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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eunload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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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책 <속옷의 후크가 벗겨진 건 그때였다> 에세이가 전자책 작업이 완료되어 플랫폼 ‘밀리의서재’에 등록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주변 추천도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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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woo-demian · 9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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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코스모폴리탄에 실렸어요! 🙋🏻‍♂️
https://www.instagram.com/p/Cvd6mtMvkyy/?igshid=MzRlODBiNWFlZA==
코스모폴리탄 8월호에 실린 『서울 이데아』 ✨
‘삶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
섹션에 서울 이���아가 실렸어요!
모로코 교포로 유년 시절 내내 이방인 취급을 받던 준서가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어느 사회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이데아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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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note · 5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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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겨울이 되었다. 밖에 도통 나가는 일이 없어 찬 바람이 부는지 눈이 나리는지도 모르지만, 겨울이 왔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못 썼다. 그래, 글을 못 썼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었다. 나는 노상 글을 쓸 때마다 비 젖은 골목길에 한껏 술주정을 부리다 가게에서 쫓겨나 흠씬 두들겨 맞은 삼류 깡패 같았고 그때 그런 내 눈에 비친 세상은 그 밑에 깔린 퀴퀴한 쓰레기더미 아래로 고인 빗물에 네온사인이 비틀거리며 비추는 낯설고 더러운 골목과 달리 가로지른 저기 너머에 늘 생기 넘치는 유흥가 같았다. 밤인데도 번쩍번쩍 빛이 나는 밝은 거리에 사람들은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옅은 미소가 걸려있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선지 칼바람에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코가 빨게진 채 왁자하게 삼삼오오 붙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쓰레기 더미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반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로 아침이 되어 상가의 불빛들이 점멸할 때까지. 다시금 그 거리에 상기된 얼굴에 사람들이 건물 틈 사이에 후미진 골목이 있는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가득 차 스쳐 지나갈때까지. 꼼짝도 하지 못하고 먼 곳만 바라보다가 흙탕물에 뒹굴어 젖은 옷도, 몇 번이고 갈겨 맞은 몸도, 주린 배도 다 잊은 듯이 여기 골목 여느 쓰레기 더미 처럼 변하기로 결심이나 한 것처럼 한켠에 고개를 푹 숙여 무릎에 묻으며 웅크려 앉았다. 거기에서 계절이 지나는 것을 바람으로 알았다. 머리통이 얼얼하도록 사정 봐주지 않고 불던 바람이 미적지근해지고 미적지근해지다가 숨이 막히게 들끓고, 그렇게 절절 하다 다시 찬 바람이 불었다.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낡은 고물들이 골목 어귀를 더 장식했을 뿐 크게 바뀐 것 없는 풍경이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너머의 시끄러운 음악에, 세차게 내리는 비에, 떠들썩한 사람의 소음에 희미하게 울음을 섞어 보내는 일밖에 없었다. 가끔 터져 나오는 울먹임으로 내가 아직 여기 살아 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듯이.
삶을 살아내면서 풀에 지쳐 주저앉는 일이 많았으나 단 한번도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다. 시름에 젖어 바닥에 엎드린 채 땅을 내리치며, 원망하며 울었으나 길 위에 박힌 채 앙상한 나무가 되진 않았다. 나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달려 나가지 못하는 내가 분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원망하고 채찍질 했지만 그때에도 나를 달래고 또 달래어 뛰지는 못해도 천천히 걷도록 했다.
어쩐지 그전처럼 박차고 일어날 수조차 없는 날들이 한 달, 석 달 그리고 1년을 채워 가고 아무도 봐주지 않고 골목에 놓여 있는 발에 차이는 쓰레기 더미가 되겠다고 한 다짐에 정말 그렇게 된 듯 나의 발은 달싹 하지 못 한 채 굳어버렸다. 며칠 밤낮을 울어도 몇 년 묵어 깡깡 얼어버린 냉동고 속 골칫덩이 동태처럼 해동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움 맞은 편 있던 절망이 천천히 나를 향해 뒤 돌았다. 저 면을 또 얼마나 오랜 시간 마주 보고 있어야 하나. 발을 구르는 것을 포기 한 채 다시금 주저앉아 점차 말을 더 잃었고 나아가 생각 또한 잃어 갔다.
