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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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은 퇴색한 채 떨어지거나, 떨어진 뒤에 퇴색했다. 천천히 나는 세상으로부터 유리되고 있었다. 나는 철저히 내 과거 안에 있었고, 시간은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기록이라는 습관은 은밀히 매력적이어서, 앞으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끊이지 않고 병행되라라는 예감이 들었다. 실제의 삶과 이 기록 사이에 가로놓인 쓸쓸하고 단호한 침묵을 나는 느꼈고, 아마도 글 쓰는 사람들의 우울이나 염세는 그 지점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문학과지성사, 2016년,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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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가끔 발작처럼, 다가오는 햇살을 집어삼킬 듯 강렬한 암흑을 몰고 다시 찾아왔다.⌋
✍ 메리 셸리, 김선형 옮김, 프랑켄슈타인, 문학동네, 2019년,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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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만병통치약은 엉터리 의사가 저승의 강과 사해의 물로 조제해서는, 병의 운반용으로 제작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저 길고 납작한 검은 배 같은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파는 물약 병이 아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 전에 벌써 병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따라 서쪽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월든 (Walden), 은행나무, 2014년,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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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잡함이 있는 데 삶의 윤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철학자나 신학자보다 1차적으로 예술가나 시인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엄밀한 논리적 체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이러한 체계는 내게 편집증을 불러일으킨다. 융의 저작은 엄밀한 체계로 내게 영향을 미친 적이 결코 없다.⌋
✍ 머리 스타인, 김창한 옮김, 융의 영혼의 지도, 문예출판사, 2015년,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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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빙글빙글 재주넘고, 문장과 문장은 요란하게 뒤얽히고 떨어지면서 의미와 숨바꼭질한다. 서로가 차례대로 물음을 던져 상대를 희롱하고 유혹하는 가운데, 흥겨움이 고조에 달하면 문장들은 춤판을 벌이는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원당희・이기식・장영은 옮김, 천재와 광기, 예하, 1993년,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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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초로 일상의 나날을 시적인 것으로 굴절시켰다.⌋
✍ 슈테판 츠바이크, 원당희・이기식・장영은 옮김, 천재와 광기, 예하, 1993년,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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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비장한 것을 장식물에서나 역사적, 또는 이국적인 것의 먼 전망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고차원적인 것, 그의 완결성 속에서 하나가 되려는 감정의 승화된 내포성에서 찾는다. 그는 알고 있다. 그때그때의 감정은 어떤 것이든 그 힘이 단절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의미심장해지며, 인간은 누구나 어떤 목표에 집중하면서 흐트러짐이 없이 개개의 욕구에 온 힘을 소모할 때에만 위대하다. 인간이 위대해지는 것은 오로지 개개의 열정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수액을 자기 것으로 빨아들이고, 강탈과 탈선적 행동을 통해서 강해지는 때이다. 그는 알고 있다. 나뭇가지는 정원사가 쌍가지를 잘라내거나 억제했을 때 비로소 두 배로 꽃피운다는 원리를.⌋
✍ 슈테판 츠바이크, 원당희・이기식・장영은 옮김, 천재와 광기, 예하, 1993년,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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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자유 주창자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이들의 집단이 성인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방치될 경우, 거기엔 강자의 압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인 세계의 가장 심한 압제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기 쉽다.⌋
✍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2014년,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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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호의적인 어른들로 자라날 수 있기 위해선 자신의 주변을 호의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아이의 중요한 소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해 주어야 하고 아이들을 단지 신의 영광이나 국가의 위대함 따위의 추상적인 목적에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 버트런드 러셀, 송은경 옮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2014년,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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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큰 행운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 행운을 앞에 두고 갑자기 겁쟁이가 되버려. 행복을 잡으려면 불행을 이겨내는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한 거야. 소중한 걸 발견했을 때는 그것 때문에 다른 커다란 걸 잃게 되더라도 절대로 그걸 놓치지 말고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단 말야. 정말로 소중한 걸 만나지도 못한 채 죽는 사람도 많이 있으니까. 어리광 피우는 건 그 정도면 됐어.⌋
✍ 타케모토 노바라, 기린 옮김, 시모츠마 이야기, 두드림, 2005년,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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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여러 가지 일로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 할 때도 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옷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충고를 해줘. 그 충고는 정말 심플하고 논리적이야.⌋
✍ 타케모토 노바라, 기린 옮김, 시모츠마 이야기, 두드림, 2005년,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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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편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아니므로 장편소설 작가가 되기 어려워요. 모든 장편소설은,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군더더기가 들어 있기 마련이죠. 반면에 단편은 내내 본질적인 것만을 다룰 수 있답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 2015년,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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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제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간의 문제는 자아의 문제,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지요. 자아는 과거고, 현재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측,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도 해요. 그 두 가지 수수께끼가, 불가사의가 철학의 본질적인 과제예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결코 그 과제를 풀지 못할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계속할 수 있지요. 계속 추측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추측을 우리는 철학이라 부르는데, 그건 정말 순전히 추측일 뿐인 것이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론을 만들 것이고, 그 이론들에 매우 즐거워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 이론을 풀고 다시 새 이론을 만들겠지요.⌋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 2015년,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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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고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난 지옥을 상태라고 생각해요. “내가 바로 지옥이다.” 만약 어느 영혼이 저주를 받는다면 천국에 가도 소용없다. 그 자신이 영원히 지옥이기에.⌋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 2015년,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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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책으로 돌아가고, 인용문으로 돌아가죠. 에머슨이 그것에 대해 경고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인생은 하나의 긴 인용문이 될 수 있다는 걸 유념하라."⌋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윌리스 반스톤, 서창렬 옮김, 보르헤스의 말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마음산책, 2015년,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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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요리 방송에서, 그런 방송이 하도 많아서 어떤 프로였는지는 까먹었지만, 보다가 토할 것 같은 음식을 만든 적이 있다.
꽁치 오렌지 주스 영양밥이라는 요리였다.
물 대신 사각 종이 팩에 든 오렌지 주스를 콸콸 붓고, 꽁치 한 마리를 넣어 전기밥솥 스위치를 켠다. 완성된 오렌지색 밥 위에 꽁치 살을 발라내어 섞는다. 맛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속이 메슥거린다. 아, 메슥거린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얼마나 끔찍한 요리인지 어디 한번 먹어나 보자고.⌋
✍ 사노 요코, 이지수 옮김, 사는게 뭐라고, 마음산책, 2015년,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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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다른 남자 사람들보다 그를 조금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유머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을 다 웃게 하는 게 아닌 조금은 우울하고 괴짜스럽기까지 한 유머였지만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배를 잡고 깔깔대느라 음료가 코로 나오기 일쑤였다. 최고로 희한하다 싶은 문장을 내던져도 그는 더 희한한 문장으로 되받아 나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 소이, 꿈, 틀, 이덴슬리벨,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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