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친구
미쉘은 우울증이 있다. 그래서 힘들다. 물론 본인도 힘들겠지만 주변인들도 힘들다.
혹은 본인은 의외로 자신이 우울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원래 우울한 타입이라고. 이게 되게 짜증난다. 왜냐하면 원래 우울타는 성격이면 혼자있지, 인싸는 되고 싶나보다. 오히려 껴줄땐 와서 잘 놀지도 않는다. 자기는 고고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보다. 불러주길 기다리는데, 매번 불러줘야만 온다. 그러고 빼놓으면 되게 서운해한다.
그렇다고 “아 외로운가보다...” 생각해서 얘한테 좋은말, 힘내자, 뭐 해보자 그러면 오히려 안 따라준다. 처음에는 그래그래 맞춰주다가 갑자기 특유에 “우울” 확 끼언저버리면 그때마다 내 열정의 불길도 죽는다. 한두번이 아니라 매번 그런다. 그러고 다시 나에게 “나는 원래 우울을 즐기는 타입이야. 너가 이해해” 이렇게 나온다. 말은 안해도 행동으로 다 나온다. 그냥 또 내가 맞추라는 거다. 아까는 우울해해서 자기 끼워달라면서 이제는 내버려두랜다.
어느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내가 먼저인 사람이다. 굳이 쟤에게 내 에너지 쏟으면서 까지 분위기나 기분업 시키려는 것도 충분히 피곤하다. 그렇다고 둘이 하는 활동이나 그런것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 근데 그동안의 정 때문에 같이 있어주고, 맞춰줬는데, 심지어 본인은 나를 딱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쟤랑 같이 다니면서 뭐 받은것도 없다. 성적? 교훈? 내 스팩? 인간관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나보다 매력적이거나 조금 나은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보다 못하면 못했지. 오히려 난 친구라고 매번 챙겨주고, 내 개인적인 것도 다 같이 참여시켜줬다. 그런데 자기는 늘 나서서 뭘 같이 해보거나 해주려고 한적이 없다.
물론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다를 수 있다. 걔도 나는 모르겠지만 걔만의 가치로 뭘 해줄 수 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전혀 도움이 안된다. 아니 뭔지도 모르겠다.
걔는 나의 이런 서비스를 deserve it 하지 않았다.
이번에 사회 프레즌테이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걔랑 아예 인연 끊은 뒤 걔랑 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지가 먼저 하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래 우리 하는 김에 잘해보자” 하고 또 화해도 내가 먼저하고, 적극적으로 같이 하자고 했더니, 또 지가 나랑 간신히 해준것 마냥 이런다. 지 기분따라 이러고, 정말 태도도 고깝게 군다.
1. 제일 힘든건 역시 감정기복이다. 물론 지금은 말을 하지 않고 채팅으로 하지만, 그 여파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떨땐 갑자기 비즈니스 채팅처럼 그러고, 어떨땐 같자기 대답을 안해주다가 어떨땐 대답을 굳이 안그래도 되는걸 엄청 많이 해준다. 완전 이모지 많이 붙여서. 그냥 정해진 패턴이 있으면 상관없는데 “뭐야 얘 화났나? 내가 뭐 잘못했나?” 갑자기 이러니 정말 진빠지고 짜증난다. 무엇보다 본인이 더 쉬워보인다. 그러고 맞춰주기도 싫다 정말.
2. 지 감정을 남에게 끝도 시도때도 없이 위로 받으려 한다. 근데 그걸 빌미로 자기가 나한테 하는 행동들을 다 내가 다 꼭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구랑 이야기 하고 있는데 지가 와서 갑자기 그 conversation에 껴도 된다는게 아니다. 그래서 눈치주면 또 삐져서 나랑 말 안한다. 나에게 삐졌다고 아예 그러면 얘기하지, 눈치만 준다. 에너지 뱀파이어다.
