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그러게 대화를 좀 해..
shaguagua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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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至於斯?
how we are here?
It's from an epic about fisherman and 屈原(qū yuán; BC. 343 ? ~ BC. 277 ?), title is 漁父辭(yú fù cí). This story came up in episode 3 and 7. Where Gu xiang asked Wen kexing who is 屈原 and Chao weining told Gu xiang incorrect version of 屈原's poem.And Gu xiang askes Wen kexing who is Qu y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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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in episode 3, you may find it bel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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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oem has story and very famous as it has quoted in many different media in 漢字文化圈(chinese charater cultur boundaries). Historically he was a talented politician. As his sir name 屈(Qu) was the same as king's sir name in 楚(chu) so there are possibility he was a royal blood. When he lived there were 7 nations (齊; qí 楚; chǔ 燕; yàn 趙; zhào 魏; wèi 韓; hán 秦; qín) that wanted to unite china. 秦,楚,齊 were the most powerful countries, later 秦 united.
Actually you don't need to know these to understand the story. It would be a little helpful why it has used and may find hidden intension. Because when I first noticed 漁父辭, I somehow expected it would be a sad-ending. Because of the chaos around the nations, he followed his king in 楚, but his king was stupid and the other vassals hated and begrudged him of talent. With the chaotic status of 楚, his king died of not listening to 屈原. Later son of his king banished him for the death.
屈原 was still faithful for his country 楚, and had kept trying to save 楚, but no one listened. Finally, he tried suicide to tell for his king to listen and save the country. Unfortunately he didn't and 楚 had fallen. Funny that who had united those 7 nations, his grand mother was from 楚, who was 宣太后(xuān tài hòu; the queen of the Great).
This poem shows a person who had tried to save his most value, but there was no one to listen. The only thing he could do for them to listen was suicide. Sad thing is that even he died no one had listend and his precious nation fell. 屈原 is a model of loyalty. The story goes,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屈原 had banished from 楚, wandering around watersides, talking to himself, lanky and futile.
漁父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與?何故至於斯?
A fisherman noticed him and asked, Were you not the dignitary of 楚? What had happened to be here at this point?
Then the fisher man was listening to lamenting of 屈原. 屈原 was saying how he could be suited with renegades and became a traitor. He could not forsake his fidelity. After the conversation, the fisher man sings based on 屈原's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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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if the water is clean I would wash my hat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if the water is tuebid, I would wash my feet.
which means, whatever the water is, if it's clean he would follow if it is not he wouldn't associate. And this was on episode 3, where Zhou zishu had met Wen kexing again in the warterside. So I guess, Wen kexing might have known Zhou zishu's identity all along.
I guess Wen kexing intended as, what had happened to 天窗(tian chuang)? had something happend? that's why you're wondering around like that? Is there something you wouldn't bare anymore that's why you left?? and because of that Zhou zishu started to listen and be generous about Wen kexing. And the situation is rather similar with Zhou zishu and 屈原. So, who knows 漁父辭 may have guessed the tragic ending of the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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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漁父辭 reminds of Zhou zishu's story, there are parts alike to 屈原. The difference could be how a person can be active and passive. The story between Jin wang and Zhou zishu would had been similar to 屈原 and 楚王. It's really shame I would never know 🥲At some point I even think it would had been better if Zhou zishu died as a begger traveling where he wanted to do and go. The love and respect he got from people around aren't what they are but burdens. The affection from Wen kexing is too violent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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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llera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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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여인에 대한 단서도 찾을 겸, 잡무 처리 겸, 가볍게 돌아 보는 동네 한 바퀴. 우선은 올드 시티부터다.
​어디 보자, 수첩에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는 임무가... 아, 그래. 칼의 기둥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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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사건 때 조사차 방문했던 영국군 막사 밖에서 군인들이 이 기둥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기둥의 존재가 영 못마땅한 듯, 위에서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부수러 나갈 기세. 다만, 오스만계 원주민 중에도 이 기둥을 꺼림칙하게 보는 자들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게. 증오와 고통뿐인 기억을 굳이 저렇게 남겨서 되새길 이유란 대체 뭘까. 제 아무리 성공적인 복수를 기린다 한들, 그 복수의 원인을 제공한 비극이 없던 일이 되지도 않을 테고. 흠...
​아무튼 이걸로 칼의 기둥과는 완전히 작별이다. 다음은 동전을 찾아 형님의 옛 단골 카페로 가 볼까? 참, 그런데 그 카페 위치를 아직 모르는구나. 단서는 라미르 가문. 형님 말로는 그 가문의 일꾼들도 좋아하던 곳이라는데. 문제는 라미르 가문 사람을 어디 가서 찾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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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핫산 가문 근처 가게에서 라미르 출신 상인 발견. 같은 오스만 사람인 척 변장하고 가서 물어 보니, 매우 친절하게 카페 주소를 공유해 준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는 자기네 가문 놔 두고 왜 남의 집 앞에서 장사를... 형님 말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된 건가?
​상인의 말에 따르면, 카페는 굴 아프샤르 카라반세라이 - 즉, 보겔의 화랑과 이맘 자히르 모스크 사이 바자 가에 있었다고 한다. 있었다라는 얘기는 지금 거기 가서 카페를 찾지 말라는 뜻이군. 꼬꼬마 셰리가 20대 청년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없어졌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잠깐, 그럼 형님이 실마리로 언급한 나무 문이나 아치형 입구도 지금은 옛날 말일 수 있다는 건데.
​뭐, 가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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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겔의 화랑을 지나, 큰길을 쭉 따라서 모스크까지 왔다. 카페가 있던 곳은 화랑에서 모스크 사이 어딘가. 이제 다시 화랑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집중 모드로 걷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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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옛 카페 터까지 온 건 좋은데, 이 근처에서 높은 탑이 보이는 길이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커다란 나무 문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 혹시, 이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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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앞으로 멀찍이 탑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셜록 오른쪽의 나무 문이 형님이 말한 그 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느낌상 출발점은 제대로 짚은 듯. 다음으로 이 길 왼편에서 아치형 입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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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를 통과해 뜰 안에서 발코니 근처 나무를 뒤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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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댕. 잃어버린 동전 제7호 회수 완료.
​동전이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있어서, 예상 외로 살짝 애를 먹었다. 하긴, 덕분에 도둑맞는 일 없이 셜록 손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겠지. 참고로, 이번 동전은 마이크로프트의 베니스 여행 기념품이라 한다. 설마, 그 남자 동전 수집 중인 어린 동생을 위해 여행지에서 일부러 가지고 온 건 아니겠지? 셜록에게 물어 보면 분명 아닐 거라고 하겠지만, 마이크로프트도 어쩌면 그의 생각보다는 상냥한 형이었을지 모르겠다.
​자, 동전도 찾았겠다, 이제 또 올드 시티 어디로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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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을 보니, 올드 시티 북쪽 해변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모양이다. 오래된 난파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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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부서진 배 같은 건 아무래도 안 보이는데. 내려가서 살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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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풍파에 이미 자취를 감추지는 않았을까 했더니, 그때의 흔적이 얼마간 남아 있었다. 이 난파선은 셜록이 코르도나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발견한 것으로, 그 뒤 어린 셜록에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역할을 해 주었던 듯하다.
​두 소년은 배에 이름까지 지어 주고, 집에서 가지고 나온 몇 가지 물건으로 배를 꾸몄다. 그 가운데는 아버지의 수집품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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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셜록의 아버지는 홈즈 가족이 코르도나로 오기 전 사망한 게 아니었나? 홈즈네가 지금의 저택으로 이사 오는 시점에서 그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 아니면, 그 전까지 코르도나에 있는 다른 동네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 뒤 그랜드 사라이의 그 집으로 옮긴 것일까. 내가 이야기를 잘못 따라왔는지, 아니면 설정 충돌인지 좀 헷갈린다. 저택에서 아버지의 부고가 실린 신문을 봤을 때 존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아마 후자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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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처럼 찾아 낸 안식처도 불청객의 등장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셜록과 존은 힘센 동네 아이들의 텃세에 밀려 곧 난파선에서 쫓겨나야 했다. 하지만, 셜록의 기억과 달리 존은 도망이 아니라 무기를 가지러 갔다고 한다. 다리 위의 대포? 그 다리에 대포 같은 게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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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 찾으러 가는 길에 시청에서 보물찾기 행사용으로 숨긴 물건 발견. 찾으려고 애쓸 때는 죽어라 안 보이더니, 이런 데서 얻어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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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보물과 이어지는 단서의 이름은 '모래사장'. 보물의 위치상, 이 난파선 퀘스트를 하면서 자연스레 발견하도록 처음부터 의도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초회차 플레이 때도 이런 식으로 맥이 풀릴 만큼 쉽게 찾은 보물이 꽤 있었다. 반면, 끝까지 못 찾아서 결국 공략글의 도움을 빌려야 했던 적도 없지 않았고.
