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이 없어서 계속 맞고 있지를 못한다. 반격기를 걸어 무조건 더 큰 공격을 가해야만 그 상황을 이겨낼수 있다. 먼저 급발진을 했어도 잘 한 거야.
마지막 용기로 할말을 쏟아내자 "왜 악담을하냐?" 는 얼탱이 없는 반응을 들었지만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들뜬 기분에도 보여주는 태도 때문에 불안감과 기시감이 드는게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뻔히 다 알고 있는데. 애써 외면하고 기다리는게 능사라고 생각해서 대처를 잘 못했나봐.
그래도 유튜브에 있는 연애 바이블은 다 진짜야. 그대로 펼쳐지니까. 행복에 겨워도 모자랄 판에 더 우울해졌는데 ? 그게 아니면 뭐겠어.
그냥 예의있게, 솔직하게 좀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내가 그때 눈깔이 삐었었나봐, 오해했다. 이제 보니 너는 좀 아닌거 같다. 라고.
설사 사람을 기만하고 한눈을 팔았다고 해도 예의있게, 솔직하게 말하면 이해해줄 텐데...
가오가 없이 무슨 “가치관”이 다른거 같다 그래서 할말이 없다. 재미가 없다.(다른거로 재미 좋았잖아.?) 니가 이렇게 하지않으면, 바뀌지 않으면 더이상 모르겠다?? 시간 낭비다" 는 .. 좀 혀가 길지 않냐. 그것도 전화 통화로 말이야.
잠깐봤지만 본인은 정말 돈으로 점철된 사람같아 보였는데. 그 고까운 가치관이 겨우 주식 성공해서 돈많이 벌어서 놀고싶은 거 밖에 안되는 게 얼마나 참 우스운지...
수컷이되어서 내세울만한게 자기개발과 주식 코인과 부동산, 부모재산, 게임머니, 사업 계획, 학벌과 연봉 밖에 없다는건 또 애처롭다.
정말이지 말해서 입만 아플 정도로 수준 낮은 부류의 그것들...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필터링을 고려 했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
ㅎㅎㅎㅎ 아 생각하니 또 열받아 . 이딴 게 어디서 가치관을 들먹이지ㅎㅎㅎㅎ
즐거움에만 몰두 하기에도 짧은 찰나가 아니었나? 누군가는 그 시간에 그돈도 아까워 머리 꼭대기에 앉아 계산기를 뚜드려 보고 있었네.. 결국 수지 타산이 안맞았는지, 다 받아처먹고 흥미가 떨어진 건지.
그래도 속물 근성은 저도 어디서가서 뒤지지 않는데요 ? 온신경이 아니라고 할때 , 조금의 기대감과 조금의 속물 근성이 눈을가리고 귀를 닫아 버렸어. 돈얘기하면서 대단한 사람인척 하고 다 해줄것 처럼 하던 그 달콤한 말에 영혼을 팔기도 전에 ... 따뜻한 봄바람과 그 공기에 순수함을 조금 섞어서, 그게 생각보다 잘됐나봐. 무슨 슬로건 마냥 더 빨리 더 많이 ! 마음을 다한것도 사실. 그래서 아주 당한 것만 같고 죽고싶었지 그냥. 최근에 가만히 잘 살고 있었는데.
역시 인간이 소신대로 살아야지 조금 타협하고 양보하려했던 알량한 순수함이 부른 참사. 어딜가나 나보다 더한놈이 판을 치니까. 절대 착한척 타협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면 안돼.
누구는 길가다 똥밟은 거라고 생각하라는데 길가다 똥 밟은 거는 (최근에 실제로 밟음) 신발 빠는데 정말 힘이 너무 들더라고....
그냥 차를 타고 가다 차창에 새똥을 맞은 것이다. 얼마전 와이퍼를 새로 갈았고 새똥 따위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내 평생 써왔던 모든 자전적 수필과 어린 시절 동시의 마침표는 사실 ‘아빠’였다. 참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원망하고 미워했었다.
아빠의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슬퍼해도 되는가, 과연 나는 이럴 자격이 있는 자식인가’를 수천 수만 번 자문했었다. 아빠를 미워했던 그 때의 내 마음은 삼십여 년의 시간치만큼 더 괴롭고 더 아프게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슬픔과 죄책감 그 잠깐의 사이 엄청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전히 그 혼란의 마음은 정리하지 못했다. 당신 생의 반절을 따라 살아보니 내가 그렇게 닮고 싶지 않던 ‘당신’과 ‘나’는 마주히 닮아있었다. 그 고독이 드리운 긴 그림자마저 꼭 맞물려서.