3. 자기 관리를 안한다. 자기관리는 안해도 기본적인 보통의 이미지 관리도 안한다. 씻지는 않아서 머리도 떡지고 냄새가 옆자리에서도 풀풀나는데 화장은 아이라인까지 해왔다. 촌스럽고 티나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도 객관화가 안되어 있다. 늘 울상에 웃지도 않고, 옷도 요즘패션으로 안 입는다. 자기개발도 안한다.같이 뭐좀 공부하자고 그럼 싫다면서 내가 스팩쌓는건 늘 같이 하잰다. 내가 나가는 대회는 꼭 지도 나가야 한다. 안 말해주면 또 삐진다. 내가 우수워보이나 보다. 영어발음도 이상하고, 촌스러운데, 그렇다고 늘 아예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뭐 내가 어떻게 하자고 하면 늘 딴지건다.
그래서 손절했다. 정말 스트레스다. 본인객관화가 하나도 안됀. 노답이다.
2 notes
·
View notes
January 2023
Read: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불안 (알랭 드 보통)
레몬 (권여선)
Watched:
Nomadland (Chloé Zhao)
The Royal Tenenbaums (Wes Anderson)
Full Time (Eric Gravel)
The Way Way Back (Jim Rash, Nat Faxon)
더 글로리
런온
1.1
Rabbit rabbit rabbit! 토끼의 해가 밝았다. 새해 인사, 떡국, new year’s resolutions 대신 January goals + intentions 작성.
남양주에서 개포동으로 넘어가는 길엔 잠실 교보에 들러 뉴욕에 가져갈 책을 몇권 더 샀다. 소설책 네권과 만화책 한권. 졸업을 한학기 앞두고 전공책을 더 많이 봐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좋은 소설에서 건져올린 마음을 흔드는 문장 하나가 그 어떤 전문가의 조언, 그 어떤 연구 결과보다도 미래 내 practice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거라 믿는다.
1.2
일산 가족들과 점심식사. 베이징덕이 맛있었다. “야(나)가 첫째라 예쁨 많이 받았다.”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사랑의 역사. 그 역사의 오랜 내레이터로써 오래오래 우리 가운데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할머니.
저녁엔 엄마랑 집에서 대구탕을 끓여 먹고 Lavona에게 재촉 이메일을 보낸 뒤 office of advising 과도 미팅을 잡았다.
1.3
점심엔 엄마 아빠랑 청계산 근처에서 쭈꾸미, 오후엔 엄마랑 한남동 데이트, 저녁엔 두 지영언니, 하나, 동석대표님과 즉석 애드모임. 광고 업계를 떠난지 이제 정확히 셀 수도 없을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유쾌한 소속감��� 느낀다.
1.4
채연, 원우와 티타임, 롱텐 친구들과 저녁.
Marlene (office of advising)과의 미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1.5
컨디션 난조. 엄마가 점심엔 가리비죽을 끓여주고 저녁엔 김치찌개와 양배추쌈을 해주었다. 뉴욕으로 돌아가기전 마지막 어리광.
1.6
밥 두번 먹고, 영화 한편 보고, 푹 자니 어느새 JFK 도착.
1.7
다시 뉴욕이다.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건, 지금의 나에겐 여기가 맞다는 것. 왜인지 이곳에선 조금 더 내 멋대로, 내 페이스대로 생활하고, 하루 하루를 쌓아올릴 수 있다. 주체적이고 의도적인 선택들로 내 시간을 채우거나 비울 수 있는 곳.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너무 아쉽지만..
나의 바운더리, 속도, 생활, 생각, 가치관, 선택들을 언제 어디서든 지킬수 있는 힘을 충분히 기를때까진, 이곳에 머물게되지 않을까.
1.8
Kayla 랑 티타임. (Alice’s Tea Cup).
호떡 날씨 플레이리스트에 마지막 노래를 추가했다. 올 겨울의 한폭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줄 39곡의 노래들.
