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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18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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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이삼 그리고 이공이사
많이 걸을 거라던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다. 걷지 못한 만큼 생각할 수 없었고, 쓸 수 없었고, 정리할 수 없던 한해였다. 한두 달의 고민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인생의 숙제들이 많아졌다. 일과 관계, 사랑과 생활, 미래와 현재- 내 삶 전반에 걸쳐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다만 매일 속에 어떤 작은 다짐을 반복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괜찮았다. 무엇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후회는 없었다.
꽉 채워 2년 동안 다닌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귀한 파트너들을 만나 따뜻한 말을 나누며 지냈다. 큰 프로젝트를 마쳤던 6월 이후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들었다. 한편, 어떤 업무들은 예전보다 덜 힘들이고도 해낼 수 있어서 성장했다고도 느꼈다.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흘려보냈다. 좀 더 머물러 누리고,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일상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재미가 쏠쏠하다. 2024년에는 15개의 비디오 -그러니까 한 달에 한두 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좋댓구알'이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어색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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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교토에 다녀왔다. 일흔을 넘긴 엄마는 내가 모르는 한자를 읽어가며 어떤 곳인지 척척 알아채고, 어떤 길이든 착착 찾아갔다. 얕은 영어와 일본어를 쓰던 나를 기특하게 바라봐줘서 어딜 가면 괜히 더 크게 스미마셍~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오네가이시마스~ 했다. 많은 부분 까다로운 엄마에게 이노다 커피, 니시키 시장의 오뎅 가게, 그랑호텔 대욕장, 길에서 만난 세라복의 학생들만큼은 완전히 취향 저격이었다고 본다.
가장 뜨거운 여름, 바캉스로 경주에서 하루- 남해에서 이틀 지냈다. 경주의 100년이 된 고택에서의 낮잠과 남해안에서의 해 질 녘 산책, 늦은 밤 티타임이 좋았다. 서울 아닌 곳을 차로 달리는 기분 또한 만끽했다. 주말엔 장거리 운전을 많이 했다. 춘천, 평창, 속초, 강릉, 연천, 파주, 대전, 천안, 청주, 공주, 예산, 전주, 임실 등 전국을 부지런히 누볐다.
한 계절 간, 새벽 6시마다 수영을 배웠고 친구의 제안으로 클라이밍을 경험했다. 빨간색 수영복을 샀고, 그걸 입고 수영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딸이나 친구, 회사원이나 oo님이 아닌 채로 낯선 사람들 속에 팔다리를 휘적일 때면 조금 외롭기도 했었다. 반면, 클라이밍은 조금 다른 느낌. 맨몸으로 홀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그 옆에 홀드 있어!' 외쳐줬다. 의아했지만 싫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혼자일 수 있고 적당히 공통점을 공유할 수 있는 등산이 내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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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레 찾아온 인생급 현타에 절절한 시간을 보냈다. 2023년은 '월급'이라는 걸 받기 시작한 해로부터 11년 차가 되는 해였다. 문득 손에 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무섭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전혀 새롭지 않은 새로운 소식과 화려한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다 돈 이야기로 보여 무척 피곤해졌었다.
'젊음' 같은 걸 믿기에 더는 젊지 않아졌고, 어른이 되어 단단해진다는 건 평생의 숙제여서 단시간 내에 이뤄질 리 만무했다. 설명할 길 없는 패배감과 찾아오는 대상 없는 원망의 마음이 뒤섞였다. 수시로 붉어지는 눈물을 참고 저릿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나를 다독이는데, 무진 애를 썼다. 분명,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혼란과 폭풍의 심상이 휩쓸고 지나가자 '오랜 계획, 오랜 기다림'이라는 말이 남았다. 내 삶에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 떨림. 걱정보다는 기대함으로 걷기를 마음 먹었다. 무엇이 되었든 있는 그대로 겪어내고 싶어졌다. 물러섬 없이. 온전한 나로 살아갈 때가 되었다. (20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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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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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이이 그리고 이공이삼
2021년 12월 1일.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여 꼬박 1년을 정신없이 보냈다. 낯선 조직에서 불안과 성실의 발을 구르며 자리를 냈다. 처음 몇 개월은 쉽지 않았다. 당장의 성공적 퍼포먼스가 중요했던 터라, 업무적 부담감도 있었고 몇몇 사람들의 결이 다른 말과 태도 사이에서 남 모르게 평정을 찾는 일은 여간 피로했다. 5일 내내 꽉 채운 소음 속에 시달렸고, 주말 간에 겨우 일상을 궤도에 올려놓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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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몇 주, 몇 달. 시간과 열심을 쏟은 대로의 성과는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이직한 회사엔 무척 잘 적응했다. 이젠 이 조직에서 함께 성장하는 것을 고민한다. 물론, 실패도 생각한다.