​그나저나, 이거 그때도 잠깐 궁금했는데, 이 보물 찾기 개발진더러 직접 해 보라고 하면 어떨까? 아무리 그래도 본인들이 만든 게임인데, 이쯤이야 식은 죽 먹기겠......지? 아, 물론 내가 찾느라 애먹다가 심통 나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고요.  (흠흠)
다시 난파선 얘기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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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존과 셜록이 찾았던 대포는 다리 위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당시 두 소년은 자기들의 안식처를 빼앗아 간 동네 녀석들에게 이 대포로 복수해 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둘은 대포를 쏘지 못했고, 그 아이들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셜록은 그때 일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 혼자 해적 놀이에 빠져 있는 존에게 그만 잊어 버리자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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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존의 기억에 따르면, 난파선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닌 듯하다. 셜록이 봐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어?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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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셜록은 존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수도 있고, 그래서 뭐 하냐는 식으로 삐딱하게 대꾸할 수도 있다. 오랜 벗의 기분을 헤아린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해야겠지만, 그 전에 셜록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하면 후자 쪽이 좀 더 자연스러운 흐름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을 택하든, 존은 셜록에게 해변 위 작은 술집 이야기를 꺼내면서, 당시 그 벽에 뭔가 표식을 남겼다는 말을 전한다. 해변 위 술집? 하지만, 이 근처에서 술집을 찾으러 다녔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 이 대목에서 셜록이 찾아야 할 것은 술집이 아니라 해변에 있는 동굴 입구. 수첩에는 제대로 '동굴'이라 적혀 있는데, 왜 존의 대사만 엉뚱하게 나왔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문제의 동굴은 이 다리 아랫길로 내려가 해변을 쭉 따라가다 보면 찾을 수 있다. 덤으로, 가는 길에 보물 하나 더 회수 가능. 이 보물과 이어지는 단서는 '긴 다리'라는 이름으로 수첩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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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에 이르자, 셜록도 그제야 이 장소가 기억난 듯 뭘 찾을 수 있는지 보자고 한다. 동굴 안에는 바지로 만든 돛과 배 이름이 적힌 나무 판자, 낡은 조타륜, 부서진 배 한 척이 있었다. 이 가운데, 돛을 만드는 데 쓰인 바지는 그 동네 녀석들의 옷을 몰래 훔친 것, 그리고 낡은 조타륜은 그 난파선에 있던 아버지의 수집품으로, 역시 그 녀석들한테서 되찾아 온 것이었다. 그래, 아무리 힘없는 어린애라지만, 그 정도로 순순히 물러날 셜록이 아니지.      
​셜록은 동굴 안에 있던 물건들로 부서진 배를 다시 고치기 시작한다. ‘죄와 벌’에서 처음 나를 애먹였던 그 퍼즐. 이 게임에서 또 만날 줄은 몰랐지만, 왠지 반가운 기분이네. 그때보다 발전된 형태로 다시 보게 되어 더 좋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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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완성한 다음, 셜록은 추억을 되찾아 기쁘다고 순순히 인정하며, 마지막으로 존과 함께 기념 사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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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자, 올드 시티에서 당장 할 만한 일은 대충 끝낸 듯싶으니, 이제 그만 다른 동네로 넘어가 볼까. 그리하여, 다음 목적지. 그랜드 사라이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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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yobian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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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bag 3
“우리 2반, 오늘도 공부 많이 했어?”
“쌤! 셤 끝나면 아이스크림 사주는 거 진짜죠.”
“3일 동안 맨날 사줘요?”
[지영아 나 오늘 학원보충땜시 바로 가야댐ㅠㅠ열라 뛰어서ㅠㅠㅠ]
“이것들 좀 보게, 말을 돌리네. 내일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고.”
“맛없는 거 사오지 마요!”
[ㅋㅋㅋ갠차나 별로 할것도 없으~ 먼저 가]
“딴 건 몰라도 수학은 잘 해야 돼. 알지? 쌤 존심 지켜줘라~”
“얘들아, 우리 꼴등만 하지 말자. 쌤 존심을 위해.”
[땡큐ㅠㅠㅠ낼 맛있는거 사줄게 머 조아함?]  
“2반이 수학 1등 아니면 아이스크림이고 뭐고 포상 없음이야.”
“와, 갑자기 말 바꾸는 거 봐!”
“조용~ 이제 집 가서 공부해야지. 당번은 열 맞춰놓고 나와라. 내일 보자!”
[걍 뚱바 하나? 낼 봐~~~]
번호 순으로 두 명씩 돌아가는 당번은 조회 전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쉬는 시간마다 칠판을 닦고 지우개를 털고 종례 후 책상을 정돈하거나 문단속을 하는 등 잡다한 일거리들을 맡는다. 기말고사 하루 전 보충수업을 들으러 제일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간 다음 번호 친구 대신 오늘은 지영 혼자 파한 교실에 남았다. 종례가 늦는 다른 반 친구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복도 창에 기대 서있고, 빈 교실에는 지영이 시험 대형으로 책상들을 하나씩 떼어놓으며 격자 사이를 오갔다.
대걸레가 밀고 쓸며 지나간 자국이 덜 마른 물기를 입고 오후의 볕을 받아 희미하게 반들거렸다. 문자로 보낸 ‘별로 할 것도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기에 지영은 일부러 느긋하게 빈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여유를 부렸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을 나가는 학생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복도에서 웅성이거나 소곤대는 목소리들을 흘리듯 듣기도 하며 슬리퍼 걸친 발을 끄덕끄덕 흔들었다. 끽- 앉은 자리서 일어나려다 옆에 붙은 책상이 같이 밀린 모양인지 위에 올려져있던 누군가의 가방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았다. 아직 안 간 애가 또 있었나? 주위를 돌아보며 가방을 들어 올려 조심히 제자리에 올려두었더니, 어라, 여기는 내 뒷자리.
희은이 자리다. 지영은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한 발짝 떨어져서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사실 희은이 전학 오고부터 그는 줄곧 이랬다. 뭔가 잘못을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몰라서 제 발만 저리는 사람마냥. 아마도 희은이 제 뒷자리로 온 뒤로 자꾸만 바람에 먼지에 실려 왔다 흩어지는 이름 모를 냄새를 모른 척 넘기지 못하고 반응했던 것이 발단이지 않을까. 그래, 바로 이 냄새 말이야...
“어. 티백이다.”
가방이 떨어졌던 자리에 하얀 네모 모양의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있기에 가방에서 빠져나온 지우개인 줄 알고 지영이 손을 뻗어 집어든 것은 지우개가 아니라 티백이었다. 이게 어디서 튀어나왔지? 전혀 낯선 사물은 아니지만 이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보던 사물도 아닌지라 그는 누가 봐도 티백이 맞는 물건을 들고 진짜 티백이 맞는지 얼마간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감상적이게도 무슨 동화책에 나올 법한 차의 요정이 흘리고 간 소지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차 냄새 나네...”
음? 그러고 보니 익숙하네. 엥? 진짜 이 냄새 맞는데. 어라, 그러면.
“앉아서 뭐 해?”
지영은 튕기듯이 벌떡 일어났다. 화장실에 갔었던 모양인지 희은이 축축한 손을 교복 치마에 문질러 닦으며 교실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지영의 구부린 등을 보며 말을 걸었던 시선이 급하게 핀 무릎과 함께 올라가 그 손에 들린 티백에서 멈추었다.
그 때 백희은의 촘촘한 눈썹 아래 깜빡 감았다 뜬 눈에 스친 것은 뭐랄까. 지영의 콧등에 닿았다 사라지던 냄새만큼이나 빠르게 증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추적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혹감. 그리고 호기심. 어색하고 사소해서 다음으로 미뤄왔던 질문을 지금 꺼내리라는 직감. ‘언제, 어떻게 물어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오늘이 될 줄은 둘 다 정말로 몰랐겠지만.
“미안. 근데 이거 가방에서 떨어진 거야, 내가 꺼낸 게 아니고. 아. 가방은 내가 실수로 떨어뜨린 거 맞아. 미안.”
“아냐, 괜찮아. 별 것도 아닌데 미안하긴.”
그러게. 지영은 자기가 말해놓고 왜 미안한지 정확히 몰랐다. 녹차 티백이 어떻게 하면 중학생의 엄청난 비밀이나 약점이 될 수 있을까. 진짜 요정이 아닌 이상. 요정일 리가 없는 희은은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물기 없는 손바닥을 계속 닦아내고, 마찬가지인 지영도 뭔가를 들춘 사람처럼 마음이 초조해져서 하던 일을 잊어버렸다.
“저기,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서 나는 것 같은 냄새가 있거든. 혹시 네가 알고 있으면... 뭐냐고 물어보려고 했어. 예전부터.”
“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
“좋은 냄새야! 진짜로. 실은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희은은 곧 가방 지퍼를 잠그고 어깨에 맨 가방끈을 양손으로 당겨 잡고 지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앞으로 지영의 손 안에 잠시 머물렀던 티백이 척 내밀어진다.
