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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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Reasons Why S1: Review
나 스스로도 이건 언제쯤 정주행할 수 있을까 했던 작품. 작년 초에 출근길 지하철에서 1화를 시작해서 못 끝낸 기억이 있는데 완결이 났다고 하여 큰맘 먹고 정주행을 시작했다. 어제 6개 연속으로 보고 시즌 1이 드디어 끝났다.
우선 제작면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브라이언 요키…? Is that you…? (이 양반아 넥 다시 가져와줘).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 왜이렇게 작품이 좋지 했는데 역시 당신 때문인가. 그리고 셀레나 고메즈..? 아.. 어.. 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she seemed to be really into this show. BTS 에피소드에서 이글거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니 뚜렷한 목소리가 있어 보여서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작품은 특히 구성이 정말 참신했다. Hannah(그냥 발음대로 해나라고 쓰겠음)가 자살을 결심하게 된 13가지 이유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녀가 녹음한 테이프 번호로 설정을 한 것은 정말 말잇못… 이 작품의 컨셉과 너무 잘 맞는 선택이며, 매 에피소드의 제목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엄청난 특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신들은 천재.. 지난 ‘오만과 편견’의 구성과는 다르게 복잡한 내용을 오히려 심플하게, 시청자들이 매 에피소드의 구성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다음 테이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긴장감을 놓지 않게 만들어준다. 예측 가능한 긴장감, 이 모순된 감정의 끝판왕은 주인공인 ‘Clay’한테서 나타났는데, 그 테이프들 가운데 클레이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시점과 이유에 대한 긴장감은 늦추지 않게 한다. ‘이번엔 클레이일까’, ‘이번엔 클레이일까’, 계속 생각하면서 보게 된다.
이 작품은 클레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우리는 클레이와 함께 테이프를 듣기 시작하면서 해나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는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클레이의 마음으로 이 모든걸 보고 듣는다. 그래서 클레이의 테이프라고 토니가 말해줄 때는 내 심장도 함께 멎는듯 하였다. 그 장면이 시즌 1을 보면서 가장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던 장면인데, 이 부분 대사랑 연출 누가 했는지.. 당분간 이 이상의 긴장감은 느끼기 힘들 것 같다.
클레이는 E1에서 정신 없이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이마에 상처가 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클레이의 이마에 남아 있다. 그만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당연하게 자주 등장하는 과거 회상와 현재를 구분하는 용도일수도 있지만, ‘바람의 검심’에서의 켄신의 십자 상처의 컨셉을 이어 받아 해나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과 다른 학생들을 향한 분노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상처는 클레이가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 때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 반창고에 가려지기도 하고, 그리고 끝이 다가올수록 점차 아물어가기도 한다. 그 상처가 시즌 2와 3를 지나며 완전히 아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작품은 무지함과 후회를 너무 아프게 표현했다. ‘What did I do wrong to make a person kill him/herself?’. 어떤 이의 죽음의 원인이 나일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테이프를 들을 때까지 정확히 왜 해나가 죽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그냥 지나가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의도도 다를 수 있고, 어쩌면 이유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해나는 절벽 끝에 매달려 있었고, 그 상황에서 그들은 해나의 손가락을 하나씩 놓았다. 누가 그녀를 밀거나 손을 세게 밟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밀진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해나는 이미 떨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사건만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는게 아니다. 해나가 포터 선생님에게 말을 하듯, 하나 위에 하나가 쌓이고, 그 위에 하나가 쌓이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희망을 놓은 것이다. 가장 잔인한건 해나가 남기고 간 후회였다. 각 테이프에 있는 사람들은 해나를 죽인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해나를 살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리 어려운 일들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비극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정말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이 사건이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걔는 그렇지 않을거다,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오산일 때가 많다. 우리는 누군가의 친구로, 누군가의 자녀로 또 누군가의 부모로 살아가지만, 그 누군가를 정말 잘 아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완벽할 것만 같은 그들의 인생이 정말 완벽할까? 겉으로 봐서는 모두가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안에서는 이미 썩을대로 썩고 있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좋은게 좋은거지, 라며 덮고 가는게 습관이 되었을 수도 있다. 습관은 아래로 흘러간다.
이 세계는 하나의 시간대로 흘러가지만, 역사는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가끔은 진짜 팩트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자가 생각하는 방식과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너무나도 다르다. 해나의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해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과연 진짜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안한 상황에서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해나는 잭이 자신이 준 편지를 구겨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잭은 그 편지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 해나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최악의 생각만 하게 되기에.
13RW이 꼽은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은 가해자들의 삶의 아픔들을 보여준 것이었다. 크든 작든 모두가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부양 능력이 없는 엄마와 엄마의 폭력적인 애인 사이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저스틴,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사실은 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잭, 동성애자 부모님 사이에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코트니, 그리고 해나의 죽음을 초래한 나비로서의 죄책감을 안고 결국에는 생을 끝내고 마는 알렉스.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몇 가지 싸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주변 친구들, 주변 어른들이 잘 알고 있어야만 그것을 감지해낼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방법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 그래”, “원래 네 나이 때 겪는 일이야”, “나도 그랬어”라는 말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더 빨리 절벽으로 내몰게 된다.
해나는 어떤 말도 필요 없고,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녀가 죽고 그녀의 마음을 알게된 이후에는 그녀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녀가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해나가 말하는 나비효과. 작은 나비가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날개짓을 한다면 허리케인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녀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있었다면 그녀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해나 베이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13reasonswhy 캠페인 비슷하게 하는 것을 보고 ‘Dear Evan Hansen’이랑 비슷하다고 생각도 했다. 고통 받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두 아이. 결국 아무도 곁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 외로웠던 두 아이. 하지만 조금 결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다. ‘DEH’가 소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13 reasons why’는 왕따, 성적 학대 등으로 crisis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의 차이인 것 같다. 주변인들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은 같다.
이 이야기는 피해자, 가해자, 조력자, 방관자의 이야기다. 우리는 살면서 저 네 가지 중 하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네 가지 모두를 경험하게 된다. 중요한건 나의 말 한마디,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누군가의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언제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유독 내 모습이 많이 보이는 에피소드가 있을 수도 있다. 저게 상처라고? 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 상처일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도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표현을 해야 하고, 누군가가 표현한다면 재빠르게 들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다음 해나 베이커를 구해주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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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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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9 Pride and Prejudice
이 정도면 충무 블랙은 멀티극 전용 극장인거 맞지? 날이 갈수록 작품 난이도가 올라간다.
