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내가 어떤지 모르겠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예전보단 나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결코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행복과 불행을 두고 계산하는 시간이 쓸데없이 느껴진다. 그냥..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거지. 나이를 먹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러운 것들만 존재한다. 시간도, 상황도,사람도 그렇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우울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그저 어제의 술자리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그는 무얼하는데 답장이 없는건지. 그 정도다. 불행과 행복을 논하기엔 눈 앞에 사소한 걱정들이 마음속에 일평 정도 자리를 차지하곤 나가지를 않는다. 사는게 그렇다.
*이따금 너는 내게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다 내 지난 몇년이 떠올랐다. 몇몇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몇번의 직장도 갈아치웠다. 일하면서 깨달은건데 내 모습이 너무 공격적이더라. 인상을 찌푸린 얼굴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환경을 바꾸면 나아질까 싶어 대뜸 멀리가서 산 적도 있었다. 스트레스에서 멀어지면 괜찮아질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밤은 잔뜩 취해서 귀가를 했다. 술김에 종종 보고싶은 k 너를 불러보기도 하고, 내 의도와는 달랐던 인생을 탓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몇번의 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그 때는 글도 좀 썼다. 산문 이라거나, 소설 같은 글들. 어쩌면 네가 그것들을 읽게 된다면 이게 무슨 산문이고 소설이냐며 코웃음 치겠지만.
그런 너를 붙잡고 이러한 감각들에 대해서 밤새 구구절절 이야길 나누고 싶다. 좋아하는 글을 읽고, 문장을 만들어서
내가 살던 도시의 온갖 건물과 거리, 신호등과 폐업한 가게 따위에 남겨두고 왔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마음 속에 응어리 진 무언가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텍스트들에게 신세를 지고있는 건지 모르겠다.
가끔은 우리가 살던 곳에서 몇천마일이나 떨어진 출처없는 그 도시를 혼자 걸으며 너와 함께있는 상상을 수 없이 했다.
청승맞아 보일까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다.
*그리고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만큼 더운 여름왔다.
그 여름 내내 나는 매일 걸음을 세어보지도 않고 서울 시내 곳곳을 미친듯이 걸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발길을 주체 못하고 목적지도 없이 걸어다녔다.
그러다보면 어느날은 강이 보였고, 어느날은 걷다 보니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걷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 스스로 한게 없는 사람이 된 것같은 모멸감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배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듯이 기분이 허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전과 별볼일 없는 일상인데 딱하나 분명한 건. 예전 보다는 사는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우스갯 소리로 사람들에게 나는 존나 오래 살고싶다고까지 말하니까. 적잖이 스스로를 컨트롤하다가도 버거우면 그냥 포기한다. 그게 편한 것 같다.
*K, 살아가면 살 수록 삶은 참 복잡하다.
가끔은 너가 그래서 떠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잘모르겠다. 금방이고 그리워지는 감정속에서 나는 복잡함을 느끼니까. 이 복잡함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가 힘든걸까? 우리의 삶이 너무 금방 지나간 것 같아 가끔 슬프다. 너를 견디는 것은 내 몫, 나를 응원하는 것은 네 몫. 그렇게만 각자의 몫만 잘 지키면 언젠가는 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참 안쓰러울 때가 있다.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소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너가 떠나고 난 이후로 몇년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정말이지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아마도 너를 해소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다 할 대단한 무언가를 해낸 적은 없다. 그냥 꾸준히, 천천히 슬픔을 이겨내려고 작게나마 노력중이다.
예전의 나 보다 지금의 내가 나아진 것 만큼. 앞으로의 나는 조금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계속 될거고 나는 오래 살테지만 너는 스근하게도 내 안에 깊게 있을거다. 몇번의 계절이 지나도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굴하지 않�� 결국 다 잘 살게 될텐데. 왜그렇게 사는게 걱정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두려운 건지도 모르고 두려워하는 내가 멍청해 보인다.
*그냥. 요즘 K 네 생각이 많이 난다. 내가 힘들어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종종 네 목소리가 듣고싶다.
우리동네 소한마리 집을 갔는데, 부모님은 주류 판매가 주가 되는 동그란 테이블의 고깃집을 싫어하셨다.
뭐 맛은 쏘쏘했다. 저 된장국을 5번은 리필한 거 같다(...)