1.9
Lavona와의 미팅. 요지는 자기가 힘이 되어줄테니 믿고 남은 3개월을 잘 버텨보자는 것.
1.10
Nomadland, Anju랑 저녁 (Mountain House, Veniero’s Pasticceria & Caffe)
오늘의 단어: 베쯔바라 (디저트 배)
1.11
실습 시작. Intake with Kevin.
1.12
Jenny에게 오랜만에 이메일을 보냈다.
1.13
SJ랑 장장 8시간을 놀았다. 초코송이, 졸업 후 계획, “정”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밀린 수다를 한참 떨고, 듀스부터 뉴진스까지 케이팝의 역사를 유튜브로 훑으며, Han Dynasty에서 저녁을 시켜먹었다.
1.14
주원과 오랜만에 미술관 데이트. Salumeria Rosi에서 브런치를 먹고 휘트니에서 Edward Hopper 전시를 봤다. 아래는 위 그림을 보고 우리가 나눈 대화.
주원: 거봐, 내가 블라인드 안 치고 옷 갈아입으면 안된다고 했지?
나: 여기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의 뷰가 되어준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거 아닐까? 우리도 집을 더 예쁘게 꾸며야겠어.
주원: ...?
1.15
SJ, 주원이랑 토트넘 vs. 아스날 경기를 봤다. 결과는 참패.. 점심엔 주원이 만들어준 비욘드버거, 늦오후엔 리버사이드파크 산책, 저녁엔 신라면 블랙과 태어난김에 세계여행.
1.16
주원이랑 첼시 데이트. Very Fresh Noodles, Joey Bats 에그 타르트, 리틀 아일랜드 산책.
런던행 비행기와 런던<->파리 유로스타 티켓을 끊었다.
1.17
마지막 학기의 첫 수업 시간. 차선책으로 넣어둔 Social Work Practice with Families의 Alirio Guerrero 교수님이 너무 좋으셔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Elective 를 두개 들어야 하나 (학기 초 한정) 욕심쟁이의 고민 시작.
저녁으론 양파, 가지, 감자, 돼지고기를 넣어 카레를 만들어먹었다.
1.18
Field. 저녁엔 떡국을 해먹었다. 이번학기엔 할게 많고 스트레스가 심한 날일수록 저녁을 더 잘 챙겨먹는 것으로. Social worker/Therapist로써의 커리어는 나의 일부일 뿐이란 걸 잊지말자.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고. “막학기”란 단어에 흔들려 공들여 쌓아온 건강한 우선순위의 탑을 무너뜨려선 안돼.
1.19
Field. Kevin과 이야기를 나누다 울어버렸다. EK가 나를 얼마나 옭아매고 있는지 새삼 실감. 필드를 마치고는 SJ랑 BCD에 갔다. 스트레스 받을 땐 역시 순두부. How spicy? SPICY please.
1.20
오전 내내 비실비실 졸다가, The Royal Tenenbaums (제일 좋아하는 Wes Anderson 영화로 등극), 저녁으론 주원이랑 Bahn 에서 쌀국수, 분짜, 썸머롤, 디저트론 붕어싸만코.
구글이 간밤에 12000명을 해고했다는 뉴스. 주원이 아는 몇몇 사람도 layoff 의 대상이 되었다고.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복잡해보이는 주원을 어떻게 위로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이조차도 지극히 ‘나’ 위주의 생각이란걸 깨닫고, 그저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같이 맛있는걸 먹으면, 그것이 지금의 최선일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힘들때도 그런 시간들이 가장 힘이 되니까.
1.21
We are very complex and we live in very complex and changing societies. Thus, one state of being, no matter how highly adapted to a particular circumstance, will not suffice. Resiliency, that is the capacity to alter states as conditions change, must be balanced against the capacity to maintain a state in the face of minor external alterations.
점심엔 드디어 Raku. 소문만큼 맛있었다.