내가 ‘오만과 편견’을 처음 접한 경로는 이 작품 자체보다는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라는 영화였다. 거기서 미스터 다아시를 처음 접하고 항상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나는 ‘Pride and Prejudice’라는 제목을 이해하지 못하여 시도를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연극으로라도 원작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어서 또 자리에 앉기 직전까지 집에 가고 싶었으나 후회 없는 관극이었다.
연극이야 실험적인 것들도 워낙 많고 내용이 어려운 고전 연극들도 많지만 이 작품은 체력적으로 힘들기로 손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배우 단 2명이 인물과 성별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어린 배우들에게는 연륜이 부족해서, 베테랑 배우들에게는 체력이 부족해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이 봐도 쉽지 않은 극이다. 하지만 이걸 정운선 배우님과 이동하 배우님이 해냈습니다.
단순히 소품만을 가지고 인물을 구분한다는 발상은 연출가가 할 수 있는 가장 안일한 생각 중에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에 익숙한 고전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가미가 되었기에 훌륭한 볼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봤던 ‘1984’라는 연극을 이런 식으로 공연을 했다면 혼란함에 울면서 인터 때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고전을 이렇게 어렵게 풀어내었기에 익숙한 스토리임에도 긴장감을 놓지 않고 볼 수 있었다.
2인극에 소품을 이용하여 인물을 구분한다는 점에 있어서 ‘구텐버그’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모자 자체가 하나의 인격도 되기 때문에 사실상 무대에 여러 명이 등장해 있다고 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소품을 이용해서 인물이 무대에 등장해 있다고 치는 경우가 없다. 메리 베넷은 예외. 이 와중에 안그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메리만 소품으로 대체 당해서 맴찢이다… ‘구텐버그’와 또 비슷한 점은, ‘구텐버그’에서 리딩 현장이기 때문에 대본의 구석 구석을 모두 설명해주는데, 이 작품 역시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인물마다 자신의 지문을 관객에게 설명해준다. 이 부분이 처음에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이긴 했는데, 지문을 읽는 주체가 해설자가 아니라 지문이 해당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은, 두 배우 모두 남성과 여성을 골고루 연기를 하는데 정운선 배우가 남성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다들 진지하게 관람하지만, 이동하 배우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웃으면 공개처형을 당할 분위기인)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안웃지 않았을 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코믹함을 섞어서 연기를 하기는 하지만, 분위기를 막론하고 객석에서 키득키득대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이 극장에 나밖에 없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리의 남성중심적 역사에서 여성이 남자인 척을 할 필요는 있었어도, 남성이 굳이 여성인 척을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성 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에, 다름 아닌 연극의 현장에서, 여성의 남성 연기는 선망의 눈으로 보고 남성의 여성 연기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관객들의 태도를 보고 약간은 속이 메스꺼웠다. ‘베어’에서 불참한 아이비를 대신하여 줄리엣 연기를 해주는 피터를 보고 학생들이 웃자 샨텔 수녀님이, 무식하면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장면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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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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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2 너를 위한 글자
아 그는 정말 아름다운 투리였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자둘부터는 따로 후기를 쓰지 않지만 이상하게 저번과는 전혀 다른 극을 보고 온 기분이었기 때문에 후기를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배우의 힘이구나, 많이 느꼈던.
꽃도 그렇고 용규 배우도 그렇고 물론 다들 잘하는 배우들이지만, 어쨋든 이 극과 함께 하면서 쌓아온 시간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캐릭터 구축을 떠나서 그 캐릭터의 삶과 생각과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방법이 모두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꽃투리는 진심으로 혼자가 너무 좋은 느낌이었다면, 요투리는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사회성 결여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세상이 무서워서, 라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그런 것만 같아서'(?)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가장 선명하게 들리면서도 주변 목소리들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형성된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상상을 했다. 가뜩이나 유일하게 자신의 안식처였던 엄마도 없기 떄문에 더이상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어려워한다는 느낌?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방에만 처박혀 쓸데없는 발명만 하는 소시오패스로 생각하는 것이 은근한 상처이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캐롤이 자신의 발명품을 너무나 기쁘게 받아주는 것을 보고 한발짝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소나기' 씬에서 꽃투리는 짖궂은 장난으로 그들의 모임을 방해하고,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냐고 하는 반면에, 굉장히 차분하게 말하는 요투리는 물리학에 대한 우월감?보다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는게 어떻냐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이 부분은 조금 마음이 아팠던게, 어렸을 적 엄마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우울증이었던 엄마를 웃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언가를 헤야만 한다고 생각한 사고 과정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고정이 된 것 같아 조금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과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다른데, 그걸 투리는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한 투리가 시력이 좋지 않은 캐롤에게 꼭 모든 사람이 행복할 필요는 없다며 그녀의 곁에 있으려고 했던 것이 투리로서는 엄청난 변화이다. 런던으로 가는 것이 발명가로서 그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계를 지키기 위하여 남으려 했다. 똑똑한 그가 유일하게 어려워했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그에게 걸림돌이 되기 싫었던 캐롤을 심지어 이해해주면서 그는 캐롤이 자신을 계속 사랑하게 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타자기를 발명하는데, 대체 몇 계단을 한번에 성장했는지 모르겠다… 요투리는 참사랑입니다.
녹미닉도 용규도미닉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용규도미닉은 뭔가 자애로운 어머님 밑에서 자라 기본적으로 온화하고 따뜻할 것 같은 느낌인 반면에, 녹미닉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로맨스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하여 구박을 받다가 캐롤이 자신의 글을 좋아해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오직 캐롤만을 위해 따뜻한 남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용규도미닉의 따뜻함은 기대할 수 있지만 녹미닉은 얄짤 없는 느낌. 녹미닉도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엄청 좋은 사람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소나기' 씬에서도 용규도미닉보다 투리에게 더욱 날카롭고 무섭게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투리에게 하는 행동이 더 원래 성격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캐롤에게만 한없이 따뜻해지는 남자.
녹미닉은 투리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정말 죽기보다 더 싫게 보였다. 사실 캐롤이 아니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지 않는 성격에 투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마 괴로웠을 것 같다. 하지만 캐롤을 위하여 꾹 참고 투리와 함께 거대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든 과정이 우정 쌓기의 과정이었던 꽃투리와 용규도미닉과 다르게 녹미닉은 투리를 친구보다는 아주 힘든 팀플을 둘이서 완수한 동지 같은 느낌? 하지만 형이라고 불러달라고 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마음을 연 것처럼 보였다.