“이 냄새였나 봐. 아까 알았어.”
지영은 희은이 집에 갈 채비를 하는 것 같아 조금 서둘러 말을 마쳤다. 모든 의문이 풀렸으므로 저를 더는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길 전하고 싶었다. 웬일이니, 내 후각이 그렇게 예민한지는 나도 오늘 처음 알았다니까. 그저 오해만 안 샀으면 했다. 그 애에게서 뭔가 불쾌한 냄새가 났던 게 아니라, 그냥 근처에 있으면 맡아지는 냄새가 착각이 아니었는지 궁금했을 뿐이라고. 희은은 티백을 받아들지 않고 말했다.
“사실 나도 물어보려고 했었어. 네가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궁금해서.”
‘지영이 네가 하도 킁킁대서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고.’ 이런 말은 한 적 없다. 희은이 그렇게 덧붙이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이런 가정을 멋대로 해놓고 안심하는 자신이 좀 치사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티백을 그냥 제 주머니에 집어넣기로 했다.
“너 녹차 되게 좋아하나 봐.”
“아. 별로 그런 건 아닌데...”
“차지! 우리 반 드디어 끝났어. 진심 반 바꾸고 싶다. 지겨워~”
말이 너무 많은 담임 때문에 매번 종례가 가장 늦게 끝난다는 3반 학생들이 잔뜩 지친 얼굴로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오기 시작하면서 복도가 소란스럽게 붐볐다.
“오늘 당번? 도와줄까?”
“아냐. 다 했어. 그리고 나 오늘은 병원 가는 날.”
“아, 맞네. 그럼 이따 문자할게. 내일 시험 잘 봐!”
차례로 얼굴을 내보이는 친구들에게 손을 잔뜩 흔들어주고 나서 지영은 마침내 창문을 닫고 잠근다. 소등을 하고 나와 문을 잠근 후 마지막 순서로 열쇠를 복도 쪽 창틀에 쏙 끼워 넣으면 끝난다. 뒤를 돌자 희은이 아직 가지 않고 지영이 하는 양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는지 흥미로운 거라도 본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당번 일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아직 내 차례가 안 돌아와서 몰랐거든.”
“그래? 별 거 없어. 둘이 같이 하니까 나눠서 해도 되고.”
두 층을 내려가면서 대화는 조금씩 살을 붙이듯 이어졌다. 그나마 오늘 마주치지 않았다면 시험이 끝나고 자리를 바꾸면서 멀어져 여름방학이 시작할 때까지 둘이서만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영은 오늘처럼 친구들을 먼저 보낸 날이면 이런 장면을 자주 상상하곤 했었다. 같은 반 친구와 학교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2학년 2반 차지영을. 꼭 지금과 같이 나란히 걷는 그림을.
“물어봐도 되나. 병원은 네가 아파서 다니는 거야?”
“병원? 아아. 아니, 우리 할머니가 입원하셔서. 일주일에 한 번 병문안 가고 있어.”
“할머니랑 같이 살아?”
“응. 태어날 때부터. 나는 거의 할머니가 키웠지.”
실내화를 넣고 운동화를 꺼내 신는 동안 나누는 이야기까지 그린 듯이 이어졌다. 지영은 대개 질문을 먼저 던지는 희은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인사하고 시시콜콜한 얘깃거리들을 꺼내야겠다. 원래 어느 지역에서 살다가 왔다고 했더라? 가족은 몇 명이야, 이런 건 실례인가.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지 물어볼까. 맞다. 제일 먼저 우리 반에서 누구랑 제일 친하냐고 물어보자. 음. 너무 속보이나.
“아까 교실에서 네가 뭐라고 말하다가 끊기지 않았나?”
“어떤 얘기?”
“내가 너 녹차 되게 좋아하는가 보다고 했어. 티백 갖고 다니는 거 보면.”
지영은 최근 발이 조금 자랐는지 부쩍 꼭 죄는 운동화 뒤축을 대충 밟고 걷다가 불편함을 못 이기고 멈춰 서서 발을 어떻게든 욱여넣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허리를 숙여 낮아진 시야로 두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착시가 일었다. 운동장 모래에 가둔 열기가 아주 천천히 식어간다는 건, 여름방학이 정말로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별로 안 좋아해. 아니.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렇구나...”
운동화 앞코를 쿡쿡 박으며 허리를 피고 보니 희은이 지영보다 키가 약간 더 컸다. 그리고 가리지 않은 이마 위로 슬슬 따가워진 햇볕이 내리쬐어도 굳이 손차양을 대지 않고 대신 살짝 인상을 썼다. 지영이 그를 보며 실없는 부러움에 빠질 때쯤, 희은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번호 찍어줄래?
지영은 이상하게 시험을 앞두고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을 하며 냉큼 폰을 받아들었다. 졸다가 들켰던 조례시간에 했던 버릇대로 입술을 말아 미소를 반쯤 숨기며 번호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런 지영을 보며 여태 알던 것보다 훨씬 맑은 낯으로 마주 웃던 희은은 그 날 저녁 그에게 첫 문자를 보냈다.
[시험 다 끝나면 나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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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gmwpe79326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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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사진 10553324 r3se1545l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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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ayohina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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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의 약속> - 밤낮 (@nightiday)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이었다. 알람을 맞춰 두었는데도 피곤에 잠겨 듣지 못한 모양인지, 히카와 히나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히나는 계속 새어 나오는 하품을 멈추지 못한 채로 엉기적거리며 방을 벗어났다.
고등학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늘어나기 시작한 스케쥴은 연말을 맞아 급격하게 증가해 파스파레 멤버들을 쉴 틈 없이 일터로 내몰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생활은 1월이 되고 개학을 앞두고 나서야 겨우 쉼표를 찍었다.
“조금 더 잘까?”
물을 마시며 중얼거리던 히나는 문득 시야 한구석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아무도 없던 거실 소파에 어느새 제 언니인 히카와 사요가 앉아 있었다. 아직 꿈을 꾸는 중일까? 히나는 몇 번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다가 저를 흘깃거리는 사요의 눈과 마주치고 나서야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다음 행동은 재빨랐다. 히나는 방으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옮겨 눈치껏 거실로 왔다. 사요의 표정에는 대놓고 안도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히나는 정답을 고른 스스로가 대견스러웠지만 들뜨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요는 그런 히나를 금방 파악한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웃어?” “응? 우, 웃고 있지 않은데.”
히나는 손을 들어 볼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표정을 바꿨다. 사요는 그런 히나를 잠시 바라보는가 싶더니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네.”
다정한 음색이었다. 말에 온도가 있다고 한다면 겨울의 추위를 녹일 정도로 무척 따스했을 것 같았다. 이 말을 건네기 위해 사요가 굳이 방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더 그랬다.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쉬질 않고. 요즘 많이 바빠서 힘들었잖니.” “그치만 언니랑 얘기하고 싶은걸. 이렇게 얼굴 보는 것도 오랜만이잖아.”
실은 사요가 말한 것처럼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푹 쉬어 휴식에 전념할 예정이었지만, 히나는 천연덕스럽게 둘러댔다. 걱정과 의심을 섞어 바라보는 사요의 눈빛도 능청스레 넘겼다.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사요였다. 좀 더 편히 있으라는 듯 ���요가 ���네는 쿠션을 받아 히나는 품에 꽉 안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발을 동동 구르자 사요가 손으로 허벅지를 지그시 눌러왔다. 사요가 꾸짖기도 전에 히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헤헤, 미안! 이렇게 언니랑 있으니까 너무 신나서.” “신날 게 뭐가 있니.”
사요는 한숨을 내쉬곤 도로 팔을 가져가 팔짱을 꼈다. 기분 좋은 무게감이 사라져 히나가 잠시 낙담하는 사이 사요가 검지로 팔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바쁜 건 마무리가 된 거야? 최근엔 집에 일찍 들어오지도 못했잖아. 그러다 몸이라도 상하면….” “으응. 당분간은 계속 바쁠 것 같아.” “곧 개학하는데도?”
히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일정을 떠올렸다.
“라디오 게스트 출연, 콘서트 연습, 광고 촬영, 예능 출연, 치사토쨩 드라마에 특별 출연도 해야 하고….” “잠깐, 히나. 그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치만 지금 파스파레 멤버들도 다 이렇게 일하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일하고 있다니, 그런 이야길 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네가….” “나?” “네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거잖아.”
히나는 말을 잃었다. 노골적인 사요의 관심과 걱정이 온통 히나를 어루만졌다. 왠지 목이 말라 애꿎은 침만 삼키다가 점점 더 어두워지는 사요의 얼굴을 깨닫고 히나는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하나도 안 힘들어! 정말이야. 매일 매일 룽하고, 엄청나게 재밌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사요는 불만 어린 어투로 중얼거리곤 입을 닫아버렸다. 말만 그렇게 하지 하나도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어떤 말을 더 하면 좋을지 몰라 히나가 망설이는 사이 사요가 그럼, 하고 말문을 다시 열었다.