그렇게 되자 나는 이내 좋아하는 차를 며칠이 걸려도 못 마시는 지경이 되었다. 차를 마시려면 마셔야겠다고 다짐 해야했고 그것을 사러 먼 곳으로 걸어 나가야 했고, 차를 사온 뒤엔 포트에 물을 올리고 우려내야 했으며 그것을 의자 앉아 마셔야 했다. 그래서 못 했다. 먹고픈 음식이 있어도, 만나고 싶은 이가 있어도, 보고 싶은 영화나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책장에서 빼는 것조차 어려워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천장을 보고 누워 있거나 그러다 까무룩 잠들었다. 너무 잠만 자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숨만 쉬었다. 다시 잠들고 아침이 되면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모자를 둘러쓰고 산책할 겸 커피를 사러 나가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서 바지런을 떨며 나갈 준비를 하고 깨끗하게 감은 머리와 잘 정돈된 피부, 먼지 하나 없는 코트와 부츠를 차려입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게 여의찮다면 내가 먹을 음식의 장을 보고 사람을 구경하며 필요한 물건을 몇 개 더 사고 집으로 들어와 서둘러 음식을 해 TV를 틀어놓곤 웃음을 터트리면서 맛있게 먹고 통통한 배를 문지르며 귀찮은 설거지를 미루다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걸려 온 친구의 전화에 직장 욕을 서로 실컷 하다 다시 씻고 나와 보송한 잠옷을 입고 초를 켜 책을 몇 자 읽고는 다시 잠드는 생각. 생각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조금 더 지나자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또한 멈추게 되었다. 그렇게 모진 날 속에서도 결국은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길을 돌아 찾아 나서는 용감하고 멋진 나의 손을 놓치며 폐장한 놀이공원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손에 있던 풍선도 언제 놓았는지 온데간데없고 주위에는 회전목마가 빛을 잃은 채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누구를 잃어버렸나요? 저기서 같이 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해주는 안내원도, 여기로 나가면 됩니다 하는 비상 탈출구의 푸른빛 또한 없었다. 모든 것이 깜깜하게 내려앉은 이곳에서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예전에 서러운 삶에 대해 말하길 긴 터널을 걷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 긴 터널을 지났더니 곧 다시 터널이었다는 것도 덧붙여서. 그때 나는 그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결국 다시 걷는다고 했다. 그것이 불행한 오늘을 과거로 보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나는 씩씩한 나를 먼 언저리에 놔두고 왔다. 손을 놓고 다시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술에 취해 두들겨 맞은 깡패였고 어둑하고 낯선 골목이었으며 폐장한 놀이공원이었다.
터널 끝에 깜빡거리며 빛나는 빛을 향해서만 걸으면 길을 잃지 않아도 되는 터널이 있다. 그 터널을 빠져나오니 다른 곳에 들어가면 끝에 보이는 희미한 빛도 없이 문이 철문으로 꽉 막혀 버린 터널이 있었다. 막힌 철문 위로 팡팡 두들겨 봐도 열리지 않으니 다른 길로 빠져 나갔다 그렇게 오래도록 헤맸다. 헤매고 헤매다 행색이 초라해지고 거뭇거뭇해진 채 겨우 다시 돌아왔다. 문득 뒤돌아보니 내가 잃어버린 내가 저 끝에 아지랑이처럼 서 있다. 어떻게 다시 만난 건지 다시 만났는데 왜 아직 이 두껍고 야속한 문은 열리지 않는 건지 물어도 멀리 있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터널을 왕왕 울리며 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며칠을 아니 혹은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의 길에서 빠져나오니 이제 겨우 다시 출구를 찾았는데도 바뀌는 것이 없어 문 대신 답답한 가슴만 팡팡 치며 울었다. 마음에 시퍼런 멍이 들 때까지.