가장 감상이 많이 달라진 인물은 역시 캐롤이다. 봄캐롤은 그냥 시련을 겪는 캔디 캐릭터가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고 다시 일어서는 느낌이었다면, 정화캐롤은 의연해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차분히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20세기 중반에 28-29살이면 사실 완전히 어른인데, 봄캐롤은 이제 날개를 피려고 하는데, 벽을 만나게 된 것 같은 느낌을 풍겨서 그녀가 28살인지, 18살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지 않는 한은 그녀의 나이를 인지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정화캐롤은 오랜 고민들이 축적되어 그것이 결국 포기로 이어진 것 같았다. 성격상으로는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그녀는 이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슬픈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던 느낌? 그런 그녀에게 남는 것은 투리밖에 없었지만 자신과 같이 어둠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이 빛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투리를 놓아주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녀. 이건 배우의 특성인지 대본의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캐롤의 모습으로는 절대 20대 후반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쓰고 나니 대본 탓인 것 같은데, 그녀의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알겠으나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로는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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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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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City of Angels
솔직히 이 극은 나연이가 기대치를 확확 낮춰준 덕분에 더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 또한 극중극의 형태로 현실 속 스타인 작가의 세상과 스타인의 작품 속 스톤 탐정의 세상의 이야기로 나뉜다. 각각의 세상의 중심 인물인 스타인과 스톤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작품 밖과 작품 속에서 각각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한 작품을 만들 때 마치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것처럼 작품 속의 인물들은 모두 작품 밖의 스타인의 주변 인물들을 닮아 있는 점이 흥미롭다.
‘시티 오브 엔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LA를 칭하기 때문에 스타인도 시나리오 작가이겠거니 짐작은 했지만, 이 극에 대한 전혀 사전 정보 없이 가는 바람에 스타인과 스톤은 같은 세계의 사람이며, 심지어는 스톤이 스타인을 쫓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 그러한 오해는 다행히도 스타인이 대본을 쓰고 지우는 것을 반복하면서 스톤의 주변 인물들이 그대로 움직이는 것을 통하여 해결이 되었다. 보기에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극 설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는 결정적인 작용을 해주었다.
이 극은 역시 서사보다는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서사 얘기는 거뜬히 생략^^) 중간 중간 컨디션 난조로 조느라 스토리를 놓친 부분이 있음에도 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흑백과 컬러의 대조를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스타인과 스톤이 무대에 같이 서있을 때 현실의 인물인 스타인이 서있는 배경은 컬러, 영화 속 인물인 스톤이 서있는 배경은 흑백으로 표현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조명 연출말고도 이 극이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무대 막이다. 막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카메라 아이리스가 열리고 닫히는 것처럼 표현을 했는데,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막을 이용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연출은 아니었다 (흔한 막의 형태도 아니다 보니).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하고 끝나는 것을, 촬영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으로 표현한게 생각지도 못한 호 포인트.
이 극을 보면서 ‘잭 더 리퍼’, ‘아가사’가 떠올랐다. 더욱 복잡한 속사정이 있지만 어쨌든 두 얼굴의 자기 자신을 그린 것으로, 자신이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자아의 부분을 타자화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당연히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던 두 인물이 사실은 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일종의 반전(메인 자아가 다른 자아를 증오하는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이 극의 경우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만든 스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점 (정신적으로) 일체화가 되어가는 구조이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의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캐릭터를 닮아가게 되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스타인의 이야기. 이러한 스타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좀 더 쫀존하게 표현했어도 꾸벅꾸벅 조는 일은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극 자체는 호이지만, 어쨌든 졸았다는 것은 졸만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벤허보다 힘든 캐스팅 맞추기로, 90%의 성공을 안고 시작했으나, 결국 100%의 성공으로 끝났다고 생각한다. 한번 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길로 갔으나 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있었다. 나름 호였던 이지훈으로 보고 싶었으나, 아쉬워도 뭐 최재림, 백주희, 박혜나가 있으니 감사하며 보자,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테이가 너무 잘해서 아직도 얼떨떨하다. 그렇게 나의 놀란 가슴을 잠재우기 위하여 다시 테이로 보러 간다. 어차피 (어느새) 두번 볼거면 강홍석으로 보자, 생각했지만 최재림이 너무 잘해서 그 잘하는 걸 또 보고 싶은 것은 모두의 마음이기에 또 최재림으로 봐야겠다, 하고 잡았는데 벤허 캐스팅 데자뷰인지 딱 원하는 캐스팅의 날짜가 하나 있었다. 그렇게 이기홍 배우 보러 갑니다ㅎㅎㅎ 만약 또 보고 또 좋으면 그때는 진짜 강홍석 이지훈으로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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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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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너를 위한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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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한 글자’. 제목만 봐도 어느새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겼던게, 마지막 즈음에 ‘에이, 그래서 이걸 타자기의 시초라고 말하려고? 오바네~’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를 비웃듯 어둠 속에서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소개를 한다. 진작 말해주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가 그렇게 되면 현시점에서 함께 나아가는 시간이 아닌 과거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 막이 내린 후 은은하게 울려퍼지도록 한 것이 좀 더 여운이 오래 남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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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화-이봄소리(김다혜)-이용규. 세명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배우들이기도 하고, 잘하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나도 모르게 기대치가 상승했다. 하지만 뭐랄까, 합의 문제일지 연기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어수선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나는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꽃투리와 용규도미닉은 투입된지 얼마 안됐고 물론 봄캐롤은 투입이 된지 꽤 됐지만 합이 조금 안맞는 듯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드립은 조금씩 넣으려고 해서 상황을 악화시킨 것 같기도 하고… 자첫자막을 하려고 했는데, 막상 극을 보니 조금 안정적인 페어로 시작할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택한 투리와 예정된 결말을 기다리는 캐롤리나, 그리고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도미닉.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훈훈한 광경의 연속이었다. 처절한 사랑과 지독한 갈등이 작품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페어마다 조금씩 디테일이 다른 것 같긴 하지만 꽃투리와 용규도미닉은 그 과정 속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정말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랑의 라이벌로 시작하여, 사랑을 위해 협력하고 우정으로 끝나는, 이 마음이 편해지는 관계를 또 어느 극에서 볼 수 있나 싶다.
극을 보기 전에 이정화 배우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깜빡이도 안켜고 훅 들어온 스포에 굉장히 당황했다. 타의에 의한 스포로 슬퍼하고 있던 차에 미리 아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 힘을 얻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맞을 수가 없었다. 캐롤이 실명을 한다는 사실은 그녀의 첫 등장 때부터 사방에 깔려 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다가올 어둠”이라는 가사와 그녀가 계속해서 시간이 없다고 얘기를 하는 것도 모두 그녀가 시력을 잃어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내포하는데, 항상 밝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롤의 모습을 보고 그러한 결말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치 ‘일삼’ 때 사람들이 너무 빨리 알아챌까봐 은근하게 단서를 뿌려놓았던 것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고 보았기 때문에 캐롤이 하는 말들과 행동, 그리고 도미닉이 그녀의 건강 상태를 먼저 알게 되는 것까지 모든게 말이 되었다. 이미 엄청 뜬금없는 순간에 밝혀지기 때문에 아마 모르고 봤으면 ‘엥? 갑자기?’라는 생각이 더 들었을듯.