그리고 시내 가서 크리스마스 의장을 보고 헤어졌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여행을 다녀왔었다. 참 혼자서 씩씩하게 잘 다닌다. 그런 거 보면 매번 그녀를 물가의 아이마냥 내가 늘 애태우며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 같다.
나보다 더 씩씩하고 집념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은행 핑크퐁 ATM기를 보니까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기상어 뚜루뚜루!
2022.12.25.
18일부터 30일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근무를 했다. 물론 그와중에 쏠랑쏠랑 술마시고 논 건 안 비밀. 🤫
크리스마스날 그녀도 근무여서 판교에서 밥을 먹었다. 사실 계속된 과음으로 입맛이 없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니까 "닥터로빈, 카페 마마스" 를 가자고 했었다.
흠, 간단한 샌드위치나 작은 치즈버거나 먹고 싶었지만 그녀의 이야기대로 처음 말한 식당을 찾았다.
원래 사람들은 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먼저 이야기하고 나도 늘 그녀를 사랑하고 좋아하니 그런 사소한 취향은 맞추려고 한다. 뭐 정말 싫으면 싫다고 말하니까. 그게 내가 안 아프고 그녀가 안 아프고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정명석 변호사를 닮은 상담사님께 배웠으니까.
막상 식당 들어가면 식탐이 돌기 때문에 그렇게 메뉴를 3개나 시켜서 먹고 있다가 결국 저 토마토 스파게티의 소스를 바게트로 찍어 먹는데 진짜 진짜 행복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은
따뜻하고 끈적이던 여름, 가을 어딘가의 날들을
비집고 들어간 새로운 시간들이었다.
사랑이라고 묻는다면
응당 그렇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감정들에 대하여
도피였느냐고 비난한다면
또 그러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한 때 당신에게 과하게 사로잡힌 시간을
무어라 정의할 수 없다.
집착도, 애정도, 사랑도
그 어떤 것들도 당신을 그토록 갈증내던
감정을 대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광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요즘의 나를 보아서 그렇다.
불같이 화가 나다가도
이내 차분해지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나를 꼬집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음 깊은 곳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응어리가 생겨나곤 한다.
나는 이 상대를 붙잡고, 마음껏 흔들어서
내 안에 가둬두고 싶은 것이 분명한데도
그렇지 않은 척 살아내고 있으니까.
사랑인지 광기인지 모를 어떤 감정들을
숨겨두는 시간들.
-Ram
*광기
섬에서 몇 개 없는 와인샵을 찾아갔다. 꽤나 와인의 종류도 많았고, 사케, 위스키 등 다른 술들도 많아서 고르는 데 한 시간은 걸린 듯했다. 맹신하다시피 하는 비비노 앱을 켜고 열심히 마음에 드는 와인 라벨을 찍었다. (비비노 평점 외 와인을 고르는 나의 기준은 14도) 그 와인샵 안쪽으로 들어가면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아서 앱이 굉장히 결과를 느리게 보여주는 바람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와인샵 주인은 유일한 손님인 우리를 계속 주시하며 언제 뭘 사가나 기다리는 눈치였다. 섬의 샵들은 술집을 빼곤 9시면 거의 문을 닫기 때문에 더 이상 와인샵에 들어오는 손님도 없었다. 그래도 이왕 사는 거 괜찮고 맛있는 와인을 사기 위해 주인의 눈빛을 외면하며 열심히 와인을 골랐다. 드디어 고른 와인은 생각한 것보다 가격이 조금 더 나갔지만 그건 이미 아무 상관이 없었고, 맛만 있길 바랄 뿐이었다. 9시가 되었으려나. 와인에 맛있는 안주를 사러 또 뽈뽈뽈 스쿠터를 타고 문 연 집을 찾아갔다. 그날따라 와인 안주로 크리스피 포크를 꼭 먹고 싶어서 크리스피 포크를 팔 만한 음식점들을 죄다 뒤졌는데 5개의 음식점을 들렀는데도 크리스피 포크는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물어물어 결국 크리스피 포크 파는 곳을 찾았고, 신나는 마음으로 다른 해산물 요리들까지 잔뜩 주문해서 들고 싱글벙글 숙소로 돌아왔다. 그 섬에서 고급 리조트에 속하는 숙소였기에 당연히 와인 오프너가 있을 줄 알았던 그 당연한 마음을 갖고. 