1.22
오늘의 affirmations:
“I choose peace.”
“I am doing my best with what I have.”
1.23
“To be any kind of competent therapist, you must keep your psychological distance from the supreme artists - the Minuchins, the Milton Eriksons, the Michael Whites. Otherwise you end up aping the magic of their styles, rather than grasping the substance of their ideas.”
“Personal qualities, such as having respect for other people and being dedicated to making a difference, are also important. Techniques may be tools, but human qualities are what distinguish the best therapists. You can’t be an effective therapist without learning how to intervene, but without compassion and respect for people and their way of doing things, therapy will remain a technical operation, not a creative human endeavor.”
알겠니 EK?
1.24
수업. 저녁으론 안성탕면.
1.25
남은 3개월동안 마귀할멈의 농간에 놀아나지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 연구.
1.26
필드. 오늘도 힘들었다.
1.27
Jenny랑 커피타임. 언제 만나도 따뜻하고 건강한 에너지가 감도는 사람. 그 consistency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정말 닮고싶다는 생각을 또 한번 했다.
커리어 조언을 구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현재 필드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대화 끝에 Jenny는 자신의 첫 직장 이야기를 해주면서, 영 아니다 싶으면 남은 시간동안 ESA로 돌아와 자기와 함께 일하자고,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이라고 힘주어 말해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구원의 빛줄기.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원, SJ, Kayla, Anju, Rachel과 긴급 논의 후, 빠르게 결심을 세웠다. EK와 헤어질 결심, 남은 3개월을 “버티기”보다,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이 직업에 대한 내 믿음을 공고히 하고, 행복하고 자신감있게 졸업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만들겠다는 결심. Jenny에게 문자를 보내고, Lavona와 통화를 했다.
1.28
Lavona에게 “Changing my field placement" 이메일을 보내고, Kayla, Kate, Sophie, Elena, Vineha와 Brooklyn 나들이.
1.29
주원이랑 American Folk Art Museum에서 Morris Hirshfield 전시. Self-taught 아티스트들을 집중 조명하는 미술관이 집 근처에 있다니, 이 와중에 행복.
1.30
실습. 이제 곧 끝이다 생각하면 참을만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참을 수가 없다. 눈만 마주쳐도, 목소리만 들어도 으악! 소리를 지르고싶은 기분. Lavona, advising team, Hans, field team은 모두 깜깜무소식이다. Lavona에게 보낸 이메일 Hans에게 직접 포워드.
Maryah, Lauryn과 저녁.
1.31
Columbia health center 를 통해 상담을 시작했다.
1월 한달을 돌이켜보니, 내가 나를 참 열심히 돕고, 응원했구나 싶다. 내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 놓기 위해 부단히 꼼지락거리고, 손을 내밀고, 때론 목소리를 높였다. 3학기 내내 글로만 배운 Self-advocacy 를 마지막 학기에 이렇게 몸소 실천해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15 notes
·
View notes
지호의 어리광(2)
나는 지호를 이해해보려 쭉 노력해봤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타인에 상황에 내 자신을 놓고 비교하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순간의 공감을 만들어 낼 순 있겠지만 오히려 타인과 내 자신을 불리해내는 작업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혐오 라는 감정을 낳는다. 또한 상대의 상황에 나를 대입함으로서 얻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어째되었든 그건 그의 삶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대와 내 자신을 분리하려는 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가 나와 다른 어떤 말을 하던, 그는 나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기에 존중한다. 그 의견이 나와는 아무리 상반될지어도 나보다 못나거나 뒤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상대의 가치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물론 상대도 나의 가치를 평가할 자격이 없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혼란스런 감정과 (내 자신이나 그 누구를) 투영(하는 것)을 뒤로하고 이제는 지호를 지호 그 자체로 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요즘 따라 지호가 너무 어리광을 부린다는 생각은 멈출 수 가 없다. 그저 그 모습이 아집을 넘어, 때론 독선적이여 보이기에 그와의 대화가 불편하다. 그리고 독선을 넘어 때론 상대가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무력으로 라도 몰아붙여서 자신의 생각대로 되게하지 않으면 매우 불편해 한다. 본인은 그런 본인의 모습이 때론 남에게 권위적으로 보인다는 걸 알까? Dictate. 일어일문설이라, 하나의 뜻에는 하나의 단어만이 존재 한다는 이 말처럼, Dictate 외에 이렇게나 알맞은 단어를 찾을 수 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요즘 소위 말하는 “무지성이 자랑이 된 사회”에 ���맞은 표본인 것 같다 (물론 그도 그 만의 세계가 있겠지. 그를 그로서 존중한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됬던 과거와는 다르게 이제는 모두가 자신이 가진 지식이 옳든 그르든 다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제 사람들의 사전에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아닌, 아는 것과/아직 찾아보지 않은 것으로만 세상이 정의된 것 같다.