생업과 경력을 고민하며, 친구 둘과 함께 하던 영화 관련 일에서 물러났다. 고맙게도, 필요한 때에 불러줘서 업무 이외의 시간 중 일부를 써서 대단하고도 즐거운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 가령, 극 장편 영화를 찍는다던지, 영화제를 연다던지, 객석수 11개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오픈한다던지 하는. 내색은 안 해도 한걸음 한걸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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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상반기에는 동네 텃밭 모임의 일원이 되어 수확의 기쁨을 만끽했다. 2년 전 이사를 오자마자 신청해 둔 마을 텃밭을 마침내 분양받은 것인데, 좋은 흙과 비료가 섞인 이만-한 상자 8개가 내 땅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텃밭을 돌보는 일은 정말 행복했고, '작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던 아빠의 말은 낭만적이었다. 각종 쌈 채소와 바질, 가지, 고추, 토마토를 심었고 수확량이 좋아서 주변과 나눠 먹기도 했다. 동네에 2년 만에 개방한 체육문화센터에서 잠시 새벽 수영을 했다.
올해는 예년처럼 몇 개의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진 않았지만, 향후 두고두고 보고 싶은 영화를 발견한 유의미한 해였다. <어��더 라운드>, <소설가의 영화>, <애프터 양>, <우연과 상상>, <헤어질 결심>이 그러했고, 이들 모두 에무시네마에서 관람했다.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 속 수어 대사가, <어나더 라운드>의 마지막 시퀀스가 정말 좋았다.
온라인 서점에서 10권의 책을 샀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조금 더 많은 수의 책을 사들였다. 제67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인 정소현 작가의 「그때 그 마음」을 읽으며 펑펑 울었다. 문장에 떠밀려 울 수 있었고 동시에 기뻤다. 여전히 책을 사랑했지만, 완독한 책은 없었다. 그리고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나- 조금은 무섭고 부끄러운 삶이라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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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MHz, KBS 클래식 라디오를 가장 많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앞으로 남은 평생 이 채널 하나로 충분할 것이라는 확신 속에, 때론 낮고 때때로 높게 감동할 수 있었다. 아이묭, 한로로, 선우정아, 카더가든, 정미조를 반복해서 들었다. 조정은 배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몇 편을 보았고, 연말에는 생애 최초로 발레 공연을 관람했다. 무려 <호두까기 인형>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야간 관람이 무척 좋았다.
하반기에는 집보다도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 음... 과언이다. 하여간 일이 정말 많아서 대체로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위한 모든 행동이 사치인 지경이었다. 늦은 밤 배달 음식을 와구와구 먹으며 ott 콘텐츠를 보다가 잠이 들기 일쑤였는데, 어느덧 불어난 몸과 다음날 아침의 기분 나쁜 죄책감이 늘 부채처럼 남아있었다. 유일하게 나를 먹여 살린 건, 주기적으로 채워지던 엄마의 밑반찬이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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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맵 운전 점수 80점 대의 운전자가 되었다. 실력 증대의 근거는 첫째 - 한 번의 무과실 교통사고와 좁은 골목 유턴 시 미숙함으로 얻은 좌측 와장창창 깨짐(돈도 마음도 깨짐), 둘째 - 외곽/근교 및 춘천, 세종, 강릉, 논산, 무주 등으로 떠난 길고 짧은 여행들, 셋째 - 서울 한복판 출퇴근길 드라이브였다. 자타의에 의해 끌어올린 실력으로 운전하며 가장 뿌듯한 때는 엄마랑 어-야 갈 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엔 가능한 많이 걷을 생각이다. 한 발 한 발 단순하고 조용히, 낮은 마음으로 멀리멀리 가고 싶다. 걷는 것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돌볼 것이다. 작은 소리를 들으며, 구름이 흐르고 나무와 들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에 선한 마음과 깊은 기도가 채워졌으면 좋겠다. 홀로 걸어 쌓은 유익으로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다정하게 살고 싶다.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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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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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남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데에 쏟고 있었다. 그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만을 생각할 때, 그녀는 그 사람들의 안위와 마음을 돌보다가 정작 자신의 아픈 구석은 내팽개쳐놓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라는 문장을 쉬지 않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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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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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 다녀왔다. 10년 만에 ㅡ 다시 찾은 무주에는 비가 많이 왔다. 세 시간여에 달하는 길을 달리는 동안 투둑투둑 차창을 두드리던 몇 개의 물방울은 이윽고 장대비가 되었다. 