숙소 도착 후 리셉션 직원에게 바로 달려가 와인 오프너를 빌려달라고 했다. 'we don't have it. because our kitchen is already close' 이 말을 듣기 전까진 내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는데. 아. 키친이 문을 닫아서 와인 오프너를 빌려줄 수가 없다니. 와. 진짜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고난이었다. (크리스피 포크를 거의 7번째 음식점에서 샀던 일이 첫 번째 고난이었지) 와인을 사고, 맛있는 음식들을 사서 돌아오자고 한 지가 이미 2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 10시 정도 됐으려나. 아. 아. 아. 그래도 오늘 꼭 난 그 와인을 마시고 싶었다. 열심히 음식점들을 돌며 물어물어 겨우겨우 사 온 따뜻한 음식들과 함께. 와인은 포기하고 그냥 따뜻한 음식을 먹을 것이냐, 음식은 식어도 와인을 꼭 마셔야 할 것이냐. 당연히 내 선택은 후자였다. 다시 스쿠터를 타고 나갔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로컬 마트 문이 열려 있었다. 와인 오프너가 있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 다시 스쿠터를 타고 다음으로 가까운 세븐일레븐 도착.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와인 오프너가 있냐고 물었다. 그 직원의 대답 역시 'no'. 다시 세븐일레븐을 나서서 세 번째 가까운 마트에 갔지만 이미 10시 반이 훌쩍 넘어있는 섬은 요란하게 불빛으로 치장된 바 말고는 조용하고 캄캄했다. 동네를 다 돈 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다시 세븐일레븐으로 돌아왔다. '뭐라도 있겠지. 와인 코르크를 뽑아낼 만한 뭔가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세븐일레븐을 샅샅이 살폈다. '뭐든 눈에 걸려라' 싶은 마음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선반에 진열된 물건들을 훑어봤다. 그런데 진짜 생각지도 못하게 와인 오프너를 찾았다! 선반 옆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분명 직원은 와인 오프너가 없다고 했는데? 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건가? 직원이 모르고 그냥 대답한 건가? 계산하기 위해 와인 오프너를 카운터에 놨다. 정작 직원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와인 오프너를 계산했다. 어쩜 반응이 하나도 없지. 별별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음식은 계속 식고 있었으므로 빨리 와인 오프너를 가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숙소에 와서 와인을 속 시원하게 오픈했고 와인 잔에 와인을 따랐다. (다행히 와인 잔은 있었다) 이미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갔지만 아무 상관 없었고 그날 마신 그 와인은 절대 잊지 못할, 심지어 맛있기까지 한 인생 와인이 되었다.
-Hee
*광기
카발란 위스키 증류소를 다녀오면서 몇 가지를 사 왔는데,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줄 위스키 바이알과 힙 플라스크, 온더락 글라스같이 소소한 것들이었다. 타이베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보이는, 리큐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상점에서 카발란 위스키는 눈에 치이게 많이 보였고, 증류소의 정가보다 얼마씩은 더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구하기도 어려운 위스키들이 먼지 쌓인 채 구석에 놓여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짐이 무거워질 것을 염려해 마지막 날에 몰아서 쇼핑을 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
우리가 찾던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는 봉준호의 영화에 나왔다느니, BTS가 사랑한 술이라느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술이다. 타이베이에서 버스를 타고 이란에 도착해 택시까지 타고 어렵게 찾아간 증류소에서는 박스 째로 한가득 놓여있어서 잘 몰랐는데, 시내 어디에서도 품절로 찾아보기가 어려운 인기품이다. 그때부터는 얼마나 저렴하게 사는지가 아니라 면세 한도 4병의 슬롯에 그것을 한 병이라도 끼워 넣는 게 목표가 됐다.