캐롤이 투리에게는 자신이 곧 실명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글을 쓰기 위해 만나는 도미닉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미닉은 그녀의 시력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알게 모르게 그녀를 배려한다. 이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고, 도미닉맘으로 만들었던 일등공신이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글쓰기로써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안타깝게도 캐롤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원망을 하거나 분노를 하지 않고 그는 잠잠히 앉아 인내한다. 그때 캐롤이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는 투리를 기꺼이 도우며 그는 캐롤이 자신의 꿈을 놓지 않도록 투리와 함께 열정을 쏟는다. 타자기를 캐롤에게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도미닉의 도움이 언급이 되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오직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도미닉은 웃으며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특별하다. 이 작품의 경우 그 순간들이 너무 명확히 보여서 개인적으로 인물들에게 그리고 스토리에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투리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발명을 계속 하는 것이 더 중요했겠지만,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듯한 그 느낌은 아무리 사회성이 결여된 그라도 어떻게 몰랐을까. 더 큰 가치를 위해서 지금의 외로움을 애써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투리는 자신의 발명품을 받고 행복해하는 캐롤을 보고 자신이 꿈꿔왔던 그 순간을 맛보는듯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주변인들의 말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은 도미닉은 ‘최고의 작가’라고 말해주는 캐롤 덕분에 다시 기운을 차린다. 언제나 캐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도미닉이지만 그도 그만의 상처들이 있을 것이다. 캐롤은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했던 순간들을 선물해주었다. 두 사람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캐롤이기에 티격태격 하다가도 캐롤을 위해 뭉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사랑스러움은 덤.
캐롤 역시 두 사람에게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선물 받았다. 글을 쓰기 위해 고향을 찾아온 캐롤에게 도미닉은 어릴 적 기억들과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하여 도와주었고, 투리는 시력이 점점 퇴화하는 그녀에게 대신 다른 감각들이 더 살아날 것이라고 서투른 위로를 한다. 그러한 서투른 위로가 훗날 타자기의 발명까지 이어진다. 근래 본 극 중에서 가장 따뜻한 극이다…
투리가 몇 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캐롤보다는 어린게 확실해 보인다. 단순히 사회성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 말하는 발성과 노래하는 창법 모두 노란색 원복을 입고 공원을 뛰어놀 것 같은 이미지를 주었다. 물론 그의 귀여움이 제대로 먹힐 때도 있지만 투리의 나이를 불분명하게 만들기도 하여 그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그 점으로 인해 오히려 캐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과 그의 서투른 위로가 더욱 빛을 발하기도 했다.
용규도미닉은 한겨울 주머니의 핫팩처럼 따뜻하다. 언제나 캐롤을 먼저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표현했을 때에도 그는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며 그녀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먼저 힘을 다한다. 목소리 톤도 들라에 때부터 좋아���어서 이번에도 역시 그의 목소리 톤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봄캐롤은 이제까지 계속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많이 깼다. 연기력에 있어서는 내가 아는게 뭐가 있다고 별로 안까는 편인데 봄캐롤 연기는 듣고 보기가 좀 거북했다. 상황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 캔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 이때는 연기1, 이때는 연기2, 대사와 행동을 그냥 뱉는 것 같아서 연기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이런 로맨스 연기는 아닌걸로… 하지만 노래는 좋았다.
요정-정화-에녹 페어 너무 기대된다. 페어마다 디테일이 얼마나 다를지 기대되고, 또 얼마나 이 후기를 뒤집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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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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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6 Ben-H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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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몬테 크리스토’/‘프랑켄슈타인’ 그 사이 어딘가. 사실 벤허 초연이 올라올 때쯤만 해도 봐야지 봐야지 했으면서도 나의 우선순위에는 있지 않은 작품이었다 (왜 그랬을까). 대작 영화를 뮤지컬로 가지고 온다는 사실도 조금은 불안한 감이 있었고 소재 자체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걸 잘 살릴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있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면 충분하지, 라는 마음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한지상 배우의 합류로 안볼 수 없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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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함 없이 자란 주인공이 친구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몰락하고, 은인을 만나 다시 일어서서 복수하는 이야기는 하나의 스토리 타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흔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점에서 ‘몬테 크리스토’가 안 생각날 수 없는 구조인데, 노수일 때의 모습은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 기저귀 의상이 계속 생각나서 지괴 지뢰를 또 안밟을 수가 없다. 감히 평가를 하자면, 내가 본 한지상 배우의 모습 중에서 가장 성숙하고, 가장 강렬한 모습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리고 다시 높은 곳으로. 이러한 여정 가운데 유다의 단 한 가지 목적은 헤어진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것만 알아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그는 그래서 메셀라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로마의 가장 높은 곳까지 가려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다는 기본적으로 선하게 그려진다. 노수로 있는 동안 해적들을 만나고, 그 순간 도망 갔으면 자유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상관인 퀸터스 장군을 도우며 그가 무사히 로마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운이 좋게도 퀸터스도 악질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유다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을 수 있도록 황제에게 청하고, 유다의 아버지가 되어준다. 1막 마지막 부분에서 메셀라가 보낸 자객들에 의해 퀸터스는 죽게 되고 유다는 메셀라에 대한 복수와 유대 독립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퀸터스는 멋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1막 이후로는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메셀라는 유다의 절친한 친구로 신임 총독의 사령관으로 벤허 가문에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로마의 스타가 된 케이스이다. 메셀라의 캐릭터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어릴 적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은 메셀라를 벤허 가문에서 거둬주었고, 그 덕분에 메셀라는 유다와 절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메셀라 넘버 중에 벤허 가문에서 자신을 거둬주었지만, 먹다 남은 빵을 먹었다며 갑자기 벤허 가문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한다. 문제는 1막 때 벤허 가문에 반역죄를 뒤집어 씌울 때는 차라��� 벤허가 자기를 죽여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고, 그 이후에도 메셀라는 유다와의 약속처럼 유다의 어머니와 누이를 몰래 감옥에서 풀어준다. 1막 중도 아니고 2막에서 갑자기 표출하는 분노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나름 메셀라 캐릭터에 몰입을 잘 하고 있던 와중에 피해자 코스프레 마냥 갑자기 땡깡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메셀라 캐릭터는 파악하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결국 스스로 파멸하는, 설득력도 파멸했던 캐릭터.