무주에 가까워지자 초록이 무성한 산등성이와 산등성이 사이마다 신비롭게 내려앉은 구름들이 여름을 열고 있었다. 짙어지는 생명의 현시 앞에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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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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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수영 첫날. 빵빵하게 부푼 허벅지 스치며 집에 와도 7시가 갓 넘은 아침. 곧장 텃밭으로 올라가 초록이들에게 물 듬뿍 주고, 상추 치커리 적겨자 몇 잎 따서 샐러드 반찬 먹었다. 지하철에서 이슬아 열 번째 책 읽으며 좋다 좋다 역시 좋다 되뇌었고, 사이렌 오더로 차가운 아메리카노 픽업해 출근했다. 회사로 들어가는 골목 건너편 횡단보도에 서서, 내 인생 지나치게 잘나가네 생각했다. 그럴 땐, 여름날 큰 바람에 구름처럼 흘러가던 마음이 턱- 하니 걸린다. 또 나만 잘 먹고 잘 사는구나. 주인 없는 빚진 심정으로 갑자기 모든 게 미안해져 버린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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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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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달고 단단한 껍데기를 오래오래 핥아서 녹여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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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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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을 꾸었다. 멀쑥한 얼굴, 말끔한 옷차림. 내가 좋아하던 안경은 벗은 채로. 꿈에서 너는 따뜻했고, 조금은 낯설었다. 꿈에서 너는 먼 자리에 앉았다가 시선이 가까이 머무는 자리에, 마침내는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꿈에서 나는, 오래전 그날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다시 너에게 마음을 뺏기었다. 꿈은 가로등이 은은히 비추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끝이 났다. 나를 바래다주고 다시 그 골목을 빠져나가는 익숙한 뒷모습. 이따금 나는 우리가 걸었던 길과 드나들던 밥집이나 카페에서의 대화와 너의 방에서의 기억을 떠올렸었다. 그게 이 꿈의 이유가 되었을까. 그러나 나는 ‘물색 없이 찾아드는 너와의 일을 언제쯤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꿈에서 너는 근사했고 나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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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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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원한 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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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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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지쳤다. 사랑이란 건 지겹도록 지겹고. 아주 별 거 아닌 것들에 잔뜩 오염되어 더러워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둡다. 새로움을 잃었고, 진심은 영원히 묻었다. 다만 한때 마음을 뒤흔들고 일상을 꿰뚫던 감각들을 날세우려 수시로 문장으로, 침묵으로,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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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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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이일 그리고 이공이이
 '참 열심히 살았다.' 나인 투 식스에는 회사 A를 다녔고, 식스 투 나인과 주말에는 회사 B에서 일했다. 사이사이 프로젝트 단위의 또 다른 일을 했다. 대체로 뿌듯하고 만족스러웠고, 치명적으로 괴롭고 하찮기도 하였다. 모든 일에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것보다 더 우위에 두었어야 할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언지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11월 말에 회사 A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다른 풍경, 다른 사람, 다른 업무 속에서 ‘나를 잃지 않은 채 용감하게 나아가고 싶다’ 생각한다. 우선은 할 수 있는 만큼만 내 호흡대로. 또, 믿는 대로.
 독립예술영화를 다루는 회사 B를 통해서는 총 8번의 오프라인 상영회와 다섯번의 공연을 열었고 향후 몇 년 내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갔다. 함께하는 두 명의 친구 덕분에 가능했다. 일의 규모가 커지며 고민하고 처리해야 할 거리가 많아졌다. 몫을 다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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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써지지 않았다'와 '글을 쓰지 않는다' 사이에서 한없이 게을렀다. 거의 모든 매일의 시간이 일과 잠으로 채워졌고, 간혹의 나머지 시간은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할애했다. 말이 자주 뭉치고 생각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계다. 