수만의 좌절과 아픔이 지나가면 늘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있었는데 이대로 저 멀리에 내가 그저 환영이라 다시 오지 않고 이 문도 열리지 않는다면 나는 여기 평생 갇히는 걸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무력함에 어디든 머리라도 세게 박고선 다시는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여길 나가는 걸 포기한다면 그것이 훨씬 편하지 않을까. 굳이 이 고통을 참아내며 나가서 다시 또 다른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야 하는 나를 견디는 일이 맞을까. 시간이 다 되면 마법이 풀려 생명을 얻은 물건들이 다시금 물건이 되어 굳어 가는 동화처럼 아득한 생각에 천천히 굳어가고 있었다. 저 문은 아마 평생이 가도 열리지 않겠지. 조용한 암전이 침대 옆을 지키고 절대로 다음 날의 아침이 이 암전을 깨우지 않길 바라며 죽은 듯 잠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조용한 침상을 흐트러트리며 목덜미를 낚아채 소리쳤다. 참 씩씩한 목소리로 여기는 기다림의 터널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멀리서 그렇게 소리치며 전한 말은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곧이어 눈물 나도록 다정하게 여기는 기다려야 열리는 문이라 조금 기다리면 열릴 거야 그럼 같이 가자 했다. 나는 그제야 다른 계절이 다시 오고 있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겨울이 지나야 소생의 봄이 오듯 다 피운 꽃이 시들어야 열매가 알알이 맺히듯. 맺힌 것들이 기어이 땅으로 떨어져야 다음 생을 준비하듯. 멀리 헤매다 보면 쉬운 섭리 하나도 기억해 내는 것이 힘들다. 늘 소망하던 나의 싱그러운 봄을 언젠가부터 기도하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았다.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 다시 널부러져 좌절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놓쳐버린 것을 길게 헤매고 찾은 것으로 됐다. 또 길게 헤맬 자신은 없었지만 그것 또한 나의 두려움 중 하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온 것으로 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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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anguga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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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두고 쓴 미니 연습 에세이
이번 학기에 많은 흥미로운 것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유교사상하고 유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주제를 배웠습니다. 유교에 대해서 이 수업을 듣기 전에 잘 알지 못해서 새로운 것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재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교가 조선시대에 불교를 대신해서 국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사람들 믿고 따라하는 종교와 철학이 아주 다양하지만 유교의 영향이 아직도 아주 강하게 미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교사상이 깊은 뿌리를 내려서 유교가 한국사회에 모든 것에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교의 영향이 남성과 여성들의 역할하고 지위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유교에 따르면 여성들의 역할은 주부로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키우고, 남편을 잘 시중듭니다. 이런 이상적인 여성을 현모양처라고 부르며 이들은  현명한 엄마와 좋은 아내라는 말을 뜻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지위가 아주 늘었지만 일상에서 아직도 사람들의 대우에서 유교 전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성을 선호하는 사회 상황이 여지껏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성문제뿐만아니라 유교가 세대차이에서도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구세대는 이 전통을 지키는경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신세대는 거절하는 편이라서 가치관이 아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한테 존경을 표현하는 것도 아주 중요해서 사회가 기대하는 예의에서도 유교의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회 갈등과 문제들의 중 하나 이유는 유교사상입니다. 물론 유교가 다 나쁘지 않고 좋은 가치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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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yungt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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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꽃향기를 맡으며 걷는 것만으로 눈물이 터질 때가 있다. 만발한 꽃길을 걷고 있는데도, 전부가 당신이어서 무너지는 때가, 있다.
강송희, “우리를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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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r1us4tmblr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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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한번씩은 째고 살자
세상에 문제는 많다. 돈이 없을 수도 있고, 상사든 교수든 윗사람이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고, 인간관계나 연애가 힘들 수도 있고, 하려는 일이 뜻대로 안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특히 돈 없고 능력 없는 20대에는 이런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오늘 나에게 이 모든 종류의 문제가 한꺼번에 닥쳤다는 것이다.
솔직히 짜증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싶고, 되돌아보니 좀 더 ���심히 현명하게 살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나름 잘 살았는데 이건 너무하다 싶기도 한다. 화나고 열받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원망스럽고 슬프고, 근데 또 일단 오늘은 넘기고 싶고, 그런다고 내일이 딱히 다를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배 하나를 물고 가만히 생각한다. 문제는 해결하는 데는 많은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의외로, 운이 좋은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의도치 않은 일자리가 찾아온다거나, 내가 고민하던 문제가 사실은 오해였다거나, 갑작스러운 행운이 날아온다거나 등등.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풀린 문제가 꽤 많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노오력. 솔직히 노력해서 안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노력에는 간단하지만 잔인한 논리가 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내가 충분히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자책 또는 자기합리화가 가능하다. 꽤 유용하면서도 꽤 아픈 논리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배째라’이다. 딱히 해결 방법이라고 부르기는 뭐하지만, 때로는 배를 한번씩 째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도 불가지론자에 가깝지만 때로는 신의 존재가 유용하기도 하다. 너가 만들었으니까 너가 책임져라. 나는 모르겠다. 난 돈이 없으면 라면 먹을거고, 사람 때문에 갈등이 생기면 걔네가 알아서 풀게 해라. 물론 이게 장기적인 선택지가 되면 곤란하다. 하지만 운도 따라주지 않고 내가 뭘 하기도 지친다면 하루 이틀쯤은 그냥 넘기자.