예루살렘에 메시아가 와서 유대인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믿고 기다리지만, 유다가 기다린 메시아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피흘리는 예수였다. 유다는 성경 속 구레네 시몬처럼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를 오르며 예수에게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청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저들을 용서하라.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였다. 유대인의 독립과 로마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삼았던 유다는 과연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유다는 자신이 생각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님에 실망을 하며 허무해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는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고, 당신의 아들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듯 비가 쏟아진다. 이제는 누구도 살릴 수 없다는 무력감에 유다는 그만 주저 앉게 되고 모든걸 포기한 그의 앞에 비를 맞고 문둥병이 고쳐진 어머니와 누이가 그를 안아준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가장 낮은 곳에서 노수로 지내던 유다가 퀸터스를 만나는 그 순간도 하나님의 일하심일 것이다. 못박힌 예수의 십자가가 세워지는 그 순간에도 병이 고쳐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채찍질 당하고 조롱 당하는 그 순간에도 예수는 저들을 용서하라고 하신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과 말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의 유다와 ‘벤허’의 유다는 모두 혼란스러워 하는데, 두 사람 사이의 차이점은 앞의 벤허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벤허’의 유다는 그리워했던 가족을 만나면서 구원을 얻고, 유대 독립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전방에서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어쩌면 유다 벤허가 구원을 얻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뒤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에스더와 유다의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모두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대부분이 그가 십자가형에 처해지자 떠나갔다. 하지만 그를 끝까지 믿고 간절히 기도한 에스더의 기도는 들어주셨다. 예전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후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했었는데, 지금 당장 우리를 구원해줄 메시아를 기다렸던 유대 민족은 겉보기에 몰락한 메시아를 바로 져버렸지만, 그를 끝까지 믿은 자들은 결국 구원을 얻는다. 가족을 만나 다시 일어선 벤허는 자신의 전재산을 바쳐 유대 독립에 힘쓴다.
모두가 영화 ‘벤허’를 너무 감명 깊게 보았는지 몰입에 방해가 된다 싶은 인물 혹은 배우는 한 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유다와 메셀라에 대해 언급을 많이 했지만, 이 극에서 소중하지 않은 인물들은 아무도 없다. 특히 에스더의 린아 배우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에스더를 잘 살려주셨다. 영화상에서는 벤허와 로맨틱한 관계로 나아가고, 이 극에서도 그게 안보이는건 아니지만 더 큰 흐름을 위하여 적당한 선에서 조절을 하는게 보였다. ‘그리운 땅’에서 에스더가 단순히 벤허의 연인이 아닌 땅을 잃은 유대인 중 한명이라는 것이 제대로 드러난다. 아마 다음에 또 보게 된다면 한지상-린아 페어가 아니라면 보기가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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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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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Red Shoes and the Seven Dwar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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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발치의 고통으로 쉴 곳을 찾던 중 사실 볼까 말까 긴가민가했던 ‘레드 슈즈’를 보았다. 샘 클라플린 주연이라는 것으로 이미 내맘에 쏙 들었지만 너무 후보군이 많아 밀리고 밀렸었다.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찰나에 급히 들어갈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레드 슈즈’였다. ‘겨울왕국’ 제작진이라고 소개를 한만큼 어린이 관객들도 정말 많았지만 성인 관객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꽃미남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던 멀린은 공주를 마녀로 착각하여 그만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키스를 해야 풀리는 저주’에 걸려 아담한 난쟁이가 되고, 아빠를 닮아 통통한 스노우는 아침이 되면 구두로 변하는 마법의 사과를 신고 누구나 반하는 절세미인(‘레드 슈즈’)이 된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멀린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까봐 걱정하는 스노우는 외모를 초월하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가 이 작품의 메인 스토리이자 목적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듯이, 멀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이기 때문에 레드 슈즈의 외모를 보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저주를 풀기 위해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레드 슈즈는 멀린의 원래 모습이 어떤지 몰라도 자신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와줬던 것에 감동을 받아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저주를 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멀린이 원래의 모습의 자신도 그대로 좋아해줄까, 레드 슈즈는 두렵지만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과감히 구두를 벗고 그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멀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데, 저주를 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실망을 한 것인지,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 사실은 자신이 봐왔던 만큼 예쁘지 않아서 실망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엄청나게 어색한 기운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어떤 인물의 외모를 묘사하는 순간, 크리에이터가 어떤 ‘특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물론 타겟층이 있기 때문에 적당선에서 합의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스노우는 살집이 있고 눈이 조금 작은 것 이외에는 구두를 신었을 때의 레드 슈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의 원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멀린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성숙한 어린이들이 많다면 다행이지만, 나는 어렸을 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다. 물론 이러한 장면이 오래 가지는 않는다. 멀린은 금방 내면의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노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그때 멀린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양심은 난쟁이 멀린으로 그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키스를 해야 저주를 풀 수 있다”. 구두를 신은 상태인 레드 슈즈와 키스를 했을 때는 저주가 풀리지 않았지만, 구두를 벗은 스노우의 입맞춤으로 멀린의 저주는 풀린다. 내면이 아름다운 여자를 말하는 것일거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하지만 사실 내면이 아름답다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비슷하다가도 다르다. 인성이 좋은 것과 자존감이 높은 것은 다르듯이? 아이들 영화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타겟층이 누구든간에 애매한 부분은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결말이 다가왔기 때문에 해피엔딩을 만들어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은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외 부분들은 정말 좋았다. 약간 ‘The Rise of the Guardians’가 생각나는 그림체에 캐스트도 너무 취향 저격이다. 의외로 삽입곡들이 많았는데 각각의 곡들이 스토리에 잘 맞았는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그리고 소소하게 귀여운 부분들로는 멀린이 한마디로 이 작품의 토르인데 그가 쓰는 부적에 위에 ‘번개’라고 삐뚤빼뚤하게 써있는 부분이 아주 아주 귀엽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까지 정말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점이 너무 좋다. 이 후기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멀린은 사실 함께 싸우는 그의 어벤져스 멤버들이 있는데 엔딩 크레딧에서 그들 또한 자신의 ‘미녀’를 찾아 저주를 풀게 된다는 후기를 전해준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들이 많이 제작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물론 타겟층을 고려하여 사뭇 단순한 서사를 이어갔지만 눈치 보지 말고 얼른 대작들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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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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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0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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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극에 힙합을 끼워넣은 개그물이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골빈당’도 그렇고 ‘수애구’라는 워딩 자체도 너무 내 취향이라 자첫을 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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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의 어떤 문물/ 문화를 옛 시대로 끌어오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억지 웃음이 아닌 자연스러우면서도 기발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웃음 포인트로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들다. 이러한 것을 시도한 작품들은 정말 많지만 오히려 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 자체로 성공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이래서 취향이 잘 맞는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스웨그에이지’는 내 취향을 저격한 근래 흔치 않은 작품에 속한다.