꽤나 다급했다. 마지막 날 일정을 끝내고 나니 이미 대부분의 주류 상점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됐다. 이미 잔뜩 지친 가운데 자전거를 타고 온 시내를 쏘다니다가 24시간 운영하는 까르푸 한 지점에서 겨우 구매할 수 있었다. 금액은 역시나 증류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정가였지만 안도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우리가 술을 사는데 얼마나 썼는가 계산해 보다가 한순간 광기에 빠져버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여행 비용만큼 술을 샀다. 한국에서 구할 때의 1/3 가격이라며 잘 한 일이라 포장하고, 올해부터 안 주고 안 받기로 했던 내 생일 선물이라고 위로했는데도 우리 형편에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냐는 위기감에 뺨을 맞은 듯 마음이 얼얼해졌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일은 그 광기를 결국은 열의와 근성이라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혼란스러웠던 여정을 끝끝내 잘 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집에 돌아와서는 기념품들을 죽 늘어둔 채 사진까지 찍으며 기뻐했더랬다. 도대체 앞으로는 어떻게 되려고…
-Ho
*광기
광기라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사전을 찾아보니 미친듯이 날뛰는 거라 는데.. 내가 그런 적이 있나, 아니면 누가 그런 걸 본적이 있나 생각해봐도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일상에서 종종 미쳤다는 말은 가끔 쓰는 것 같다. 주로 뭘 먹었는데 맛있을 때 '미친 맛이다!' 고 하면 진짜 맛있는 느낌이다.
또 어떤 상황에서 '미쳤다!' 이러면 여러 의미를 내포하는데 주로 놀라움을 표현할 때 쓴다.
표현이 격하기는 해도 시의 적절하게 쓰면 상황을 더 풍부하게 설명하게 해주는 것 같다.
어떤 것에 몰두해서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광기어릴 정도로 미치는 것은 안 좋을 것 같다.
근데 요즘은 미쳐서는 안되는 것에 너무 쉽게 미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안병무라는 이름은 류영모, 함석헌, 김교신 등등… 이젠 많이 잊힌 듯하지만 비주류 기독교인들의 행적을 살피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내가 추구하는 바와 결이 다르긴 해도 인간적 존경심을 품게 하는 집단.
독일 대학에서 불트만 문하로 들어가 신학을 전공했고, '향린교회' 설립을 주도했고, 한신대 총장이었단 거 외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잘 모른다. 게다가 여태껏 이분이 쓴 책 한 권을 안 읽었네. 어쩌다 보니 '선천댁'이 내가 처음 읽은 책이 돼 버렸다.
이 책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기를 주저하며 계속 미뤘다. 어떤 내용인지를 대충 알고 있었고, 상당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거로 예상이 됐기 때문.
문득 이러다 영영 기회를 놓치면 어쩌나 싶어 맘을 바꿈. 출판 연도가 1996년이라 시중에선 당연히 구할 수 없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책이 아니라 서울 시내 도서관 중에선 정독, 남산 두 군데만 보유 중이다. 이중 남산 도서관을 찾아 직원에게 문의하니 별도 서고에서 꺼내 줬다.
선척댁은 저자의 어머니이고, 아들이 엄마로부터 들은 얘기를 저자의 시각에서 쓴 일대기다.
짐작대로 두 가지 면에서 읽기 힘들었다. 우선 선천댁의 삶 자체가 그렇고, 문장이 명문이라 시종일관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저자가 1922년 생이니까 선천댁은 대략 1900년 초 출생일 거로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당시 조선 관습대로(?) 이팔청춘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팔려 가듯 시집 가 혹독한 시집살이와 농사를 지으며 두 딸을 낳았으나 모두 죽었다고 한다.
"…그는 이미 두 딸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다…중략… 그 씨족들의 멸시가 독이 됐는지 그들은 태어나서 빛을 얼마 보지 못하고 다 죽었다. 그 시체들을 붙잡고 하염없이 우는 것은 선천댁 하나 뿐이었다…"
그러다 1922년 세째 아이이자 첫 번째 아들을 낳은 것이다.