“3월에도 많이 바쁠 예정이니?”
3월? 히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제 막 1월 초순을 지나기 시작했으니 3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3월 초에 졸업식이 있으니 그 뒤에 바빠질 수는 있지만….
“조정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야. 괜찮아. 안 바빠!”
생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지만 히나는 호언장담했다. 밴드 스케쥴이 아닌 개인 스케쥴이라면 소속사 사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사요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히나는 할 수 있는 힘껏 신뢰감이 넘치는 미소를 내보이며 저를 믿으라는 듯 몇 번이나 가슴을 두드렸다. 과장된 행동이 다소 우스웠는지 사요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 “응. 절대 무리하지 않을게! 근데 3월은 왜?”
은근한 기대감이 담긴 히나의 물음에 사요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입을 달싹거렸다. 볼이 점점 붉어지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20일.”
3월 20일. 그 날짜가 어떤 날짜인지 히카와 히나가 모를 리 없었다.
“3월 20일에 바쁜지 알고 싶어서.”
히나는 멍하니 있다가 불안하게 떨리는 사요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허겁지겁 근처 탁자에 놓여있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두 장을 더 넘겨 별표가 되어 있는 날짜를 확인하고 히나는 바로 대답했다.
“토, 토요일이고, 아무 일도 없을 걸?!” “그래. 너만 괜찮으면. 그날은 같이 있자.” “정말?!” “그래, 정말.” “약속하는 거야.” “응.”
3월 20일은 히카와 히나와 히카와 사요의 생일.
사랑해 마지않는 언니로부터 생일 데이트 신청을 받고, 히나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 제 볼을 쭉 잡아당겼다. 사요는 그런 히나를 보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곤 웃었다.
“룽하지 않아!”
히나의 입에서 나온 건 거절의 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치사토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아야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마야와 이브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스태프는 곤란하다는 듯 웃었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히나씨,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3월 20일에는 예정대로 콘서트를 진행할 겁니다. 분명 이전에 콘서트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죠? 파스파레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납득해주신 걸로 알았는데요.” “그게 3월 20일이라는 말은 없었잖아.” “히나씨의 생일이어서 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3월 20일은 나만의 생일이 아니란 말이야.”
히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스태프는 히나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제 할 말을 무뚝뚝하게 이어갔다.
“스케쥴이 맞는 날이 3월 20일 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공연장 대관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날 공연하기에 실력이, 연습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콘서트 연습은 쭉 해와서 공연에 무리가 가지도 않을 테니 말이죠.”
치사토는 점점 어두워지는 히나의 표정을 보고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히나가 풀이 죽은 모습은 그다지 보고 싶지가 않았다.
“우선 회사 측의 입장은 알았어요. 하지만 콘서트 날짜는 좀 더 미리 알려주셨으면, 아니, 우선 물어보기라도 하셨더라면 히나쨩도 이렇게 반발하진 않았을 거예요. 생일 같은 중요한 날이라면요.” “치사토씨. 지금이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콘서트는 진행한다고 분명 말씀드렸었고, 멤버들 모두가 동의했었어요.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가 곤란합니다. 날짜 변경을 하게 되면 너무 많은 것들을 다시 진행해야 해요. 회사 전체가 3월 20일 파스파레 첫 단독 콘서트를 위해서 노력 중입니다. 그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군요.”
스태프는 자기가 할 말만 늘어놓고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것마냥 책상 위에 널브러진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태프가 방을 빠져나간 뒤 멤버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히나에게 쏟아졌다.
“히나쨩….” “공연장이 가깝지도 않은데…. 콘서트가 끝나도 당일날 집에 돌아올 수도 없고 그러면 아예 언니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거잖아.”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리는 히나의 모습에 이브가 다가서서는 손을 꼭 잡았다.
“히나씨, 포기하지 말아요! 제가 같이 가서 날짜를 바꿔달라고 말씀 드려 볼게요!” “그렇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히나씨! 분명 어떻게든 될 겁니다.” “그래. 다같이 가서 제대로 사정을 말하면 알아줄 거야!
이어지는 마야와 아야의 말에 고개를 치켜든 히나의 시선은 그대로 치사토에게 향했다. 곤란한 듯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본 히나는 더욱 의기소침해져서는 힘없이 물었다.
“많이 어려울 거 같아?” “아마도.”
히나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을 본 치사토는 재빨리 덧붙였다.
“그래도 히나쨩이 정말 원한다면, 나도 같이 가줄게.”
스태프의 강경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쉽게 꺾을 수 있을 결정이 아니라는 걸 알 텐데도 발 벗고 나서주는 멤버들이 고마웠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제 주변에 가까이 다가선 멤버들의 얼굴을 히나는 하나하나 마음에 담았다. 누구보다도 콘서트를 기대하고 있었던 그 면면을 새기며 짙은 괴로움을 애써 외면했다. 한참의 침묵이 사무실을 휩쓸고 난 다음에야 히나는 작게 고개를 저어 멤버들에게 답할 수 있었다.
히나는 머그잔을 꽉 쥐고 옆에 앉아 있는 사요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3월 20일…. 생일에 함께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흘린 것이 방금 전이었다.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히나는 죄 없는 컵만 매만지다가 사요의 낮은 한숨에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어쩔 수 없잖니.”
고개를 들어 사요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사요가 시선을 피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자연스레 표정을 가렸다.
“일을 우선으로 해야지.” “괜찮아?”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어.” “모처럼 언니가 먼저 말한 거잖아.”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어, 히나. 때로는 약속보다 일을 우선시해야 할 때도 있는 거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요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아까부터 맞지 않는 시선이 자꾸만 히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히나는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언니랑 내가 한 약속이 우선이잖아.” “회사에서 날짜를 바꿀 수 없다고 했다면서. 사정은 다 알았으니까,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해.”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요의 왼팔을 히나가 다급하게 잡았다. 그 반동으로 반대쪽 손으로 잡고 있던 머그잔의 물이 넘쳐 바닥을 적셨지만 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요만을 바라보았다.
“언니는 화도 안 나?” “왜 말을 그렇게 해.” “약속한 것도 어기고, 생일날 같이 있지도 못하는데, 왜 화를 안 내는 건데?”
그제야 사요가 휙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히나. 지금 내가 화를 내면. 그러면 네 기분이 나아지겠어?”
정답이었지만 히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려다보는 사요의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서운해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만해. 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잖아. 이해하려고 하잖아. 나는…. 하아.”
사요는 거칠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호흡을 가다듬고는 팔을 잡고 있는 히나의 손을 떼어 냈다. 잠시 살피는 듯한 시선이 히나를 쭉 훑었다. 이윽고 바닥에 흘린 물로 푹 젖은 히나의 양말까지 눈에 담은 사요는 잠깐 눈썹을 찡그렸지만 별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생일은 내년에도 또 오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사요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히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사요의 방문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그치만 언니가 함께 있자고 말한 생일은 이번이 처음인걸.”
히나의 목소리에선 미련이 뚝뚝 흘러넘쳤다. 이번 생일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먼저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히나 자신이었고, 일이 이렇게 된 데엔 전적으로 히나에게 책임이 있었다. 그러니 화도 내지 않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사요를 보면서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괴로운 건지. 히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괜찮은 척도 할 수 없었다.
사요는 정말 함께 생일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생일에 함께 있는 게, 별 것 아닌 약속이어서?
생일은 어차피 매년 돌아오는 거니까?
히카와 사요에겐, 언니에겐, 히카와 히나의 생일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아니, 아니다. 사요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히나는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다정한 히카와 사요를 잘 알았다. 어렵게 콘서트 이야기를 꺼낸 자신을 배려해서 괜찮다고 답한 사요의 마음을 싫을 정도로 알았다.
그런데도 히나는 자꾸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약속을 했는데 왜 어긴 거냐며 화를 내도 괜찮다. 지금이라도 일정을 바꿀 순 없는 거냐며 칭얼거리는 것도 좋다. 그도 아니면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며 아쉬운 티라도 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현실은, 사요는 저 굳게 닫힌 방문 너머에 있다.
언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진 걸까.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번뜩 정신이 들었다. 히나는 욕심쟁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깨달았다. 이전과 같은 언니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는 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린코가 흔쾌히 허락해준 덕분에 사요는 점심시간에 학생회실을 빌릴 수 있었다. 학생회실이 낯선 것인지 두리번거리는 아야와 그런 아야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 있는 치사토에게, 사요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이, 너무 딱딱하다, 사요쨩.” “아야쨩의 말이 맞아. 같이 밥을 먹는 걸로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세 사람은 우선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풀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먼저 모이자고 제안했으니 무슨 말이라도 꺼내는 게 맞을 텐데, 사요의 머릿속은 얼마 전부터 히나에 대한 생각으로 엉망인 채였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사요를 금방 알아차린 치사토가 입을 열었다.
“히나쨩 관련된 일이지?” “네?” “사요쨩이 이렇게까지 어쩔 줄 몰라 하고, 또 우리한테 말을 걸어온 걸 보면 말이야.”