그래서 나는 오늘만큼은 배 한번 째기로 했다. 난 내 성에는 차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 오늘은 운도 더럽게 없고 짜증나는 사람도 있었다. 통장 잔고는 텅텅 비었고 그 와중에 빠져나갈 돈은 쌓여있다. 딱히 방법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근데, 오늘은 그냥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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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ani0725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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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첫 시작. 쓰임받기 위한 시작. #에세이 #노트정리 #글쓰기 #손글씨 https://www.instagram.com/p/Cgm8vldBu2q/?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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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yaland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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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공포증 극복
Sometimes there is something to gain by passing through rather than avoiding minefields.
When painting feels like passing through a minefield,
I want to run away from the blank paper.
If you run away, you don't have to risk it
However, the more I avoid it, the farther away I am from my dream.
Let's go through the minefield
When you start holding a pen and drawing a line,
Curiously, fear begins to fade.
The less afraid you are to ruin the painting
An interesting picture is born.
때로는 지뢰밭을 피하기보다는 지나가야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마치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 같이 느껴질 때면
백지의 종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피하면 피할수록 꿈과는 멀어질 뿐이다.
지뢰밭을 지나가자
막상 펜을 잡기 시작하고, 선을 긋기 시작하면
신기하게 두려움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림을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흥미로운 그림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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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king · 1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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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킹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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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nharo · 1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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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note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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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막상 내 책을 쓰려고 하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판형, 종이, 두께, 디자인...  무엇보다 글 자체.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그 고민의 꼬리를 물고 또 물다가  문체에 이르게 되었다. 이게 맞나.....? 
물론 글은 내용,  글감이 제일 중요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 쓰는 사람의  경험이나 상상 같은 게 얼마나 풍부하냐에 달렸고. 하지만- 어쨌든 글이다.  이미지나 영상이 아닌,  색상이나 디자인 같은 자극을 뺀,  오롯이  글자, 기호, 공간의 밋밋한 조합만으로  읽혀야 하는 것.  이쯤 되니,  쓰기 위해 쓰는 것인지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게  애초에 왜 쓰려고 했던 것이지? 
아!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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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load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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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을 자고싶다. 온 몸이 녹아드는 잠. 등 뒤의 온기가 느껴지는 잠. 있는데로 박혀서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은 잃고 깊게 빠져드는 잠. 잘 자라며 나의 몸을 어루만져주어 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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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woo-demian · 9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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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했어요!
https://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825
폭우가 내리던 칠월의 어느날, 저의 스튜디오에서 박중선 기자님과 한시간 남짓 인터뷰를 했답니다. 소설가로서의 저와 출판사 대표, 그리고 문학서울의 설립자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어요.
경청해주시던 박중선 기자님 덕분에 제 자신을 진솔하게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날을 기사로 만나니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아요.
기사 구경하러 놀러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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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02000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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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렸을때는 말이야 어린 지 자신이 뭣도 모르는 바보 같아서 당한줄 알았는데 이 나이들고 또, 또 당해보니 당할만해서도 바보 같아서도 아니더라. 그냥 무례한 것들이 잘못된거지. 얼마나 무례하냐면 그냥 제 핏줄로 부터 받은 DNA에 무례하다고 새겨져 있다랄까 .
그것들은 자기보다 약한 것이 풍기는 달콤한 스멜을 아주 기가 막히게 맡아서 그위에 오르고 싶어 안달이 났어. 조금이라도 그러지 못하면 분을 삭히지 못하고 날뛰어대는 꼴이 아주 우스울 정도라니께. 이건 어리고 나이 많고를 떠나,배우고 안배우고 떠나, 가지고 못가지고를 떠나. 그냥 생물의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일 뿐.
인간놈들도 그저 한마리 짐승인지라 걔들도 지 본능을 거스를수는 없는거야. 그러니 그런 놈들에게 결국 또 당해도 자신의 탓으로 더는 돌리지 말자. 그나마 사회화 된 ‘인간’ 답게 . 똑같은 수준의 무례함으로 받아치지 말자.