 태안, 제주, 고성, 정동진, 춘천에 여행을 다녀왔고 조치원을 매달 한두 번꼴로 오갔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다크 나이트, 미션 임파서블, 트와일라잇, 매트릭스, 007 (다니엘 크레이그 출연작) 시리즈를 차례로 독파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안경>, <데몰리션>, <원더>를 보았다. 후시하라 켄시의 <인생 후르츠>를 무척 감명 깊게 보았다. 그런 삶, 그런 삶. 가장 저조한 독서량을 남겼다. 앨범 단위로는 PJ Morton의 <The Piano Album>을 곡 단위로는 Nicole Atkins의 'Hotel Plaster', Lana Del Rey와 Sean One Lennon이 함께 부른 'Tomorrow Never Came'과 서도밴드의 '뱃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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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23개월 차가 되었다. 연말 즈음에 운전면허를 땄고 첫 차를 마련했다. 재미가 있다. 운전은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입체적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같다. ‘운전을 잘하게 되면 삶도 좀 쉬워질까’ 하는 우스운 질문을 해본다. 2022년의 첫날, 골목길에서 후진을 하다 전봇대를 들이 받았다. 과연, 쉽지 않다.
  이제 서른의 중반을 넘어선다. 겁과 두려움을 알게 되었지만, 실패와 착오에 조금씩 더 의연해지는 것 같다. 삶의 곳곳을 짧게 타는 열정 대신 그윽한 온기로 아늑하게 만들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나와 나 사이에서, 나와 타자 사이에서 자유롭게 순환하면 좋겠다. 혼자이지 않을 것이다.
“2022년도에는 좋은 일만 많이 있으면 좋겠다. 험한 광야에서 살아가려면 깡도 있어야 하지만 덕에 지식이, 지식에 지혜가 필요해. 일어나 밥 챙겨 먹고, 상큼하게 하고 다녀.” 2022년 1월 1일 엄마에게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 삶에 흐르는 잠언이 부럽다. 머지않아 내게도 상큼하게 샘솟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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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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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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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까지 부어줘야 되는 거야. 동백에 물을 주다가 어느 순간 화분 받침으로 금새 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해졌다. 좀 전의 일을 교훈 삼아 스투키에 물을 주었는데, 더 일찌감치 물이 넘쳤다. 가늠되지 않는 일. 화분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물이 범람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나 또한 아직 나의 크기를 채 다 모르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중요한 건, 그저 꾸준히 물을 주는 일. 맺을락 말락 망울진 봉오리가 끝부터 붉게 물들다 제 몫만큼 탐스러운 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
잘하는 것, 전략적인 것, 효율이 높은 것들만이 살아남게 된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꾸준함이 종종 촌스럽고 낡은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잘함의 시작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최선의 것을 더듬어 찾는 여정에서 꾸준함은 언제나 중요한 연료이지 않을까. 그러나 설혹 꽃도 열매도 피우지도 맺지도 못한다 하여도. 잠시 멈춰서서 다시 그 자리에서 새로움을 꿈꿀 것. 성실하고 신실하자. 화분에 물을 주며 생각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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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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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이공 그리고 이공이일
 부모의 집을 떠나, 완전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퇴근길 창문 틈으로 밥 짓는 냄새와 낮은 전등 불빛이 새나오는 따뜻하고 오래된 동네. 무엇보다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도심의 하늘과 이리저리 난 산책로가 무척이나 근사하여 낮과 밤 할 것 없이 걷고 또 걷는 생활을 이어갔다. 코로나가 본격으로 기승을 부리던 독립생활 초기에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가늠조차 어려웠지만, 불가항력적 변화 속에서 살림을 꾸리고 제 손으로 집안에 온기를 들이며 일상의 감각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했다. 특히 여름의 길고 긴 장마(라고 쓰고 기후 위기라 읽는)가 잠시 가셨을 때부터 초겨울까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산에 올랐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의 널따란 바위에 앉아 저편의 남산타워를 보고, 사과 한 알을 온전히 아삭이다 오곤 했다. 