조금은 놀리는 것 같기도 한 말투였다. 사요는 잠시 망설이다가 히나와 있었던 일을 두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히나와도 가깝고, 다툼의 원인이 된 콘서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자리를 만든 것이 사실이었다.
다툼 아닌 다툼이 있었던 그날 이후, 사요는 히나의 얼굴을 도통 마주할 수 없었다. 사요가 히나를 피하는 것은 아니니 히나가 사요를 피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처음으로 히나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을 깨닫고 사요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과거 자신의 행동까지 겹쳐 보여 이따금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로젤리아 밴드 연습에서는 유키나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받았다. 개학을 한 이후에도 다를 건 없었다. 정말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히나쨩, 사요쨩과 다퉈서 그렇게 기운이 없었던 거구나.”
아야는 기운 없는 히나의 모습을 곧바로 떠올린 것인지 괴로운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퉜다…. 사요는 아야의 말을 한 번 곱씹고 눈을 내리깔았다.
“후회되는 건 제 스스로 감정 조절을 못한 거예요. 히나에게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가장 속상한 건 히나란 걸 알면서도 그 앨 달래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요. 사실 저도…. 히나의 말에 실망했었거든요.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당시엔 어른스럽지 못했어요.”
사요는 두 사람에게 고해 성사를 하는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늘어놓았다. 마음이 가벼워지자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용서를 구할 사람은, 이 말을 직접 건네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 하지만 히나가 저를 피한다는 확신을 얻으면 얻을수록, 사요는 점점 더 히나에게 다가갈 용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먼저 다가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게 어렵고 어려워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생각이 닿은 것이 같은 학교의 파스파레 멤버들이었다. 사요는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한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치사토와 아야는 서로를 바라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히나쨩이 너무 낙담해서 파스파레 멤버들끼리도 고민이 많았어. 회사에서 날짜 변경은 도저히 안 된다고 하고…. 그렇다면 차라리 히나쨩에게 특별한 생일날을 만들어 주자는 얘기를 했거든.” “그래서 우리도 때마침 사요쨩에게 도와달라 부탁하려던 참이었어.” “부탁이요?” “생일 축하 영상을 만들 생각이야.”
아야는 쥐고 있던 수저를 더 꽉 쥐며 야심차게 말했다.
“히나쨩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터뷰를 여럿 따서 영상 편지를 만드는 거지. 아, 다른 사람들 것도 찍어서 편집할 거니까 너무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혹시 불편하면 거절해도 괜찮아. 강요하는 게 아니니까.” “아뇨, 불편하다기보다는.”
사요는 잠깐 말을 망설였다 작게 중얼거렸다.
“이걸로 그 아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요?”
작은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치사토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사요쨩은 히나쨩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 가, 갑자기 무슨.”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한 것뿐이야.”
장난기 어린 치사토의 말에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사요를 본 아야는 키득거리며 맞장구쳤다.
“그러게. 히나쨩이 알면 정말 기뻐할 텐데.” “그 애는 제 동생이고 저는 그저 언니로서….”
치사토와 아야는 부정하는 사요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은근한 미소를 걸치고 저를 응시하는 시선을 피하지 못한 사요는 어느새 발갛게 물든 볼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촬영은 사요가 고민을 털어놓은 방과 후 3학년 A반에서 진행되었다. 때마침 아야가 캠코더를 가지고 등교한 덕분이었다. 먼저 촬영한 팝핀파의 영상을 보겠냐는 물음에 사요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을 참고하고 싶지 않았다. 히카와 사요의 마음은 히카와 사요의 말로 전하고 싶었다.
책상과 의자를 모두 교실 앞쪽으로 밀고, 빈 자리에 의자 하나만을 두었다. 사요는 그 자리에 앉아 분주해 보이는 아야와 치사토를 바라보았다. 렌즈를 보자 그제야 조금 긴장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긴장을 달랜 사요는 시선을 곧게 앞으로 향했다.
“지금 말하면 되는 건가요?”
간이삼각대에 캠코더를 고정시킨 치사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히나, 안녕.”
사요는 조금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수업시간 내내 집중도 못하고 계속 생각만 했는데도 이렇다. 아야가 건너편에서 수신호를 보내는 것을 치사토가 손을 저어 말렸다.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 잠시 두 사람을 살핀 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사요는 천천히 마음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생일 축하해.”
가장 먼저 축하의 말, 그 다음은 사죄의 말.
“그날 신경질적으로 굴어서 미안해. 변명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파스파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까, 그 장소가 네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내 욕심을 앞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사실은, 히나.”
사요는 꽉 주먹을 쥐었다.
“나도 너와 같이 생일을 보내고 싶어. 잊은 건 아니지? 먼저 같이 있자고 한 건 나라는 걸.”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 마음을 먼저 살피지 못한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난 항상 네게 미안한 일만 하는 것 같아. 그래도 이런 나를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거겠지.” “고마워, 히나. 네 옆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 나도 더 노력할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오늘 하루가 너에게 즐거운 날이 되었기를.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히나."
이내 빨간불이 꺼졌다. 사요는 후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런 사요를 보고 치사토가 입을 열었다.
“솔직한 마음이 담긴 멋진 편지라고 생각해.” “으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히나쨩도 보면 정말 기뻐할 거야. 그런데….” “아, 녹화가 잘 안 됐나요?”
사요가 걱정스럽게 묻자 치사토가 빙긋 웃고는 아야를 바라보았다. 나, 나?! 아야가 잠시 당황하더니만 눈썹을 모으곤 손을 만지작거렸다. 눈치를 보는 듯한 그 행동에 사요는 어쩐지 불길해져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그게 사실, 있잖아, 사요쨩…. 찍기 전에 전하는 걸 깜빡했지 뭐야. 이 영상은 콘서트에서 틀 거거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봐도 괜찮은 생일 축하 영상을 찍어야 해. 방금 전에 한 말들은 팬들이 들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런. 미리 말을 해줄 걸 그랬나봐.”
녹화를 시작하고 나서 아야가 다급하게 보내던 수신호는 그런 의미였던 걸까. 다 알면서 촬영을 그대로 진행한 치사토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다시 캠코더를 조작했다. 사요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하고는 벌떡 일어나 치사토를 쏘아봤다.
“시라사기씨…!” “너무 걱정하지 마. 다시 찍을 거니까. 후훗. 사요쨩도 히나쨩의 일이 되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렇게는, 어떻게인 건가요….” “자아, 시간이 없어. 얼른 다시 찍자.” “방금 전 찍은 건.” “콘서트 땐 제대로 된 영상을 내보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방금 전에 한 말들은 영상으로 전하는 것보다는 히나쨩에게 직접 들려주는 게 좋지 않겠어?”
치사토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사요는 불편한 심기를 누르고 다시 자리에 앉아 렌즈를 바라보았다.  
히나는 성대한 한숨을 내쉬었다. 사요와는 여전히 서먹한 상태로 3월 20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19일인 어제, 금요일에 리허설을 위해 공연장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으니 정말로 올해 생일은 사요와 함께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어떤 얼굴로 사요를 보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어디까지 사요에게 제 욕심을 내비쳐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욕심을 깨닫기 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히나는 계속 마음이 어지럽기만 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졸업식도 온통 엉망인 상태로 보냈다. 졸업식만큼은 사요를 피할 수 없었다. 제 마음을 어떻게 갈무리하면 좋을지 몰라 방황하는 게 바보같이 보일 정도로 사요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요가 다가와 졸업을 축하한다고 했을 때는 혼을 빼놓고 사요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언니 얼굴. 좋아. 좋은데. 좋지만. 언니….
나중에 부모님에게 건네받은 사진의 히나는 웃고 있었다.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나? 기억력에는 자신이 있는데 제 얼굴이어서 그런 건지 잘 기억이 나진 않았다. 그래도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요의 얼굴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좀 더 즐거운 졸업식일 수 있었는데. 하네오카의 졸업식도 하나사키가와의 졸업식도 모두 끝났다. 사요는 눈에 띄게 말수가 없어진 히나를 보고도 다 이해한다는 듯 굴었다. 히나는 또 그게 불만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은 자꾸만 꼬리를 물고 물어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히카와씨!” “히나쨩, 생일 축하해!” “히나씨, 축하드림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박수가 쏟아졌다. 오전 최종 리허설을 앞두고 스태프와 멤버들을 모아 간단한 생일파티를 했다. 히나는 방긋 웃으며 크게 고마워, 인사를 돌렸다. 모두가 웃는 얼굴로 히나의 생일을 축하하고 건강을 빌었다. 즐거운 일만 가득하기를 빈다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라고 덕담을 건넨다. 히나는 웃었다. 열심히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고 누가 보아도 오늘의 주인공인 히나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딱 한 사람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로 생일을 축하 받고 싶었고, 축하해주고 싶었던 그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완벽했을 텐데. 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렇게 사무치도록 외롭지 않았을 텐데.
“와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봐.”