아 당신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빠가 응급실로 옮겨 간 밤. 나는 수많은 기계들에 둘러싸인 그의 옆에서 차게 식어가는 그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늦은 고해밖에 할 수 없었다. 볼로 옮겨간 내 손끝에서 느껴졌다. 우리가 곧 이별하게 될 거라는걸. 연달아 찾아온 뇌경색으로 돌아가 있던 아빠의 눈은 그 순간 나와 마주했고, 그 굳은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이 생에 아빠와 화해하지 못했지만, 아빠는 가서 할아버지랑 꼭 화해해. 할아버지가 기다릴 거야’
용인에서 택시를 타고 새벽에 도착한 막내까지 기다려 준 아빠는 곧 지쳤는지 중환자실로 옮겨 갔다.
그 새벽 우리는 구겨진 채 차를 타고 아빠가 있었던 재활병원으로 갔다. 도둑마냥 아빠의 짐을 빼서 차에 실었다. 평생을 간결하게 살아온 아빠는 아픈 동안 자기도 모르게 짐이 참 많이 늘어있었다. 그렇게 아빠를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즈음 하루 두 번에 나눠서 10분씩 가족들은 중환자실의 아빠를 면회했다. 분명 나와 눈이 마주쳤었는데 아빠는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했다.
어느 오후의 면회에서 나는 물었다. 아빠가 지금 고통을 느끼고 계시냐고. 그건 아니란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망가지고 심장 하나만 온전하다는데, 그게 아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아빠의 심장만이라도 살려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모진 말은 또 못된 내가 먼저 꺼냈다.
아빠에게 뇌경색이 찾아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아빠는 산을 좋아했고 자연을 그리워했다. 그런 아빠가 몸에 갇힌 게 십 년이 지난 거다. 나는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엄마는 힘들어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아빠와 반년의 재활을 함께한 건 엄마였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식들의 뜻이 같아서 엄마는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우리는 하루 면회를 쉬었다.
장례식에 아빠의 건강한 사진을 두고 싶었다. 마냥 아픈 사람으로 있다가 가는 걸로 기억되게 하긴 싫었다. 각자의 앨범에서 사진을 모았고 나는 엄마와 액자를 사러 갔다. 영정을 ���어두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기에, 내 결혼식의 사진들 중 하나로 영정 액자도 만들었다. 잠깐 카페에 들러 엄마와 아무일 도 없는 듯 무심히 차도 마셨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를 곳에도 미리 가보았다. 어떤 크기의 공간이면 될지 해는 몇 시부터 얼마나 드는지도 보았다. 미리 준비하라던 아빠의 당부에 사두었던 묘지에도 갔다. 외할아버지가 계시고, 외할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잠드실 곳. 그곳에 아빠와 엄마의 자리도 있다. 숲과 가장 가까운 곳, 강이 가장 멀리 보이는 곳. 아빠가 보았다면 좋아했을 거 같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묘비에 쓰일 글을 정리했다. 아빠를 닮은 글, 이해 못 했지만 이제는 너무 알 것 같은 당신을 닮은 글.
다음 날 엄마와 나는 담당 교수와 면담을 했다. 간호사들은 주저했던 말을 ‘어려운 결정 잘 해주셨습니다. 아버님 지금 많이 힘드실 거예요.’라고 교수는 단조로이 정리해 주었다. 생전 아빠가 연명치료를 원치 않았음을 확인하는 글을 쓰고 간단한 인적 사항을 적은 서류를 냈다. 법적인 서류라더라.
아빠를 보내기로 한 날, 모든 가족이 모였다. 차례로 인사를 하고 호흡기를 뗐다. 숨죽여 자는 모습이던 아빠는 가삐 숨을 쉬었다. 오래 뜨지 못한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만 원망해 아빠. 내가 아빠 보내주자고 했어. 미안해 내가 미안해.’
호흡기를 떼면 아빠가 바로 갈 거라던 교수의 말과는 다르게 아빠는 힘들게 숨을 쉬어갔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불러주겠다는 간호사들의 말에 우리는 무거운 걸음으로 중환자실을 나서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승압기를 포함해 다른 기계들도 떼시겠냐는 물음을 받았다.
'아 그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승압기도 뗐다. 아빠를 살려두던 기계들이 모두 멈췄다. 오후 두시, 아빠는 참 예쁜 가을 단풍을 뒤로하고 좋은 날에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빠는 하얀 천을 곱게 덮고 엄마와 장례식장으로 갔다. 나는 아빠 뒤의 단풍 나무를 찾아서 사진을 찍고 병원을 떠났다.
짧은 장례였다. 신부님과 많은 신자분들이 오셔서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울면 아빠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는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그걸 아는데? 누가 다녀온 거야? 어떻게 아는데? 아빠가 죽었으니 슬픈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한낱 보잘것없는 인간일 뿐인데 어떻게 슬픔과 눈물을 참으라는 건지. 나는 또 가면을 써야 했다. 우울하지 않은 나, 씩씩한 나, 구김 없는 나. 서글프다. 아빠가 가는 날에도 나는 가면을 써야 하다니.