"…선천댁 입에서는 밭에서 일하다 엉금엉금 기어들어와 혼자 아이를 낳았다고 들은 것 외에는 없다. 그때 그 많은 식구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그 장면이 너무 엄청나서 그런 물음을 할 염을 못 한 것이다. 어떻게 산모 홀로 탈진 상태에서 탯줄을 가위질하며 목을 가누지도 못하는 새 생명을 감싸안고 몸을 닦아 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첫 아이를 낳을 때에는 식구들 중에 누가 있어 도와주었으리라. 그는 그대 경험한 일들을 기억해 가며 그 일을 해냈으리라…"
남편은 책임감이라곤 0.1도 없는 인물로 어느 날 외간 여자를 꼬셔 만주로 달아날 계획을 세웠다가 선천댁에게 틀킨 거로 나온다. 이 얘기가 또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부친 모르게 공부를 해 이름난 한의사가 됐으나 바람기가 심해 진료받으러 온 여환자들과 정분나기 일쑤라 한번은 성난 남자가 낫을 들고 찾아 온 것을 선천댁 기지로 돌려보냈단 일화가 나온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런 인간 말종 따위 낫에 찍혀 죽든 말든 자업자득이라며 내버려뒀을 수도 있을 텐데, 선천댁은 이런 남자가 임종할 때까지 일평생 묵묵히 곁에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이 "왜 그렇게까지?" 라고 물으니 "인간이 불쌍해서…"란 대답.
선천댁은 한심한 남편에게뿐만 모든 사람에게 다정다감한 성품을 타고 나신 듯,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놀라우면서 한편으론 동학의 인내천 사상에 나오는 "하느님 같은 사람"의 현현을 보는 듯한…
147쪽에 '함께 떡을 쳐서 사는 기쁨'이란 소제목을 단 글이 있다. 한국 전쟁으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기에 떡장사를 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찹쌀로 떡을 만드는 얘기. 일부만을 발췌한 걸로 느낌이 오롯이 전달될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잔잔한 슬픔이 감도는 정서가 스며 있었다.
"…선천댁은 찹쌀을 사서 머리에 이고 들어왔다. 전에 없이 가마에 찹쌀밥이 오래오래 끓고 있었다. 콩을 사다 다듬어서 그것을 볶아 떡고물을 만들었다. 교인들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일부러 문을 닫아 걸고 했다. 새벽 일정한 시간이면 어머니가 두 아들을 깨워 일으킨다. 얼른 세수를 하고 '일터'로 가면 선천댁은 벌써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떡을 칠 손만 기다린다. 그 집 어느 구석에 굴러다니던 큰 돌판을 옮겨 놓고 그 위에 더운 찰밥을 쏟아 놓으면 우리는 떡메를 내리치는 것이다. 한번 치면 앉아서 흩어진 밥을 재빨리 한데 모아 놓고… 치면 모으고… 우리는 즐거웠다. 이 일에서 나는 공동체의 싹을 보았다. 내 일생 오직 한 번 있었던 떡 치던 경험, 그것도 둘이 한 몸같이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떡 치는 아들들을 대견히 힐끗힐끗 올려다보는 다정한 어머니의 눈, 앉아서 기민하게 손을 놀리는 어머니의 자그마한 등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아들들, 그래 그 노동은 즐거운 것이었다…"
저자가 글을 얼마나 비범하게 쓰는 지는 선천댁을 묘사하는 가운데 종종 (글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한 표현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문자 그대로 무식하단 의미가 아니다. 이 속엔 자기 엄마를 향한 무한 애정과 함께 문자를 초월해 측은지심의 사랑을 실천한 위대한 존재를 느끼게 한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선천댁… 이 세상에 무한히도 많은 선천댁… 우리의 산실이요, 품인 선천댁…"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자 이번엔 "늘 살아 있는 나의 어머니"라는 부제가 새삼 눈에 꽂혔다.
새벽의 캘거리 시내 풍경 한번 찍어 봄. 첫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 도착. 6시간을 기다렸고 11시간을 날아서 인천으로 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혔고 입고왔던 자캣은 너무 더워서 바로 벗어버렸다.
큐코드를 한 사람들은 그냥 통과되었고 안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앱을 깔거나 종이로 폼을 완성해야 입국심사칸으로 갈 수 있었다. 30분이 걸려 입국심사를 마쳤고 내가 도착한 때에 일본발 비행기도 같이 도착했는지 많은 일본어 를 들으며 그들과 함께 인천공항 도착장으로 빠져나왔다. 위아래가 다 막힌 화장실 문을 보며 한국에 왔음을 실감했다.
코비드 이후로는 처음 왔으니 한국엔 3년 만인가. 예전엔 대구로 가는 비행편도 있었고 공항에서 바로 ktx를 타면 동대구까지 갈 수 있었는데 이 두가지 방법이 이젠 모두 없어졌다. 인천공항에서 직통열차를 타고 서울역까지 1시간이 걸렸다. 금요일 저녁의 서울역에는 사람이 엄청많았다. 이렇게 인구밀도 높음은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당황했다. 2시간 반이 걸려 대구에 도착했다. 오는데만 거의 2일이 걸린 나의 긴 여정 끝.