저도 모르게 툭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히나가 뒤늦게 탄식했다. 평소처럼 우기고, 조르고, 애원하고, 뭐라도 좋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같이 있자고 할 걸 그랬다.
“그럼 이쯤에서 주변 정리하고, 파스파레 분들은 최종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히나는 순식간에 혼잡해진 방 안에서 사람을 헤치고 가방이 있는 곳으로 향해 핸드폰을 찾았다. 사요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공연이 끝나면 무리해서라도 돌아갈 테니까, 자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사요가 밤이 늦어 위험하다고 꾸짖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멋대로 굴지 말라고 혼내더라도 다 괜찮았다.
“히카와씨?”
스태프에 부름에 가방을 뒤지던 히나는 고개를 들었다. 파스파레 멤버들과 스태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히나를 보고 있었다. 히나는 잠시 시끄러워진 머리를 잠재웠다. 아무리 찾아도 핸드폰이 보이질 않는다. 괜찮아. 기억할 수 있어.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숙소에 핸드폰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낭패였다.
“무슨 일 있어, 히나쨩?” “아니야, 갈게.”
최종 리허설이 우선이었다. 기대감과 긴장감이 어우러진 멤버들의 얼굴을 보고 히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모든 게 다 끝나면 언니를 보러 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아야가 중간 MC에서 두 번 정도 혀를 깨물어 버벅거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식적인 마지막 노래를 끝내고 멤버들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후다닥 무대 안쪽으로 뛰어든 상태였다. 밖에서는 온통 앵콜 콜이 울리고 있었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말없이 무대의상을 갈아입고 있었다. 가장 먼저 스테이지로 올라간 것은 발을 동동 구르며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던 아야였다. 아야쨩! 깜짝 놀란 치사토가 급하게 따라 나갔고, 이브와 마야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곤 그 뒤를 이었다. 히나는 여기저기 고개를 돌려 시계를 찾아내 시간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무대 구석구석을 비추는 조명에 눈이 부셨다.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객석이 보였다. 무대 가운데에선 치사토가 마이크에 소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흥분한 아야를 타이르는 게 보였다. 히나는 큐시트를 떠올리며 자리로 향했다. 첫 앵콜곡은 데뷔곡인 슈와링 드리밍이었다.
“여러분, 앵콜 고마워요!!”
앵콜 첫 곡 다음 순서는 아야의 MC 였다. 히나는 잠시 숨을 돌리며 물병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두 곡만 더 연주하면 끝이 난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까, 히나가 루트를 고민하는 사이 갑자기 전광판이 번쩍였다.
“어?”
히나가 고개를 올려 화면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영화관에 온 것처럼 전광판만이 존재감을 빛냈다. 화면에서는 곧 히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팝핀파티입니다! 파스파레 첫 단독 콘서트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리고, 3월 20일이라고 하면~?! 히카와 히나씨의 생일이죠! 생일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 뒤늦게 객석에서도 함성이 올랐다. 히나는 아직도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계속해서 눈만 깜빡거리다 어느새 다가와 옆에 선 멤버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아야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때?” “우리가 준비한 선물인데.” “헤헷. 꽤 힘냈지 말입니다.” “히나씨가 웃어준다면, 이 정도는 해내는 것이 무사의 도리입니다!”
스크린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멤버들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저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에 히나는 왠지 울고 싶어졌다.
“이런 걸 다 언제 준비한 거야.”
화면에는 계속해서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애프터 글로우, 헬로해피, 라스 그리고… 로젤리아. 히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4명뿐이었다. 순간 팬들의 함성이 고요해지더니 곧바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히나를 파스파레 멤버 누구랄 것 없이 부드럽게 지탱했다. 히나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 어깨를 잡은 아야를 바라봤다. 아야는 웃으며 말했다.
“끝까지 보는 거야, 히나쨩.”
그와 동시에 화면이 반짝였고, 객석에서 가장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세요, 파스파레 팬 여러분. 공연은 즐겁게 즐기고 계신가요?>
낯익은 목소리.
모를 수가 없는.
평생을 들어온.
<저는 히카와 사요라고 합니다. 알고 계시는 분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히카와 히나의 언니입니다.>
언니.
<히나는, 제 쌍둥이 동생입니다. 기타를 정말 잘 치고, 기타 뿐만이 아닌 뭐든지 금방 잘 해내는 아이예요. 조금은 엉뚱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그것도 그 아이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파스파레의 팬 여러분이라면 그런 히나의 매력도 이미 알고 계시겠죠.>
영상 속 사요가 작게 미소지었다.
<오늘은 히나의 생일입니다. 소중한 휴일에 시간을 내서 파스파레의 공연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많은 분들이 오셨겠죠. 파스파레를, 히카와 히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히나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히나야-! 사랑해-! 히나! 멀리서 여러 목소리가 들렸다. 히나는 뒤를 돌아봤다. 빼곡하게 채워진 공연장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풍경인데도 새로워 보였다. 흔들리는 민트색 블레이드가 끊임없이 시야에서 일렁였다.
<팬 여러분,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도 파스파레를, 파스파레의 기타리스트 히카와 히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히나의 곁에서 파스파레와 히나를 지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히나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겼다.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운 사요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누구도 아닌 히카와 히나의 편이 되어 달라 청하는 제 하나뿐인 쌍둥이 언니를.
<마지막으로… 히나.>
그리고 그 입에서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렸을 때, 히나는.
<내 동생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히나는 더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히나는 계속해서 거울을 들여다봤다. 눈은 여전히 퉁퉁 부은 채였다. 콘서트를 마친 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눈에 냉찜질팩을 대고 있었건만 붓기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얼굴로 사요를 찾아갈 순 없었다.
“룽하지 않아….”
사요를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볼에 바람이 들어갔다. 다람쥐 마냥 볼을 잔뜩 부풀리던 히나는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히히 웃었다. 언니가 그런 영상을 찍었다니! 여기저기서 들린 팬들의 목소리, 멤버들의 따스한 손, 다정한 언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말. 히나는 그 모든 것들을 평생 잊지 않을 셈이었다.
“히나쨩…, 좋은 건 알겠지만 잠 좀 자자….” “치사토쨩, 어떻게 그런 걸 찍을 생각을 했어? 응? 찍을 때 언니는 어땠어? 자지 말고 일어나 봐-! 아야쨩도, 이브쨩도, 마야쨩도!!”
콘서트가 끝나 기력이 빠진 멤버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고 있었기 때문에 히나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히나와 가장 가까이 앉은 치사토가 눈을 반쯤 뜨고서 극성맞은 히나를 애써 견디고 있었다.
“계속 잘 거야!?” “계속 잘 거야.” “말 안 해줄 거야!?” “말 안 해줄 거야.”
치사토는 건성으로 히나의 장단을 맞춰준 후 가방을 뒤적거려 아이패드를 꺼내 히나에게 건넸다.
“아이패드는 왜?” “이따 방에 들어가서 보고 자. 사진 앱에 들어가서 SY로 검색해. 마지막 생일선물.”
그렇게 말하고선 치사토는 아예 이브쪽으로 돌아누웠다. 분명 자고 있는 게 분명할 텐데, 치사토가 다가온 걸 알아차린 것처럼 이브는 자연스럽게 치사토를 제 품에 꽉 안았다. 치사토의 감긴 눈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며 히나는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호텔에 도착해 좀비처럼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는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고 히나는 재빨리 제 방 입구에 있는 욕실로 뛰어들었다. 아침에 급하게 머리를 말리고 나서느라 놓고 간 핸드폰은 역시나 기억 그대로 세면대 위에 놓여 있었다.
“휴.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영상을 보기 전에 사요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히나는 잠깐 상상에 잠겼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털어냈다. 어쨌든 중요한 건 3월 20일, 아직 12시가 지나지 않아 오늘은 여전히 생일이라는 점이었다. 사요에게 전화를 걸어서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다. 히나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키패드를 열어 1번을 꾹 눌렀다. 자주 들어 곧잘 흥얼거리곤 했던 컬러링과 함께 어디선가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
아무리 들어도 욕실 밖에서 들리는 게 맞았다. 말도 안 돼. 설마. 히나는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면 급하게 들어오느라 카드키를 따로 키홀더에 넣지 않았는데도 방에는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 달칵,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짧은 복도 너머 넓은 침대 위.
“늦었네, 히나.”
여상한 목소리로 사요는 히나를 맞이했다.
“제대로 약속 지키러 왔어.”
히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자리에 멈춰 섰다가 천천히 사요에게로 다가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 이 방에는 어떻게 들어온 건지, 왜 말을 하지 않고 온 건지, 어쩌다 영상을 찍을 마음이 생긴 건지, 멋대로 피해 다닌 자신이 밉지는 않았는지…. 수많은 질문이 입안에서 서로 나가겠다 아우성쳤지만 결국 어느 것도 입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히나를 사요가 살짝 허리를 기울이며 올려다보았다.
“눈이 왜 그래?” “너무 울어서…. 못생겼으니까 보지 마….”
