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uidove-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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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대하여.
어떤 노래에 유달리 꽂히는 순간이 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영영 이 노래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순간은 더 소중하다.
그렇기에 한 곡 반복은 하고 싶지 않은 얄궂은 마음이 덤으로 따라온다.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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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일순 좋아하는 노래도 끝나는 순간은 올 것이고,
플레이리스트에서 다음 차례를 꿰차고 있는 노래는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신나서 자신을 내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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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나는 괜히 잘못 없는 그다음 차례의 노래가 미워지고 다시 되감기 버튼을 찾아 이전의 노래를 듣는다.
삼, 사분 남짓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똑같은 감정으로 또 되감기를 누르고, 또 되감기를 누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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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의 노래는 무척이나 억울할 거야.
아무런 잘못도 없이, 순간 내 얕은 감정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역시 내가 좋아했기에 같은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것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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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감기를 몇 번 누르다가 조금 귀찮아져서 이번에는
좋아하는 노래 바로 앞의 노래를 틀어 놓는다.
어떤 순간이 좋으면, 그 순간을 향하는 과정까지가 좋으니까,
이전 차례의 노래는 비교적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이 곡이 끝나면,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노래가 나온다는 걸 아니까.
좋았던 순간을 넘어 덜 좋았던 순간으로, 다시 좋았던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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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뻗고 뻗은 생각은 결국 매 순간이 경계구나-라는 경계에 잠시 멈추어있다.
넘을 수 있을까, 없을까 재고 따지다 보면
어느새 넘어 있고, 눈 앞엔 또 새로운 경계가 놓여 있다.
경계라는 건, 어떤 때엔 시간이었다가, 위치였다가, 말 한 마디, 표정 한 번에 담긴 감정이었다가.
넘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전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국 그 사실만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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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의 세계는 양반인 편이다.
누르면 되돌아갈 수 있는 되감기 버튼이 존재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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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시 쓰기 수업의 교수님은 시란 ‘현재를 잡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시인이란 잡지 못해 속에 얹혀버린 현재를 문자로 토해내는 사람들은 아닐까 한다.
그렇게 따지면 당신과 나, 우리는 이미 모두 시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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