여기 와서 공원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공원에 앉아서 담배도 피고 영상통화도 하고 여유롭게 쉬다가 water puppet show를 보러 갔다. 아무런 정보 없이 여기 사이공 인 호텔 직원 록이 준 종이에 써있길래 간 곳이다. 나름 입장료도 만원이 넘는 비싼 공연이었는데 공연하는 45분동안 생각한건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인형을 조종하지 하는 궁금증이었다. 처음엔 밑에 인형이 다니는 레일을 심어놨나 했는데 동선을 보니 그렇지도 않고..제일 하이라이트는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에 인형극 배우들이 나와 인사를 했을때였다. 몸을 반쯤 물에 담그고 나왔는데 그걸 보면서도 든 생각은 저 사람들의 직업병은 하반신이 항상 물에 불어있는건가 하는 거였다. 공연 끝나고 7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해가 져버려서 바쁘게 숙소가 있는 관광지 거리로 갔다. 역시 이슬람 국가에 있다 오니 이곳 사람들 의상은 제법 자유롭다는 거다. 남자를 꼬시려는 현지 여자들도 한껏 꾸미고 바에 앉아 있고, 현지인이라고 노출이 없는것도 아니다. 태국보다 더 한것 같다. 그래도 태국에서 현지인들이 나시 입는건 못봤던거 같은데. 식당에 가서는 월남쌈이랑 볶음밥 시키고 사이공 맥주를 마시면서 길가를 구경했다. 많은 양이었는데 둘다 너무 먹고 싶어서 그냥 시켰다. 이래서 동행을 구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다 먹고 싶은데 내 위장은 그리 크지 않으니. 혼자라서 좀 외롭긴 한데 가고싶을때 가고 싶은데 가고 담배 핀다고 양해 안구해도 되고 힘든데 굳이 안쫓아다녀도 된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로비에서 노트북으로 일기쓰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고 좋다.
20171027(계절이 안바뀌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이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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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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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중간발표 났는데
28팀 신청했고, 지난 그저께 우리팀이 최종 6팀안에 들어서 뭐가 됐든 수상은 한다. 좋아하던것도 잠시 지영이 지인이 공모전 주체팀에서 일을 해 알아보니 겨우 열팀 제출했다더라. 그중에서도 도시 컨텍스트 안건드린팀은 떨구고. 여섯팀 안들었으면 정말 창피할뻔 했다. 이거 정말 1등 안하면 민망하게 생겼다. 반 애들한테는 우리가 top 6야!!하고 자랑했는뎁... 네팀은 수상이 거의 내정되어 있고, 낼모레 피티만 남았다. 하. 우리 진짜 잘한줄 알았는데. 이곳저곳 소문낸게 민망할 정도다. 상금타면 카메라사야지 뭐 여행가야지 생각 다 했는데 어휴 창피해.
암튼 각설하고 당장 이번주 금요일부터 중간방학 시작이다. 열흘 꽉채워서 여행 다녀오려는거 이젠 체력이 예전만큼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갑자기 왜 슬프지. 몇년전만해도 생각하던대로 몸도 잘 따라줬는데. 정말 늙은건지. 이게 다 설계 때문이야 히잉) 방학 바로 다음날 설계 제출일이다. 노트북도 낡아서 잔고장이 많아 프로그램이 잘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것 같기는 한데, 이번 마감때 툴 많이 돌리고 하면 곧 갈 것 같긴 하다. 하여간에 이만저만 걱정이 많아서 일주일만 베트남 다녀오려고 한다. 비행기표도 끊어야 하는데 기숙사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속이 터진다. 내일 카페에 가던가 어디 가서 예매해야지 참나. 베트남 루트 짜려고 이곳저곳 알아보는데 베트남 여행 카페에서 어떤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낭의 밤 문화는 젊은 한국인들이 접수했다고. 술, 물담배 하다가 서로 눈맞으면 택시타고 사라진다고. 한국남자는 현지 여자들꼬시고 한국 여자들은 서양 남자들이 꼬시면 넘어간다고. 현지인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고. 3년전 라오스 여행할 때만 해도 내가 혐오하던 모습이었다. 근데 시간이 지난 서울에서의 나는 담배도 폈고, 술자리도 좋아했고, 클럽에서 춤추는것도 좋아했다. 잘생긴 남자가 다가오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술 담배 힘들고, 유흥문화 없는게 나름 고충이라면 고충이었다. 물론 서울에서 일상을 사는 나와 여행자의 모습으로써 현지 문화를 존중해주는 나는 분명히 다르고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여기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현지인도 아니고 여행자도 아니다. 그 사이의 간극에서 뭔가 오류가 난것 같기도 하다. 