히나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자 사요는 피식 웃고는 도로 팔을 잡아 내렸다. 사요의 손이 닿은 팔이 화끈거렸다.
“벌써 다 봤어. 못생기지도 않았고.” “아닌데.” “고집은.” “완전 눈 많이 커졌는데. 엄청, 엄청 통통해졌는데.”
투덜거리며 말하니 사요가 황당한지 허탈하게 웃고는 제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히나는 못 이기는 척 사요의 옆에 앉았다. 침대가 푹신해서 잠시 휘청거리자 방황하는 손을 사요가 끌어당겼다. 히나는 은근슬쩍 사요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아직 바깥의 추위가 옷에 남아있었는지 사요가 작게 몸을 떨었다. 많이 추울까? 히나는 걱정 어린 시선으로 사요를 올려다보았지만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딱 붙은 채로, 잠시동안 히나도 사요도 말이 없었다.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가 두 사람의 숨소리와 차분하게 어우러질 무렵 히나가 조심스럽게 사요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언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12시는 얼마 남지 않았다. 3월 20일, 약속의 날이 곧 끝난다. 그 전에 히나는 사요에게 전할 말이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이 말을,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닿고 싶어서, 곁에 있고 싶어서, 그게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기를 원하고 원해서….
히나는 사요의 손에 깍지를 꼈다. 사요는 말없이 그런 히나의 손을 조금은 아플 정도로 쥐었다. 언니가 언제라도 이 손을 놓지 않기를. 놓는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먼저 손을 내밀겠다고 다짐하면서, 히나는 고개를 들어 사요에게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언니.”
사요는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생일 축하해, 히나.”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마를 맞대고 웃었다. 3월 20일, 어느 약속이 이뤄지던 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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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밤낮
-트위터 아이디 : @nightiday
-코멘트 : 전 세계에서 히카와 자매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획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히카와가 영원히 행복하기를. 사요, 히나,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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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ion-de · 6 years
Text
베르사체 타입 샘플: 졍님
졍님 - 우타프리(노래의왕자님) 잇토키 오토야 편지
4장
제나에게.
안녕, 제나. 너의 ��물 세번째의 생일을 축하해.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는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부끄럽네. 생각해보니 우린 수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글로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제나의 생일에 넣어주던 카드처럼 짧은 내용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서 어색한 걸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말로서는 분명 하지 못할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글로 남기기로 했어. 제나의 앞에 서면, 해야 할 말이 뭔가 정리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조금 길어지겠지만, 읽어줄래?
이런, 분명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쓰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건데, 처음부터 이래선 아무런 의미도 없겠다. 행동이 먼저 앞서버리는 건 나의 나쁜 버릇이지. 알고 있고, 이것을 고치려고 하는데 제나의 앞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더라고. 이제 내년이면 곧 부부가 될 사이인데, 제나에게 어울리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제나와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이 진정한 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걸. 그래서 자꾸 긴장이 풀리는 걸지도 모르겠어.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제나에게 생일 축하를 한다고 글로 처음으로 전했던 게, 우리가 학교에서 만났을 때 이후였지. 내가 도와주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같은 교실에 앉아있었던 그 때를 떠올리면, 어쩌면 우리의 사이는 그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돼. 그런 말이 있잖아.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필연이 된다, 라는 말. 그런 대단하고도 사소한 우연이, 제나와 나의 만남을 이끌어주었지. 그리고 함께 오디션을 준비를 하기도 하고, 같이 점심을 먹기도 하고. 언제나 제나는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힘을 내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숙제를 잊어버린 나를 도와주기도 하고, 어려운 과제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 제나를, 언제나 눈부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몰라. 그리고, 그렇게 성실하고 착한 제나를 더욱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 외에도 물론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내가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제나가 수영장에 빠졌을 때야. 제나가 그 때 눈을 뜨지 못했으면 어쩌지, 하고 아직도 내 안에서는 강한 불안감이 되살아나는걸. 기껏 친해지고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니. 그게 무서워서, 너무나도 무서워서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나는 네가 그 때 눈을 떠주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제나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서 깨어났을 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조금 이기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너와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그 때가 처음이었어. 내가 제나를, 정말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게. 제나와 함께 하던 시간에서, 어느새 제나가 내 안에서 큰 존재로 자라고 말았다는 걸, 그 때 깨달았으니까.
그 다음으로 뜻 깊은 사건이라면, 참 여러 가지가 떠오르지만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제나도 잘 알고 있던, 오진 해프닝이야. 기억하고 있어? 건강검진 때, 내가 곧 죽는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 사건. 뭐, 결국에는 오진이었으니까 다행이었지만……. 아하하, 나중에 토키야에게 우리 둘 다 너무 순진하다고 한숨 소리를 듣고 말았어. 왜 그런 걸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러게. 제나에겐 제대로 말하지 않았었네. 그러니까 이번 기회를 빌어서, 얘기할게. 꼭 들어줘.
나는 그 때 정말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한 달 밖에 없는 줄로만 알았어.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밤낮으로 연습을 하고, 어떻게든 제나와 페어를 맺었잖아. 그렇지만 내게 남은 목숨은 이제 한 달. 나 때문에 제나에게 피해가 가는 건 죽어도 싫었어. 제나의 꿈을 내 손으로 부숴서는 안 된다고 느껴서, 나는 그렇게 말했던 거야. 제발 나 대신에 다른 사람과 페어를 맺어달라고. 하지만 제나가 절대 안 된다고 고갤 저으면서, 울먹이면서 끝까지 나와 함께 하겠다고, 오디션을 나와 꼭 맞이하고 싶다고, 내 꿈과 제나의 꿈이 하나가 되어서 결코 떼놓을 수 없으니까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말해준 그 때, 사실 무척이나 기뻤어.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도 역시 제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 제나의 존재가 내 안에서 너무나도 커져서, 이제 내 음악에서 제나가 없으면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걸 그날에야 깨달은 거야. 그건 참 슬프고도 행복한 일이었지. 뭐, 물론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해였고 오진이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해프닝이라 웃음이 나오는 일이기에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 맞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나와 같은 길을 걷고 싶다는 내 자신을 깨달았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은 일일지도 모르겠어. 결국에는 그것이 단순한 음악의 길이 아닌, 인생의 길을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하기에까지 이르고 만 거야. 그리고, 나의 그 꿈은 이제 내년에 이루어지게 되었지. 나의 인생을 제나와 영원히 함께 보내게 되는, 그 꿈을 말이야.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말로 하는 게 좀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지만, 제나의 반응도, 나 역시도 많이 부끄러워서 글로 남기게 되어버렸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제나, 꼭 기억해줘. 너와 보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더 없는 추억이고, 행복한 기억이라는 걸. 내가 내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 사람은 제나 뿐이고, 제나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걸. 내가 프로포즈를 할 때, 했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야. 그건 진정으로 내가 제나를 사랑하기에, 제나의 모든 것을 내게 맡겨달라고 한 그 말을 말이야. 인생을 함께 걷자고 한 그 말을, 오래오래 기억해주었으면 해.
아무쪼록 제나, 오늘은 정말 정말 생일 축하해. 오늘은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고맙다고, 나도 감사하는 날이야. 내년에도 근사한 생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 때에도, 나는 네 곁에 있을 테니까. 사랑해, 제나.
새하얀 눈처럼 맑은 너를 떠올리며, 잇토키 오토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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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빙의글/정국 빙의글/지민 빙의글/선택 빙의글]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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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 빙의글/정국 빙의글/지민 빙의글/선택 빙의글]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1.0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OOO?”
…..떨군 고개를 다시 들 수 없었다. 지금 들리는 목소리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그니까 내 첫사랑의 목소리는 아니겠지. 벚꽃이 흩날리던 날, 이리저리 떠다니는 꽃잎처럼 내게서 멀어져간 정국이의 목소리가…
“…..전정국..?”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건지 애석하게도 정국이가 맞았다. 나와 정국이는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이 예쁘게 사귀었다. 중학교 첫 날,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반했던 것 같다. 남자가 짝을 골라 앉을때도 정국이가 먼저 내 옆에 앉았고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만난 지 딱 한달이 되던 날 정국이가 고백했고 서로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후로 서로 의심은 커녕 감싸주고 보다듬기에 바빴다. 그만큼 서로를 믿고 사랑했기 때문에 한 번도 싸우지 않고 6년간의 긴 연애를 했었다. 애들이 오죽하면 ○○중, □□고 대표 콩커플이라고 했을까.
“..어….안녕, 구여친”
서로가 눈을 마주치고 정적이 흘렀다. 내 남자친구도 정국이의 여자친구로 보이는 여자애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국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인사를 했다, 그것도 구여친이라며. 우리의 각별했던 사이는 내가 먼저 끝냈다. 정확히 우리가 사귄지 7년이 되던 해, 동시에 우리가 대학생이 되던 날, 정국이에게 이별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나를 보며 웃는 정국이를 보자 망설여지고 미안해졌다. 그렇지만 대학에 가면 나보다 예쁘고 잘해주는 여자가 널리고 널렸을텐테 이렇게 계속 내가 붙잡아두기엔 정국이가 아까웠다.