상상력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무얼까? 그들에게 더 이상의 진보가 있을까? 가능성을 잃어버린 사회. 그것이야말로 정말 죽은 자 들의 도시가 아닐지.
0 notes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 중 하나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절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였어요. 함경도 사투리가 부산 억양처럼 센 편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 말투를 보고 조선족이라고도 생각했을 것 같네요. 처음엔 그게 뭐가 대수라며 신경을 쓰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신경쓰지 말라고 했지만, 지하철에선 사람들의 정직한 눈빛이 보이거든요. 그게 정말 컸어요. 스무살의 제 어린 마음엔 다른 사람들 하고 어울리고 싶고, 이곳의 일원이 되어 비슷한 말을 쓰고 싶었거든요. 아예 지하철에서 말을 안하겠다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말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완전히 말투를 바꿔버렸죠. 많은 변화를 줘야했죠. 당장 받침 쓰는 법이 다르고 외래어 비중이나 쓰는 법도 다르거든요. 학교에서도 그랬어요. 중국에서 살면서 공부하는 거에 대한 공백이 생겨버려서 여기서 대학교를 들어가니 수업 쫓아가는 게 힘들었어요. ‘남들 중간이라도 가자’,’ 평타를 치자’ 는 마음으로 어느때보다 열심히 살았죠. 졸업할 땐 성적이 3.8이 나왔어요. 그냥 그 성적이 나온 게 아니라 벚꽃 한번 제대로 못보고, 학기 중엔 친구들한테 얼굴 좀 보자라는 욕도 들으며 받은 성적이었어요. 돌아보니 참 치열하게 살았네요. 이제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너무 안 잘해도 된다고, 내 마음따라 어리광 좀 부려도 된다고.”
“When I first got to Korea, the one thing that left the deepest impression on me was how people would stare at me strangely on the subway. The Hamgyong Province accent’s intonation is strong just like Busan’s. People must’ve heard me and thought I was an ethnic Korean from China. I used to not concern myself with it and others around me also told me to not care, but on the subway, you can really feel people’s eyes on you. That was really big. When I was 20, my young heart just wanted to fit in with those around me and speak like they did. At first I planned to just not speak in the subway, and then I thought that I’d better change my style of speaking. I really ended up changing it and this brought a lot of change itself. The number of loan words and rules for writing are different between the two dialects. It was also like this in school. There was also a gap between what I had learned in China and the level I was at here and that made it hard to catch up in classes. ‘Let’s just aim for the middle, let’s shoot for average,’ is what I set my heart on doing and from then on, I worked harder than ever. By the time I graduated I had a GPA of 3.8. That GPA came at a price — I wasn’t able to go outside and enjoy the cherry blossoms, and my friends complained that it was so hard to hang out with me during that semester. Looking back on it, those were pretty intense times. What I want to hear now is that I don’t have to try too hard, and that I can still be goofy at heart, if I want.”
- HOS Remote Interview Series -
39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