반 친구들이랑 농담따먹기도 하고 가벼운 대화는 무리가 없어서 나 영어 잘하는줄 알았다. 그동안 교수도 쉽게쉽게 설명해서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오늘 첫 개인 크리틱은 힘들었다. 그가 하는 말을 툭하면 놓치기 일쑤여서 계속 다시 물어봐야 했다. 영어로 크리틱 받고 내 개념 설명하는게 힘들걸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일부러 피피티에 이미지 자료도 준비하고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노트정리랑 프로세스까지 적어넣어 한장한장 넘기면서 보여줬다. 그런데 결국 내가 한 말은 제가 뭘 찾았는데 이게 재밌었고요, 이걸 찾아봤는데 이것도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는걸 생각중이예요. 근데 이러저러해서 이게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무슨 초딩이 설명하는줄. 나름 어느정도 설계는 할 줄 안다고 포트폴리오도 보여줬는데. 교수 반응도 뜨뜻 미지근하고 다른애들은 30분 넘게 하는 크리틱을 나는 십분만에 끝냈다. 하기사 교수도 자기가 뭔 말을해도 내가 가만히 있으니 뭐라 피드백을 해줄게 없었겠지. 얘가 알아는 듣나 끄덕끄덕은 하는데 대답은 없으니 뭔가 했을거다. 나도 답답하다. 한국이었으면 한게 없어도 경계흐리기, 탈영역, 심적 여유 별별 아는 단어 씨부리면서 털었을텐데 여기서는 단어에 한계가 있으니 컨셉도 초딩단어 수준으로 밖에 나열이 안된다. 내가 말한 단어는 명상, 멍때리기, 걷는 길 이정도 수준? 어휴. 너무 유치해서 처음에는 한국어로 개념을 잡고 영어로 번역할까도 생각했는데 그게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는듯 해서 처음부터 영어로 시작했다. 어느게 영어에 도움이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영어로 생각하는 방법에 익숙해지려면 지금이 맞겠지만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익히려면 번역하는 방법도 필요할 듯 하다. 도대체가 영어는 얼마나 해야 스스로 잘한다는 생각이 들까. 대학원도 고려하는 시점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빠른 대화는 못따라가겠고, 설령 따라간다 하더라도 눈치가 팔할이다. 교수 수업내용은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논문은 어떻게 쓸것이고, 취업 후 상사와 클라이언트는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교환학생 오기 전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래도 영어 하나는 잡겠지 하는 생각으로 왔다. 그런데 여기 온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서 드는 생각은 분명 돌아가서도 내 영어의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 영어가 절실해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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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theworlddud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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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시발 여기 도서관 개좋네
일요일에 스튜디오는 가기 싫어서, 어차피 저녁에 미팅때매 가야할거라 카페가서 작업할라고 했다. 근데 날도 덥고 귀찮아서 도서관이나 가자 하고 여기 왔는데 개 좋네. 저번에 왔을때는 낡은 열람실만 있길래 별로네 했는데 꼭대기 층에 collaborative learnig area에 오니까 크게 전창도 있고, 소파도 많고 애들은 거기 드러누워서 자고 있고 에어컨 인터넷 빵빵한것이 카페갈 필요가 없다. 기숙사에서 텀블러 열때마다 한참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일기 못 쓴 날도 많았는데 걍 캠퍼스 내에서 할거 없으면 여기 와야겠다. 존레전드랑 제시제이 노래 들으면서 노트북 작업하니 좀 있어보인다. 
며칠동안 너무 더웠다. 땀띠가 나고 걸어다니는게 힘들정도. 여기와서 제일 더운 날이었던것 같다. 밤새 땀 흠뻑 흘리고 아침에도 샤워해야 할 정도다. 어제는 밤에만 샤워 두번하고 누웠다. 룸메도 못참겠던지 방문을 열어놨다. 그러고 아침에 시끌시끌해서 눈을 슬쩍 떠서 보니 원숭이 시끼들이 방을 드나드는것이 아닌가. 내 책상에서 뭘 건드렸는진 모르겠는데 선반에 올려놨던 생리대가 책상에 떨어져있고, 방문 밖으로 슬쩍 보니 두마리가 룸메 오트밀 훔쳐서 처먹고 있었다. 홀리쉿을 외치고 인증샷은 찍어주고 문을 닫았다
주말에 여유롭게 도서관에서 글쓰니까 기분 좋다. 주말은 이래야지 여행은 많이 다니려 해도 주중이 바쁘다 보니 주말에는 많이 못다니겠다. 나는 가만히 아무도 안만나고 혼자 생각하고 누워있고 이러는게 쉬는건데. 
아 어제 샤워하고 나왔더니 지영이한테 전화가 와있었다. 공모전 1차 심사에 합격했다는 거다. 28팀중 탑 6에는 들었고 어찌됐든 상은 탄다는 것이었다. 헤헤 좋다. 거의 무임승차 격이지만 밤샌 보람은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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