시조의 나라 조선에서 시조가 금지되고 흥이 억눌린 채 살아가고 있는 조선 사람들. 얼핏 시놉시스만 보면 ‘올슉업’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스웨그에이지’는 좀 더 깊은 얘기와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선의 시조는 이 나라의 흥을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시조는 가장 퍼지기 좋은 목소리이다. 민생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했던 단이의 아버지 홍자모는 기득권층의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홍국의 음모로 시조판서의 자리를 잃게 되고 반역의 수단이라는 이유로 시조를 읊는 행위조차 금지된다. 누군가의 입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빼앗아 가는 것, 슬프게도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며, 그 방법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골빈당 멤버들은 백성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15년만에 재개된 조선시조자랑에 참여를 하게 된다.
조선시조자랑 씬은 이 작품에서 내 최애씬에 해당하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레퍼런스들이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두릅두릅…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멜로디와 그들의 퍼포먼스가 진짜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현재 쓰이는 말들이나 현시대의 인물들을 잘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 두릅은 진짜 생각도 못했던 부분인데 너무 빵터졌다.
이 극은 조연들도 은은한 빛깔을 내서 너무 좋았다. 어린 임금은 고구마와 사이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 중간이 없다. 기본적으로 의견 수렴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임금이지만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짓누르는 대신들 때문에 병풍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답답할 때는 정말 답답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확실하게 의견을 내세우며 골빈당의 정의가 퍼질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준다.
의외로 가장 애정이 갔던 인물은 조노였는데, 아직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너무 사랑스러우시다. 롤로노아 조로가 룰루랄라 조노라니. 진짜 이 제작진 내 취향을 너무 잘 안다. 애초에 거의 자객인데 왜이렇게 밝은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니는거며, 임무 수행을 하는 와중에도 소확행을 아는 그가 너무 좋다. 우리 조노 행복하게 해주지…
컷콜이라도 영상으로 남기고 싶지만 그게 안되니 너무 아쉽다. 곧 다시 돌아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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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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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4 Long 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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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내가 알던 퓨리오사가 맞는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내내 보았던 영화. 세스 로건은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그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어렵지 않게 실제 인물들과 연결시킬 수 있다. 자신의 TV 출연 경험을 가장 큰 프라이드로 가지고 있는 과대 ego의 소유자인 현 미대통령(트럼프), 다음 대통령으로 출마하려는 샬롯(힐러리 클린턴), 그리고 (만들어진) 호감형 인물로 샬롯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로 대표되는 캐나다 국무총리(트뤼도) 등 처음 보는데도 낯설지 않은 인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정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더 깊게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 아쉽지���, 오히려 가볍게 보면 그 나름대로의 메시지가 보이는 영화이다. 대외적 이미지를 위하여 캐나다 국무총리인 제임스와의 쇼윈도 관계로 이어나갈지 아니면 진짜로 사랑하는, 하지만 정치적 이미지에는 치명적인 프레드와 함께할지 고민하는 샬롯은 (당연히) 프레드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가 미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Mic drop은 세상에서 가장 힙한 장면이 된다.
이미지 메이킹이 정말 중요한 요즘, 그리고 누구보다도 이미지가 중요한 그녀가 대중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 샬롯을 위한 선택을 과감하게 선택했다는 것은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아도 모두를 위한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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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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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0 미아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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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중극 형태의 작품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다. ‘미아 파밀리아’의 특이점은 아폴로니아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는 리차드와 오스카가 ‘브룩클린 브릿지의 전설’와 ‘미아 파밀리아’ 두 가지 극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극 중 한 개의 극을 끌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 한편, ‘미아 파밀리아’에서는 액자 밖 이야기 외 두 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흥미로운 점은 액자 밖의 인물들이 액자 내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맡는 역할도 고정적이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재미를 위한 이벤트성 장면이긴 하지만 그러한 시도를 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폴로니아’, ‘미아 파밀리아’, ‘미오 프라텔로’는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편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속편을 보는 데에 문제가 없다. 마치 MCU처럼 이해를 도울뿐 다른 편들을 보지 않았어도 플롯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이미 오래 전에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아폴로니아’와 ’미오 프라텔로’도 다시 올라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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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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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1 Z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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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술로 커플의 연애 성공률을 측정해주는 연구소. 각 사람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두 사람이 성공적인 연애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수치로 측정해준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에 따라 수치는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크게 할말도 없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영화였다. 애초에 조를 본인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없는 상태로 만든 것도 이해가 안되고, 내가 가장 불호하는 반전을 위한 반전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설정이었다. 조의 콜에 대한 마음은 그렇다 치고 콜은 왜 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언제부터 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너무나도 많은 의문점을 남기는 영화였다. 자신이 로봇인줄 아는 애쉬가 이 작품에서 가장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애쉬 역시 콜이 만든 로봇이지만 그의 역할이라곤 자신이 로봇이라는 자각이 없는 조를 부러워하고, 조가 힘들 때 가끔 찾아가는 친구 정도이다. 마치 2인극처럼, 많이 봐줘서 3인극처럼 주인공들 이외에는 없어도 무방한 인물들뿐이었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연기한 쥬얼스 역시 왜… 왜…..! 언젠간 버려질 수 있는 인형이며 아무리 인간과 똑같이 생겼어도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피와 살 빼고는 인간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조는 로봇인가, 인간인가. 수많은 기억들의 조합이지만 조는 어렸을 적, 학생일 적의 기억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를 가질 수 없는 아픔도 알고, 감정을 포기할 줄도 안다. 하지만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도 빨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조는 콜에게 자신이 ‘진짜’냐고 묻는다.
인간을 정의하는 가장 기초는 무엇인가. 피와 살일까, 아니면 그 정신일까? 생각만이 인간을 정의하진 않지만, 육체만이 인간은 아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러한 포인트로 접근을 하려 했으면 조금 더 철학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의 고민부터 베니솔까지 많은 좋은 소재들을 너무 얕게 다룬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플롯 이곳 저곳에 장치들만 가득하고 존재는 없다. 흥미로운 소재에 비해 너무 아쉬운 스토리텔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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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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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6 Spider-Man: Far From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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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Endgame이 아닌 ‘Spider-Man: Far From Home’이 Infinity Saga의 마무리를 지을 것이라고 했을 때, 과연 피터는 이 짐을 어떻게 지고 갈까 궁금했다. 이 작품은 Infinity Saga와 Phase 4를 잇는 가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마인드는 ‘난 아직 고등학생이고 싶어요’라고 했다. 세계를 구하는 것과 좋아하는 여자애와 시간을 보내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했을 때 고민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이 바로 피터의 매력이다. 피터는 어벤져스 멤버 중 최연소 멤버인데, 난 그가 영웅이 아닌 어린 아이로서의 솔직한 반응을 보일 때 그게 너무 진솔해 보여서 개인적으로 톰 홀랜드 피터를 좋아한다. Neighborhood 정도가 아닌 행성 스케일의 문제가 터졌을 때 겁을 먹는, 딱 그 나이대 아이들의 진실된 반응. 그래서 스파이더맨을 보면 영웅들도 사람이며, 또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준다.