“….안녕, 구남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잠시 멍때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옅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물론 구남친이라고. 그때 정국이는 내가 헤어지자고 하자 미안하다고 그냥 무조건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애였다. 나를 붙잡는 그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대학을 갔고 2년이 지난 현재 내겐 날 많이 좋아해주는 박지민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주말을 맞아 지민이와 데이트를 하는 중이였다. 그런데 지금 마주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박여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게 내 첫사랑인 지민이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도대체 쟤가 지금 왜 여기, 내 눈 앞에 나타나서 내게 말을 거는지 모르겠다. 지민이는 나와 고등학교 내내 사귀었던 내 첫 남자친구이자 첫사랑이였다.
“….박..지민…..?”
입술을 열어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지민이에 완전히 얼음이 되버렸다. 친구가 이 학교에 나랑 매우 닮은 남자애가 있다는 얘기를 해줬고 심지어 성까지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보러갔었고 그 남자애가 지민이였다. 실제로 나와 많이 닮았었다. 그게 인연이 되서 친해졌고 어쩌다보니 사귀게 됬다. 모든 애들이 축하해줬고 항상 부럽다는 말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민이가 항상 나를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길로 바라봤으니..
“…..안녕, 전여친!”
지민이는 조금 당황하다 바로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했다, 전여친이라며. 다행히도 아직 밝은 모습이였다. 지민이와 헤어진 이유를 따지자면…돈? 지민이는 그 유명한 JM디자인 사장의 아들이였고 난 그냥 평범한 회사원의 딸이였다. 그렇다보니 항상 다른 대기업의 딸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 더 확실히 알았다. 재벌은 재벌끼리 사귀는 거라고.
“….안녕…전남친..”
옛일을 생각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했다, 물론 전남친이라고. 그때 내가 지민이한테 헤어지자고 했을 때…지민이는 절대 안된다고 날 타일렀었다. 나는 힘들다고, 나보다 돈많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지만 지민이는 돈이 무슨 문제냐며 안된다고 붙잡았다. 나는 미안하다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날 하루종일 울어제꼈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 내겐 엄청 잘해주는 전정국이라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정국이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 지민이를 만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OO아…너 왜 박지민이랑….”
그리고 우리 넷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정국이와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치고 서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쟤가 여기 있지? 왜 쟤가 정국이랑 팔짱을 끼고 있지? 그 여자애는 바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박여주였다. 서로 다른 대학을 간 탓에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정국이와 여주의 대화를 들어보니 둘이 사귀었던 사이 같았다. 내가 지민이와 손을 잡고 있으니 여주는 놀라서 물어왔다. 내가 묻고 싶은데, 왜 정국이랑 있는지.
“…그러는 너는…왜 정국이랑…”
나는 여주와 지민이가 사귀던 사이였다는 것보다 여주와 정국이가 팔짱을 끼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여주한테 정국이 소개를 한 적이 없었는데…잠깐, 그니까 지금 여주는 정국이랑 사귀는 거고 나는 지미이랑 사귀는 거고 여주랑 지민이는 사귀던 사이였고 나랑 정국이랑 사귀던 사이였다는 거지. 뭐야, 그럼 결국 우리 서로 남친이 바뀌었다는 거잖아?
“….그야 정국이랑 사귀니까….넌?”
“..나도….지민이랑 사귀니까…”
“자자, 우리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어디 가서 얘기라도 나눠요. OO아, 가자가자”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는데 지민이가 갑자기 어디 가서 얘기를 하자며 내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정국이와 여주도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로 눈치만 보며 어색하게 있을 때, 분위기 메이커답게 지민이가 말을 했다.
“다들 지금 22살 맞죠? 그럼 말 놓을게요. 이제 서로 무슨 사이인지 알고 싶은데…”
“지민아, 너부터 밝히지 그래? 나 지금 너랑 여주랑 무슨 사이였는지 궁금하거든?”
“치…나랑 여주는 고등학생 때 커플이였어, 그것도 3년 내내. 대학생되고 좀 지나서 헤어졌지.”
“….내가 헤어지자고 했어.”
“왜? 3년이면 그렇게 쉽게 끊을 수가 없을텐데..”
“….어…그…OO이 너도 알지, 지민이 재벌인거. 그래서 사귀는 동안 돈 많은 여자들한테 이리저리 치여살았어. 그거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어. 재벌은 재벌끼리 사귀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
아…그랬구나..하긴, JM디자인이면 엄청난 재벌이지…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지…당연히 여자들 꼬이지, 돈 없다고 깎아내리고. 그걸 3년을 버틴거야? 그래도 많이 참고 버텼네….여주가 말을 마치고 지민이가 약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말을 하지..왜 혼자서 힘들어했어…난 너만 바라봤는데…그딴 년들 눈에 안 들어왔는데….나한테 다 털어놓지 그랬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민아…”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데…몇 달은 니 생각에 괴로워하며 살았다고..”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지민아…그때 내가 잠시 미쳤었나봐…..”
“그래, 전애인 만나서 반가운 건 알겠는데 현애인 앞에서 전애인과 이야기하면서 울면 나랑 정국이 좀 그래. 그니까 울지말고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자, 응?”
지민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여주에게 말을 했다. 여주도 눈가가 그렁그렁했고 사이에 있는 나랑 정국이는 눈치만 보며 완전 가시방석이였다. 그래서 내가 지민이에게 울지말라고 나랑 정국이 좀 그렇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지민이가 미안하다고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럼 정국아, 너는 OO이랑 무슨 사이였어?”
“….우리도 연인사이였어.”
“헐, 말도 안돼…”
“…..너희 아까 3년이랬지? 우린 중학교 때부터 자그마치 6년동안 사귀었어…나랑 OO이, 진짜 행복하게 예쁘게 사귀었는데..”
“…내가…내가….헤어지자고 했어…”
“왜? 너희는 무슨 이유로 헤어졌어?”
“….정국아, 너도 모르지? 지금 말해줄게…사실 대학에 가면 나보다 예쁘고 잘해주는 여자가 널리고 널렸잖아…근데 이렇게 내가 붙잡아두기엔 정국이, 너가 너무 아까웠어…”
….이 얘기를 할 때나 생각할때면 정국이 생각이 나서 항상 눈물이 나곤 했다. 미안함 때문인가, 쉽사리 잊혀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꾹 참고 있다. 그러나 나처럼 정국이 또한 괴로웠을 터, 아무 이유도 모르고 헤어져서 미안함에 정국이는 정국이대로 많이 힘들었을거다….정국이는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고 지민이는 내게 울지말라고 했다. 너가 울면 어떡하냐며.
“…..너보다 예쁘고 잘해주는 여자가 어딨다고 그래…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데…내가 뭘 잘못했나 미안해서 진짜 죽을 것 같았다고….더 잘해줄 걸 하면서….말을 하지 그랬어…”
“..너는…내가 안 싫어?”
“…..솔직히 너를 미워하고 나쁜년이라고 생각해볼까 했는데, 너가 너무 좋아서…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더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였네, 너희 너무 슬프다…”
“그러게….OO아? 야, 야, 울어?”
“..흐으…끅…미안해….너무 미안해…흐….”
난 정국이가 나를 싫어할 줄 알았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추억 쌓으면서 평생 이렇게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으면서 너무나도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서…아니, 차라리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보다 나를 나쁜년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여자랑 있는 게 나았다. 게다가 난 울면서도 정국이의 연락은 모조리 무시했다. 근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경솔하고 괜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 봐주고 사랑해준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미안했다. 그때 얼마나 상처받았을까…너무 미안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뒤섞여 내 마음을 온통 헤집어놨고 정국이와의 추억이 하나씩 떠올랐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니야, 뭐가 미안해….오히려 내가 미안해…더 잘해주지 못해서..”
“…히끅…아냐….너 충분히 잘해줬어…지금은 우리 둘, 아니 우리 넷 다 잘 지내잖아…서로 좋은 짝도 있고….”
“…그렇지, 지금은 혼자가 아니잖아…나는 OO이가 있고, 그쪽은 여주가 있잖아��!”
“…그쪽 아니라 전정국이야”
“���, 전정국! 난 박지민이야. 폰 줘봐,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자”
정국이와 지민이를 보니 자연스레 웃음이 픽하고 났고 둘이 친해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여주 쪽을 보다가 눈이 마주쳤고 둘 다 싱긋 웃어보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정국이 만난 것 같아, 풀 오해도 다 풀고. 그러면 이제 정국이와 친구로써 친하게 지내도 되는 거지? 연락도 하고. 뭐,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 순 없을테지만….
《우리는 서로 연인이 바뀌었어요》
+또 신작이다….ㅎ크크킄 +선택 빙의글이란, 여주가 두명이에요. OO이에 빙의해도 되고 여주에 빙의해도 되죠. 그래서 선택 빙의글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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