저급하면 저급할수록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 가야해. 그 짐승같은 년놈들을 상대할때는 당근과 채찍만이 필요할 뿐. 불필요한 싸움에 출혈만 커지겠지. 총칼을 들면 내손에 피만 묻히지.
좀 더 배려하고 더 따뜻해져서 지들이 감히 기어오를 수 없도록 착한 주인이 되어 울타리 안에 가둬 버리는 거야. 그럼 그런 짐승 년놈들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쓸모가 있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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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anguga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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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과 한국 (고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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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과 한국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주 들은 구절이 “미투 운동”인데 이것은 무슨 현상일까요? 미투운동의 (한국어로 “나도 당했다") 의도가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운동은 최근에 널리 퍼져서 세계적으로 큰 운동이 되었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나타났습니다. 이 표현은 2006년에 온라인, 소셜미디어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하지만 10년 후에야 관심을 얻어서 2017년에, “미투"라고하는 해시태그가 온라인을 통해서 퍼졌습니다. 미투운동의 큰 목적이 성차별이나 성폭력을 겪은 주로 여성들과 성전환 자들,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보통  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을, 예를 들어서, 영화계, 미술계, 학계, 문단 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계의 유명한 사람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 폭력의 가해자들을 재판에 회부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여성들을 보호하고 가부장제를 근절하고 성평등을 촉진하는 운동입니다.
온라인에서 이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기원은 미국입니다. 2010년에 후반에는 트위터에 나왔던 해시태그 덕분에 세계적으로 쉽게, 빨리 찾을 수 있는 주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에는 서지현 검사의 검찰 성추행 폭로 사건이 알려질때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했습니다. 그 사건이 한국에서는 큰 사건이라서 “미투"운동과 여성문제를 더 심각한 것으로 관심을 끌 수 있었습니다.. 미투 운동은 더 일반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의 기회를 열어줘서 아주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몇년동안 계속 올라갔는데 미투 운동이 이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에서 미투운동의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홍대 몰카 사건”입니다. 이 추문이 홍익대학교에서 일어났는데, 한 여자가 남자 누드 모델의 승낙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경찰이 조사를 했고 아주 빨리 해결된 범죄가 되었습니다. 경찰의 조사와 법적 기소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진행되어서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은 이유가 피해자가 남성이라서 가능했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이 사건과 비교하면 여성 피해자들이 신고할 때 보통 법적 기소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는, 다수의 여성들이 피해를 입은 ‘소라넷’의 경우입니다. 소라넷은 음란물과 리벤지 포르노를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여성들이 표적이 되고 승낙없이 온라인 ‘몰카’ 사진이 많던 이 사이트를 폐쇄하기 위한 전쟁에 15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이 두 경우를 비교하면, 수많은 여성피해자들보다 한 남성 피해자에 보여진 관심이 분명히 보입니다. “홍대 몰카 사건”이 참석자가 5만 명 이상이나 되는 큰 시위를 열게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몰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몰카는 “몰래카메라”를 말하는데 아주 작은, 눈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카메라를 공중화장실이나 모텔에 설치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찍은사진이나 비디오를 남성들이 운영하는 불법 채팅방이나 트위터같은 사이트에서 올림니다. 이런 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이 여성들이고  가해자들이 남성들인데 기소율이 아주 낮습니다. 미투 운동 추종자들은 한국의 몰카문제는 여성들에 반대하는 폭력, 여성인전을 무시하는 것과 법 집행 제도의 결함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이 세계적으로 계속되는 문제인데 몰카같은 범죄들이 한국에서 특히 심각합니다. 
미투 운동이 비난도 받았는데, 남성들만 거짓 신고를 하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짓 신고보다 실제 성폭행 발생은 빈도가 더 높아서 이런 비난이 미투 운동의 의미를 평가절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투의 목표가 사람들의 삶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대상의 폭력의 원인과 근본적인 사회 문제들을 목표가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여성들의 고난과 여성들의 규칙적으로 경험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성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부장적 문화와 성폭력의 일상화에 대항해서 싸누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사회의 인식도 변해야 되고, 남성들의 협조와 이해도 필요입니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의 억압에 대항해서 싸우는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입니다. 벌써 많은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는데 미투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 날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사용한 기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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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yungt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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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강송희, “외로운 것들에 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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