 화려하지 않고 조용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오래된 드라마와 영화를 반복해서 보았고 시끄러웠던 하루의 끝에는 조도를 낮춘 방에서 타인의 글을 읽었다. 이슬아의 글을 구독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으며 자주 감탄했다. 무엇보다 정세랑을 만났고 그 대단한 기세에 무척 고양되었다. 올해 가장 사랑하고 아주 많이 들은 앨범은 Balmorhea의 <Rivers Arms>와 Nils Frahm의 <Screws>, Marrakech의 <Shape>.  
 한 번의 퇴사가 있었고, 두 명의 친구와 팀을 꾸려 영화와 관련한 세 개의 정부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을 디자인하는 능력에 추진력까지 갖춘, 묵묵하게 궂은일을 도맡아 해준 동료들 덕분에 기획안을 쓰거나 결과물을 만드는 실행 단계에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두 친구가 크고 작게 이루는 성과에 순수하고 기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은 무뎌졌던 일의 의미성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었다. 하반기에는 기후 위기를 주제로 한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제작할 기회가 주어졌고, 좁은 시선을 확장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생업과 맞물려 진행하느라 생각한 것만큼 에너지를 쏟아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고 교훈이 되었다. 
 매주 꼭 한번은 새벽예배에 갔다. 세상에 발을 내딛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고자 했다. 때때로 감정과 일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마구 얽혀있을 때, 새벽빛처럼 가장 밝고 그윽한 깊음 가운데 많은 것들이 선명해지던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잠시간 기록에 몰두하였는데 쓰는 동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관찰하고 어울리는 단어나 표현을 고르고 정리하면서 기도를 할 때만큼이나 일상의 불순물이 닦여나가고 비워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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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인연보다는 익숙한 관계 속에서 시간을 쌓아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애써 나를 설명해야 하는 일은 만들지 않았다. 부연이 필요한 누군가를 알고자 하는 일도 굳이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말을 아끼는 해였다. 연애하지 않았다. 불안을 다루는 데 조금 더 수월해졌고, 생각을 단순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힘이 세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때 벽을 허물고 싶었던 나는 경계를 만들어 나를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적이 멀리 있지 않던 이공이공을 보내며, 이루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나 거창한 계획 대신 생활의 방향이나 무드를 정해본다. 소유나 성취가 목적이나 이유에 앞선 삶은 원치 않기에. 이공이일엔 조금 더 단순하고 솔직하고 싶다. 매일의 삶을 성실하게 살고 달라지는 계절을 감각하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가능하면 더 많이 걷고, 땅에서 나온 것들과 친밀하게 지낼 생각이다. 타자와 작게 만나고 깊게 동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러모로 쉽게 나아지지 않겠지만 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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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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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먹을 두부를 사러 나갔다가 노을에 이끌려 조금 걸었다. 전염병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르고 죄없는 하늘은 아름답기만 하다. 작고 조용한 마음을 구하고 모두의 평안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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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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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고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잠시 틈을 내어 이원하의 산문을 읽었다. 밤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물기 가득 머금은 가을을 보았다. 비에 젖어 무겁게 내려앉은 꽃과 나무와 낙엽들. 처량도 처연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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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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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가수가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동네를 걸어 다닌다. 어제의 그는 길 중간에 서서 괴로운 고함을 치기도 했다. 노래도 이름도 얼굴도 알려진 그 사람이 이제 세상을 외면한다. 그가 속한 그룹이 오래전에 발매한 앨범을 찾아 듣는다. 나는 마지막 곡인 9번 트랙을 많이 좋아한다. 전율. 언제 들어도 전율. 이 밤은 고단한 하루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그의 영혼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하기로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여, 시대를 위로하는 목소리여. 부디 시름 잊고 평온하시라.(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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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try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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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기로 선택하면서 성인이 되어감을 느낀다. 특히 내 터진 입을 틀어막고 목구멍을 지나 핏덩어리처럼 울럭이는 말을 참을 때, 그래서 매일 열두 번씩 하는 실수를 열한 번으로 겨우 줄였을 때 딱 고만치 어른으로 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끝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열세 번씩 실수하기도 할 것이다. 지금처럼. 대환장. 그리고 그 밤에는 이불을 대차게 차대다가 까무룩 잠도 들겠지. 그런데 그냥 그렇게 살아보려는 것이다. 나의 말을 비우고 그 자리에 신의 고요가, 평안이, 모든 허물을 가리는 사랑이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인간으로 살아보려고. (2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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