토니에 대한 모든 부분은 상당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있는 토니의 흔적을 자신의 짐으로 받아 들이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미스테리오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좀 더 강했다면 토니가 죽지 않았을까, 자신은 토니처럼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부담감이 그를 짓누르는 것이 보였다. 마치 심바가 무파사의 발자국을 따라가려고 하듯이. 해피는 피터에게 토니 자신조차 토니 스타크가 되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며 피터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Remember who you are라고 말하는 무파사처럼 피터를 일깨운다. 그리고 이제 그는 의무적 히어로가 아닌 그저 세상을 구하려는 피터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사실 스토리 측면에서 봤을 때 ‘Infinity War’와 ‘Endgame’까지 나온 상황에서 그 이상의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이제 슬픈 영화라고 해도 주인공의 반 이상이 죽지 않으면 큰 타격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Far From Home’은 스토리의 측면에서는 사실 큰 놀라움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이제 마블이 하락세를 타나 싶었지만, 이 영화는 또 다른 무기가 있는데 바로 연출이다.
아마 본 사람들에게 가장 소름 돋는 두 장면을 꼽으라면 열에 여덟 정도는 같은 장면을 뽑으리라 생각한다. 미스테리오의 VR씬과 피터의 스파이더 센스를 표현하는 그 장면은 지금까지 마블에서 나온 작품들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고 획기적인 장면이었다. 그 장면들만 무한반복으로 쳐다보고 있어도 안 질릴 것 같은데, CG팀이 이 두 장면으로 꽤나 고생했을 것이 눈에 보여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이제는 좀 행복해졌으면 했지만 감독 역시 피터는 괴롭히는 맛이 있다고 한다. 얼토당토않는 상황에 처한 피터가 다음 영화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지, 또 누구의 ���움을 받을지 기대가 된다.
화려한 영상미와 함께 많은 떡밥과 예상 콜라보를 주고 갔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스파이더맨의 영역에 스크럴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캡틴 마블의 합류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인데 건틀렛을 옮기러 가는 길에 마주했던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함께 펼칠지 너무 기대된다. 또한, 우주로 나간 퓨리가 캡틴 마블과 어떻게 협력해나갈지 (I still want that Fury and Carol reunion scene) 많은 기대를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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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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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2 School of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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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다는 그 의도가 가끔은 아이에게 등을 돌리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이 극이 흥미로운 이유는 듀이가 락 음악을 하고 싶어 안달난 아이들을 데리고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갇혀 있는 아이들을 락으로 해방 시켜줬기 때문이다.
전통과 격식으로 어우러진 호레스 그린은 아이들로 하여금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전통과 격식을 지키기 위하여 아이들이 미국의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서 아이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fit in 해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포기를 하는 것이 현명하고 어른스러운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포기를 함으로써 우리가 행복까지 희생해야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극 중에 등장하는 듀이의 친구인 네드와 호레스그린의 멀린스 교장은 모두 사회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열정과 행복을 일정 부분 혹은 전부를 포기한다. 멀린스 교장이 취중진담으로 부르는 ‘Where did the rock go’는 내가 살아가면서도 가장 걱정하는 부분 ��� 하나인데, 그 중 “Where's the magic of the moments only rock could ever capture?”는 특히 마음을 울렸던 부분 중 하나이다. 어떤 경험은 절대 대체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서 일하는 누구라는 이유로 그 느낌을 절대 다시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인생일지 가늠이 안된다.
듀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듀이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정식 교사도 아니고 그저 집세가 필요하여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을 당연한 전개라고 생각했고, 워낙 제멋대로인 인물이라는 것이 첫 씬에서부터 보여지기 때문에 아이들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Battle of the Bands에 나가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승은 그저 집세를 내기 위한 수단이고, 그의 진짜 목적은 음악 그 자체이며, 듀이는 그 해방감을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기 위해 밴드를 결성한다. 연주를 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한명도 빠짐없이 반의 모든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어쩌면 학교에 있는 그 어떤 교사보다도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간 인물이 아닌가 싶다.
어떤 한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멋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듀이가 비록 가장 지식이 충만한 사람은 아닐테지만 락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 밴드를 결성하고 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락을 전수할 때 그는 정말 선생님 같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안할 수가 없지만 오히려 앞길이 창창하기 때문에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면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아이들로서는 좋은 결말인 것 같다. 비록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경험을 토대로 부모님과의 대화를 트고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이 이상의 해피 엔딩이 어딨을까. 실제로 아이들이 이 공연을 하면서 인생의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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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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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8 신과 함께 - 이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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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이미 봐서 정말 다행이었다. 저승편에 비해서는 개그 포인트도 적고, 다이나믹함도 떨어지지만 나름의 소소함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난 재미가 먼저이기 때문에 이승편을 보는 내내 저승편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것은 사실이다.
뮤지컬과 웹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굳이 바꿨어야 했나 싶지만, 누구의 시선에서 보고, 어떤 결말을 내느냐에 있었다. 그리고 강림의 유무? 차사들의 과거를 다루지 않고 온전히 메인 플롯만 따라가서 집중력이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택신들이 다시 인간들을 도와주러 가자고 하는 결말은 그 순간에는 찡하긴 했지만 다시 돌아보면 굳이? 라고 반문하게 된다.
모두가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게 보이지만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보다는 관객을 자꾸 설득하려는게 눈에 보여 그 부분이 좀 인위적이고 아쉬웠다. 신화편.. 정말 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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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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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5 Something Ro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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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극인데, 우리나라 캐스팅으로는 절대 못 올라올 것 같아서 희망을 버리고 있던 차 우연히 내한 소식을 들어 신나서 표를 잡았다. 결론적으로는 대극장 구텐버그를 보고 있는 느낌?
사실 내용으로서는 크게 와닿는 메시지는 없고 뮤지컬을 많이 알고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재밌는 극임에는 확실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확실히 깔게 많은 장르이긴 하다. 대학교 때 들었던 연극 관련 수업이 생각이 나는데, 예술인으로서의 자존감이 대단히 높으셨던 교수님은 돈 버는게 목적인 뮤지컬은 예술이 아닌 문화이다, 라고 하시며 굉장한 혐오감을 드러내셨다. 최근 들어와서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범주가 굉장히 넓어졌기 때문에 예술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상업성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또 거짓말이다. 근데 그게 어때서..?