습한 공기. 더운 날씨. 많은 사람들. 도로에 가득찬 자동차들. 엄청 많은 커피가게들.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 날씬한 사람들. 깔끔한 사람들의 옷차림. 잘 정돈된 헤어스타일. 럭셔리 브랜드 앞게 길게 늘어선 줄. 입체형 마스크를 쓴 사람들. 조금만 늦어도 죄송합니다 연발인 점원들. 바쁘게 커피를 내리면서도 “필요한 게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라며 외치는 커피집 직원들.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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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2023 Volume2 Issue of <W Korea> is published. You can buy it online and offline bookstore right now.
https://www.instagram.com/p/Cni0ClHIe8Z/?hl=es-la
wkorea - Jimin W 2023 vol. 2 fue lanzado hoy.
#협찬
더블유 2023년 vol.2가 오늘 발행되었습니다. 강남과 광화문 교보문고를 비롯해 시내 서점들에 책이 배포되고 있지요. 기다리던 책을 서점에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건 여전히 설레는 일입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더블유의 인쇄소는 지민이 커버를 장식한 책을 인쇄하느라 바삐 돌아가는 중입니다.
@-wkoea #editor_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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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Vol. 2 of W Korea is now available!
They are waiting for you at bookstores around the city, including Kyobo Bookstore in Gangnam and Gwanghwamun. We still found it quite charming that an actual journey to getting a book you’ve been waiting for at the bookstores.
Don‘t worry, though. More copies of Vol. 2 are on their way.
*<W Korea> Volume 2 for 2023 is now available for online order, find a profile link.
wkorea twt - Jimin W 2023 vol. 2 fue lanzado h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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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vol.2가 오늘 발행됐습니다. 강남과 광화문 교보문고를 비롯해 시내 서점들에 책이 배포되고 있지요. 기다리던 책을 서점에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건 여전히 설레는 일입니다.
#wkorea #방탄소년단 #지민 #BTS #Jimin #Dior
[Vegetarian in Zürich] The World’s Oldest Vegetarian Restaurant - Hiltl
[취리히-기네스북][채식인의 성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채식 식당 - Hiltl
Recently I met a nice lady in a local market or Zurich. Thankfully, she showed me around the city center as a lovely ambassador of Zürich. Since I arrived from Costa Rica, feeling weak, I said that I was wondering what it would be like to live in Zurich. I didn’t expect to meet people who are both relaxed and kind in a big metropolitan area. However, She made time for this stranger friend and wanted to show me a nice Asian grocery store. (To be honest, I am good without Asian ingredients for living but it was a surprisingly good grocery shop.) Then, she offered that she would like to buy me a drink to welcome me as a citizen of the country. Eventually I could treat this beautiful lady who showed me the relaxed mindset and a beautiful restaurant.
The most impressive restaurant in Zurich was Krone Halle so far while I am writing this blog. But I can’t wait to go back to Hitl and try other dishes in the menu. Thinking of their passion and a long journey in creating the interesting menu, I would like to be able to have some interview with the manager some time. Given all the vegetarian restaurants that I’ve been to for the last years (Korea, Mexico, Italy, Protugal, Spain, Costa Rica, and Croatia, Andorra), Hiltl has an excellent and various dishes.
There are several locations but I was lead to Hiltl Dachterrasse. There are two terraces and I consider the smoking zone has a better view than the non-smoking zone. The staffs are very kind and good at English. After talking with a staff, I got a nice chai latte and we shared a dish. I loved everything we picked and I can't wait to visit Hiltl again. 😊
최근 취리히 로컬 마켓에서 만나 알게된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된 레스토랑.
4대째 채식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한국의 할머니 곰탕도 울고 갈만한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채식 레스토랑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답게 맛이 매우 훌륭하다. 오전에 조식을 먹고 간 참이라 모든 메뉴를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다양성과 디저트를 제외한 모든 메뉴가 무게로만 가격이 책정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스위스는 슈퍼마켓에서 사먹는 샐러드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것을 생각해본다면, 채식주의자라가 아니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선택지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시내 구경 중에 테라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쉬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뷰가 더 좋은 테라스는 흡연 구역인데 상황에 따라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차이티를 시키고 싶었는데 단 시럽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 달지 않은 차이 메뉴를 물어봤더니 친절히 가능한 메뉴를 소개해줬다.