발작이 올까 모두들 내게 비닐을 챙겼냐고 했다. 아빠의 입관날이었다. ‘울지 마세요. 제가 아버님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장례지도사는 적당히 다정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아빠의 푹 꺼진 볼은 봉긋 차있었고 아득히 닫혀있던 눈은 그저 평온히 잠든, 내가 아는 아빠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엔 내 죄책감을 잊었다. ‘내가 아빠를 아픔 없는 곳에 편히 잠들 수 있게 보내준 게 맞구나.’ 잠깐 자만도 했다. 아빠의 배에도 기대 보고 아빠의 이마에 내 이마도 맞대어 보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아빠 주위를 맴돌았다.
살짝 흔들면, 가지 말라고 떼쓰면 잠귀가 밝았던 아빠가 꼭 일어날 것만 같았다.
발인 날 아침엔 비가 왔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당신이 지은 집에 아빠는 큰 사위의 품에 안겨 영정으로 돌아왔다. 자식을 먼저 보낸 할머니의 통곡은 그이 자식의 것과는 달랐다. 그 순간엔 나도 할머니께 참으라 말했다. 참 이기적이지. 참아지는 게 아닌 걸 알면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했다. 아빠의 세례명은 라파엘.
'아빠는 별이 될까 천사가 될까.'
입관할 때 몸이 틀리지 않게 묶는다고 하더라. 우리는 그러지 말자 했다. 몸에 갇혀있던 아빠를, 가는 날까지 자유롭지 못했던 아빠를 또 묶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고이 갔다. 많은 분들의 기도 속에, 꽃으로 가득 채워 아빠를 묻었다.
‘친구야 잘 가라. 잘 가라.’ 거친 손으로 흙을 뿌리고 밟아주며 아빠의 친구는 목놓아 울었다. 생전에 약속했었다더라.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죽든 잘 가라고 꼭 밟아 흙 다져주는 게 친구 아니겠느냐’고.
아빠는 갔다. 내 방은 아빠의 장례 이후로 멈춰있다. 어느 것도 풀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있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많이 울어서 아빠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과 죄책감에 성당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보내며 신앙을 약속했듯 나도 꼭 같이 약속했다. 키큰 남자와 나는 늦었지만 혼배 성사도 했다. 혼배 성사 때 작성한 문서는 봉인되어 바티칸까지 간다고 한다.
사랑을 약속하는 날의 고해에서 신부님은 ‘사람이 죽으면 사랑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 남은 감정은 사랑 하나로 충분하지. 그만 자책하자.’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날, 아빠의 이름으로 가족관계 증명서를 뗐다. 그거라도 있어야 아빠가 정말 내 아빠였던게 증명될 거 같아서. 사실 그 어떤 증명은 필요도 없이 나는 그의 딸인게 확실하면서도 말이다.
언젠가의 면회에서 휠체어에 앉은 아빠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죽고싶다고 했었다. 아빠 당신은 괜찮느냐고 나는 더 없이 견딜 수가 없다고. 정말 지쳤다며 세상에 우리 둘 뿐인 듯 엉엉 울었었다. 당신은 날 기억하지도, 내가 했던 말의 의미도 모를테지. 아빠가 아프다는 것이 그 순간 내게는 안도였다. 하지만 이젠 죽을 수 없다. 내가 죽으면 아빠를 만날 수가 없으니까. 주어진 날까지 다 살고 죄 없이 죽어야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아프지 말고 아빠 좋아하던 숲과 나무 많이 보고 편안히 있다가 우리 다시 만나자. 나 이서방이랑 오래 살다가 나중에 갈게. 아빠 나 죽지 않을게.’
모든 고해와 고백과 약속들은 다 늦어있을 뿐이었다. 돌릴 수 있는 일은 그런 말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늦었다. 너무 느렸다 나는.
'아빠 내 사춘기가 아빠에게만 너무 오래였어서 미안해.'
앞으로 내가 쓰는 모든 글들의 마침표 역시 '아빠'일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고 코 끝이 아플만큼 찡해도 나는 마침표를 찍고 늘 그를 기억해야 한다.
내가 결혼하면 수영장이 있는 집을 지어주겠다던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부지런했던 아빠는 아마 그곳에서도 우리를 위한 집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희고 밝은 집을 짓고 있을거다. 아프지도 않을 것이고 고단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아빠가 기쁨과 평온속에 있기를 기도한다.
#카톡 이 왜 정지 됬는지 알려줄게 #정크 로 등록되어있네?? #한국 #베트남 #중국 #전부다 #스캠 이냐??? ㅋㅋㅋㅋㅋㅋㅋ #아쉽다 #좋은인연 이 될 수있엇는데 . #킴카스트로 #김미영팀장 #이별 하고 #새로운친구 #응원한다 #너의열정 #유리나무 는 #쉽지않아 https://www.instagram.com/p/CiP6pBOL1WA/?igshid=NGJjMDIxMW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