‘Something Rotten’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열등감과 더불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다가오는 마감으로 인해 단시간에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극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여 용하다는 노스트라다무스를 찾아가지만 그의 조카를 만나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미래에서는 인기가 많다는 예언을 받고,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를 믿고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극 중 극의 비중과 원래 스토리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구텐버그와는 사뭇 다르다. 레퍼런스라고 하기도 무안할 정도로 대놓고 다른 브로드웨이 극들을 많이 언급하는데, 그것을 다 캐치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루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 부분이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부분들이 특별히 더 흥미롭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2015년에 만든 극치고는 극 중 배경 때문인지, 평이한 연출 때문인지 세련된 극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2000년대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그러한 극이었다. 이제 1일1해밀턴내한기원 하면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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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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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Toy Story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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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힘은 상당히 강하다. 어렸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의 역사가 쌓여갈수록 오래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통한다. 2019년은 특히 그러한 해였다. ‘덤보’, ‘라이온킹’, ‘토이 스토리’ 등이 새로 개봉을 하면서 옛 추억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것들이 관객에게 가져다 주는 울림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그 어떤 해보다도 많았던 것 같다.
완벽한 결말이라고 느꼈던 3편에서 어떤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까. 기대도 되고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그런건 모두 기우라는 것을 보여준 작품. 하나하나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지고,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을 꼽자면 보핍의 변화이다.
최근 실사화된 쟈스민의 캐릭터와 비슷한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었다. 보핍은 사실 원래도 당찬 캐릭터였다. 치마를 입고 있고, 활동성이 큰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덜 드러났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원래부터도 강한 여성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치마와 바지의 차이가 아니다. 그녀는 장난감이지만 주인이 있어야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독립적 존재로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보핍의 캐릭터에서의 가장 큰 변화였다. 
우디의 선택도 짧은 시간이지만 이 작품에서 아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년간 ‘Toys should be played’라는 메시지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우디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장난감들을 도와주기 위해 새삶을 시작하는 것은 실로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하지만 놀이를 위해 존재하던 장난감이 다른 장난감을 도와주는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장난감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인물들도 절대 존재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희망적인 결말이기도 하다. 제작진은 어느 한 가지 방향을 고수하기 보다는 우디가 떠나는 것을 선택했듯, 버즈가 남는 것을 선택하는 것 모두를 존중해주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완벽한 영화가 탄생했다.
우디와 버즈를 보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이 문득 보였다. 누가 누구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그들의 관계, 역사 그리고 그들의 선택에서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하는지 다른 장난감들의 활약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5편이 나온다고 해도 기대만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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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aaaaaa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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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6 Para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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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내가 감히 감상평을 남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는 엄청난 임팩트를 가져다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황금종려상만 아니었어도 나는 아마 안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봐야지 봐야지 싶으면서도 계속 미뤘었는데 봉빠 병현이에게 끌려가서 결국 보게 되었다.
계급의 이야기
‘괴물’로 나에게는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던 봉준호 감독이기에 ‘기생충’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도 “뭐야, 연가시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사실은 ‘계급의 이야기’란다. 이게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트레일러에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떡하니 나오는 것을 보고 여기서 뭔가 더 있는건가, 그때부터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다.
기생충에는 다양한 키워드들이 나온다. 정말 다양한 키워드들이 나오지만 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세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냄새
눈과 귀를 속여도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은 냄새이다. 기우의 똑똑한 머리와 가족들의 간절함도 가릴 수 없는 것이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낯선 냄새였다. ‘지하철 자주 타는 사람들한테서 나는 냄새’라는 표현으로 박사장은 계급 간의 선을 확실하게 그어 버린다. 냄새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나타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가, 박사장은 그 지하철 냄새를 기택에게서만 맡지만, 다송이는 그 4명이 모두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고 말한다. 명문대학생 기우, 해외유학파 기정, VIP 고객들에게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충숙, 그리고 개인 운전 기사 기택. 박사장은 기택에게서만 맡았지만, 어린 다송이는 모두에게서 맡을 수 있었던 것은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판단의 기준을 갖추게 된 어른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배경과 직업 등 그들의 특징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아직 그런 기준이 없는 어린 아이들은 더 직관적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냄새는 이 영화를 만들어준 것임과 동시에 영화를 끝맺게 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인디언
실제 인디언, 미대륙 토착민들의 역사를 생각하면 왜 하필 인디언일까, 라는 의문점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흔히 계급 간의 분쟁을 생각하면 백인과 흑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정도를 흔하게 생각하지만, 인디언을 포함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적어도 나는 떠올리진 않았다. 부르주아인 박사장의 가족 밑에서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이 대립 구도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고 사실이긴 하지만, 한층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기택과 문광의 가족도 다른 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
건축가 남궁현자가 거주를 할 때부터 그 집의 가정부로 일을 했던 문광은 박사장 그리고 기택의 가족보다도 오랫동안 그 집에 있었던 사람이다. 남궁현자가 떠나면서 박사장이 들어오게 되고 이후 박사장 밑에서 일을 할 기택의 가족이 들어오면서 문광과 그의 가족의 입지는 계속 줄어든다. 오랫동안 그 곳에서 거주를 했던 문광(인디언)은 박사장(유럽인)의 가족과 함께 살아가게 되고, 박사장의 가족이 데리고 온 기택(흑인)의 가족의 모습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물론 완전히 드러 맞지는 않지만 흔하지 않은 소재인 인디언을 왜 끌고 왔나, 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한다.
계단
계단은 많은 작품들에서 계급의 분리를 이루는 소재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계단자체보다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행위로 그들의 계급을 표현하였는데, 극중 박사장의 가족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 기택과 충숙의 가족들만 해도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계단만 내려가지 않을 뿐 아니라 박사장의 가족들은 아래쪽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다혜의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기우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소파씬에서 거실 테이블 밑에 나란히 누워 있는 기택의 가족을 보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사실 안쳐다볼만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하위층에 시선을 두지 않는 기득권층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끝맺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언더독 효과에 휘말려 기득권층을 무조건적으로 경멸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기택과 문광의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가지고 있지만 박사장의 가족에 대한 마음만큼은 똑같다. 같이 몰아 내자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박사장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더 솔직하고 인간적으로 보여서 영화에 대한 설득력이 더 올라갔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내 취향이었던 영화는 별로 없어서 그를 그렇게 appreciate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생충’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의 극한의 섬세함을 확인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시점에서 이게 그의 정점이 될지, 아니면 더 놀라운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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