키쉬, 인도 음식과 샐러드를 먹었는데 모두 전문 매장에서 먹는것처럼 맛있었다. 또 가고 싶다 🤤
서울시는 최근 건축위원회를 통해 여러 대규모 주택 개발 프로젝트의 건축심의를 승인했습니다. 이 중 한남5구역, 케이스퀘어 그랜드강서, 문래동3가, 흑석9, 서초동, 그리고 서울역북부 특별계획 등 6개의 주요 사업이 포함되어 총 4,350세대의 주택이 공급될 예정입니다. 이들 프로젝트는 서울 시내 여러 지역에 위치하며, 각각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설계와 계획이 적용되었습니다.
한남5구역 재정비 프로젝트는 용산구 동빙고동에 위치하며, 지하 6층, 지상 23층 규모로 총 2,592세대의 주택이 건설됩니다. 이 사업은 한강과 남산을 잇는 경관 축을 중심으로 고안되었으며, 친환경적 디자인과 공공보행공간 확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특히,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스카이라인과 건축물의 형태가 주목할…
2000년대 초 한국에 닷컴 버블이 한창일 때 청담동에 위치한 디자인 사무소를 1년 정도 다님. 돌이켜보면 개발자 몸값이 최고조일 때 엉뚱한 데서 별 성과도 못 내고, 사측과 나 사이 팀웍이 맞질 않아 둘 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또 하나 고역은 매달 회식을 꼭 나이트클럽에서 하더라고. 음악은 절대로 내 취향 아님 + 근본 없는 막춤 출 줄 모름 + 덕후 기질 인간에게 부킹이 가당키나 하냐고. 더구나 싸구려 양주와 과일 안주에 붙은 계산서 볼 때마다 돈이 너무 아까워 한숨만…
근데 1990년대 중후반 무렵에도 약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음악 동호회 사람들과 홍대 주변을 자주 배회했는데, 얼터너티브롹 유행이 저물고 나자 인디밴드, 힙합, 테크노가 거의 동시다발로 각자 영역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내 덕질 분야는 오로지 재즈뿐이었지만, 무리에 이끌려 여기저길 돌아다님. 언뜻 기억나는 곳으로는 드럭, 푸른굴양식장(나중에 마스타플랜으로 바뀜), 마트마타, 명월관 같은 곳들… 나이트클럽과 다른 점은 음악은 듣기 괜찮았다는 거지만, 여기도 막춤 추거나 헤드뱅잉 하는 애들이 있어 적잖이 당황.
어쨌든 따라다닌 덕분에 테크노 장르에 관심이 좀 생겼는데 때마침 서점에 '입 닥치고 춤이나 춰'란 책이 나옴. (신현준 외 3인 공저) 테크노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와 뮤지션을 소개한 책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유튜브가 없어 책만 읽고 막상 음악 들을 기회가 없었다는.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책장을 뒤졌지만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길래 서울 시내 도서관 검색했더니 남산 도서관, 개포 도서관 딱 두군데 나오더만. 하긴 나 같은 사람 아니면 이런 책을 누가 찾겠냐 싶기도 하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책에 소개한 음악을 유튜브에서 죄 들어볼 수 있게 돼 틈틈이 다 들어보려고 음악가 이름을 따로 정리하는 작업 하면서 간만에 케미컬 브라더스, 프로지디, 오비틀, 퓨처 사운드 오브 런던 등등을 들으니 그 시절 홍대 생각이 나더만.
간혹 밀롱가에서도 술판을 질펀하게 벌이는 무리가 있던데, 내 눈엔 나이트클럽에서 놀던 습관을 밀롱가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어디서 어떻게 노는지는 각자 맘이긴 하겠으나 나는 이런 분들과는 관심사가 전혀 달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어 (잘난 척한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초기 땅고 역사가 화류계에서 출발했음을 떠올리면 그들이 전통(?)을 계승한 거고, 나 같은 음악 덕후가 변종이겠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